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본초의 대의(大意)(2) ☞음성으로듣기☜
다음으로 올바른 관심본존이 열리는 제2 단락은 관심단(觀心段)과 본존단(本尊段)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관심단은 우선 「나의 기심(己心)을 관(觀)하여 십법계(十法界)를 봄을 관심(觀心)이라고 하느니라.」(신편어서 p.646)라고 말씀하셨는데, 명경을 향할 때 비로소 자신에게 갖춰진 육근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법화경과 『마하지관(摩訶止觀)』과 같은 명경이 없으면 자신에게 갖춰진 십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을 볼 수 없다고 하시며 십계호구의 경문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현견(現見)의 십계를 나타내신 것 중에서 불계만은 나타내기 어렵고 범부가 법화경을 믿는 것은 인계에 불계를 구족하기 때문이라는 도리를 나타내셨으며 또한 현증을 말씀하시며 우리의 열심(劣心)에 불계를 갖추는 일을 밝히셨습니다.
다음으로 수지로 요약한 관심을 밝히신 단락에서 대성인님은 먼저 전대미문의 법문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견고하게 이를 비(秘)로 함이라.」(신편어서 p.649)고 경계하셨는데, 우리 범부의 기심에 교주 석존이 주(住)하는 까닭을 문제시하십니다.
이에 대해 법화경 경문에는 분명히 설해져 있다고 말씀하시며 무량의경이나 관보현경의 문장을 인용하여 오직 법화경에만 불종이 있음을 밝히시고 일념삼천의 불종이 아니면 유정의 성불도 목화이상의 본존도 유명무실하다고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무량의경의 「아직 육파라밀(六波羅蜜)을 수행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육파라밀(六波羅蜜)은 자연히 재전(在前)함이라.」, 『방편품』의 「구족(具足)의 도(道)를 듣기를 바라노라.」등의 경론(經論)을 인용하셨는데, 문장의 의미는 「석존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니라.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면 자연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신편어서 p.653)라 말씀하시며 수지즉관심의 뜻, 즉 말법의 일체중생이 수행해야 하는 관심수행이라는 전대와 다른 묘법 수지의 일행에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이 수지즉관심의 일행으로 인해 말법의 중생은 묘법의 교주이신 주사친 삼덕과 일체불이가 되어 즉신성불을 반드시 이룰 것임을, 묘락대사(妙樂大師)의 「성도(成道)의 때에 이 본리(本理)에 들어맞아 일신일념(一身一念) 법계에 널리 미쳤니라」는 문장으로 해석하시며 관심단(觀心段)을 맺으시고 있습니다.
첫댓글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이란?
「수지(受持)」는 정법을 받아(受) 지속하는(持) 것이고 「관심(觀心)」은 교상(敎相. 이론·가르침)에 관한 말로, 교상(敎相)을 근본으로 실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관심본존초(觀心本尊抄)』에서 「석존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니라.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에 수지하면 자연히 그의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신편 어서 p.653)라 하셨는데, 석존이 성불하기 위해 쌓은 인행(因行)과 과덕(果德)은 모두 묘법 오자(五字)에 들어 있으며 이를 수지(受持) 신행(信行)하는 중생은 그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성불의 공덕을 즉시 받아 누릴 수 있다고 설하시고 있습니다.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이란 정법인 삼대비법(三代秘法)의 어본존을 강성하게 믿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을 부르는 것이며 그것이 말법의 관심수행(觀心修行)이라는 것입니다.
법화경 『법사품(法師品) 제10』에 「수지(受持)·독(讀)·송(誦)·해설(解說)·서사(書寫)」라는 다섯 가지 수행법이 설해져 있습니다. 이를 오종법사(五種法師) 또는 오종(五種)의 묘행(妙行)이라 합니다.
대성인은 『니치뇨 부인 답서(日女御前返事)』에서 「법화경을 수지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하면 즉 오종(五種)의 수행을 구족(具足)하느니라」(신편어서 p.1389)라 말씀하셨는데, 묘법 수지의 일행(一行)에 오종의 묘행 전체가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내시고 말법에서의 수행이 「총체(總體)의 수지(受持)」임을 명시하시고 있습니다.
***관행성취(觀行成就)
니치칸(日寬) 상인은 모두(冒頭)의 『관심본존초(觀心本尊抄)』 문장에 대해 「이 문장에서 사종(四種)의 역용(力用)을 밝히셨느니라. ‘우리들이 수지하면’은 신력(信力)·행력(行力)이고 ‘이 오자(五字)’란 곧 법력(法力)이니라. ‘자연히 물려주시느니라’는 어찌 불력(佛力)이 아니겠느뇨」(어서 문단 p.228)라 하셨는데, 어본존을 수지하는 우리 중생의 신력(信力)·행력(行力)과 어본존께 갖추어진 불력(佛力)·법력(法力) 사종(四種)의 역용(力用)을 밝히시어 이 사력(四力)이 어우러져 비로소 말법 중생의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의 의의가 성취되는 것임을 어지남하시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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