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金海市) ‘길손의 소회‘ 한시(漢詩)편 3.> 총10편 中
경남 김해시는 선사시대부터 부족국가를 이룬 금관가야가 위치한 곳으로, 가야국의 문화 중심지인 까닭에 패총·지석묘·고분군과 유물·유적 등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13점, 도지정문화재 19점, 문화재자료 10점이 있다. 문화재로는 수로왕릉, 회현리조개더미, 분산성, 예안리고분군, 김해향교, 은하사 대웅전, 구상동 마애불, 초선대 마애불 등이 있다. 선사시대 유물인 패총은 부원동·봉황동·이동 등지에 분포하며, 특히 회현리패총은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회현리패총은 2001년 도 문화재자료 제 87호였던 봉황대와 합쳐 김해봉황동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특히 동상동 지석묘는 임진왜란 때 충신인 송빈이 순절한 곳으로 송공순절암이라고도 한다.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가야시대의 유물 1,000여 점이 발굴되었으며, 구산동의 수로왕비릉, 구산동 고분군, 서상동의 수로왕릉이 유명하다. 또한 가락국 왕들의 놀이터라 전해지는 초선대, 김수로왕이 탄강했다는 구지봉과 은하사 등이 있다. 장유면 대청리의 장유암, 생림면 생철리의 모은암은 가락국의 사찰로서 우리나라 고찰에 속한다. 한림면 안곡리의 3층석탑과 진영읍 본산리의 봉화산마애불, 장유면 삼문리의 능동석 및 상석, 주촌면 양동리의 양동산성은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15) 김해 전사(여관)에서 밤의 회포[金海傳舍夜懷] / 사명당대사(四溟堂大師 1544∼1610)
旅次盆城府 분성 고을에서 여행을 하다 보니
乾坤此地分 이곳에서 하늘땅이 나누어지고
潮通百越海 조수가 통하는 백월(百越)의 바다가 펼쳐있어
天接古陵雲 하늘과 구름 덮인 옛 왕릉이 이어졌네.
山月千秋白 산 위의 달은 천추에 희게 빛나고
荷香半夜聞 연꽃의 향기가 한밤까지 전한다.
滄波萬里意 창랑(滄波)이 만 리 마음인지
如縷正紛紛 비단 실처럼 한창 분분하네.
[주] 백월(百越) : 고대 중국 대륙의 남방, 주로 강남이라고 불렸던 장강(양자강,양쯔강) 이남에서 현재의 베트남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일컫는다.
16) 분성 회점[盆城懷占] / 사명당대사(四溟堂大師 1544∼1610)
秋草金王國 가을 풀은 수로왕의 나라요
殘丘許后陵 쇠잔한 언덕은 허후(許后)의 능일세.
千年白雲在 천 년 전 흰 구름 그대로 있는데
落日倚樓僧 지는 해 바라보며 누각에 기댄 중이여.
17) 김해 죽도(竹島)에 있을 때 어떤 늙은 유학자가 산승이 쉬지도 못한다고 나무라기에 서툰 솜씨로 사례드리다[在竹島 有一儒老 譏山僧 不得停息 以拙謝之] / 사명당대사(四溟堂大師 1544∼1610)
西州受命任家裔 서주(西州)에 명을 받은 임씨(任氏) 가문의 후예로
庭戶堆零苟不容 집안이 영락하여 잠시 몸 둘 곳도 없었네.
無賴生成逃聖世 의지해 살 데가 없어서 세상을 피하여
有懷愚拙臥雲松 어리석음과 못남을 품고서 구름과 소나무에 누웠네.
山河去住七斤衲 산과 강을 오가는 데는 일곱 근(斤) 장삼이요
宇宙安危三尺筇 우주의 안위(安危)에는 세 척의 지팡이라.
是我空門本分事 이것이 우리 불가의 본분인데
有何魔障走西東 무슨 마귀의 장애가 있어서 동서로 달리는가.
18) 김해 미금헌시[金海 美錦軒詩] / 허전(許傳 1797∼1886)
盆城自是舊京華 분성(盆城)은 스스로 화려(華麗)한 옛 서울이고
首露神靈肇我家 수로왕(首露王) 신령(神靈)이 우리나라 시작했네.
年代有如禪通紀 연대(年代)는 흐름 있어 선통(禪通)의 기원(紀元)되고
雲仍無數恒河沙 구름은 수 없어 무수한 모래알 같구나.
龜山鎭北天成險 구지봉(龜旨峰)의 진북(鎭北)은 하늘이 험지(險地)를 이루고
鳴海經南地盡涯 명지(鳴旨) 바다 경남(經南)은 땅이 끝나 언덕이구나.
會老招仙遺址在 늙은이들 모여 놀던 초선대(招仙臺) 옛터가 아직 남았는데
至今秋竹又春花 지금(至今) 가을 대나무에 또 봄꽃이구나.
19) 초현대에 올라[登招賢臺] / 정희량(鄭希良:1469~?) 1505년 김해유배
招賢老石伽倻國 초현대 오래된 바위 가야국
落日登臨許盪胸 해질녘 오르니 가슴을 깨끗이 씻겠네
嶽色似藍深染霧 쪽빛 같은 산은 안개에 짙게 물들었고
蘆花如雪巧藏鴻 눈 같은 갈대꽃이 교묘히도 기러기 감췄네
湖分燕尾蒼茫外 아득한 저 밖에 제비 꼬리처럼 나뉜 호수
地迫鰲頭縹緲中 멀고 먼 저 가운데엔 자라 머리에 닿은 땅
我欲泝洄蓬島去 물 거슬러 봉래섬으로 가고 싶긴 하건만
江神肯借半帆風 강의 신이 돛단배에 바람 빌려주려 할는지
20) 초현대[招賢臺] 초선대 / 주열(朱悅 ?~1287)
首露陵前草色靑 수로왕릉 앞에는 풀빛이 푸르고
招賢臺下海波明 초현대 아래에는 바다물결 반짝이네.
春風遍入流亡戶 봄바람이 찢어진 문(門)으로 들어오니
開編梅花慰客情 매화를 피워 나그네 마음 위로해주네
21) 동사를 읊다[詠東史] / 윤기(尹愭 1741∼1826)
居登嗣位混蒙開 거등왕이 왕위를 이으니 흐린 기운 걷혀
七點山人應召來 칠점산의 선인이 초대에 응했지
幾箇眞賢同贊化 몇몇의 참된 현자 함께 도왔던가
只聞始作招賢臺 참시가 초현대 지었다는 말 들었을 뿐.
22) 금주부성고적 12수[金州府城古迹十二首] 이약소에게(贈李躍沼), 초선대(招仙臺) / 이학규(李學逵 1770~1835)
城外蓮花臺 성 밖에 있는 연화대
當時招仙處 그때 신선을 불렀던 곳
旵始骨已霜 참시의 뼈는 서리가 되어버렸고
居登迹何遽 거등왕 흔적은 어디로 갔는가
猶存石碁盤 아직도 남았느니 바둑 두던 판
遊人得夷踞 노니는 사람이 걸터앉을 수도 있네
<경남 김해시(金海市) ‘김해 유감(有感),연자루(燕子樓)‘ 한시(漢詩)편 4.> 총10편 中
●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살던 산해정에서 서쪽으로 10리 거리에, 수로왕이 태어난 구지봉이, 남쪽 바다 건너로는 구름이 누렇게 떠있는 대마도가, 그리고 동쪽으로는 신라의 고도 계림이 있다고 했다. 구지봉과 대마도, 그리고 계림은 남명이 김해의 산해정에서 즐겨 떠올리던 지역이었다. 다음은 김해 시절 사마소에서 베푼 잔치에 참석하여 지은 《사마소연(司馬所宴)》이다.
23) 김해 사마연[金海司馬宴] / 조식(曺植 1501∼1572)
遼鶴依依愴客情 요학(遼鶴)은 하늘거리고 나그네 정 슬픈데
故邦深鏁野烟平 깊이 잠긴 옛 나라 들판에 안개가 깔렸네.
首露龜峯城北古 수로왕릉 구지봉이 성 북쪽에서 옛 모습 그대로요
徐生馬海日南淸 서불(徐市)이 간 대마도는 태양 남쪽에서 맑구나.
高堂按去梁州晚 높은 집에서 살펴보니 양산 고을이 저물어 가고
美酒寒來軟霧生 맛 좋은 술을 식히니 연무가 생겨난다.
今年莫作前年恨 올해는 지난해의 한스러운 일 짓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冬至明朝又一蓂 동지가 내일이니 또 명협(蓂莢) 같았구나.
[주1] 요학(遼鶴) : 도연명(陶淵明)의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정영위(丁令威)는 본래 요동(遼東) 사람으로 영호산(靈虎山)에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는데, 그가 뒤에 학으로 화하여 성문 앞의 큰 기둥인 화표(華表)에 앉아 있었다. 이때 어떤 소년이 활을 쏘려고 하자 학이 날아서 공중을 배회하며 ‘새여 새여, 정영위로다. 집을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야 돌아오니, 성곽은 옛날과 같은데 백성은 그때 사람이 아니로구나. 어찌하여 신선술을 배우지 않아 무덤만 즐비한고.’ 하고는 날아가 버렸다.”하였다.
[주2] 명협(蓂莢) : 중국 요임금 때에 났었다는 상서로운 풀의 이름.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매일 한 잎씩 났다가, 열엿새부터 그믐날까지 매일 한 잎씩 떨어졌으므로 이것에 의하여 달력을 만들었다고 함. 작은 달에는 마지막 한 잎이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았다하여 달력 풀 또는 책력풀이라고 했음
● 연자루(燕子樓)는 조선시대 김해 객사(金海客舍)의 후원(後苑)에 있던 누각으로 영남루,촉석루와 더불어 영남의 3대 누정이었다. 김해시 동상동 구(舊) 김해읍성내 포교당 경내는 김해객사의 후원이 있었으나 왜정 때 불교사찰로 바뀐후 현재는 蓮華寺(연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駕洛古都宮墟碑(가락고도궁허비)와 분성대 및 연자루의 주춧돌로 추정되는 석물과 함허교 다리이름으로 추정되는 석재,판석으로 추정되는 석판,석불상이 남아있다. 이 터는 가락국 후기의 왕궁터 혹은 수로왕비의 중궁터라고도 전해지며 우리나라 최초 석탑인 파사석탑이 있던 호계사와 조선시대에 들어서 연자루와 함허정(涵虛亭)이 세워졌다고 전한다. 함허정은 연자루 북쪽 파사탑의 서쪽에 네모난 못을 파고 호계천의 물을 끌어들여 돌아나가게 하고 그 가운데에 정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24) 김해(金海) 연자루시(燕子樓詩)의 세 운(韻)을 차한다.[次金海燕子樓詩三韵] / 권근(權近 1352∼1409)
駕洛遺墟草樹靑 가락국 옛터엔 풀 나무 푸르고
海天空闊眼增明 바다 하늘 드넓어 눈이 활짝 트이네
樓中此日登臨客 이 날 연자루에 올라 임한 손
去國難堪戀戀情 서울 떠난 연연한 정 견디기 어려워
玉手纖纖二八春 가늘디가는 옥 같은 손에 꽃다운 열 여섯 살
舞衫羅襪動香塵 춤추는 비단 치맛자락에 향기가 이네
文章埜隱琴中趣 글 잘하는 야은은 거문고 타는 것이 취미였는데
能繼高風有幾人 높은 풍류 이어받은 이 몇 사람인가
海邊逐客方留滯 해변에 귀양 온 손이 바야흐로 머무니
天畔高樓可上臨 하늘가 높은 누대 오름직하여라
一代風雲成太古 한 시대(時代)의 풍운(風雲)이 옛날이 되고
千秋陵墓至如今 천년(千年)의 능묘(陵墓)는 오늘에 이르렀네.
燕飛簾幕黃梅雨 제비 나는 주렴(珠簾) 장막에는 매화꽃이 흩날리고
鶯囀園林綠樹陰 꼬리 지저귀는 수풀에는 나무그늘 우거졌구나.
寂寞壯心驚節序 적막한 장한 마음 철 바뀜에 놀라니
幾回西望費長吟 몇 번이나 서쪽 하늘 바라며 길이 읊조렸던가
[주1] 옥섬섬(玉纖纖)이라는 기생이 거문고를 잘 타기 때문에, 재상 야은(埜隱) 전공(田公) 이 일찍이 계림 수(鷄林倅)로 있을 적에, 사랑하여 절구(絶句) 한 수를 주기를 ‘바다 위의 신선 산 일곱 점이 푸르고 거문고 가운데 흰 달 하나 밝구나. 세상에 섬섬의 손이 있지 않았으면 누가 능히 태고의 정을 탈 수 있으리.’ 하였다. 공이 뒤에 합포(合浦)를 진수(鎭守)할 때에, 불러서 좌우에 두고 날마다 거문고를 타게 하였다. 연자루 가운데에 있는 시(詩)들은 그 사실을 많이 인용하였는데, 수편(首篇)은 곧 그 운(韻)이다.
[주2] 김해(金海)는 곧 수로왕(首露王)이 도읍하였던 곳인데, 능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주3] 황매(黃梅) 비 : 매화 열매가 누렇게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 해마다 6월경에 내리는 장마를 말한다.
25) 연자루 시에 차운하다 2수〔次燕子樓詩 二首〕/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29)
鸚鵡洲邊芳草靑 앵무주 가에는 좋은 풀이 푸르고
滕王閣上落霞明 등왕각 위에는 노을이 밝구나
箇中亦有當時興 그 가운데 당시의 흥취가 남아 있어
擧酒臨風物外情 바람 앞에 술잔 드니 속세 떠난 정이라네
樓臨山海幾經春 산과 바다 임한 누각 몇 번 봄을 보냈는가
簟布琅玕不惹塵 낭간에 자리 펴도 먼지조차 일지 않네
獨倚前楹遊目久 기둥에 홀로 기대 오래도록 바라보니
淸風淡月似留人 맑은 바람 희미한 달이 사람을 잡는 듯하네
[주1] 연자루(燕子樓) 시에 차운하다 : 연자루는 경상도 김해의 호계(虎溪) 가에 있는 누대이다. 제1수는 원운시(原韻詩)의 작가와 제목을 알 수 없으나 제2수는 주열(朱悅)ㆍ김득배(金得培)ㆍ왕강(王康)ㆍ정몽주(鄭夢周)ㆍ이행(李行) 등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주2] 앵무주(鸚鵡洲) : 중국 호북성 무한시(武漢市) 서남쪽 장강(長江)에 있던 섬이다. 당(唐)나라 최호(崔顥)의 〈등황학루(登黃鶴樓)〉 시에 “맑은 냇물에 한양의 나무가 뚜렷하고, 봄풀은 앵무주에 무성하네.〔晴川歷歷漢陽樹 春草萋萋鸚鵡洲〕”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는 연자루 앞의 강물에 있는 아름다운 모래톱을 말한다.
[주3] 등왕각(滕王閣) : 당나라 고조(高祖)의 아들 원영(元嬰)이 홍주 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에 세운 누각으로 중국 강서성 남창시(南昌市) 공강(贛江)에 있다. 왕발(王勃)이 이곳에 들러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었다. 여기서는 등왕각처럼 아름다운 김해의 연자루를 비유한다.
26) 김해 연자루의 시운을 빌려〔次金海燕子樓韻〕 / 조준(趙浚 1346∼1405)
煙鬟鏡面海山靑 안개 낀 수면 위로 바다와 산 다 푸르고
雲錦波頭夕照明 구름 비단 물결 위로 저녁노을 선명한데
多謝伽倻舊時月 얼마나 고마운가 가야 옛적부터 비친 달이
夜深偏照倚樓情 밤 깊도록 비춰 주니 누에 기대 지내누나
27) 연자루[燕子樓] / 맹사성(孟思誠 1360~1438)
駕洛遺墟幾見春 가락국의 남은 옛터 몇 년 세월 지났더냐
首王文物亦隨塵 수로왕의 문물 또한 티끌 따라 없어졌네
可憐燕子如懷古 가련타, 제비는 옛날을 회고하듯
來傍高樓喚主人 이 높은 누각 가까이 와서 주인을 부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