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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노년의 지혜 편
은퇴 이후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한 삶의 지혜들입니다.
노년의 지혜가 대부분이지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내용도 많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가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적은 밑거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골든 시니어
나이 많은 사람을 늙은이, 노인, 원로 등으로 부르다가 요즘은 시니어(senior)라는 영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노인대학을 원로청년대학이나 시니어대학으로 고쳐서 부르고 있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노인이라고 하니 더 싫은 가 봅니다.
요즘은 나이는 노인인데 겉으로는 쌩쌩한 젊은 노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칠십이 넘어도 아니 팔십이 넘어도 여러 가지 취미를 즐기며 살아가는 멋쟁이 젊은 노인(young senior)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도 칠순을 넘겼지만 사오십 대 젊은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활기차게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진정한 장수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 시니어(new senior)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여유 있는 자산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소비활동을 하고 각종 레저를 즐기는 점에서 기존의 노년층과 구별됩니다.
나아가 골든 시니어(golden senior)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5~1974년에 출생한 W(Wisdom, Wealth, Well-being, Work) 세대 가운데 상위 10% 수준의 자산을 축척해 풍족한 노후 생활을 즐기는 시니어를 일컫습니다.
다양한 운동과 취미생활을 즐기며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하기보다 자신을 위해 쓰는 게 특징입니다.
한마디로 멋지고 행복한 노인들입니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선배시민으로서 에너지가 넘치는 시니어(energetic senior)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금전적으론 풍족하지 않지만 그래도 골든 시니어가 되고 싶습니다.
이 땅을 떠날 때 후회를 덜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은퇴가 곧 행복이라는 노인천국, 북유럽의 여러 나라를 본받아 골든 시니어를 양산하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 들어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면 그게 최고"입니다.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자(박태호 에세이)'(2021.4.15)가 발간된 지 어언 3년이 넘었습니다.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도원 님께서 그 유명한 아침편지를 통해 3번씩이나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YES24 에세이 부문'에서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습니다.
이러고 보니 작가로서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저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은퇴 이후 20~30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내겠는가?"
주위를 살펴보니 아직도 일을 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생계형 일자리에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은퇴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말 그대로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면서 지내왔습니다.
물론 은퇴 교수요 강연자로서 대학 시간강의와 대중강연을 간헐적으로 해왔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데이케어센터 기사로서 힘든 운전경험도 쌓았습니다.
돈의 소중함과 육체적인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대로 잘 살아냈습니다.
나이 들면 건강, 돈, 친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결국 혼자가 되고 병이 찾아와 외로움이 들이닥칩니다.
그래서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노는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은퇴 이후를 대비해 왔습니다.
사실 혼자라고 하면 우선 외롭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나 같은 베이비 부머들은 혼자서 영화관이나 심지어 식당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익숙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제 과감히 한 번 해 봐야 합니다.
우선 동네 산책, 조조 영화 보기, 맛집 순례, 대형 서점 둘러보기 등 쉬운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무조건 집을 떠나 1박 2일 무작정 떠나보는 것도 권장사항입니다.
집안에서도 각방을 써보고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 등은 혼자서도 해야 합니다.
나이 들면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이런 일이 부담이 아니라 재미가 있습니다. 계란말이, 부침개, 찌개 등 간단한 요리에 조, 콩 등을 섞어 밥을 지어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식사 후 깨끗하게 그릇을 닦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 주방이 깨끗하게 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해주니 너무 간단합니다.
은퇴 후 혼자 떠났던 일본유학 시절에 이러한 습관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편 혼자서도 잘 지내려면 다양한 취미가 필수요소입니다.
물론 자신에게 맞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여러 번 소개하였습니다. 저의 주요 취미입니다.
우선 운동으로는 국선도, 테니스, 골프, 자전거 라이딩, 댄스스포츠, 텃밭 농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악기연주로 색소폰, 기타, 오카리나, 민요와 장구 등이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 일본어 공부도 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과로노인(?)입니다.
언제 이 많은 것을 다 하느냐고 궁금 해들 합니다만 잘 조절하면 해낼 수 있습니다.
"나이 들어 하고 싶은 거는 한다."는 고집이 쌓인 결과입니다.
그 노하우를 나누고 싶습니다.
칠십이 넘게 살아보니 '오늘 하루'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살아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면서 지낸다면 가장 멋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덤으로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늘 웃으면서 지낸다면 그게 행복이라 믿습니다.
'바보철학'을 생각해 봅니다
바보철학 얘기입니다.
흔히, '바보'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빗대서 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순수한 의미로는 좀 덜 떨어진 사람에게 하는 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데 이게 정반대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딸 바보, 손주 바보, 아내 바보, 아들 바보, 조카 바보 등입니다.
여기서 바보철학이 나옵니다.
바보철학은 비록 바보는 아니지만 바보처럼 우직하게, 좀 겸손하게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생활철학입니다.
인생길을 달리는 윤활유입니다.
이러한 바보철학을 실천한 네 분을 소개합니다.
먼저 경봉스님(대선사)이십니다.
선방의 수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보가 되거라. 사람 노릇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 데에서 참 사람이 나온다."
잔머리를 너무 굴리지 말고 오직 바보처럼 우직하게 살아가기를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자칭 바보라고 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십니다.
삶에 대한 겸양 때문에 바보라고 칭하셨지만 늘 낮은 자리에서 이웃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바보철학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셨습니다.
세 번째로 일본 굴지의 기업인 혼다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 宗一郞)입니다.
"머리가 좋으면 성공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바보처럼 철저히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도전하고 웃으면서 바보처럼 일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로 바보 철학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네 번째로 미국의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입니다.
창의력 하나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그가 한 말입니다.
"계속 배고프고, 계속 바보스러워라."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프고 바보스러운 데에서 멋진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역시 바보철학의 선구자였습니다.
저도 바보철학의 신봉자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내 좌우명입니다.
"항상 웃자.
모두에게 감사하자.
바보가 되자"
이렇듯 바보철학은 내 좌우명의 하나가 되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시기심이 일어납니다.
심할 경우, 상대방의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주곤 합니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맞닥뜨리는 문제가 참 많았습니다.
내가 어렵게 쌓아 놓은 열매를 너무 시기하여 내게 상처를 준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바보가 되자"입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바보스럽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겸손하려고 합니다.
바보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바보철학은 남은 인생길에도 꼭 지니고 가려합니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이웃 모두를 위해.
종교에 대하여
종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세계적인 종교 분포를 살펴봅니다. 좀 지난 통계입니다.
기독교(31.5%), 회교(23.2%), 힌두교(15.0%), 불교(7.1%), 무교와 기타 토속종교(23.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는 개신교 (20.3%), 불교 (19.6%), 천주교(6.4%), 유교(0.5%), 기타(53.2%)가 차지했습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 반수를 넘습니다.
하나의 특징은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우리 한국이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입니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의 종교를 보면 개신교나 천주교 등 기독교신자가 많았습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개신교, 김대중,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입니다.
저는 경북 김천 시골 깡촌의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불교가 다수인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집 뒤에 암자가 있어 스님들의 독경을 듣고 의미도 모르면서 따라 불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 인연으로 불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달라이라마, 틱낫한 스님을 비롯하여 성철, 법정, 법륜, 지광 스님 등 국내외 유명스님의 관련 서적을 두루 독파했습니다.
그 결과 불교의 자비정신과 기독교의 사랑이 같은 의미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기독교를 접했습니다. 친구의 전도와 잠시 신문배달을 하면서 어느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초대형교회에 속하는 부전교회의 중고등부 학생회장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총신대학을 진학해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당시 담임목사(한병기 목사)님의 간곡한 설득으로 고난의 길(?)을 접었습니다.
상과대학을 가서 장로로서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동안 장로로 피택 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내가 미루고 미루다 보니 칠십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장로는 되지 못했지만 집사로서 봉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보수적이라는 예장(합동 측)에 속했다가 성결교회에서 봉사하고 지금은 순복음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집사람과의 결혼 에피소드입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부모님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으로 뭉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내 강요(?)에 못 이겨 늦게 입문했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후 1남 1녀를 낳고 신학대학원까지 졸업하여 지금은 순복음교회 소속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하고 십수 년째 봉사해 오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신앙 낙제생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기독인의 길을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그 어느 곳에 있든지 기독교인의 표시를 내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좀 손해 보려 했고 먼저 주려고 했습니다.
나중에야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느 선배님 왈, "박 교수가 믿는 것을 나도 믿고 싶네."라고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합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신앙생활은 내 인생길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좌절하고 실패했을 때는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지렛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니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고 사기죄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봅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돈만 아는 사이비 목사가 수두룩합니다.
반면에 참 기독교인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2022.2.26. 소천)도 그런 한 분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이자 우리 시대의 최고의 지성으로 불렸습니다.
문학평론가, 소설가, 언론인, 교수, 장관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하시고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을 지닌 천재였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바로 이런 분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이로 구십까지 사셨으니 천수를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이 땅에 머무셨다면 지혜로운 말씀을 더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지성에서 영성으로(2020)' 등 수많은 명저를 펴내셨습니다. 일본에서 1년간 대학에서 연구기간을 거치셨습니다.
일본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장녀인 고 이민아 목사의 영향이 컸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주 검사로 있다가 목사가 된 그의 따님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길지 않은 생을 먼저 마감했습니다. 두 분 다 최고의 지성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은 문학인으로 대학교수를 지내고 뒤늦게나마 기독교에 귀의하셔서 영성을 강조하셨으며 혼자 일본 도쿄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등 나와 같은 점이 많습니다. 물론 그 크기나 질적인 면에서 내가 따라가기는 너무 큰 산이라 버겁습니다.
나도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을 추모하면서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반성합니다.
참된 기독인의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셨듯이.
화(火)를 잘 참아 내는 도사(道士)가 되고 싶습니다.
"화(火)가 나면 15초 정도 참아라. 그래도 못 참으면 밖으로 잠시 나가라"
화를 내지 않는 묘책 가운데 하나 라고 합니다.
내가 실천해 보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지키고픈 원칙입니다.
한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속 좁은 인간이라서 그런지 내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리면 아직도 참기가 힘듭니다.
오죽했으면 내 좌우명을 '바보가 되자'로 정했겠습니까.
칠십이 넘도록 나이를 먹었으면 이제 철이 들고 웬만해선 덜 된 놈(?)들의 화나는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게도 다짐하고 훈련을 했건만 아직까지 불씨가 남아있습니다.
살다 보면 나도 화를 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운전 중에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보고 급브레이크를 밟습니다. 동시에 쌍욕이 자동적으로 터져 나옵니다. 이럴 때에는 상대방이 들을 수 없어 잠깐 화를 내도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가장 친한 사람들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동창회나 동호회 모임입니다. 어느 모임에나 그 한 명은 반드시 있다고 합니다. 아니 실제 있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나이 들어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점 모임이 줄어들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가 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남은 세월은 참아내야 합니다.
정 참기가 어려우면 15초를 참고 밖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화를 참아내는 도사가 되고 싶습니다.
인생 2 모작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나에게 시기의 돌팔매질을 하여 화를 못 참게 하는 놈(?)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인간 본연의 마음을 표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짐입니다.
너무 나를 내세우지 말고 바보가 되어 묵묵히 내 앞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상처받는 모임에는 과감히 연을 끊어 아예 미래의 화를 예방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끝까지 '바보' 철학을 신주 모시듯 가슴에 품고서.
화불단행의 하루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화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라는 뜻이니 재앙은 빈번히 겹쳐 온다는 말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엎친 데 덮친다."가 있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정말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안 좋은 일들이 겹쳐 일어난 적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래도 다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이 그런 하루였습니다.
갑자기 포럼 식구 중의 한 분이 모친상을 당해 성남시 장례식장을 향했습니다. 동료들과 느긋하게 만날 수도 있었지만 오후에 신나는 댄스스포츠 연습이 있는 관계로 혼자서 핸들을 잡았습니다.
갈 때는 낮 시간이라 막히지 않고 티맵의 안내에 따라 잘 도착해서 문상을 마치고 곧바로 나왔습니다.
오는 길이 문제였습니다.
빨리 가려고 하다 보니 티맵의 목적지를 우리 집이 아닌 강화도 식당을 누르고 출발했습니다.
티맵의 최근 목적지가 여러 개라 우리 집 바로 옆에 기록된 자주 가는 강화도 식당을 잘못 누른 것입니다.
성남에서 출발한 탓에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목적지가 잘못된 것을 모르고 계속 달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외곽순환도로를 계속 달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인천 방향으로 안내하는 게 아닌 가 했지만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상습 정체구역인 중동지역이 밀려서 다른 곳으로 안내하나 보다고 생각하고 계속 밟았습니다.
인천에 들어서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뿔싸!
목적지를 잘못 입력했다는 것을 그때서야 발견하고 곧바로 정정을 했습니다.
약 30km를 빙빙 돈 셈입니다.
평소 티맵의 내비게이션을 너무 믿은 탓입니다. 아는 길이라면 사람이 더 나은데...
알면서도 당했습니다.
꼭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댄스스포츠 연습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여러 남녀가 모여 왈츠, 탱고, 룸바, 차차차 등을 함께하는 문화센터 단체반이라 늘 화기애애합니다.
실력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이해하고 도와줍니다.
개중에는 별난 사람도 있습니다.
좀 잘하는 표시를 내면서 상대방의 실수를 콕 짚어 무안을 주는 못된 심보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가 왈츠시간에 크게 잘못된 동작이 아닌 데에도 손을 탁 치며 무례하게 하는 바람에 무척 기분이 나빴었습니다.
꾹 참았습니다.
오히려 잘한다고 칭찬의 말을 수시로 건넸습니다.
이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룸바 시간에 또 그런 못된 버릇이 나왔습니다. 내가 크게 틀린 것이 아닌데 반복적으로 지적 질을 세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싫은 내색을 표시하고 이내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좀 거시기해서 사과조로 말을 건넸습니다.
금방 화를 내면서 오히려 큰 소리로 대꾸해서 순간적으로 놀랐습니다.
스무 살 정도 아래의 딸 같은 젊은 여자에게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니 참 난처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욕심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더 잘 춰 보려고 무리하게 댄스스포츠를 배우다 보니 이런 악재를 만난 것입니다.
또한 쳐다보지 말아야 하는 데 칠십 노인이 잠시 환상에 빠진 대가이리라 생각합니다.
하기사 인생 살면서 늘 좋은 일만 생기면 뭔 재미가 있겠습니까.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있고 궂은날도 있는 것입니다.
화불단행의 하루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전화위복의 희망을 안고서.
손뼉 칠 때 떠나라
사람은 태어나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사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커가면서 이런저런 모임에 가입합니다. 친목이나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은퇴 이후에 돌이켜보니 그동안 참 많은 모임에 가입했었습니다. 직장, 고향, 학교, 취미생활 등등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은퇴 이후에는 자연적으로 모임이 줄어들었습니다.
대부분 직장 관련 모임이 많았었는데 퇴직을 하고 보니 자연적으로 없어진 것입니다.
어느 모임이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구성원 모두가 내 마음과 같지는 않습니다. '안 맞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도 좋아하는 테니스나 골프모임에도 거시기한 사람이 꼭 한둘이 끼어있습니다. 운동 그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그런 사람을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은퇴 이후까지 이런 사람들을 만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과감히 정리해야 합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질질 끌다가 속으로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고 끝내 원수가 되어 완전히 남남으로 지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결국 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잘 나가고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믹영화로도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어느 시인은 읊었다.
노년에는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아야 합니다.
가급적 구성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모임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모임을 정리했습니다. 그래도 정리해야 할 모임이 남아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먼저 주려는 내 성격 때문에 가입된 모임에서 선뜻 정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내 가슴속에 무엇인가 딱 걸리면 그때가 나올 때입니다. 누가 박수를 쳐주지 않더라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성공적인 헤어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약간의 아픔이 수반되겠지요. 사람과의 만남이라 정을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뜻과 맞지 않은 모임에 계속 남아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고통이라 생각합니다.
오늘(3.20)이 춘분(春分)입니다. 낮의 길이가 밤보다 더 길어집니다. 뒷산에 오르니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헤어짐'을 생각하다니 겨울을 보내는 내 마음이 아쉬웠는가 봅니다.
어느 노부부의 멋진(?) 인생 마무리
한 주간의 인생 등산길을 지나가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목요일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테니스장을 찾았는데 날씨 탓인지 고정멤버 네댓 명이 나오지 않아 출근순위 4번을 받아 일찍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지만 운동 후 늘 찾는 콩나물해장국집에 모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어 일행이지만 자리를 떨어져 앉아 식사를 합니다.
보통 여덟아홉 명이 모이는데 순서를 정해 식대를 부담합니다. 오늘은 예외입니다. 내가 부담했습니다. 약간의 보시이지만 우리 모임의 분위기를 좋게 합니다.
자연적으로 나이별로 자리에 앉게 됩니다.
나는 여덟 살 위인 칠십 대 후반의 두 분 형님들과 같이합니다.
식사 중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한탄과 더불어 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나이 들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 경우, 아직 왕성한 체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칠순을 넘고 보니 죽음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실제 친구들이 하나둘씩 먼저 가니 죽음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굿을 거창하게 해도 제 명대로 살다가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늘 아침마다 만나는 두 분은 나이에 비해 참으로 젊게 사십니다.
하기사 칠십 일곱이면 살만큼 산 나이입니다.
옛말에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수명이 길어져 100세까지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이니 할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리를 하고 죽음을 준비해 나갈 나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얘기를 하다가 모두가 눈시울을 적시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얼마 전 과수원농사를 크게 해서 자식 다섯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노후를 보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부부 얘기입니다.
부인은 여든여섯, 남편은 여든아홉인데 부인이 치매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고령의 아버지가 돌보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에 요양원에 모시려고 아버지께 강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양원이라는 데가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던가요.
스스로 원해서 요양원에 들어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대부분 아들딸들이 부양하기 힘드니까 등을 떠밀어 보내는 형편입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혼자 살면 살았지 요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 남편은 차마 사랑하는 부인을 요양원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답니다.
본인도 살만큼 살았고 힘도 부치니 자식들 걱정도 덜고 같이 생을 끝내자고.
어느 날 부인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본인도 신사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 네 어미와 나는 한평생을 잘 살았다. 너네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오늘 함께 세상을 떠나려고 한다. 너무 슬퍼하지 말고 화장해서 합장하기 바란다. 윗마을 저수지에 내 차를 찾으면 될 것이다......"
이 말을 전하면서 두 분도 눈이 충혈이 되고 말하는 나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신문에 이 뉴스가 나왔는데 그 기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명복을 비는 사람부터 '멋지다'는 표현까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특이한 댓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제 살만큼 산 구십이 가까운 노인의 글이었습니다.
"차를 팔고 싶었는데 나도 팔지 말아야겠다."라고.
요즘 혼자 사는 일인 가구가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신이 말짱하면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쓸쓸하게 세상을 하직하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즉생(死卽生)이라 했습니다. 삶이 곧 죽음입니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죽음복도 타고나야 되는 가 봅니다.
죽기 전에 후회 없이 살다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부부가 한날한시에 떠난다면 그것은 복중의 복이리라 생각합니다.
백수(白手)가 과로사(過勞死)한다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을 백수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은퇴 후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도 백수이긴 한데 본래의 의미와는 좀 다릅니다.
이를테면 연금을 받고 어떤 일이든 조금씩이나마 수입이 있으니 정규직원과는 다른 넓은 의미의 백수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백수의 가장 큰 이점은 시간입니다. 본인이 좋은 시간을 골라서 쓸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결정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이 과거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의하면 어느덧 83세(2023년 기준)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갑이 지나 죽으면 호상(好喪)이라 했었는데 90은 넘어야 그런 소리를 들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라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백수를 다른 말로 표현하는 말도 여러 개가 있습니다.
교회 집사나 장로 직분을 빗대서 그 말에 님 자를 붙여 호칭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집사’는 집에서 사는 사람이고 ‘장로’는 장기적으로 노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모처럼 만난 지인들이 근황을 물어오면 ‘거안실업’에 취업했다고 둘러댑니다. 뜻인즉슨 거실과 안방을 오가는 실업자들이 모인 회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마포불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언뜻 들으면 그 유명한 마포 불고기 백반으로 들립니다.
백수에게는 달리 해석이 됩니다.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의 준말이랍니다.
강남의 백수들은 호칭이 좀 다르다고 합니다. 돈 있고 시간 있으니 좀 고상하게 불러준다고 합니다. 성에다가 화백이라는 별칭을 덧붙입니다. 물론 이때 화백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백이 아니라 "화려한 백수"의 약자입니다.
웃자고 지어낸 말이지만 백수라는 말이 싫은가 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봅시다. 과로사 얘기입니다.
실제 내 주위에 놀면서 과로사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 경우, 하는 것이 많다 보니 현직에 있었을 때 보다 더 바쁩니다.
공부하는 시간이 좋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더 좋습니다.
색소폰, 기타, 오카리나, 장구 등 악기연주와 테니스, 골프, 댄싱, 라이딩, 등산, 농장관리 등 취미생활을 즐기기에도 하루가 모자랍니다.
다니는 교회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하는 봉사활동도 금방금방 돌아옵니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월요일이 어제 같은데 벌써 불금, 금요일입니다.
안 그래도 세월이 빠르다고 하는데 노년의 시간은 젊을 때보다 두세 배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남은 세월을 생각하니 땅속으로 들어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비록 과로사하는 일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것은 돈 아끼지 말고 과감하게 써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훗날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식들 싸움만 시킨다고 하니 가진 돈은 다 쓰고 장례비만 남기려 합니다.
천주교 황창현 신부님은 5백만 원만 남기라고 했는데 조금 더 보태려고 합니다. 요즘 보통의 장례비가 한 천만 원 정도 들어가니 이 정도만 남기면 될 것 같습니다.
황 신부님은 당일 부줏돈으로 5백만 원을 감안했지만 세월이 더 각박해지면 장례식장에 오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썰렁한 장례식장을 가보니 앞으로는 가족만 참석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론입니다.
백수가 과로사해도 좋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하다가 죽는다면 행복한 죽음이라 생각합니다. 본인에게도 좋고 자손들에게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과로사라면 쌍수 들고 환영입니다.
젖은 낙엽이 되지 말자
정년퇴직 이후 집안에서 마누라 치마폭에 쌓여 살아가는 노인들을 일컬어 '젖은 낙엽(濡れた落ち葉)’이라고 합니다.
노인의 나라 일본에서 나온 말입니다.
비가 온 뒤, 땅에 딱 달라붙은 낙엽은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기가 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빗대서 한 말이 '젖은 낙엽'이고 대책 없는 노인들을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늙어서 꼭 필요한 것이
첫째가 부인이요
둘째가 마누라요
셋째가 집사람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노년에는 마누라한테 잘 보여야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더 얻어먹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인생 100세 시대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인생 정점기를 60세에서 75세까지로 봤습니다.
아니 8, 90이 넘어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노인들이 주위에 늘어납니다.
칠십이 넘었다고 꼰대질을 하면 안 됩니다.
팔십이 넘었다고 산에 있는 분이나 똑같이 지내면 안 됩니다.
살아있는 그 순간까지 꿈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100세가 넘도록 현역으로 활동하는 김형석 교수 같이는 안 되더라도 그 근처까지는 가보고 죽어야 합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오신 날입니다.
석가모니는 왕자로서 이 땅의 부귀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불교의 사상을 한 마디로 얘기하연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사랑慈 슬플悲)란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며 베푸는 혜택입니다. 불교에서는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입니다.
나이 들어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나이 든 값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젖은 낙엽'이라니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오히려 형형색색의 찬란한 낙엽으로 떨어져 책 속에 넣어 간직할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빛나는 낙엽으로 남아야 합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나이 들어 '젖은 낙엽'은 되지 말자고 호소합니다.
물론 나부터입니다.
오히려 세상을 펄펄 날아다니는 멋진 낙엽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을 잃지 말고 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해봅시다.
설령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얼마든지 고물고물 잘할 수 있습니다.
노인만세입니다.
'부부의 날'에 느끼는 단상(斷想)
가정의 달,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비롯하여 부부의 날도 국가 공식 기념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에서 21일, 오늘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 의미가 깊습니다.
나아가 부부가 잘 살아야 가정이 튼튼하고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의미도 담겨있을 것입니다.
오늘 '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부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선 부부는 촌수가 없습니다.
웬수니 악수니 해도 둘이 하나로 살아가는 무촌입니다.
종교에서도 부부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정해준 연분이란 뜻으로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마태복음 19장 5절~6절)
불교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부부의 인연을 천생연분(千生緣分)이라고 합니다.
한글로는 같은 천생연분인데 내용은 전연 다릅니다.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한 번의 인연은 이번 생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천 번의 생의 인연으로 맺은 사람이 부부라는 것입니다.
대략 한 번 생을 지금의 기준으로 80년이라 한다면 8만 년 만에 만난 인연이니 정말 대단한 인연입니다.
나이 들수록 부부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식들도 출가하니 내리사랑이라고 제 자식들 챙기기에 바쁩니다.
간혹 살아가면서 큰 병이 걸려 병상에 누울 수도 있습니다. 그때 똥오줌을 받아줄 사람은 부부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부부이면서도 늘 한 집에 살다 보니 소홀히 대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바깥에서 당한 화를 아내에게 푸는 바보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아침마다 두 손을 다정하게 잡고 산책길에 나서는 노부부가 계십니다. 한 쌍의 아름다운 학처럼 보여 부럽기까지 합니다.
인생 100세 시대에 더더욱 부부간 삶의 지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보듯이 살아온 나를 반성합니다.
살만큼 살다가 부부가 한날한시에 요단강을 건너가 천국으로 들어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 아직도 멋져요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결혼을 기피하는 세상입니다.
문제가 있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덩달아 이혼율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황혼이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두 서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연애시절의 짜릿했던 감정은 다 사라지고 천생연분이 천생웬수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제 각각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이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아니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던 내 남편, 내 마누라였었는데 어느샌가 흠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슬슬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 금을 때우고 다시 살리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한마디입니다.
당신 아직도 멋져!!!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대방에게 이 말을 던지면 묘하게도 상처가 치유되고 새 힘이 솟아납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면서 다정하게 이 한마디를 건넨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불씨가 되살아날 것입니다.
여기다 사랑의 키스까지 곁들인다면 남편의 연봉도 올라갈 것입니다.(두상달 김영숙의 [아침 키스가 연봉을 높인다])
부부는 참으로 뜻깊은 인연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부는 전생에 내가 빚진 자를 서로 만나 한평생 그 빚을 되갚아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이 들면 다들 정으로 산다고 합니다.
상대가 불쌍해서 사는 부부도 있다고 합니다.
돈 한 푼 들지도 않는 이 한마디를 서로에게 던지면 삶의 핵폭탄이 되어 행복한 부부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당신 아직도 멋져요!!!
거듭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 한 마디가 기적의 묘약이 될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부부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치약을 짜면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절약(節約) 하지 않고 함부로 시간이나 재물을 헛되이 헤프게 쓴 낭비(浪費)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꼭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을 기어이 구매해서 집안 곳곳을 차지하게 만들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샀지만 제대로 다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옛날 가나안농군학교를 창설한 고 김용기 장로님은 특히 근검절약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먹는 밥풀 하나, 물 한 잔, 치약에 이르기까지 아끼라고.
'소비가 미덕'이라고 주장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공장이 돌아가고 국민경제가 잘 순환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 결과 경제는 좀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국민 각자의 절약정신이 결핍되고 낭비하는 습관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1회 용품이 늘어났습니다.
튼튼하고 예쁜 종이컵에 비싼 커피 한 잔을 따라 마시면 그 자리에서 버립니다.
아깝습니다. 그 한 잔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무가 베어졌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절약정신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아온 아름다운 얘기들이 많습니다.
신사복 한 벌에 구두도 밑창만 갈아 십수 년 신고 다니며 돈을 모아 대학에 다 기부하고 떠난 노부부들의 얘기를 심심찮게 듣고 있습니다.
일평생 봉사하다가 자기 몸과 재산을 훌훌 털어 사회에 다 기부하고 떠난 종교인도 많이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의 경우는 좀 다를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자기 건강을 지키며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지출은 꼭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할 사항입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의 지출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치약을 짜면서 절약과 낭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치약을 짜고 나면 버렸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짜고 짜도 나옵니다.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이제부터라도 낭비하지 말고 절약하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나와 이 지구를 위해.
잠시 멈춤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그런데 예년에 비해 한가한 모습입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도 한산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코로나19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잠깐의 휴식은 참으로 필요합니다. 한평생을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수는 없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다 보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음악에서도 쉼표는 마디와 마디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멈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 몸을 혹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을 더 모으려고, 명예를 더 얻으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다 보니 멈추어야 할 때를 놓칩니다.
결국 덧없는 것들을 얻기는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단축시키고야 맙니다.
다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질긴 코로나로 인해 집콕이 늘어나고 일자리마저 불안한 이때에 잠시 쉬어가는 지혜를 얻는 것도 우리 인생길에 유익하리라 여겨집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삼아 제대로 쉼의 찬스를 잡아 보자는 것이지요.
여러 성현들이 쉬어감의 지혜에 대해 설파하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거느린 기독교의 십계명에서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은 쉬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틱낫한 스님이 대표적입니다. 스님이 운영했던 프랑스의 절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를 '게으른 날'로 지정하여 멈춤을 실천하고 있답니다. 서로 간의 인사도 "오늘 얼마나 게을렀습니까?"라고 실천여부를 묻는다고 하니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종교를 떠나 계속 달리다 보면 지칩니다.
멀리 뛰려면 적당한 거리로 물러나야 합니다. 뒤로 물러남은 결코 인생의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힘을 모으는 시간입니다.
잠시 멈추어 가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자기 본업을 떠나 여행을 가거나 취미생활을 즐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 너무 과하게 하다 보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에 쌓일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멍 때리기'가 멈춤의 지혜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멍 때리기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 눈을 팔거나 넋을 잃은 상태"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멍청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잠시 바보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이는 뇌에게 휴식을 주는 묘책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멍 때리기'를 통해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일례로 뉴튼이 사과나무 아래서 멍 때리고 있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고안했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잠시 멈춤의 지혜'를 터득하고 싶습니다.
하기야 하루 놀고 하루 쉬는 '화백'이 직업인 나 같은 은퇴자들은 쉽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세월은 화살같이 빨리 흘러가지만 인생길은 천천히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의 조급함은 사라지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압니다. 한결 여유가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멈춤의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따라서 '멈춤의 지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이들에게 더 필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물론 나이 들어도 욕심의 끈을 놓지 않고 달리는 일부 노인들에게도 해당되지만.
나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과 공부, 다양한 취미생활과 더불어 잠시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폭주 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참에 '느리게 산다는 의미'를 깨달아야겠습니다.
'잠시 멈춤'이 결코 인생 전체로 볼 때, 손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되 뇌이면서.
살아가다 보니...
살아가다 보니 자연적으로 터득하는 것이 많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세월이 더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는 말도 살아가면서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가 늙어가는 것도 연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60대는 해(年)마다 늙고
70대는 다달(月)이 늙고
80대는 나날(日)이 늙는다."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그만큼 빨리 늙어간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니 돈이 많은 사람보다
잘난 사람보다
많이 배운 사람보다
만나서 마음이 편한 사람이 좋다는 사실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살아가다 보니 "세월이 약이다"라는 진리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렇게 오래 끌었던 등창도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그렇게나 괴롭혔던 천생웬수들도 싹 가시지는 않았지만 이제 다 잊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픈 마음이 생깁니다.
다 세월이 약입니다.
살아가다 보니 건강과 여유 있는 삶이 노년의 멋진 삶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우선 건강입니다. 건강수명이 길어야 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그게 진짜 삶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수명은 허벅지가 알고 있다"라고 합니다. 우리 몸의 근육 70%가 허벅지 근처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허벅지가 부실해지면 허리와 무릎에 탈이 나고 더 큰 문제는 비만, 당뇨, 치매에 걸릴 확률이 껑충 뛴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이 들어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움직여야 삽니다. 근육이 곧 건강입니다. 그중에 하체근육 특히 허벅지 근육을 꾸준히 늘려야 건강수명이 깁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삶입니다.
인생 1 모작에서 열심히 일했다면 이제 유유자적한 삶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부대끼며 살지 맙시다.
물론 은퇴자금이 부족하여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좀 부족해도 나름대로 여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고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도 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오늘은 가랑비가 내리고 습도가 높아 땀이 비 오듯 하는 데에도 테니스 3게임을 하고
여느 때처럼 황태해장국과 막걸리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수요일이니 등산에 비유하면 정상을 오르는 날입니다.
목금토일은 쏜살같이 지나갈 것입니다.
같이 운동하는 47년생 형님들이 벌써 칠십 고개를 넘어 저만치 팔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엊그제 환갑이라고 하더니 그새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도 그럴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니 이런저런 삶의 기술을 스스로 배우게 됩니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춰 선 이때에 잠시 인생길을 되돌아보며 가야 할 길을 그려 봅니다.
은퇴 후 부엌을 가까이하는 남자가 멋집니다
부엌은 우리 몸의 영양소를 공급하는 장소입니다.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곳입니다. 안방과 더불어 우리 집안의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부엌의 주인은 대개 아내 몫입니다.
그런데 은퇴 이후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남자인 내가 부엌 출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직도 대외활동이 왕성한 집사람을 대신하여 주방을 지키다 보니 반 주부가 다 되어갑니다.
아울러 남성호르몬이 줄어드는 대신에 여성호르몬이 증가한 탓인지 자꾸만 여성스러워집니다. 성질도 많이 죽었습니다.
더더욱 요리 등 부엌일이 재미있습니다.
집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렇듯 나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 남자가 해야 할 사항 가운데 집안청소, 요리, 쓰레기 버리기, 세탁 등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혼자 있을 때에는 직접 밥도 해 먹어야 합니다. 내 경우는 콩이나 감자, 잡곡을 넣고 금방 해서 먹고 싶은데 집사람은 하얀 쌀밥을 한 솥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식사 때마다 데워서 먹는 타입입니다. 또 콩을 싫어해서 하얀 쌀밥을 주로 짓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1인용 밥솥을 사서 한 끼 정도만 내 취향에 맞도록 밥을 안칩니다. 금방 해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오면서 식습관이 달라 맞춰 보려고 노력했으나 사십여 년이 지나도 그대로여서 은퇴 후 내가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진작 할 걸 후회가 막급입니다.
끼니마다 조금 일찍 안치면 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밥맛도 좋습니다.
나아가 집사람에 대한 서운함도 사라졌습니다.
요즘 요리학원에 다니는 은퇴한 남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내 경우는 퇴직을 대비하여 40대 재직시절, 사당동에 있는 동경요리학원에서 한식요리 3개 월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서울대학에 다니는 여학생과 같이 열심히 배우던 생각이 납니다. 그 학생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준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원에서 배운 요리솜씨를 집에서는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집사람이 요리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은퇴 이후에는 서서히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유학시절의 얘기입니다.
혼자 지내면서 그 당시 배운 요리솜씨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집 근처에 있는 콤비니(우리나라의 마트)에 가면 웬만한 요리는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ATM기는 물론이고 각종 공과금도 수납하여 참으로 편리했습니다.
가끔 요리재료를 사서 옛날 실력을 발휘하여 혼자서도 맛있게 잘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내가 직접 농사를 지은 재료를 사용하여 이런저런 요리를 해 먹고 있습니다.
어제는 가지, 부추, 고추, 호박 등을 이용하여 부침개를 해서 먹었습니다. 막걸리 한 잔의 안주로도 그만입니다.
앞으로도 부엌 출입이 잦아질 것 같습니다.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서.
은퇴노인의 개꿈과 진짜 꿈
오늘은 24 절기 중 15번째 절기인 백로입니다. '흰 이슬'이란 뜻으로 가을이 본격적으로 다가왔음을 알립니다. 기온이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힙니다.
어제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비가 오니 제법 가을 냄새가 풍깁니다.
큰 비가 아니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테니스장으로 향했습니다.
인조잔디로 바꾼 이후 웬만한 비가 와도 공을 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열성 테니스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약간의 비를 맞고도 운동으로 땀을 흘리면 더 상쾌해집니다.
우리 테니스장에서는 테니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내 경우 도착과 동시에 우선 국민체조로 몸을 풉니다. 그 옛날 농민교육원의 체육담당 교수시절에 매일 아침 실시했던지라 지금도 교육생들과 반대로 자세를 취해 힘찬 구령을 붙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입구에 체어 웨이트, 거꾸리 등 각종 헬스기구가 있어 근육 강화운동을 합니다.
또 게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공터에서 골프 빈 스윙연습을 합니다. 한 100번 정도 우드나 아이언 연습을 하면 필드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왈츠, 탱고, 자이브, 룸바 등 댄스스포츠를 혼자 연습하면 파트너와 춤을 출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렇듯 테니스장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침 6시 정도부터 8시 30분까지 약 2시간 반이 소요됩니다.
집에서 국선도 기본 체조를 실시하여 몸을 풀고 자전거를 타고 약간 오르막길을 달리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다리운동이 됩니다.
집 근처 공기 좋은 곳에 이런 테니스장(9면)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삭막한 도심보다 약간 떨어진 이곳 고촌에서 주욱 살고 싶은 이유가운데 하나입니다.
결국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년의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건강얘기를 좀 더 해봅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그게 제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과 더불어 꼭 필요한 요소가 음식과 수면입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건강정보입니다.
먼저 음식입니다.
골고루 먹되 위의 75% 정도만 채우고 절대 과식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수면입니다. 밤 11시 이전에 자고 아침 6시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최소한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라고 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만 더하고 싶습니다.
웃음과 사랑입니다.
웃음은 부작용이 없는 만병통치약입니다.
사랑은 가장 중요한 비상약입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보약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이성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저마다 습관이 다르고 행복의 기준도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균형 있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건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내 경우, 독서와 일본어 공부, 탱고와 왈츠 등 댄스스포츠, 테니스와 골프, 색소폰과 기타 연주, 민요와 장구를 쉬지 않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스무 평의 작은 농장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여 밥상을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농작물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정신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어제는 좀 피곤했었나 봅니다. 아침 운동 후 회원들과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같이 하면서 비도 오고 해서 막걸리를 두 잔이나 마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그 짧은 시간에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개발지역에 갔었는데 얘기를 끝내고 문을 열고나오니 나이키 내 신발과 자전거가 없어졌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평소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하고 골고루 잘 살아야 나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꿈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이전부터 반대로 흐르고 있는 현실을 보고 적잖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강남부자들과 저소득층의 갭이 점점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러다간 계층 간의 위화감이 더 커져 큰 사회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실제 범죄건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구 유럽의 노인들은 은퇴 후 대부분 행복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충분한 연금과 다양하게 놀 거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은퇴한 노인들도 그들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는 진짜 꿈을 꾸어봅니다.
개꿈과 진짜 꿈이 함께 한 비 내리는 초가을의 하루였습니다.
'노인의 날'에 느끼는 단상
매년 10월 2일은 나라가 지정한 ‘노인의 날’입니다.
경로효친 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온 노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현재 5/5 어린이날, 5/8 어버이날, 5/15 스승의 날, 5/21 부부의 날 등 50개가 넘는 법정기념일이 있습니다.
10/2 노인의 날이 1997년부터 추가되었습니다. 아울러 10월을 경로의 달로 정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예정입니다.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날은 매년 10월 1일입니다. 우리나라는 10/1이 국군의 날이라 하루 뒤인 10/2로 정했다고 합니다.
현재 노인의 나이는 65세입니다.
UN도 65세부터 노인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노인의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얘기가 정부와 대한노인회에서 나왔습니다. 100세 시대에 65세는 너무 젊다는 것입니다.
실제 70세인 내 경우를 생각해 봐도 아직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가끔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생소하고 무안하기까지 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경로석이 비어 있어도 일반석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갑니다.
노인은 노인다워야 합니다.
인생의 결산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날이 평균수명 83세에 내 나이를 빼보니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금년 노인의 날은 내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내 혼자 여러 가지 상념에 젖습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칠십이 면 사계절 가운데 가을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아름다운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짧은 이 가을을 만끽하고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금년 가을은 이상기온이 발생하여 10월 중순인데 벌써 겨울날씨가 찾아왔습니다. 가을 한파라니 곧바로 겨울이 오는 가 봅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태어나면 죽습니다.
생로병사의 사이클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오늘'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오늘 현재에 산다."
그렇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은 미래입니다.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은 어제 이 땅을 떠난 분들이 아쉬워했던 하루입니다.
그래서 허투루 보낼 수 없습니다.
내 일상을 살펴보니 여전히 바쁩니다.
아침에 테니스로 시작하여 회원들과 막걸리 한 잔에 해장국을 같이 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이게 이 땅에서 보내는 천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낮 시간에는 일본어공부, 독서와 더불어 민요와 장구, 왈츠와 탱고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매일 농장에 들러 여러 채소를 돌보는 것도 소중한 시간입니다.
저녁에는 색소폰연습실에 나가 연주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냅니다.
이밖에도 가끔 골프를 칩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습니다. 책상 옆에 항상 놓여있는 기타와 오카리나도 외로움을 달래주는 귀여운 악기친구입니다.
올해 들어 건강과 돈 문제를 부쩍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건강은 이 정도면 나이에 비해 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테니스 3게임을 해도 거뜬합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해도 웬만해선 지지 않습니다.
골프도 싱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과 나이 앞에는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고혈압 초기라 조심하고 약으로도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질병이 찾아와 약봉다리를 하나 더 추가할지 모릅니다.
운동과 더불어 돈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듭니다.
남들처럼 충분한 은퇴자금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미뤄왔던 주택연금을 신청하여 부부가 이 땅을 떠날 때까지 매월 백육십만 원 정도가 나오니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곁들이니 계산상으로는 살만합니다.
여생을 멋지게 보내려면 돈은 꼭 필요합니다.
돈은 써야 내 돈입니다.
내가 쓰지 않으면 내 돈이 아닙니다. 자식에게 상속한다고 해도 자식이 행복해 지지도 않습니다. 어떻게든 현재의 돈을 다 쓰고 이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은퇴 이후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니 이만하면 멋지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젊은 노인이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후회 없이 이 땅을 떠나기 위해 오늘도 꽉 찬 스케줄을 다 소화해 내고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결론입니다.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자”입니다.
그리고 돈에 인색하지 말고 꼭 써야 할 곳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자고 다짐을 합니다.
노후의 3사 ~ 밥사, 감사, 봉사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고 합니다.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되다 보니 젊은이들이 싫어할 뿐만 아니라 꼰대라고 놀려대기도 합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노후가 걱정이 되어 가급적이면 지갑을 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 추해집니다.
젊은이들이 함께 놀아준다면 계산은 노인이 먼저 해야 멋져버립니다.
그래야 자주 어울려줍니다.
지난날을 잠시 회고해 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군사정권이 들어설 무렵이었습니다.
대학 가는 "전두환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연일 데모를 했습니다.
그 당시 맨 앞에서 구호를 선창 하는 학생이 "학사 위에 뭐가 있습니까?" 큰 소리로 외치면 학생들은 일제히 '석사'라고 복창합니다. 이어서 "석사 위에 박사"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박사 위에는 하면 일제히 답변이 나왔습니다. "여사요!!!"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지어낸 말이지요. 하지만 그 당시 권세가 실제로 대단했습니다.
민주화시대에는 달라졌습니다.
학사, 석사, 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는 "밥사"라고 합니다.
내가 먼저 따뜻한 밥 한 끼를 사는 마음이
학사, 석사, 박사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나아가 밥사보다 더 높은 것은."감사"라고 하네요.
항상 감사하고 사는 마음은 우리 노후의 삶을 마음으로나마 풍요롭게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사보다 더 높은 것은 "봉사"라고 합니다.
아낌없이 다 주고 이 땅을 떠나야 멋진 마무리가 되겠지요.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지금까지 그런대로 실천해 왔습니다.
남은 세월도 3사(밥사, 감사, 봉사)의 정신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황금인생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신경정신과 이시형 박사가 제창한 황금인생을 만드는 다섯 가지 요소입니다.
적당한 돈, 적절한 시간활용, 친구, 취미, 건강이 그것입니다. 각각의 부자가 되라고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순서를 맨 뒤에 놓아서 그렇지 건강이 제일 중요하겠지요.
건강이 재산목록 1호입니다.
건강 수명이 길어야 황혼 길이 행복합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집같이 깔고 앉은 돈은 내 돈이 아닙니다. 심지어 은행에 예금한 돈도 내 돈이 아닙니다. 내 주머니에 넣고 써야 그게 진정한 내 돈입니다.
은행 지점장 시절, 겪은 일화를 소개합니다.
칠십이 넘은 고객인데 거액의 정기예금을 해놓고 매년 이자를 붙여 재 예금을 하곤 했습니다.
좀 쓰고 멋지게 사시라는 내 말에
"지점장님,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데 함부로 쓰다니요? "
이처럼 있는 사람이 더 벌벌 떨면서 못씁니다.
또 한 가지 사례입니다.
은행을 은퇴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돈을 더 벌려고 퇴직금과 융자를 내서 평소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되었습니다. 쉬지도 않고 계속 일만 했습니다. 돈 벌리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칠십이 넘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IMF 지원 사태가 터지고 경기가 가라앉아 순식간에 사업이 나빠졌습니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뿐만 아니라 은행에 대출까지 받아 손실을 보전해야 했습니다.
한편 다른 친구는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면서 노후를 멋지게 보냈습니다. 연금과 약간의 예금 그리고 은행 대출까지 받아하고 싶었던 것을 실컷 하고 다녔습니다.
남들은 빚내서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질도 했습니다.
훗날 두 친구의 재산상태를 결산해 보니 은퇴생활을 즐긴 쪽이 훨씬 많이 남았습니다.
집값도 오르고 물려받은 고향의 땅값도 올랐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칠십이 넘어 살만한데도 돈의 노예가 되어 주어진 삶의 여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있는 돈을 다 못쓰고 죽습니다. 자칫하면 본인 사후에 자식들이 재산싸움에 휘말리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들이 일을 그렇게 고집하는 이유를 들어봅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고 합니다. 취미를 다양하게 개발하지 못한 탓입니다. 돈과 시간이 있어도 놀 줄을 모릅니다.
거듭 얘기를 하지만 선진국의 노인들은 은퇴가 곧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퇴직하면 4~6백 이상의 연금이 나오니 굳이 돈을 더 벌겠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마다 갈고닦은 취미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충분히 즐기고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행복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활용과 친구에 관한 얘기입니다.
노년에는 남는 게 시간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출근할 때도 없으니 급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을수록 더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가 꼭 필요합니다.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노년에는 이성 친구를 사귀라고 합니다. 늦바람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입니다.
끝으로 취미 부자가 되라고 합니다.
시니어가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아보면 참 많이 있습니다.
여행, 음악, 운동 등 다양한 취미생활이 그것입니다.
소위 '예체능'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이런저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국영수'를 중시했으나 이젠 아닙니다.
그런데 돈 부자가 취미 부자가 되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돈이 많으면 잘 안 씁니다. 쓴다고 해도 주로 골프 같은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을 취미로 합니다. 무게 잡고 뻐기려고 하는 짓거리입니다.
우리 주위에 돈이 얼마 안 드는 취미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 경우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취미를 개발하여 하루를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할 말로 화백(화려한 백수)입니다.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5시에 기상하여 한 30분에 걸쳐서 국선도 체조, 발끝 치기, 뒤로 걷기 등을 실시하여 몸을 충분히 풀어 줍니다.
이어서 아침 테니스 운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40년이 넘었습니다. 낮엔 일본어 공부와 책 읽기 그리고 글쓰기로 보냅니다. 오후엔 더 바쁩니다.
민요와 장구, 댄스스포츠, 색소폰연습, 기타와 오카리나 연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날씨가 좋으면 라이딩(자전거 타기), 등산도 가끔 합니다. 수십 년 이어온 골프도 아직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용은 제법 많이 들어가지만 너무 재미있어 필드는 한두 번으로 줄이고 대신 저렴한 스크린골프로 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장 가꾸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20평의 농장에 각종 채소를 심어 해마다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웃에게 나누는 재미가 큽니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혹자는 너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릅니다.
결코 아닙니다.
칠십을 넘기고부터 돈 욕심을 버리니 만사형통입니다.
노년에는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아야 한다."가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내 건강 내 인생을 그 누가 책임져 줄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건강을 바탕으로 있는 돈과 시간을 잘 관리하고 친구와 더불어 다양한 취미생활을 영위해 나갈 각오입니다.
오늘은 테니스와 댄스스포츠 위주로 신나게 운동을 하고 왔습니다.
잠자리가 행복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고 테니스장으로 향할 생각을 하니 벌써
힘이 납니다.
이게 황금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노인 십계명
성경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꼭 지켜야 할 10가지 규칙입니다.
이에 걸맞은 ‘신노인 십계명’(아래)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동네 경로당 벽에도 걸려있습니다.
하나하나 곱씹으니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은퇴한 노인 가운데 3가지 병신 아닌 병신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모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주고 병든 사람입니다.
둘째는 부인에게 돈 다 주고 타서 쓰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재산이 아까워서 다 쓰지 못하고 죽는 사람입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맞는 말입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처신을 잘 못해서 병신 소리를 듣는 경우입니다. 나도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세 가지 '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좀 더 참을 껄
둘째, 좀 더 즐길 껄
셋째, 좀 더 베풀 껄
이와 같은 내용이 '신노인 10 계명'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너무 돈을 아끼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실컷 하고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아울러 화가 나더라도 일단은 한 번 참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지나 놓고 보면 화내는 사람이 더 크게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노년의 길을 알려주는 '신노인 10 계명'을 벽에 붙여놓고 죽을 때까지 실천해 나가고자 합니다.
☞ 신노인 십계명
제1계명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라.
제2계명 며느리 잘 모셔야 집안이 화목하다.
제3계명 돈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제4계명 돈보다 먼저 건강이다.
제5계명 젊게 살려면 젊은이를 따라 하라.
제6계명 미워도 내 사람이 제일이다.
제7계명 뒤돌아보지 말고 남은 날들을 즐겁게 보내라.
제8계명 작은 것을 크게 기뻐하라.
제9계명 오늘 하루가 감사하면 일생이 감사하다.
제10 계명 자기가 믿는 종교와 잘 거래하라.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행복에 대하여
인간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줄기차게 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행복이 그 하나입니다.
행복(幸福)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세상사 어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온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자기만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에 충실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말 못 할 고민을 하나쯤은 다 가지고 산답니다.
하지만 의미 있고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자기도 어려우면서 더 힘든 이웃을 말없이 돕는 진짜 천사가 있습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힘들고 수지가 맞지 않은 장사이지만 삶의 진정한 보람을 느끼며 행복을 덤으로 얻어 갑니다.
그래서 행복은 고난의 문을 통과해야 얻어진다고 했나 봅니다.
한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小確幸)의 기쁨도 있습니다.
이번에 영국의 BBC 가 발표한 행복헌장에서 다룬 행복의 요소입니다.
“운동, 좋은 기억 떠올리기, 대화, 식물 가꾸기, TV시청 줄이기, 미소, 문안전화, 큰 소리 웃음, 자기 칭찬, 친절 베풀기” 등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입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한 순간이 다 다를 것입니다.
요즘 내게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입니다.
아침에 회원들과 테니스를 치면서 마음껏 웃고 땀을 흘릴 때 행복합니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익히고 TV 드라마를 시청할 때 대사가 귀에 속속 들어올 때 행복합니다.
댄스스포츠를 즐기며 새로운 한 수를 배워 실전에서 써먹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장구를 치며 우리 가락을 멋들어지게 부를 때 행복을 느낍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 나만의 행복을 느낍니다.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서너 시간 노래에 푹 빠질 때, 행복합니다.
텃밭을 가꾸고 매일같이 여러 채소들과 얘기하며 자라는 모습을 보고 행복을 느낍니다. 다 자란 채소를 이웃들과 나눌 때, 행복은 따불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늘 하던 것을 하고 운동 나가기 전에 쾌변을 하고 나면 행복합니다.
혼자서 책을 읽으며 독서삼매에 빠질 때, 행복합니다.
이외에도 소소한 행복들이 참 많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행복'이란 시에서 소소한 행복을 열거하며 자기가 제일 행복한 사나이라고 했습니다.
예쁜 아내가 있고 대학을 졸업했으며 하나님을 믿어 든든한 백이 있으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행복한 사나이'입니다.
칠순을 앞두고 발견한 편도 암을 일찍 발견하여 잘 치료하고 근치의 길을 가고 있으며 이전 보다 더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이런저런 일로 속 썩이는 일이 많았지만 일편단심으로 못난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가 있어 행복합니다.
딸 아들 하나씩 낳아 애비로서 기쁨을 맛보고 자손을 퍼뜨렸으니 행복합니다.
꿈에나 그리던 경영학박사에다 일본 유학까지 갔다 왔고 대학교수로서 강단에 서서 후진을 양성하였으니 명예욕도 충족시켰으며 지금도 공부를 쉬지 않으니 행복합니다.
은행 지점장을 하면서 돈을 원 없이 만져봤고 은행 부채 없이 너른 집에서 살며 든든한 3층 연금 등으로 노후준비를 해 놨으니 재물 걱정이 없어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아내는 목사이고 나도 하나님을 믿으니 살아서도 감사, 죽어서도 감사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굳건한 믿음과 든든한 백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런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남은 나날은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나누며 살아가고자 늘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항상 웃으며 살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앞으로도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
코로나19의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봄기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벚꽃도 만개하여 아파트 정원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벌써 4월입니다. 아니 5월이 저만치 보입니다.
새 달력을 건지가 엊그제 같은데 넉 장 째니 빨라도 너무 빠릅니다.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지 곳곳에서 부음소식이 들려옵니다.
아직 더 살아도 될 나이인 또래 친구들의 부고도 이따금 받습니다.
가는 것이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실감이 납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입니다.
법정스님도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도 금력도 명예도 체력도 사랑도 증오도 모두가 한 때일 뿐이다"라고 인간만사를 내다봤습니다.
흔히들 요즘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 나이까지 사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도 이제 칠순을 넘겼습니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3세이니 따지고 보면 남은 세월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마땅히 서서히 인생결산을 시작해야 합니다.
천주교 황창연 신부님은 "통장에 500만 원만 남기고 꼴까닥 죽자"라고 주장합니다.
있는 돈 아껴서 자식들에게 남기려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멋지게 쓰고 남은 게 있다면 교회나 사회에 환원하라는 얘기를 덧붙입니다.
왜냐하면 자식들에게 재산을 남기면 서로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랍니다.
아울러 "꼴까닥 죽자"라고 했는데 살만큼 살다가 잠자듯이 고이 간다면 정말 멋진 죽음이라 생각합니다.
자식들 고생시키고 본인도 고통이란 고통은 다 당하고 간다면 얼마나 몹쓸 짓이겠습니까?
좀 욕심 같지만 ‘9988234’가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으면 최고의 삶이요 가장 멋진 죽음이 아닐까요.
내게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어 잘 키우고 공부시켜 결혼까지 보냈으니 아비로서 역할은 다 했습니다. 이제 바라고 싶은 것은 자녀들이 손자들을 잘 키우고 이 땅에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내 경우는 시골의 부모님들께 매월 생활비를 보내드리고 끝까지 자식도리를 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자식들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니 제 자식들 키우느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솔직히 손을 벌리지 않으면 천만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분가할 때, 최소한의 살림밑천을 장만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따금 손을 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은퇴자금을 갉아먹는 자식들에게 실망을 하곤 합니다.
돌이켜보니 제 아버님은 경찰 공무원을 조금 하시다가 농사를 지으며 90 평생을 살다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은행과 대학에서 근무한 아들에게 "절대로 남의 돈을 먹지 말거라.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큰 재산을 남겨주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이 말씀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살아계셨을 때에는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늘 베푸시길 좋아라 했습니다.
이런 아버님께 명절 때 내려가면 꼭 용돈을 챙겨 드렸습니다. 어느 때에는 오토바이 공구함 안에 몰래 넣어두고 온 적도 있습니다.
직접 얘기는 안 하셨지만 이런 아들의 마음을 잘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내 아들 딸이 이렇게 살아주길 바랍니다.
첫째, 정직하게 살아라.
둘째,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
셋째, 이웃에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라.
넷째, 부모에게 기대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라.
다섯째,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잘해라.
우리 자식들이 이렇게 살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귀한 인연'에 대하여
인연(因緣)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인연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족, 친지, 학교, 직장,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인연은 점점 줄어들어 이젠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됩니다.
법정스님의 '귀한 인연이길(아래)'을 읽으니 나도 그런 인연을 만나고 싶고 그 누군가에게 되고 싶습니다.
힘든 인생길의 진정한 위로가 되고
터놓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누고
생각만 해도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그런 인연과 함께...
하지만 결국은 내 혼자만 남습니다.
아무리 친한 인연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다 떠납니다. 마음속에 남아있긴 하지만.
이 땅과 이별을 할 때에는 모든 인연을 뒤로하고 혼자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는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아야 합니다.
세상사는 동안 귀한 인연을 만나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부활절 아침입니다.
세상 모든 짐을 다 십자가에 지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리는 날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불교에서의 환생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과 맺은 인연이 가장 소중합니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변함없이 들어주는 친구 같은 예수와 함께 계속 걸어가고 싶습니다.
물론 아직도 내겐 세상적인 꿈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귀한 인연이 되고 나도 그런 인연을 만나고 싶습니다.
☞ 법정스님의 “귀한 인연이길”
진심 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 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한동안 이유 없이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가 내게 사랑의 관심을 안 준다고 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쉽게 포기하는
그런 가볍게 여기는 인연이 아니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
위안을 받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살아가다 기쁜 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
내게 가장 미더운 친구
내게 가장 따뜻한 친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나이 들어 쓰는 돈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
'100세 시대'라고들 합니다.
그만큼 오래 산다는 말입니다.
돌이켜보니 우리 부모님들의 회갑, 칠순 잔치를 제법 크게 해 드렸습니다.
시골 방 벽에 온 가족이 모여 기념 촬영한 부모님의 회갑사진이 아직도 걸려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나이가 든 모습입니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에 확 바뀌었습니다.
요즘 61세라면 노인이 아닙니다.
실제 UN은 18~65세를 청년, 66~79세를 중년, 80~99세를 노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매우 현실적인 규정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90을 넘기고 돌아가셨으니 비교적 장수하셨습니다.
이제는 60에 은퇴를 한다 해도 30~40년을 더 살아내야 합니다.
꽤 긴 세월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레 겁을 먹고 긴 노년을 대비해서 쓰고 싶은데도 참고 자린고비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나이 든 선배들의 한결같은 훈수는 이렇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거 하고 쓰고 싶은 곳이 있다면 과감히 지갑을 열어라"
"제발 얍삽하게 굴지 말고 베풀어라."
"자신을 대접하며 살아라."
한 마디로 나이 들어 타인에게나 자신에게 너무 인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산을 남기는 것은 자식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살펴봅시다.
그 많은 재산을 한 푼도 못 쓰고 고스란히 남겼는데 죽고 나서 자식들이 재산싸움에 휘말려 천하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차라리 다 쓰고 죽든지 좋은 곳에 기부하고 떠났다면 자기 이름도 남기고 자식들도 살렸을 것입니다.
또한 은행에 넣어둔 돈은 쓰지 않으면 내 돈이 아닙니다.
내 얘기를 좀 해 봅니다.
최근 가계부에 기록되는 항목과 금액이 늘어났습니다.
먼저 자동차유지비, 길흉사 관련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활발한 나의 취미생활 관련 비용입니다.
골프, 테니스, 댄싱, 색소폰, 텃밭 농사, 민요와 장구, 책 구입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중에 골프 관련비용이 제일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라운딩에 근 이삼십만 원이 들어가니 은퇴자금을 갉아먹는 주범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낭비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인데..."하고 나 자신을 다독입니다.
전에 비해 필드를 대폭 줄이고 저렴한 스크린골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직도 싱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내가 그 좋아하는 골프를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은퇴준비가 잘 되지 않아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가 힘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도 노후에는 쓰는 것을 너무 아끼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낭비는 안 되겠지요.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노후에는 내일보다 오늘 이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달력을 또 한 장 뜯고 보니 어느샌가 금년도 하반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집사람과 내가 칠순을 넘겼습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매사 정열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조금 늘어나는 가계부의 지출내역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결론은 '아니다'입니다.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꼭 써야 할 곳에 썼습니다.
건강을 지키며 들어간 비용입니다.
이후로도 내가 좀 손해 보고 써야 할 때에는 과감하게 지갑을 열어 나가려 합니다.
나이 들어 꼭 쓰는 돈은 절대 낭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라고 합니다.
정말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성공도 모릅니다. 실패도 모릅니다.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합니다.
얼마 전에 이웃나라 일본의 전 수상이었던 아베가 선거유세 중에 저격수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와 동년배라 나라를 떠나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은퇴 이후 강산이 한번 바뀐다는 10년이 넘고 보니 이제 칠십 고개를 넘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뭐가 그리 바쁜지 평균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기대수명이 늘어나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따져보니 그게 아닙니다.
생존확률로 보니
80세까지가 30%
85세까지가 15%
90세까지 생존확률이 5%입니다.
즉 90세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100명 중 겨우 5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 평균수명이 83.5세이니 남은 세월이 그리 길지가 않습니다.
여기에 건강나이가 73세 정도이니 10여 년 간은 병치레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은 세월이 얼마 되지 않다고 생각하니 더 그렇습니다.
태평가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역시 어떤 일이 있어도 고물고물 잘 놀아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기념일처럼.
한평생을 살면서 순탄한 삶을 마치고 평온하게 이 땅을 떠난 사람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대부분 이런저런 풍파를 헤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대화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대한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메멘토모리' 즉 "늘 죽음을 생각하라"는 짧은 메시지가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죽음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삶과 같은 개념, 다른 세계의 개념으로 깨닫고 죽음의 증상을 적극적으로 관찰하셨습니다. 평생을 호기심으로 살아온 이답게 죽음마저 들여다본 것입니다.
병원 대신 서재와 연결된 집필실에 병원침대를 들여놓고 거기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본인의 소원대로 잠들어 있던 중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향년 89세였습니다.
그는 문필가, 교수, 장관 등으로 활동했으니 세속적인 면에서는 대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흉금을 터놓고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두지 못해 실패한 인생이라고 한탄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당당한 자세'를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느새 올 한 해도 반환점을 지나 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나도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이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마음의 상처
살다 보면 내 부주의로 인해 우리 몸 곳곳에 상처를 입습니다.
어릴 땐 산에 나무하러 갈 때나 소꼴을 뜯으러 갈 때 까시에 찔리고 낫에 베여 피를 흘리곤 했습니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상처부위에 된장을 발랐습니다.
그때, 상처 난 곳을 살펴보니 아직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아픈 흔적으로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받은 상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중에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나 상사로부터 받은 상처는 아직까지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병원 상담을 받고 처방을 받았지만 완전히 흔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상대가 대개 시기심의 발로로 인해 자기 본마음을 오버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내 보내면 되는데 그것이 말같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큰 상처를 받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럴 때에는 ‘바보철학’이 특효약이었습니다.
얘기를 꺼내니 돌아가신 작은 아버님이 생각납니다. 촌놈인 나를 부산에 데려다가 중 고등학교를 보내주신 은인이셨습니다.
가끔 작은 아버님은 술을 한 잔 하시고 소변을 보실 때나 혼자서 지낼 때, 누군가에게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가슴에 지워지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되살아나 자기도 모르게 나온 욕지거리였습니다.
나도 그 나이를 먹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요즘 이따금 그럴 때가 있습니다.
샤워하다가도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면서도 과거 거시기 했던 일이 생각나 괜히 욕지거리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 불현듯 튀어나온 것입니다.
요즘 지혜가 생겼습니다.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지라 자칫 상처를 받거나 주기 쉽습니다.
그래서 터득한 것이 "내가 좀 손해 보고 바보가 되는 것이다."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는 테니스장에서는 남들이 하기 싫은 쓰레기통을 비우고 청소를 합니다. 가끔 밥도 사고 술도 한 잔 삽니다.
남의 단점이나 정치얘기 등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합니다.
유행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맞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코이케 루노스케가 지은 [화내지 않는 연습]을 읽고 있습니다.
남은 세월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주지 않기 위해 굳게 다짐을 합니다.
정말이지 이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주지도 말아야 합니다.
백 퍼센트 완치가 없는 무서운 병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대꾸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라
늙어감의 기술 중 하나입니다.
요즘 들어 이 말이 실감이 납니다.
"젊은이가 뭐라 해도 노인은 절대 대꾸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라"
바야흐로 노인 공경시대가 거하고 에이지즘(ageism) 즉 노인차별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얘기입니다.
동네 어귀에서 젊은 사람이 내놓고 담배를 피우면 지나가는 노인이 꼭 한 마디 했습니다.
젊은 여성의 옷차림이 좀 야해도 어김없이 싫은 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 젊은이들은 대꾸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습니다.
노인의 권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노인은 집안의 어른 일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어른의 역할을 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라고 치부할 것입니다.
하기사 그 당시에는 60이 넘은 노인들이 귀했습니다. 환갑잔치도 동네잔치로 크게 했습니다.
그래서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니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60은커녕 65세가 넘는 노인들이 넘쳐납니다.
2025년에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듭니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제 거꾸로 되어 노인이 젊은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입니다.
출퇴근시간에 노인이 등산복을 입고 복잡한 지하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힐끔힐끔 눈총을 줍니다.
차를 몰다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젊은이들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합니다.
내 차 앞에 주차를 해서 점잖게 한 마디 했더니 대뜸 "왜 반말이냐고"라고 대들어서 되레 무안을 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테니스 회원들과 합창으로 부른 노래가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서유석의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입니다.
한 마디로 나이 들어서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내자는 노년의 울부짖음입니다.
노인이란 젊은이들을 훈계하라는 훈장이 아닙니다.
가급적 입을 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갑까지 닫지는 말고.
결론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대꾸하지 말고 그러려니 하고 살자."
메모, 나이 들면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나이 들면 깜빡깜빡할 때가 잦아집니다.
심하면 건망증이나 치매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 경미합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 폰 시대입니다.
어지간한 일은 폰에서 손가락을 누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에게 골칫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소위 ID와 PW 즉, 개인번호와 비밀번호를 잘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주 바꾸라고 하니 더 그렇습니다.
한 번 잊어버리면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인터넷과 멀어집니다.
그런데 노인에게도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메모입니다.
기록을 잘해 두면 그때그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 경우 아직도 매일 한 장씩 넘기는 탁상메모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가계부를 적고 있는데 간단한 메모기능도 합니다.
또한 틈틈이 적는 일기장도 훌륭한 메모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물론 스마트 폰 내에 있는 메모기능도 충분히 활용합니다.
어제는 직장 후배의 혼사에 가지는 못하고 축의금을 보내야 하는데 통장번호를 몰라 당황했습니다.
근무했던 농협의 퇴직동인들의 모임인 '농협동인회'에 들어가면 경조사 등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로그인을 하려니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스마트 폰을 바꾸면서 메모했던 것이 사라져 난감했습니다.
포기할까 하다가 탁상메모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연초에 기록했던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메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메모는 글을 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좋은 글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를 해 둡니다.
산행을 할 때나 혼자서 텃밭 일을 하면서는 스마트 폰에다 녹음을 해 둡니다.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발음의 정확도도 체크할 수 있어 일거양득입니다.
메모는 기록입니다.
기록의 달인이 됩시다.
늙었다고 핑계를 대지 맙시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젊은이들처럼 인터넷세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입니다.
자연적으로 감퇴되는 기억력을 탓하지 맙시다.
메모가 있으니까요.
막걸리 한 잔 살 여유
요즘 막걸리가 대세입니다.
어릴 때 농촌에서 살 때에는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 힘든 일을 막걸리 힘으로 다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애주가는 아니지만 술상에서 기본은 하는 편입니다.
과거 직장생활 시절에는 소주와 맥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소맥입니다.
가끔 회식을 하면서 과음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깜빡 조는 바람에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좀 과음을 해서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단잠을 자다가 지갑 털이를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젠 그렇게 과음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옛날에 비하면 마시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술에 대한 애환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막걸리는 싸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정(情)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 잔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에게 지갑을 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 옛날 시골 아버지는 남들에게 너무 헤프게 술을 잘 사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할머니는 늘 나무라셨습니다.
부전자전입니다.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가까운 이웃에게 술 한 잔 사는 버릇을 내가 물려받았습니다.
술뿐만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그저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큰돈을 모으지 못하고 요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후회는 없습니다.
갚아야 할 것보다 준 것이 더 많았으니 마음의 부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주고집이' 정신은 변치 않을 작정입니다.
비록 통장에 노후자금이 좀 줄어들지라도 가까운 이웃들에게 대포 한 잔 사면서 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쓰죽회(다 쓰고 죽자는 모임)' 회원의 본분을 다 하고자 합니다.
중장년 남자의 '인정욕구'
인간은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지고 일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인정욕구입니다.
인정욕구(認定欲求)는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가치 따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이 욕구가 너무 지나쳐도 문제입니다.
자신의 양에 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인정을 받으면 힘이 나고 승진도 빠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서로 인정해 주면 부부싸움 대신 사랑이 용솟음칩니다.
인정이 칭찬과 함께라면 효과는 배가 됩니다.
상대방이 잘할 때, 인정해 주고 거기다가 칭찬까지 곁들인다면 없던 힘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얘기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늘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온달은 바보에서 일약 장군으로 승진하여 나라를 위해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반면에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부족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직장 내에서는 외톨이가 되기 쉽습니다. 결국 주변을 맴돌다가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가정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남편들은 바깥쪽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이유는 아내의 무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한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칠십이 다 된 친구들의 공통적인 얘기입니다.
일례로 안 그래도 나이 들면 남자들의 발기력이 떨어지는데 상처를 주는 말을 들으면 더 이상 자연 발기가 되지 않아 부부관계는 멀어져만 갑니다.
남자는 일평생 인정욕구에 목말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 아직도 멋져요 "
이 한마디에 칠십 노인이 청년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벌떡 벌떡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게 인정욕구의 마력입니다.
'만큼'의 삶
'만큼'은 앞의 내용에 상당한 수량이나 정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셀 수 없을 만큼",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다" 등과 같이 쓸 수 있습니다.
칠십 년을 살아오면서 세상과 맞닥뜨린 수많은 것들을 되새겨 봅니다.
세상은 노력한 만큼 잘 살게 되었고
사랑하는 만큼 아름다워졌으며
가슴을 여는 만큼 풍족해졌고
참는 만큼 성숙해졌습니다.
반대로 세상은 게으른 만큼 가난해졌고
미워하는 만큼 추해졌으며
가슴을 닫는 만큼 부족해졌고
화낸 만큼 늘 손해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의 양이 '만큼'입니다.
어릴 때에는 '하늘만큼 땅만큼'의 큰 포부가 있었습니다.
커가면서 점점 작아져 나이 들면 대부분 초라하게 줄어듭니다.
노인들의 삶은 덤의 인생입니다.
나이 든 만큼 나잇값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잠시 맡긴 재물이나 재능을 이웃에게 다 베푸는 것입니다.
이 땅을 떠나는 날에 한 점 후회가 없도록.
그만큼 하늘의 상급이 클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느리게 더 느리게
느리게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오직 시간에게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지은 피에르 쌍소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노년은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천천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데 칠십이 넘어 남은 세월을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쓰잘머리 없이 바쁩니다.
진정한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등산이 좋은 예입니다.
뭐가 급한지 정상을 향해 목표를 정하면 오로지 오르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습니다.
천천히 주위 경치를 보면서 쉬엄쉬엄 오르내리면 좋으련만.
골프도 그렇습니다.
18홀을 돌면서 오로지 그린을 향해 샷을 하고 주위 아름다운 경치는 다 지나칩니다.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내 인생길도 그랬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곳도 미루고 또 미루었습니다. 오로지 직장과 학업에만 온 신경을 쓴 나머지 다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겠지요.
남은 세월은 좀 천천히 가고 싶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의 숨결을 느끼면서 느리게 그리고 느리게.
횡재
살다 보니 뜻밖에 재물을 얻는 횡재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들어오는 돈이라 떳떳하지는 않습니다.
어제는 4월 초반인데도 초여름 날씨라 무척 더웠습니다.
겨울 바지를 벗고 일본에서 살 때, 입었던 청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그런데 입어보니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뭔가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마스크이겠지 하고 꺼냈더니 5만 원 권 2장에 만 원 권 다섯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바지에 넣어두었다가 깜빡 잊은 것입니다.
순간 기분이 야릇했습니다. 내 돈이지만 횡재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침 일본어 공부반 학우들과 수업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오늘은 내가 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今日私がおごります。)
공돈같이 돈이 생기기도 했지만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는 분들과 같이 하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아서였습니다.
일본 유학시절의 얘기입니다.
학교에서 제공해 준 주택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매일 청소기로 방청소를 했습니다.
어느 날 박스 안에서 청소기를 꺼내는데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상품설명서 같은 흰 봉투가 바닥에 보였습니다.
꺼내보니 봉투 안에 거금 20만 엔(우리 돈으로 약 2백만 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전에 거주하던 분이 깜빡 잊고 놔두고 간 것입니다.
잠시 망설였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대학본부를 찾아 사정 얘기를 하고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정중하게 부탁했습니다.
앞으로도 내 돈이 아니면 그 어떤 횡재를 얻더라도 절대 욕심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뜻밖의 돈이 생겨 지갑에 고액권을 여러 장 넣어두니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과거를 되돌아보니 내 인생 전체가 큰 횡재를 한 셈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시골 촌놈이 도시로 나와 뜻밖의 큰 수확을 얻었으니 이게 횡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손, 그분이 나에게 준 대가 없는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나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이웃과 함께 나누고 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소통과 고통
소통과 고통, 한글로는 글자 한 자가, 한문으로는 두 자 모두 다릅니다.
소통(疏通)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는 것입니다.
고통(苦痛)은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입니다.
이렇게 긴 설명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오기 때문입니다.
가족 간 직장 상하 간, 동료 간, 동호인들 상호 간 등 무수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소통입니다.
소통이 잘 되면 가정에 평화와 사랑이 깃듭니다. 직장에서 동기유발이 됩니다. 동호인 모임에서 우정이 깊어집니다.
반면에 소통이 잘 안 되면 반드시 고통이 뒤따릅니다.
남남이 만난 부부사이가 제일 그렇습니다.
옛날 부부는 "원수니 악수니 해도 부부밖에 없다"라고 서로 위안하며 모진 세월을 참고 살았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는 참을성이 부족한지 애들이 딸렸지만 조금만 뒤틀려도 과감하게 갈라섭니다.
다 소통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상하 간 또는 동료 간 소통이 잘 안 되면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만나면 바늘방석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정말 고통입니다.
나도 이런 상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대학교수 시절에.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 아닌 후회를 해 봅니다.
만약 상사가 아무도 못 말리는 그런 사람이라면 차라리 바보처럼 '예스맨의 기질'을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고도 하지 않았습니까.
동호인 모임에도 꼭 거시기한 사람이 한두 명 끼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면서도 스트레스를 팍팍 주는 못된 아니 덜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시는 같이 치고 싶지 않지만 복식게임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이때에는 오히려 칭찬을 더 퍼붓고 가끔 밥도 사고 선물도 하면 의외로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햇볕정책입니다.
세상 살아보니 사람마다 성질이 말 그대로 가지각색입니다.
맞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남자들은 "당신 멋집니다!" 이 한마디에 뿅뿅 갑니다.
"아침의 키스가 연봉을 높인다."라고도 했습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문 앞에까지 쫓아 나와 "당신 멋져요"이 한 마디와 함께 가벼운 키스까지 보탠다면 그 남편은 절로 힘이 날 것입니다.
나도 젊었을 때에는 그랬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 알면서도 은퇴 이후에는 좀 시들해집니다.
특히 나이 들면 조그만 일에도 잘 삐집니다.
특히 부부간에는 사소한 잘못에도 상대를 질책하고 멀어집니다.
돈도 못 벌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내겐 변치 않고 힘을 내는 비결이 있습니다.
일평생 믿는 하나님께 응석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조건 들어주는 소통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언제나 함께 하마. 걱정하지 말고 자신 있게 무슨 일이든 해라.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한다..."
결론입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소통은 꼭 필요합니다.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뒤따르지만 소통이 잘 되면 만사형통이요 행복이 만땅 입니다.
다섯 가지 인생교훈
살다 보니 인생은 결정의 연속입니다.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우왕좌왕할 때도 있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결정을 잘못하여 큰 손해를 보고 인생길이 틀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래 다섯 가지는 남은 인생길에서 많은 참고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특히 노년의 경우 명심해야 할 명구(名句)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럴 때에는 가는 것이 속 편하고 후회를 덜 했습니다.
물론 안 가는 것이 더 좋았을 때도 있었습니다만.
둘째,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요즘은 쿠팡을 이용하여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자주 사게 됩니다.
각종 할인에다가 대금결제가 간편하고 신청하면 대개 다음날 아침에 물건이 오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사게 됩니다.
결국은 낭비입니다.
망설여질 때에는 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말할까 말까 할 때에는 말하지 마라.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게 거꾸로 될 때가 있습니다. 말을 참아야 하는데 그만 내뱉어 놓고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때는 꾹 참고 호흡을 깊게 하는 연습이 좋다고 합니다.
넷째,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빈손으로 이 땅에 와서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은 잠시 맡겨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웃에게 줄 수 있을 때, 과감히 지갑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주면 남는 진리입니다.
줄까 말까 할 때에는 망설임 없이 줘야 후회가 없습니다.
다섯째,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요즘은 먹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일부 극빈층을 제외하고 먹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배부르거나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수저를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에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얘기를 하고 보니 그럴듯합니다.
인생사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결정을 쉽게 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결정을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100% 만족한 결정이 아니라도.
남은 인생도 바보처럼 살고 싶습니다.
푸른 5월이 성큼성큼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카시아, 찔레 그리고 장미 등 온갖 꽃들의 향기가 풍기는 좋은 계절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인 칠십 고개를 넘으니 '바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바보란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일상적인 말로는 상대를 욕하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알아도 모르는 척, 입을 닫고 어른답게 처신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대신에 지갑은 열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바보철학입니다.
우리의 선현들 가운데 바보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인사로 경봉대선사, 김수환 추기경, 장기려 박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 누구보다 똑똑했지만 바보처럼 살다가 가신 분들입니다.
나도 바보철학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니 시기와 질투가 난무했던 모진 세월을 참고 살아왔습니다.
그때마다 좀 뒤로 물러서서 바보가 되어 보니 신기하게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다 주고 훌훌 이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부부의 날’에 느끼는 단상~범사에 감사하라!
첫댓글 제4장 노년의 지혜 편 입니다.
분량이 많아 반으로 줄여서 올렸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