㉒ 먹는 행위
발우공양 속에 담긴 5가지 사상
◇ 네 개의 나무 그릇을 사용하고 공양 후 그릇 씻는 물 까지 마신다. *출처=한국사찰음식
언젠가부터 저는 음식을 받을 때마다 「오관게」를 암송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시내 식당에서도 「오관게」를 암송하는 일만은 빼먹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손쉽게 부처님 법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인 까닭도 있지만, 쌀 한 톨이 제 입까지 오는 과정을 새삼 마음속에 각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쌀 한 톨에 농부의 땀이 일곱 근이나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농부만 벼를 키운 게 아닙니다.
벼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한 흙과, 벼에 수분을 공급해 준 비와, 벼가 양분을 만들 수 있도록 내리쬔 햇살이 있었기에 쌀 한 톨이 제 입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쌀은 인간과 대자연의 합작품입니다. 숭고한 노동이 빚은 예술품입니다.
불교에서는 주는 행위 일체를 일컬어 ‘공양’이라고 합니다. 밥 먹는 것 또한 몸에 생명력을 주는 것이므로 공양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공양을 받을 때 사천왕이 돌그릇을 각기 하나씩 부처님께 드렸고, 부처님은 이 발우 네 개를 포개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후 제자들도 부처님을 따라 발우 네 개를 써서 공양을 하는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나무 그릇인 발우는, 성불을 이루기 위한 약으로 꼭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담는 그릇을 일컫습니다. 따라서 발우공양은 단순한 식사법이 아니라 거룩한 의식이자 수행의 한 과정입니다.
그런 까닭에 발우공양을 법공양(法供養)이라고도 부릅니다. 스님들은 발우공양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제자로서 살겠다는 서원을 되새깁니다. 이러한 발우공양에는 크게 다섯 가지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평등 사상입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가 차별 없이 똑같이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청결 사상입니다. 각자 먹을 음식만 발우에 덜어 먹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청빈 사상입니다. 자신이 받은 음식을 조금도 남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공양 후에는 그릇 씻은 물까지 마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태주의 사상도 깃들어 있습니다.
넷째는 공동체 사상입니다. 대중이 같은 곳에서 같은 때에 한 솥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들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복덕 사상입니다.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고생한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맹세하기 때문입니다.
발우공양을 할 때 외우는 게송은 곳곳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고, 공양물에 깃든 은혜에 감사하고, 자기 수행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공양을 받은 인연으로 탐욕과 화와 어리석음을 끊어, 마침내 불도를 이루어 널리 중생에게 보답하리라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것만은 모두 같습니다.
발우공양을 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식을 씹을 때는 씹기만 하고, 음식을 집을 때는 집기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에 여러 동작을 해서는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식사 때 허겁지겁 먹기에 바쁩니다. 혀끝에 군침이 고이면 저절로 양손이 분주해집니다. 한 손으로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고, 다른 손으로는 숟가락에 놓인 밥을 입 안에 넣고, 입은 연신 씹느라 바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에 한 가지 동작을 해야 음식을 탐하는 마음을 줄일 수 있고 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천천히 식사를 해야 건강에도 좋습니다.
사찰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수행의 연장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예비 승려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행자 시절에 땔감 구하기부터 반찬 만들기, 국 끓이기, 밥 짓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두루 거칩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전통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님들은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지중한 마음을 키우게 됩니다. <계속>
글 | 마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