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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마태복음 말씀중 몇 주전부터 은혜나누고 있는 5장부터 7장까지 본문을 우리는 일명 ‘산상수훈’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산위에서 설교하신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런 별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말했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너무나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는 말씀을 이 본문에서 설파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앞으로 천국에서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구제하는 삶, 기도하는 신앙, 금식하는 생활속에 천국백성의 의무로써 구제, 기도, 금식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신앙인의 의무인 구제와 기도, 금식을 해야 하지만 일부러 떠벌리며 자랑하며 신앙을 으스대며 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구제와 기도, 금식을 인정받으며 자랑스러운 칭찬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참 신앙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외식하는 모습을 행해서는 안되고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앞에서 참된 신앙생활을 할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물질, 곧 돈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재산이 있고 재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하나님 주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산을 주셨고 주신 재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즐기며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재산을 가지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재산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바로 서야 합니다. 즉, 재산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재물에 대한 가치관을 2주간 살펴볼 것입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에 대한 가치관이 아닌 우리가 소유한 재물의 관리, 활용에 대한 마음가짐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부분입니다. 물질, 재산에 대한 어떤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를 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칭찬하실지, 책망하실지 결정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재물이란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기에 우리는 재물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름답게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재물에 대한 우리들의 올바른 신앙적 가치관을 배우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재물이지만 정말 참 신앙의 가치관으로 재물에 대해 생각하며 참 신앙인으로 물질을 통제하며 관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물에 대한 가치관, 첫째로, 재물에 마음을 두면 안됩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여기서 ‘보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데사우로스’는 ‘보물상자’라는 뜻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금고’ 혹은 ‘저축통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그리스도인은 저금통장을 가지며 돈을 모으면 안되겠구나’, ‘저축하며 재산을 모아두는 것은 죄악이겠구나’ 이렇게 본문을 해석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를 대비해 돈을 저축하는 것, 혹은 집에 재물을 보관하는 것 자체를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돈에 마음을 빼앗기고 돈이나 재물 자체를 귀중하게 생각하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천국과 영혼구원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인 세상의 물질보다 영원한 천국, 영원한 구원받은 삶을 더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돈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 유용한 수단이고 그것을 잘 관리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 중 한 명인 가롯 유다에게 돈을 맡겨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사역할 때 필요한 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할 기본적인 재산을 소유하셨고 그것을 가룟 유다가 관리하도록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똑똑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재정회계책임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을 포함한 신앙공동체의 수입, 지출의 통계와 관리는 가룟 유다의 몫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우리 가정과 자녀들의 앞 날을 위해 가족들의 통장을 만들고 적금을 들고 보험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극히 정상적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따져 보자면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 진정한 의미는 재물과 돈만을 인생 자체의 목적으로 삼는 것, 돈과 재물을 우상으로 숭배하며 사는 삶 자체, 이런 가치관과 이런 신앙생활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재물입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돈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참 많이 보게 됩니다. 성경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자기 밭에서 생산한 소출이 많아진 것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많은 수확량을 보며 이 곡식을 쌓아 둘 창고를 짓고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런 말을 하는 부자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평가할까요? 바로 뒷 구절을 볼까요? 누가복음 12장 20절,21절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왜 어리석다고 평가받을까요? 재물을 쌓아 둘 곡식 창고가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부자이기에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부자이기에 어리석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의아해 할 수밖에 없죠. 재물이 문제가 아니라 재물에 대한 가치관이 문제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의 가치관, 즉 물질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미래, 자신의 영적인 상태는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그는 먹고 마시는 것, 즐기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로지 이 땅의 것만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다음 주 살펴볼 본문에서는 인간의 염려에 대해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특히 재물의 가치관속에서 찾아오는 염려에 대해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염려 또한 이 땅에 집착할 때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사람은 이 땅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자신의 먹을 것, 자신의 마실 것, 자신의 입을 것만 걱정하지 남을 위해 고민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런 염려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보물을 이 땅에 두지 말고 어디에 두라고 말씀하십니까? 다시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는 말씀은 땅에 묻어 둔다는 말은 상징적으로 영원한 미래가 없는 순간적이며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 땅에 쌓인 재물과 보화가 최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옷도 헤어지고 값비싼 자동차도 고물이 됩니다. 신축건물도 수 십년이 지나면 재건축해야 할 집이 됩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의지할 수 없는 이유는 아무리 비싼 차, 아무리 비싼 옷, 아무리 비싼 건물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고 다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지진이 나거나 갑자기 홍수가 나거나 갑자기 화재가 나서 사랑하는 배우자, 혹은 사랑하는 자식이 재난통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그들을 살리려고 힘쓰지 않고 예금통장을 꺼내오려고 애쓰고 금고에 넣어둔 보물을 꺼내려고 애쓴다면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할까요? 사람이 죽어가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내팽개치고 돈이 뭐라고 그 위험한 곳에 달려들어 자신까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재물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잠시 필요할 뿐이지 궁극적인 구원, 궁극적 생명, 궁극적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저와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제발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는 세상적 가치관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재물이 없으면 죽고 재물이 사라지면 인생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둡니다. 세상의 부귀에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천국의 부귀영화를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물에 대한 가치관, 둘째로, 사람은 재물쓰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0,21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기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하라는 뜻이겠습니까? 하나님만을 위해서만 돈을 사용하라는 의미겠습니까? 21절에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돈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항상 돈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게 살아가는 경우를 참 많이 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인간은 이 땅에서 몇천 년, 몇만 년 사는 것이 아니고 당장 오늘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아닙니까?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재물보다 시간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누리며 시간속에서 기쁨과 행복, 평안과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시간속에서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시편 39편 5절을 보시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시편 90편 1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이 길고 긴 것 같지만 한 뼘 길이 밖에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정해진 시간표만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유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한의 시간이 끝이 나면 우리의 가진 재물도 이 땅에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짊어지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 오후 제 스마트폰에 갑작스러운 문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제 신학교 동기모임에서 보낸 공지 문자였습니다. 대구 경산 상가건물에서 개척한 지 얼마 안된 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갑자기 심정지되면서 뇌사상태에 빠졌고 뇌상태인 상황에서 연명유지가 힘들어 수요일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13일인 토요일 장기적출수술을 하고 소천하셨다고 합니다. 50대의 그래도 아직은 젊은 목사가 교회개척하고 사역하는 중에 사모님과 두 아들을 남기고 소천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누가 오늘 건강하다고 내일도 눈을 떠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오늘 하룻밤 사이에 어찌 될지 모르는 인생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돈 한 푼도 못가지고 가는 인생이 우리 인생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는 재물을 안전한 “하늘나라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땅에서 나의 모든 좋은 것들을 하나님 위해, 주를 위해 드리며 우리의 재물을 헌신하며 희생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인데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고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딴 건 몰라도 마음은 항상 하나님께 있습니다. 돈은 수단에 불과하고 하나님이 목적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진짜 그런지는 그 사람의 평소 돈을 어디에 쓰는 지, 씀씀이를 보면 압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가르쳐주십니까?
마태복음 6장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인간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재물이 따라갑니다. 내가 좋은 옷에 관심이 있으면 좋은 옷을 사는데 돈을 많이 씁니다. 내가 좋은 차에 관심이 있으면 아직 탈만한 차를 가지고 있으면서 새 차를 뽑습니다. 집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은 좀 불편해도 살만한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좀 더 편안한 집, 좀 더 깨끗한 집, 좀 더 넓은 집을 찾습니다. 내가 문화생활에 관심이 있으면 형편이 좋지 못해도 음회표를 사서 음악회를 찾아가고 영화와 뮤지컬에 관심이 있으면 재정이 어려워도 영화표, 뮤지컬표를 사서 먼거리까지 상영하는 곳, 공연한 곳까지 찾아갑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돈을 마련해서 그 사람의 호감을 사려고 돈을 그 사람에게 쏟아붓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재물이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돈씀씀이로 표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돈 씀씀이로 표현됩니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오늘 본문의 재물에 대해 가르침을 주시는 내용은 돈의 소유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돈의 활용과 돈에 대한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죽으면 이 땅의 재물, 이 땅에서 가지고 있던 각종 물질은 다 그대로 두고 하늘나라에 갈텐데 어떻게 하늘에 쌓아둘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고린도전서 3장 14,15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재림시에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며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나누셨습니다. 그 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찬물 한 그릇을 주었던 것, 위로하고 함께 해 주었던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아둔 것입니다. 우리의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이 바로 이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섬기고 나눠주고 베풀어주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천국의 창고에 쌓아두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젼목사님은, “복된 행위를 얻은 돈 한 푼이 저주받을 행위로 얻은 백 만원보다 낫고 거지 나사로가 먹은 밥부스러기가 부자가 먹은 진수성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참다운 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땅 위에 사는 동안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땅 위에 사는 동안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복받은 인생, 사랑받은 삶, 복받은 생애, 보호받고 인정받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금고, 이 세상의 은행은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부도를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늘나라 하나님의 금고, 하나님의 은행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입니다. 절대 거덜나지 않는 은행입니다. 이 땅에서 쓴 물질에 대한 보상을 하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위해 어디에 물질을 쓰며 살아야 할 것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재물 사용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 지,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돈을 쓰고 있고 내 생활의 중심은 어디에 놓여 있는 지, 저와 여러분이 정말 우리의 가치관속에서 하나님중심의 물질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삶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물에 대한 가치관, 셋째로, 물질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돈이 없어서 인간에게 돈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돈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하는 이유는 보물이 있는 곳에 인간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보물이 아니라 보물을 다루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보물을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쌓는 자가 되라고 이 세상의 유한한 일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더욱더 초점을 맞추며 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며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물을 밝히 보고 세상을 제대로 알려면 눈이 온전해야 합니다. 이 눈은 육적인 눈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영적인 눈부터 온전해야 합니다. 참된 눈을 가진 사람은 썩어질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분명합니다. 재물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갑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우리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을 추구하는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예화로 본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를 보십시오. 이 부자는 돈의 노예가 되어 세상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이 하루하루 어떻게 돈을 유지하고 돈을 불릴까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 받고 살아도 우리는 풍요롭게 살아가고 누리며 살아갑니다. 기쁨이 넘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어떤 예화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와 어린 딸이 동네 슈퍼에 갔습니다. 계산대에 있던 주인아줌마가 아이에게 사탕통에 든 사탕을 원하는 만큼 집어 가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사탕을 집지 않고 몸만 비비 꼬면서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엄마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주인아줌마가 그냥 주신다잖아. ‘고맙습니다’ 하고 가져가도 돼.” 그런데, 이 아이는 여전히 사탕통에 손을 갖다 대지 않고 눈치만 봅니다. 보다 못한 슈퍼 주인아줌마가 한 움큼 집어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줌마가 사탕 집으라고 했는데 왜 안 집었니?”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집으면 얼마 못 가지잖아. 아줌마가 주시면 이렇게나 많이 주신단 말이야.” 정말 기막힌 말이지 않습니까? 정말 참 진리의 답변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채우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따라 돈에 끌려다니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은혜의 역사속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 우리의 가진 재산을 어떻게 올바로 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말씀속에서 우리 주님 가르쳐주신 성경적 물질관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이 땅에서 쓰는 돈의 가치는 영원한 천국적 의미로 써야 합니다. 의로운 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 영혼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일에 우리의 재물이 쓰여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모데전서 6장 17~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십일조나 감사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등으로 이 땅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 힘든 형편에 놓인 사람을 돕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돈을 쓰는 것은 결코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창고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 땅에서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한 것이지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돈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돈의 가치를 세상적인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써서도 안됩니다. 돈이 우리를 세상적 쾌락, 세상적 즐거움, 세상적 만족으로 인도하며 우리를 천국에서 멀어지도록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돈이라는 것은 구원을 향하도록 만들기보다 우리를 파멸로 인도합니다. 돈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우리는 천국에서 멀어지고 지옥에 가까워질 것은 분명합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 “돈이면 다 된다”라고 외치는 이 세상에서 정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참된 물질관을 가지고 세상속에서 믿음을 보여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