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 인(in) 여의도, 여의도 법인(人)⑤ -한동훈 호(號) 지어준 ‘대장동 변호사’의 국회 입성
호탕하고 뱃심 있고 통 크던 검사 윤석열이 정치를 하더니 졸장부가 됐어!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 아니면 정치판이 그렇게 만든 건가? 그 똑똑하던 한동훈도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정치는 그렇게 꽃가마 타고, 구름 타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이런 내용들이 있어요
📍 “호탕하던 尹, 졸장부됐다!”...왜?
📍 “이렇게 영리한 놈이 있나!”...한동훈에 감탄하다
📍 양부남이 지어준 한동훈의 호(號)는?
📍 이재명, 의외로 수줍음 많다?
📍 “정권이 ‘검사 골품’, ‘검사 음서’ 제도 만들어”
사법시험은 신분 상승의 첩경이었다. 삼신할미가 맺어준 천륜에 재복(財福)이 누락돼 힘든 초년을 보내던 이무기들이 운명에의 순응을 거부하며 절박하게 거머쥔 등용문(登龍門)이었다. 그 통로를 통해 무수한 입지전(立志傳)이 쓰인 건 정한 이치다.
합격자 명단에 출신 대학을 병기했던 옛적, 지루하게 이어지는 명문대들의 이름 끝에 독야청청 ‘고졸’ 타이틀로 종지부를 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분야의 상징적 존재다.
1975년 3월 2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제 17회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이름과 출신 학교. 총 60명의 합격자 중 유일한 고졸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이 명단 맨 아래에 있다.
여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직설적으로 목청을 돋우고 있는 화자(話者) 역시 만만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공고와 지방대를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군 생활까지 마친 뒤 늦깎이로 사법시험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한 그는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 검사들 사이에서 ‘빽’도 없고 학연도 없이 능력 하나만으로 고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윤 대통령과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1년을 동고동락했고, 역시 거기서 만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는 검사 생활 말년에 재회해 왕년의 무용담을 수다로 풀어내던 돈독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의 선택은 옛 동지들이 아니라 그들의 정적인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이재명 대표였다. 이른바 ‘대장동 변호사’의 일원으로 맹활약하다가 이번 총선에서 여의도에 입성한 그는 양부남 당선인(63·광주 서구을, 이하 경칭 생략)이다.
양부남 당선인이 유권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양부남 의원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가 ‘이것이 팩트다’ 팀과 마주 앉았다. 구변 좋은 그의 입에서는 윤 대통령, 이 대표, 그리고 한 전 위원장과의 얽히고설킨 사연이 줄줄 흘러나왔다. 과거를 회상할 때 꼬리가 올라갔던 그의 입은 현실을 언급할 때 매서워졌다. 지금부터 양부남의 이야기보따리를 차근차근 풀어보자.
여의도법인(人)의 절반, 변호사...‘전문가’와 ‘탈레반’의 갈림길
예나 지금이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주류는 변호사다. 22대 국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법학박사들까지 더해 총 66명인 범(汎)법조인 중 절반인 33명이 변호사 출신들이다.
변호사는 판사나 검사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다는 게 장점이다. 기본적인 법 지식에 이런 경험들을 쌓아 올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이들도 많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 정치에 입문한 초선 정치 변호사들 중에는 기후·환경(더불어민주당 박지혜), 복지(민주당 김남희), 노동(민주당 이용우) 등 분야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스로 장애가 있어 누구보다 장애인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이(국민의미래 최보윤)도 있다. 이런 경험과 전문성은 입법 과정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상주의와 원리주의로 흐를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 특정 사안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방향만이 진리라고 굳게 믿는 경향이 있어서다. 배후 지원 세력의 정치적 압박과 초선 특유의 전투력이 결합하면서 ‘탈레반’이라 불릴 정도의 비타협적 완고함을 표출한 사례는 흔히 목도된다.
야당의 초선 정치 변호사들이 22대 국회 입법이나 정쟁 과정에서 여당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무한 투쟁의 선봉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가뜩이나 각 정파의 수장들(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이 사적 악연으로 물고 물린 관계라는 점에서 이번 국회가 비타협의 최고봉이 될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중에서도 선두에 설 것으로 지목되는 일군의 무리가 있다. 이재명 대표의 형사 사건을 변호했던, 그래서 이른바 ‘대장동 변호사’로 불렸던 5명의 변호사 출신 당선인들이다. ‘친명 세력’이 장악하다시피 한 민주당 내에서도 그들은 ‘찐명’으로 분류될 수 있을 정도로 업적이나 충성도 측면에서 도드라진다. ‘이것이 팩트다’ 팀이 그들의 리더격인 양부남을 직접 만난 이유다.
공고, 지방대, 학사장교 출신 비주류 특수통
지난 5월 14일 광주광역시 서구 금화로의 사무실에서 양부남이 취재팀을 맞았다.
양부남 당선인이 지난 5월 14일 광주 지역구 사무실에서 '이것이 팩트다' 팀의 이태윤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양부남 의원실
일찌감치 서리 내린 머리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순간순간 구수하게 구사하는 사투리는 그를 후덕한 도사나 촌로로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검사 시절 그의 매섭던 ‘칼침’을 맞아본 이들이라면 절대 동의하지 못할 묘사이리라.
그는 촌놈이다. 전남 담양 출신으로 담양공고와 전남대 법대를 졸업했다. 검사 중에서 매우 드물게 보는 실업계고, 그리고 역시 주류로 보긴 어려운 지방대 출신이다. 그처럼 학사장교(6기) 출신인 검사도 많지 않다. 병과는 탱크부대. 소대장, 작전장교를 거쳐 중대장(중위)으로 전역했다. 이후 육법전서를 파고든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2기로 윤석열 대통령의 한 기수 선배.
연수원 성적이 빼어나 서울지검에서 초임 검사 생활을 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2003년 전설적인 ‘안대희 중수부’에 발탁됐다. 거기서 검사 시절의 윤 대통령, 한 전 위원장과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함께 하면서 1년간 동고동락했다.
2004년 초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문효남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 중앙포토
이후 특수통의 길을 걸으며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강원랜드 사건 수사단장 등을 역임했고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던 2020년 7월 부산고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났다.
이력으로만 보면 그의 행선지는 ‘윤석열 캠프’가 돼야 온당했을 게다. 하지만 그는 ‘이재명 캠프’로 갔다. 왜 그곳이었을까.
尹의 옛 동지, ‘이재명 캠프’서 검찰과 절연하다
2021년 윤 대통령 후임 검찰총장 물망에 올랐던 그는 김오수 전 총장에게 고배를 마신 뒤 다소 붕 뜬 상태였다. 변호사 업무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던 그때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재명 경기지사 한번 만나볼래?
양부남이 그때를 회고했다.
언론을 통해 접한 여러 비우호적 이미지가 있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사람이 굉장히 솔직, 담백한 거예요. 경기지사에 유력 대선 후보인데 이렇게 솔직, 담백할 수가 있나 놀랐어요. 게다가 매우 실용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사고를 갖고 있더군요. 이념이나 계파에 구애받지 않고 일만 잘하면 누구든 쓸 수 있다는 태도였어요. 머리도 좋고 스마트했어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충분한 역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의외로 수줍어하는 구석도 있었어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남의 말을 다 들어요. 그런 모습들도 마음에 들었죠.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인간적으로 공감할 부분이 많다는 점이었어요. 공고, 지방대 나와서 검찰 생활할 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거든요. 이 대표도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검정고시 거쳐 결국 성공했는데 그 과정이 매우 험난했겠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주류도 없고, 비주류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쓰겄다! 이분을 모시고!’
그는 이 대표의 손을 맞잡았다.
형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야! 양 고검장! 정신 차려!
돌아오라 양부남!
전화기에 불이 났다. 전·현직 검찰 동료들의 항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빗발쳤다. 2021년 12월 10일 양부남이 민주당 법률지원단장이 된 직후였다.
그날 이후 양부남은 대장동 사건 등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사법 리스크(양부남은 ‘정적 죽이기’라고 표현했다) 대응의 최전선에 섰다. 윤 대통령과 가족의 뒤를 캐고 수십 건의 고발장을 날리는 작업도 그가 주도했다. 윤 대통령, 그리고 검찰과의 연은 거의 끊어졌다.
원수가 돼 버린 거죠. 인간적으로 원수라는 게 아니라 지향점이 달라지면서 옛 동료들과는 연락도 안 하는 사이가 돼 버렸어요. 워쩔거여? 내가 그리고 싶은 세상은 ‘그들’이 아니라 민주당이 그리고 싶은 세상인데. 큰 뜻을 위해 인간적인 사소한 관계를 끊어분 거지.
그 과정에서 이 대표에게 여러 번 감탄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매우 영리합니다. 사건에 대해 조언하고 토론해보면 사건의 핵심을 잘 짚어내요. 그리고 수많은 압수수색, 정권과 언론의 공격을 버텨내고 지탱해내는 걸 보면 정신력도 엄청나요.
지난 대선 유세 당시의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하지만 이 대표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양부남은 실망했지만, 그걸로 자신의 역할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생각했다.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으니 화합 차원에서라도 정적에 대한 사법적 공세를 중단할 거로 봤기 때문이다.
한동훈에게 호(號) 지어준 사연
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전개됐다. 양부남의 목소리가 커졌다.
난 윤 대통령을 잘 알아요. 호탕하고 뱃심 있고 통이 큰 사람이었어. 그래서 당연히 (이 대표 관련 사건들을) ‘쿨’하게 털고 갈 줄 알았죠. 대선 이겼으니까 이 대표 만나 어깨 두드리면서 ‘우리 잘해봅시다’라고 할 줄 알았죠. 그런데 수사가 계속되는 거예요. 호탕하던 사람이 졸장부가 돼 대범하지 못하게 처신하는 걸 보고 매우 실망했지. ‘아, 내가 그의 진면목을 몰랐구나, 검찰에서 본 건 진짜가 아니었구나, 이게 진짜 모습이구나’ 싶더라고. 아니면 정치하면서 변한 걸까? 헷갈리더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정치적 사건은) 털고 가야지. 선거 과정에서는 싸울 수 있지만 이걸 계속 수사한다는 게 말이 돼? 아직도 마인드는 검찰총장인 거야. 대통령이 아니고.
한번 시작된 윤 대통령 비판은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윤 대통령은 낮아질 필요가 있어요. 밑바닥에 와서, 한없이 마음을 비우고 겸손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그런 경험 없이 꽃가마 타고 있다가 바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잖아요? 소통을 잘 못 하는 데는 그런 원인도 있다고 봐요. 다 내려놓고, 직전에 뭘 했건 다 내려놓고 국민과의 소통부터 배워야 해요. 슈퍼을(乙)이 돼야 해요. 스님만 수행하는 게 아니에요. 정치도 수행이에요. 화나도 화내면 안 되고, 0.1%도 교만해지면 안 돼요. 마음을 다 비워야 그 안에 민심이 들어오는 거고, 그래야 섬기는 자세가 나오는 거예요.
화제는 한동훈 전 위원장으로 이어졌다.
대선자금 수사할 때 모 대기업이 역외펀드 만들어서 비자금 빼돌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압수수색을 했는데 과연 관련 자료가 나오더라고. 근데 이 자료들을 꿰맞춰야 ‘그림’이 되는 건데 워낙 어려워서 공인회계사도 그걸 못해. 그래서 한동훈을 불러서 보여줬는데 그걸 쫙 꿰 버리더라고. ‘와! 이놈 어떻게 이렇게 영리할까’ 싶더라니까요. 자기 관리도 철저했고. 나는 이놈이 정치할 줄 몰랐어요. 뭔 정치를 해? 나 깜짝 놀랐어. 평생 검사할 줄 알았지.
그는 한동훈과의 인연이 각별했다. 부산고검에 함께 있을 때 호(號)를 지어준 적도 있었다. 2020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윤석열 사단’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있었던 직후였다.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수부장)에서 부산고검 차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던 한동훈을, 부산고검장이던 양부남이 불렀다.
윤석열 사단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숙청 인사 직후였던 2020년 2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부산고지검을 방문해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과 인사하고 있다. 양부남(오른쪽 두 번째) 당시 부산고검장, 권순범(왼쪽 두번째) 당시 부산지검장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형님, 부르셨어요?
동훈아, 내가 너 호를 하나 지어줄게. 대우 어때?
대우요?
응 큰 대(大)자에, 어리석을 우(愚)자. 대우(大愚).
왜 대우입니까?
응, 너는 너무 영리하니까. 그리고 그 영리한 게 밖으로 나오잖아. 말도 빠르고 피치(음높이)가 높아서 사람들한테 싸가지 없다고 오해 살 수 있어. 원래 호는 실제 모습과 반대로 짓는 거야. 늘 상기하면서 단점을 줄이고, 타인의 반감을 낮추도록 노력하라는 취지에서. 그래서 대우, 어때?
하하하. 형님, 그거 좋은데요!
하지만 양부남은 그렇게 재능을 아꼈던 한 전 위원장에게도 쓴소리를 내뱉었다.
비대위원장 되더니 다른 정치인들처럼 포퓰리즘적 언사, 거친 언사를 내뱉는 거 보고 크게 실망했어요. 한동훈도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예요. 정치하려면 내려가야 해요. 지역구 선택해서 박박 기어봐야지, 구름 타고 다니면서 비대위원장부터 하고 그러면 되겠어요? 현직에서 바로 정치권으로 가면 민심을 알 수가 없어요.
그의 비판은 ‘검사 정치’ 전반으로 확대됐다.
검사는 평생 시시비비, 흑백논리에 갇혀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행정과 정치는 미래를 얘기하는 거지. 물론 검사들 똑똑합니다. 훈련받으면 잘하겠죠. 하지만 훈련이 안 돼 있잖아. 그럼 거기 가져다 놓으면 안 되지. 위화감이 조성되는 거야. 신라 시대 골품제도처럼 ‘검사 계급’을 만들어버린 거야. 검사만 하면 요직에 갈 수 있다는, ‘음서 제도’ 비슷한 제도가 생겨버린 거야. 국민 통합, 국가 발전, 공무원 사기 측면에서 이러면 안 된다 이거지.
그렇다면 그 역시 이런 검사 정치 척결, 윤 대통령과의 극한 투쟁을 민주당의 나아갈 길이라고 여길까. 양부남은 이 대목에서 다소 조심스러워했다.
검찰 개혁, 투쟁에 나서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민생이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무게 추를 개혁과 투쟁에만 두는 우를 범하면 안 돼. 그게 잘못하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어. 이번에는 그 부메랑을 윤 대통령과 여당이 맞았지만, 우리도 투쟁이나 개혁에 ‘몰빵’해벌면 대선 때 그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어. 민생을 중시해야 한다는 얘기예요.
다른 초선 정치 변호사들, 특히 양부남과 달리 재조(在曹) 경험이 없는 재야 변호사 출신 당선인들 역시 양부남의 신중함을 공유하고 있을까. 아니면 거침없는 진격과 투쟁만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 그걸 알아보기 위해 ‘이것이 팩트다’ 팀은 ‘대장동 변호사’인 동시에 민주당의 의원 사관학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김동아 당선인을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