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과 타자기
문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경첩에 박힌 못에 녹이 슬어 있고, 자물쇠는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꽉 다물고 있다. 푸른 얼룩이 진 열쇠 뭉치 중 어느 것도 그 마음을 풀지 못한다. 장도리가 동원되고 작은 해머까지 나선 후에야 경첩이 열린다. 빽빽한 문을 밀치자 매캐한 먼지와 함께 갇혀 있던 시간이 왈칵 쏟아진다.
방안이 깜깜하다. 손전등을 비춘다. 창문은 장롱과 찬장으로 가려져 있어 햇살 한 줌 들지 않는다. 손전등은 심해 잠수함 불빛처럼 방 안을 훑는다. 커다란 이불 더미가 앉아 있고 낡은 트렁크를 쌓아 놓은 것이 보인다. 신발을 신은 채 방으로 들어선다. 잡동사니를 헤치고 안쪽으로 다가간다. 이불 더미 뒤 구석에 미싱이 보인다. 미싱은 오랜 세월 한 곳에 붙박여 수행을 한 구도자처럼 미동이 없다.
60여 년을 한자리에서 외가를 지키며 지내던 이모가 돌아가시자 외갓집을 정리해야 할 일이 내일이 되었다. 전쟁통에 생활의 뿌리를 송두리째 잃고 남쪽으로 내려오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물건을 버리시지 못했다. 그 모습을 봐온 이모도 옷 하나, 책 한 권까지 모두 모아두었다. 마당 한쪽에 있는 별채에는 두 세대가 사용해 온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다. 정리하려 마음먹고 나서는 나에게 동생은 할머니가 쓰던 미싱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같은 기억이라도 돋보기를 들이대면 각기 다른 장면으로 소환된다. 어느 해 겨울방학이었다. 할머니는 거실에서 미싱을 밟고 있었다. 하얀 버선코가 까만 발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동생은 그런 할머니 곁에 붙어 서서 연신 박음질 돼 나오는 천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미싱이 돌아가고, 동생은 작은 손으로 천 조각을 건네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알록달록한 천을 몇 조각 연결해주었다. 동생은 마치 깃발처럼 그것을 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반면 내 기억의 색채는 전혀 달랐다. 동생에게는 총천연색이었을 풍경은 돌연 흑백이 된다. 나는 미싱이나 색채 천 조각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공부하는 데 방해하지 말라며 닫아 놓은 이모 방을 흘깃거렸다. 책장에는 책이 가득하고 커다란 책상이 있는 곳이었다. 쉽게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 그 방은 내게는 일종의 성역 같았다. 한참 활자를 흡입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활자를 찍어내는 타자기가 놓여있었다.
사람에게는 성향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타고나는 걸까. 아니면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걸까. 성향은 버리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답을 얻기 어려운 이런 질문들을 던질 때는 주로 내가 자책감에 시달릴 때다. 타자기를 두드리며 살았던 나는 미싱을 밟으며 살아가는 동생에게 때때로 부채감을 느껴왔던 것 같다. 누군가가 성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증명해 준다면 내 마음 빚이 조금이라도 탕감되는 것일까.
동생은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공장에서 미싱을 밟았다. 수출을 주로 하는 의류공장을 보세공장이라고 불렀다. 한국경제가 팽창하기 시작한 70년 대 후반, 환경은 열악하고 노동강도는 셌다. 온종일 앉아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일감을 감당해야 했다. 바늘에 찔리고 지문이 닳은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였다. 그러고도 그 대가를 고스란히 집에다 내놓아야 했다. 뼈도 다 굳지 않은 나이에 일을 시작한 동생은 그 후로도 오랜 세월 미싱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서 당연히 나도 공장엘 갔다. 셔츠를 포장하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나도 강도와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노동현장의 불법과 부조리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대끼며 더욱 힘들어했다. 공장을 옮겨도 고작 한 곳에서 일 년 남짓을 버텨냈을 뿐이다.
소비자단체, 시민단체, 여성단체. 보육원 사무실 등을 전전하며 타자기를 두드렸다. 그런데 하나같이 성과를 부풀리거나 거짓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겉으로는 봉사를 앞세웠으나 속으로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의 타자기에서 나온 활자들은 오염되었다. 그곳에서도 오래 견디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타자기 때신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썼다. 문학기행을 하며 장흥에 있는 소설가 한승워 님 집필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작가는 차를 대접하며 이런 말을 했다. 작가의 손은 농부를 닮아 있어야 한다고. 가늘고 부드러운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동생 손을 떠올렸다. 손이 움츠려졌다. 꿈 보다는 밥이 우선이었던 시대를 지나오며 나는 분명 동생에게 빚을 진 것 같았다.
방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은 대부분 기능과 시효를 잃은 것들이었으므로 버리기로 한다. 그 중에서 가져갈 것만 골라 따로 모은다. 남편과 맞들어 미싱을 한쪽으로 옮긴다. 책상 위에 있던 타자기를 내려 그 옆에 놓는다. 미싱과 타자기는 똑같이 세월의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이제는 둘 다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이다. 마른 걸레로 먼지를 닦아낸다. 맨 얼굴을 드러낸 미싱과 타자기가 새삼 지난 나를 반추하게 한다. 타자기 자판 하나를 눌러본다. “탁”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문장 끝에 부끄러운 마침표가 찍힌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이기도 한 김응숙 수필가의 글이네요.
미싱과 타자기를 통해 얼룩지고 찢어지고 구겨진 그 시대상을 대변하는 이야기라서
공감이 큰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굴곡진 개인사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잘 드러내고 있는 귀한 수필가라서
발표하는 글마다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좋은 수필을 필사하면서
손가락끝으로도 깊이 읽게 되는 것이 참 좋아요.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