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계 바닷가에서
바다가 파도로 북을 치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두 쪽의 입술이었다 밤이 되자 별들이 하나, 둘씩 반짝이고 있었다 떠들썩하던 천년 소나무들이 바다를 읽고 있었다 달빛 밝은 우주의 그늘에서 두 쪽의 입술이 잠시 지상을 밝혀 주었다.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혼자서 우는 것은 곡哭뿐이다 ‘哭’에는 개 머리 위에 두 개의 입이 있다 이쪽은 저쪽이 있어서 운다 쪽쪽 소리를 내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일 쪽은 색을 낼 때만 쓰는 것이 아니다.
♧ 산막이옛길에서
산 : 산 좋고 물빛 고운 길에 나서면
막 : 막막한 세상살이 별것 아니네
이 : 이런 저런 이야기 풀어가면서
옛 : 옛길 따라 느럭느럭 걸어가 보라
길 : 길 위에 마음까지 다 벗어 놓고
에 : 에돌아가고 싶다 서둘지 마라
서 : 서방 정토 가는 길 여기 아닌가!
--- * ‘산막이옛길’ : 충북 괴산에 있는 둘레길.
♧ 봄, 날아오르다
두문불출의 겨울 적막의 문을 두드리던 바람 부드러운 칼을 숨기고 슬그머니 찾아왔다 아침 밥물을 잦히는 어머니의 손길로 물이 오르는 들판 어디선가 들려오는 칼질소리 금세 봄은 숨이 가빠 어지럽다 오색찬란 환하다, 망연자실 바라보면 울고 싶어지는 희다 못해 푸른 매화꽃 저 구름 같은 입술 젖어 있는 걸 보라 나무들마다 아궁이에 모닥불 지피고 지난 삼복에 장전한 총알을 발사하고 있다 봄 햇살은 금빛 은빛으로 선다 봄은 징소리가 아니라 꽹과리 소리로 온다 귀가 뚫린 것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꽃집에 온 것마다 서로 팔을 걸고 마시다 목을 끌어안고 꿀을 빨고 있다 무릎에 앉은 채 껴안고 마셔라! 마셔라! 입에서 입으로 꽃술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폭탄주에 금방 까무러칠 듯 봄이 흔들리고 있다 세상에 어찌 끝이 있다 하는가 시작이 있을 뿐 겨울이 간 것이 아니라 봄이 온 것이다 파ㆍ릇ㆍ파ㆍ릇 숨통을 트고 잠시 멈추어 숨을 가다듬는 저 푸르러지는 산야로 풍찬노숙하던 환장한 봄이 날아오르고 있다.
♧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볼에 환히 파이는 우리 아가 작은 볼우물에선 동글동글 굴러가는 달도 샘솟고 별꽃들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엄마 아빠 얼굴에 꽃밭 만들고 폴랑폴랑 나비 떼 춤추게 하는 웃음꽃 속에는 영원이 있다 꽃웃음 속에는 우주가 있다.
♧ 혼자
올갱이 원조 상주집에서 쫓겨나고 버섯찌개 유명한 경주집에서도 아침부터 문전박대, 푸대접 받고,
‘1인분은 안 되는데요!’
문전걸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가면 밥도 팔지 않는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세상,
혼자婚子야! 그래도 나는 네가 좋다 내가 밥이다.
♧ 곡두
입이 큰 여자가 하얗게 울고 있었다
탱자나무 감옥에 갇힌 달을 안고 여자가 천 길 절벽으로 뛰어내리자 대청호大淸湖 물고기들이 튀어올라 온몸으로 현암사懸巖寺 쇠종을 치고 있었다
삼천 송이 목련꽃이 지던 밤이었다.
♧ 별
나이 들어도 별 수가 없다.
그리운 것 그리워할 수밖에야!
소금밭에선 바다가 꽃으로 익는데,
나일 먹는다고 별이 뜨지 않겠는가! * 홍해리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조팝나무 꽃 |
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
첫댓글 바라보면 울고 싶어지는 희다 못해 푸른 매화꽃!
조팝꽃 하얀 꽃구름도 간지러운 봄입니다.
색. 향..., 다음은 맛... 만감이 교차합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ㅎㅎㅎ
바로 그 꽃, 청악매가 국립4·19민주묘지에 피어 있습니다.
@banjho 재미있게 사는 게 제일이 아닌가요?
'내 멋'이라 생각하며 사는 것!
@洪海里 예 맞습니다... 멋대로 생각시하며 산다는것
질풍노도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ㅎㅎㅎ
잘 보았습니다.
오늘도 활기차고 행복한 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조팝나무꽃을 보여주시네요.
조팝나무꽃을 보면서 느럭느럭 걸어가보렵니다.
산막이옛길 너무 멋집니다.
멀리서 보는 조팝꽃, 애잔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오래 전에 괴산에서 여름시인학교를 할 때 산막이옛길을 한번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