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을 맞이하는 법
푸른색 얇은 작업복을 걸친 두 여인이 하얀 면포를 들고 새로 나타났다
조금전 방문한 여인이 더 재볼 것도 없는 몸을 도살된 돼지고기 마냥 무게만 재고 사라진 직후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은 차라리 온당했고
하필 이때 옛마을 늙은 당수나무가 색동옷 걸치고 봄이네 여름이네 청춘을 뻐기던 장면들이 뇌리를 스쳤다
어수선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살이에서 고장난 부품을 갈아끼는 일 쯤이야 일도 아님에라 짜증만 내지 않아도 다행한 일 아니었던가
총에 맞았거나 칼 맞아 죽지 않고 그나마 반듯이 하늘 올려다 보는 이 자세처럼
하얀 면포를 든 두 여인이 가까이서 갈라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누구든 언젠가는 쓰잘데기 없는 몸과 보잘 것 없는 영혼의 분리하는 칼날 아래 놓이게 되리라
이때쯤 오만 종교 신들을 상대로 소집령을 발동해야 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거늘 주저하고 있는 꼬락서니 하고는
아직도 남은 연민의 편린들을 사방으로 날려 보내며 알콜샤워에 때가 한됫박 나오는 경우가 없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제대로 배워도 깜박깜박하는 타이밍에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남발하는 주문이 제대로일 수가 없는데 용케도 저 두 여인은 제대로 알아듣고 있었다
야무지게 하얀 면포를 움켜쥐고 병상 아래위를 점령한 여인들이 양팔을 활짝 펼쳤다
아! 세상에 있는 온갖 하얀 꽃들이 계절을 버리고 일어났다
핏기를 잃은 매화가 철쭉과 목련을 부르더니 이팝에 이어 장미와 국화까지 불렀나 싶다
꽃향기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한데 모이니 이제까지 알았던 온갖 화장품 냄새들이 한꺼번에 뒤섞인 것 같았다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나 직업상 얼굴을 찡그리지 못하고 미소도 머금을 수 없는 마네킹의 몸에 서린 무색무취의 기운이 성스러워 보였다
먼저 양눈을 감겨주는 예의는 생략하고 머리맡을 점령한 여인이 입을 뗐다
"환자분 저편에 붙어 몸을 옆으로 돌려주세요"
난 그냥 이대로 누워있는 게 좋은데 곧 죽을 몸이니 죽을똥을 싼들 뭐가 어색하랴만 등뒤로 바스락 소름꽃이 둗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똑바로 누우세요" 어허 이 사람들이!
속으론 죽고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이도 임종전 하자를 없애는 중일거야 하다가 문득 여자 염사도 있었나 바라보는데 발치에 서있던 여인이 재빨리 소근거렸다
"보통 법복은 검은색인데 여기선 하얀 가운을 입어요 오늘 운 좋은 줄 아세요"
그래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라는데 사라지고 중단된 절차 따위야
절차상 절차에 하자가 많을수록 좋다던 그녀들이 빈손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