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책에 기록된 이름
계3: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태어나면서 호적에 등재되었던 이름은 죽음과 함께 호적에서 지워집니다. 이는 법적으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반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호적과 상관없이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빛나는 이름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생명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없습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행위의 온전함에 대한 강조입니다. “내가 내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노니” 온전한 행위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바울 사도는 나중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행위의 온전함이란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느냐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5:2
내 자신이 아무리 의를 행하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산 것이라면 그 삶은 의로운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만이 온전한 삶의 길입니다.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바치며 헌신했을지라도 자기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실상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사는 자의 모든 결정과 행동의 주체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자는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왕이 되시는 주님의 의사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피로 사셔서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자기 생각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의 소원을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단지 내 생각 내 뜻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권을 주님께 내어드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목자와 양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른다는 것은 주님의 양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13:5
주님께서 자기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아는 사람은 자든지 깨어있든지 언제나 주님을 생각합니다.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나 자신을 가장 선한 길 곧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과 몸으로 믿고 따라갑니다. 주님께서 앞서가시면 골고다 십자가의 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5:8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9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은 고난의 십자가 가운데서 온전해집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2:30
하늘 보좌를 떠나서 비천한 죄인을 찾아오신 주님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존중히 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내가 너를 안다고 시인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복되고 귀한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2023. 10. 28 장기옥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