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 않는 믿음
로마서 4장18-25절
권오진 목사
“18. 그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면서 믿었으니 이것은,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신 것대로 그가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19.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20.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또한 능히 이행하실 줄로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23.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이제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24. 우리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을 믿을진대 그것을 의로 인정받을 우리도 위한 것이니라. 25.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벌거숭이 왕>이란 안데르센 동화가 있습니다. 동화 주인공은 새 옷이라면 환장하는 왕입니다. 왕의 옷장에 온갖 새 옷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또 새로운 옷을 지어 입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새 옷을 입으면 거리를 나섰습니다. 백성들에게 ‘왕은 대단하다. 정말 멋진 옷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이 나라에 이웃 나라에서 두 거짓말쟁이가 찾아왔습니다. 거짓말쟁이들은 거리에서 빈손을 높이 치켜들며 계속 소리를 쳤습니다. “자 이 옷을 한 번 보십시오.” 사실은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으면서 계속 말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잘 보이나, 바보 같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은 신기한 옷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만, 바보 같은 사람에게는 안 보인다고 하자> 사람들은 눈을 비비며 봅니다. 어떤 사람은 “허허”하면서 한숨 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정말 멋있군!” 하면서 슬기로운 사람인 양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궁궐에 계시는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두 거짓말쟁이를 오라고 해서 <자신을 위해서 옷을 짓게 만듭니다> 많은 돈을 받고 옷감 짜는 틀을 마련한 후, 옷감을 짜는 척했습니다.
사실은 옷감 짜는 흉내만 낼 뿐이었습니다. 왕은 기다리다 지쳐 <슬기로운 대신>과 <시종>을 며칠 간격으로 보냅니다. 그들은 옷감 짜는 곳에 가 보았지만, 눈에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하지만 안 보인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안보인다고 하면 바보로 취급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께 보고할 때는 <옷감의 색깔도 예쁘고, 질도 너무 좋습니다>고 합니다. 옷이 완성되고, 왕은 보이지 않은 옷을 입고는 거리로 나섰습니다. 왕을 본 사람들은 <옷이 화려하다, 옷이 멋지다>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어른들 틈에서 왕을 보던 아이 하나가 손가락질하며 소리쳤습니다.
“아하 하하, 왕은 벌거숭이다. 아무 것도 안 입으셨다!” 하면서 놀려댔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의 아버지도 한 마디 거듭니다. “우리 아이는 거짓말을 못해요. 누구보다 정직합니다.” 아이의 말이 대신들의 귀에 들어가고, 왕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하지만 왕은 행차를 그만두지 못하고 더 위엄있는 자세로 왕궁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눈에 안 보이면 <바보 취급을 받아도> 안 보인다고 말해야 하는데, 백성도, 신하도, 왕도 <슬기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이 동화에서 말하는 <옷>을 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교리 <이신칭의>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오직 믿음(Sola Fide; 솔라 피데)>로 적용해 보았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이신칭의, 오직 믿음(Sola Fide; 솔라 피데)>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하지만 성도들을 만나 <이신칭의가 뭐지요? 오직 믿음이 뭐지요?> 물어보면, 시원하게 대답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이신칭의> 보인다며 슬기로운 사람처럼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신칭의>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① 믿음의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② 우리가 구원 받는 방법이 오직믿음 임을 알아야 한다. 제가 목사로서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상급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는 <믿음>뿐입니다. 제가 믿음이 없으면 저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것을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알아야 합니다.
③ 믿음의 삶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강해를 통해 저와 여러분은 <이신칭의>를 바로 알고, 새 가족에게 설명할 수 있고, 삶으로 살아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로마서 4장에는 이신칭의의 모델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들었습니다. 다윗은 잠시 설명했고, 대부분이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18-22절도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최초 이신칭의의 복을 얻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성을 5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성 5가지> -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여러 가지 다양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복덩이가 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 자손의 복을 주겠다고 했고, 장차 메시아가 그의 몸을 통해 오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믿음 아브라함이 이신칭의를 얻었던 창세기 15장을 생각해 보세요. 85세 때 였습니다.
아직 자녀가 없었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며, 많은 자손(하늘의 별처럼 많은)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함께 세우리라”(창 17:21)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도 그대로 믿었습니다.
※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성경과,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믿습니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이 순수한 말씀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반대되는 어려운 상황을 무릅쓴 믿음 18-19절 “18. 그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면서 믿었으니 이것은,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신 것대로 그가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19.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18절 말씀은 아브라함이 85세 때 이야기이고, 19절 말씀은 성경은 100세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99세 때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신다고 75세에 소명 받을 때도 말씀하셨고, 85세 때도 말씀해 주셨고, 이제 99세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2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서 출산하지 못하던 부부일 경우 세월이 흘렀더니 <정자의 수가 늘어났더라> <난자가 더욱 건강해졌더라>며 희망이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눈앞에 이루어질 것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9절 다시 보세요. “19.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아브라함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사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임신가능기가 지난 여인을 때로 <관[棺]>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시체를 보관하는 상자가 관이지 않습니까?
아브라함도 관, 사라도 관과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관에서 새 생명이 탄생할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 같은 나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야! 하나님은 죽은 자 같은 사라를 살릴 수 있는 분이야! 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믿음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릴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를 드리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갈 때 종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세기 22:5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드려 이삭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이 이삭을 살려준다는 믿음이 믿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환경이 정반대로 갔어도, 그 환경을 무릅쓰고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이 이런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로 예배하기 힘든 환경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새벽기도회, 수요성령기도회에 나와 간절히 기도하면 예배 환경이 더 좋아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더 힘든 환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정반대되는 어려운 상황을 무릅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저는 지난 수요일(8일), 정부에서 전국교회를 대상으로 핵심 방역수칙 의무화를 정부에서 발표를 보고 목회자로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정부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새벽기도회를 하는데 시편 23:4을 생각났고, 여러번 입술로 고백하게 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금 우리의 환경이 우리가 원하는 환경과 반대일지라도, 하나님은 이 환경을 바꿔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충분한 확신한 믿음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의 네 번째 특성은 <확신>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19절(a)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절(a)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20절(b)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환경에 굴복 하지 않고 믿음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