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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이 세계가 우리에게 보이는 현실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의 현실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세계에도 속임수의 전략이 있듯이, 우리 인간은 다른 종(種)과 달리 영리하기 짝이 없어 장사꾼의 거래관계에서도 자기 속을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생존전략과 남녀관계의 중요한 성적 전략에도 자기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계를 보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책이나 신문의 칼럼을 볼 때도 우리는 행간(行間)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서를 할 때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그 글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가 이렇게 말했는지 모릅니다.
“진실은 빛과 같아서 눈을 감게 만들지만, 반대로 거짓은 저녁 노을과 같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나는 오늘, 미망(迷妄)의 시대에 맞추어서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부르카의 검은 옷을 찢어 진실을 볼 수 있을 때, 진정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미군의 아프칸 철수가 시작되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프칸은 다시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 카불은 오래된 고대도시로 유서깊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파미르 고원의 고산지대가 많아 여러 부족들이 지역별로 산재해 살고 있어서 통일국가를 세우는데xks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떠한 부족들이 살고 있는지 호기심으로 아프카니스탄 소녀들의 사진을 보니 신비스러울 정도로 눈이 흑요석같이 빛나는 무구(無垢)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부족이 혼재해 있으나 파슈톤족이 과반도 안되지만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합니다.
수도 카불은 실크로드의 동서교역로인 중앙아시아의 거점도시로 화려한 전성기도 있엇습니다. 우리에게는 『서유기(西遊記)』의 삼장법사로 잘 알려진 당(唐)의 승려 현장의 저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불교국가 바미안이 나오는데 그곳이 아프카니스탄이었습니다.
그후 신라의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도 소개되는데, 어찌나 험한 길이었던지 이런 시(詩)도 남겼습니다.
“새도 날아가다 깍아지른 산에 놀라고/사람은 좁은 다리 지나기 어렵구
나/평생 살아가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오늘 따라 눈물이 천줄기
나 뿌리는구나.”
길이 험한 것에 더하여 힘든 순례자의 심정을 표현한 듯 합니다.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高仙芝) 장군은 당(唐)의 현종의 명을 받아 파미르 공원을 원정하기도 했습니다, 걸출한 고선지의 원정으로 서역지방이 당(唐)에 예속되자 현종은 그를 안서도호부 절도사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접경지대는 동·서 문명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고선지 장군이 탈라스 강반에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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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센 제국과 일전을 벌였으나, 동맹국의 배신으로 패하게 됩니다. 그 후 이 지역은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습니다.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이 지역을 “마호메트를 믿는 강인한 전사들의 나라”라고 그의 『동방 견문록』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강인한 전사들이 역사의 굴곡을 겪으며 이젠 탈레반의 전사들로 이루어진 테러리스트 국가가 되었습니다. 9/11테러로 뉴욕 맨하튼의 110층 세계무역 센터가 붕괴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알·카에다의 조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시절 미국 CIA의 정보망에 의해 알·카에다 조직을 이끄는 오사마 빈 라덴이 포착되어 미군 특전단 내이비실에 의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 미국은 다시 세계의 경찰국가로 나섰습니다.
그런 미국도 아프카니스탄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20년간 수많은 젊은 병사들의 희생과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도 정상국가가 되지 못한 아프칸은, 호치민이 이끄는 월맹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되는 과정의 판박이입니다. 사이공 함락 당시 수많은 베트남인들이 자유를 찾아 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른바 ‘보트피플’입니다. 해적을 만나고, 성폭행을 당하고, 죽는 위험을 무릎쓰고 탈출했습니다. 그와 같이 수많은 아프칸 여성들이 어린 애기를 장벽 넘어로 미군 병사들에게 던지는 모습과 비행기에 매달려 가는 모습이 적라나하게 보도되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유명한 한국동란의 ‘흥남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동리는 소설 『흥남철수』에서 북한주민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탈출하려 했던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프칸 철수작전이 정교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에전의 미국의 힘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그와 더불어 바이든 대통령의 지도력에 세계가 많이 실망하는 모습에다, 미국의 우방도 반신반의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교훈은 “싸울 의지가 없는 나라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불편한 진실입니다.
미군이 철수하자 곧 바로 탈레반정권이 카불을 점령한 것을 보면 구한말의 조선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 말은 구한말(舊韓末) 미국의 26대 대통령 데오도어 루스벨트가 한 말과 묘하게 오버랩 됩니다. 바이든은 “그들이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더 이상 싸워서도 죽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구한말 데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입니다.
그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지배를 승인했습니다. 그렇게 역사의 운율은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와 대비해 동시대에 데오도어 루스벨트와 모로코의 술탄 가문의 라이슐리족장과의 대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실화를 영화로 만든 『바람과 라이온』에서 족장 라이슐리(배역:숀 코너리)와 제국주의 시대의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대결애서 무어족의 이슬람이 보여준 당당함은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부분에서 모로코를 지켜낸 술탄 가문의족장 라이슐리는 데오도어 루스벨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는 바람, 나는 라이온. 그대는 나의 존재도 모르고 몰아치나, 나는 내 땅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로마시대의 금언이 떠 오릅니다. “평화를 원하는가, 그러면 전쟁을 준비하라(Ci vis pacem, Para bellum)"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때의 국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선진국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의 국방력은 세계 6위의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그런 객관적인 지표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신력까지 계량화할 수 없습니다. 전쟁수행에는 군인의 정신력이 중대한 변수가 됩니다. 2차대전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었던 독일의 명장 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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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나는 탁상위의 전략을 믿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과연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라고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최근의 군내부 기강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으며 물질적인 면 뿐만아니라 정신적 자세까지 냉정하게 분석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문재인 정부를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선 정부라고 기록할 것이다.”라고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가 자신만만하게 언급했습니다. 그에 따라 여당의원들은 16차례나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국민들은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들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혀 있는 듯합니다. 마치 천적이 나타나면 꿩이나 타조처럼 머리를 땅에 파묻듯이 말입니다. 우리 현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역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벌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영업 대표가 22명이나 되는 피눈물 나는 현실입니다. 지금 박수치며 웃을 때가 아닙니다. 공감 능력이 없는 더불어 민주당의 당명을 바꾸어야 합니다. …쩝, 나홀로 민주당으로 말입니다.
또 서해상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피살된 해경공무원과 그 유족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해놓고 그 죽음에 대한 명확한 검증도 없이 월북 운운하며 얼버무리니까, 가족들은 장례식도 못치르고 그의 아들은 성년이 되어 육사에 입학하고 싶어도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입니다.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국가라는 것은 기본적인 팩트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GDP는 세계 3위이며 우리나라 GDP의 3배 수준입니다. 일본을 모방만 잘하는 국가라고 폄훼하지만 노벨상만 따져도 27개나 되는 학문의 강국입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7명이나 되며, 미국 LA현대미술관과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등 세계적인 건축물만 해도 수십개나 됩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제주 서귀포에 가도 볼 수 있습니다. 건축은 그 시대 문명의 바로메타입니다.
이런 수치상의 비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 문제입니다. 우리는 한국 동란후 세계 최빈국으로서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되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후 한 혁명가가 나타나 걸출한 기업인과 관료들을 독려하며 최단 시간에 근대 산업국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는 민주화도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원조를 받는 나라가 이렇게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는 세계 유례가 없습니다.
그렇게 헝그리(hungry)사회를 벗어나면, 우리는 좀 더 공정하고 관용적인 나라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헝그리 사회에서 우리는 바로 앵그리 (angry)사회로 전환되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의 고질병이 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참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분노사회의 기폭제가 된 것은 노태우 정권의 6공화국 때부터 시작된 과격한 노동운동이었습니다.
노동자가 사회적 약자로서 조합을 통하여 노동자의 인간적 권리를 확대해온 것은 유럽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나타난 사회적 발전 현상이며, 유럽의 중산층이 확대되고 많은 부문에서 사회주의 이론을 수용했기 때문에 유럽이 폭력적인 혁명을 거치지 않고 복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유럽의 지혜는 그만큼 많은 지식인들이 혁명이 잔혹한 독재로 변질되눈 것을 보고 학습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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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했듯이 우리의 노동운동도 한꺼번에 많은 것을 쟁취할려다 보니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습니다. 결국 한국노총과는 별도로 1995년 민주노총이 설립됨에 따라, 우리의 노동운동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양대진영으로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민주노총은 세력을 확대해 하나의 권력으로서 노동귀족을 만들어 내며 우리 사회의 한축을 분노사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분노사회로 진입한 책임에는 민주노총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지표가 한국이 ‘소송 천국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형사 고소당한 사람은 일년에 63만 명인데 반하여 일본은 일만 명 수준입니다. 인구 1만 명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134.1명, 일본은 0.86명으로 무려 155 배나 차이가 납니다. 고소사건은 계속 증가하지만 80%는 혐의가 없거나 수사하기 어려운 것들이며 ‘아니면 말고’식의 그냥 찔러본 사건이라는 겁니다.
민사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작년 우리나라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112만 여건으로 일본의 48만 여건보다 2.5 배나 많습니다. 인구비율을 감안하면 6 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이쯤되면 거의 정서장애 수준입니다.
특히 민사소송은 가까운 사람끼리 소송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 만큼 형제,친척,이웃을 배려하는 민도가 그 만큼 낮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아파트 층간 소음이나, 금연,주차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아서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거칠어질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의 기초가 허약한 사회입니다.
우리 동네를 위시하여 공원이나 관광지에서 ‘바르게 살자’라는 표지석이 곳곳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 진부하고, 범주를 너무 넓게 잡은 거대 담론처럼 보입니다. 그냥 소박하게 ‘이웃을 배려하며 살자’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웃을 배려하는 것은 도덕의 기초이며 황금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는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움 7장12절)
아프카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자 탈레반들이 여성들에게 부르카를 강제로 착용하도록 하는 것을 우리는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타인을 혐오하는 정신의 부르카도 만만치 않습니다.
문재인 정권들어 진영논리라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정신의 부르카로 그러한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그렇게 자유를 갈망했던 586세대가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정권이라고 자처하면서 그들의 진영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남발하고 있다면 탈레반 정권의 여성보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먼저 부르카를 입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만의 현실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퇴보현상은 전 세계적 현상으로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합니다. 그만큼 민주주의 제도는 정착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그것은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가진 존재라는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권력이 만들어 내는 야만과 전제적인 파시즘을 그들이 몰아내기를 바랬던 것은 시민들이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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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개인보다 집단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사람은 “더불어 사는 개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집단과 개체간에는 어느 한편으로 지우치지 않는 균형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인간의 가치는 극단적인 질서로 가던지 아니면 방종이라는 엉뚱한 곳으로 이르게 합니다. 우리의 스텝이 꼬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이러한 권력과 미망(迷妄)에 빠진 대중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숙고하지 않는 개인들의 집단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대상이 됩니다. 권력은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악(惡)을 ‘비판적 사유의부재’라고 규정한 한나 아렌트의 통찰은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공정하게 선출된 권력이라도 인간은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 겸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실 겸손하게 어렵게 만드는 것은 권력자 자신보다 권력 주위의 인물이라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말탄 상전보다 말을 끄는 시종이 거드름을 더 피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권력은 자기를 비판하는 세력을 자신(권력)을 무시하는 건방진 세력으로 간주합니다.
비근한 예로 권력과 언론의 갈등입니다. 사실 언론이라고 해서 정론만 게재하는 양질의 언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의 집요함과 사이비 언론에 넌더리가 난 권력은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인 제도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인 제도입니다.
삼권분립이라는 제도와 언론과 시민단체는 권력을 견제하기위한 것이지만,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일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경우도 왕왕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비효율적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의 독점과 횡포가 주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수준 높은 민주주의는 그런 폐해를 복원할 수 있는 자정능력이 있습니다. 마치 생태계의 파괴에 자연이 복원력을 가지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권력자는 그런 비효율에 전체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불만을 적당히 보상하는 척하며 포퓰리즘으로 다수의 지지를 얻어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숙고하지 않는 시민들이 이런 포퓰리즘에 빠지게 되면 권력은 전제화 합니다.
이것이 바로 권력이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이런 권력은 유사파시즘을 만듭니다.. 유사파시즘은 보통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내세워 권력을 정당화하며 반대하는 시민을 반애국주의로 몰고 갑니다. 문재인 정권 뿐만 아니라 세계는 지금 이런 지도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 터키의 에르도안, 리비아의 가다피, 이락의 후세인 등을 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유의 세계를 경험한 대한민국에게는 무망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시민사회는 늘 깨어 있는 시민사회로 남아 있어야 제대로 작동이 됩니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 남아있는다는 것은 늘 숙고하고 사유하는 비판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비판적 사유의 부재”가 악(惡)이고 우리 민주주의 위기라고 힌다면, 그런 현대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현재의 좌표를 읽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유럽에 의해 형성된 현대라는 시대는 전근대의 부르카를 찢어버리고 도래하는 시대를 올 수 있도록 한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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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談論)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사회에는 거대 담론차원(정치,종교,역사,진보 등)과 미시 담론차원(시장,경제,개인의 삶과정체성 등)을 동시에 가집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게 항상 사고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일깨워 준 두 개의 금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라비아의 격언으로 “사람은 자기 부모를 닮는 것보다 그 시대를 더 많이 닮는다.”라는 것과 또 하나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가이며 『케임브리지 근대사』를 쓴 존 액튼경(卿)이 한 말입니다. “정치건, 종교건, 문학이건, 과학이건 간에 그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큰 목표는 사람의 배후로 파고들어 사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상은 방사(放射)하고 발전하며 … 여기서 인간은 합법적인 부모역할 보다는 오히려 대부와 대모 역할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사회적 구속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듯이 시대적 구속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들에 대해서 짧은 지식이나마 저의 교양이된 몇가지를 거론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의 자율과 개인의 이윤추구를 바탕으로한 자본주의 경제학을 현대의 사상으로 끌어올린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 그리고 산업혁명과 자본의 폭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노동을 신성시하며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포석을 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워싱턴과 함께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며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과 중앙정부를 강조한 연방주의자 알렉산더 해밀턴의 치열한 논쟁은 미국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글로발 스탠다드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840년대 미국을 여행하며 미국의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한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전통과 권위주의를 지닌 유럽의 풍토에서 민주주의가 만개한다는 것은 어려우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는 것을 미국의 민주주의가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르카의 틈새를 움켜지고 억지로 열어 젖혀서 현기증이 날 정도의 새로운 이해가 쏟아져 들어오도록했고, 인간의 정신을 유례없을 정도로 고양시킬 힘을 부여한 박물학자 찰스 다윈과 예언적 철학자이며 선지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
이들은 아직도 현대의 지성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내부에서부터 국가간에 이르기까지 갈등을 야기하는 담론들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이들의 지성에 대해 모든 것을 거론할 능력도 되지 않지만 짧은 소견이지만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이들이 우리 현대인에게 끼친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계량하기 쉽지는 않지만 공통된 점은 그들의 생각이 ‘우리가 인정히고 싶지않은 우리 의식의 말단을 건드리고 있다’는 겁니다. 또 한쪽으로는 ‘정치적 인간(homo-politicus), 경제적 인간(homo-economicus)으로서 우리 각자가 어떤 사회적 좌표를 가지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이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니체의 아포리즘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괴물 또한 우리의 심연을 볼 것이다,” “사람은 탁한 강물이다. 이 탁한 강물을 스스로 더럽히지 않고 받아들이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
니체의 글을 읽다보면 누구나 일종의 흥분상태에 이릅니다. 그의 철학이 『비극의 탄생』에서 보듯이 ‘그리스의 비극’이라는 연극에서 그의 철학이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글은 도발적이고 예언적인 선포같이 섬광처럼 우리의 머리를 강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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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리즘이며 격문에 가깝습니다.
586세대는 독재라는 괴물과 싸운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위선적 정치인은 정의라는 외피를 입고 대중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사람입니다. 니체가 그것을 통찰했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숨기는 모든 자 가운데 가장 깊이 나 자신을 숨기는 자다” 그는 우리의 불편한 진실을 꿰뚫고 있는 예언자입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우리 현대인의 사고에(특히 저 개인에게도) 가장 강력한 섬광(閃光)이었습니다. 그 섬광은 우리 의식의 부르카를 열어 젖혀 우리 인간의 이해의 영역을 넓혀 놓았습니다. 1858년 7월 11일 그의 사상과 러셀 월리스의 사상이 런던의 린네학회에서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바로 그날 많은 사람들이 ‘생명에 관한 우리의 이해’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연선택이라는 수단에 의한 진화가 어째서 ‘역사상 가장 위대항 사상’이라고 일컬어진 것일까?
쉽게 말하면 다윈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종래의 생각을 확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논쟁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학설은 많은 후학(後學)들이 파생학문을 개척하며 인류의 지성에 예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 이후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형질인류학 뿐만아니라 문화인류학과 의식의 기원을 찾는 뇌과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분야에서 자연선택이 생명의 창발성(emergence)에 어떻게 작용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도 『종의 기원』을 읽고 다윈의 학설을 절찬하면서 그의 공산주의도 사회 진화의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하였으며, 니체 또한 다윈의 사상에 공감하면서 그의 철학과 지적인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윈의 진화사상은 신(神)에 대한 가설을 배제했기 때문에, 종교신앙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쳐 신앙에서 샤먼적인 요소를 몰아내고 더욱 정교한 신학이론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주요한 명제로 설정했던 시장(市場)과 다윈의 중요한 명제였던 자연선택에서 언급된 자연은 사실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기조직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이떤 인위적인 힘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지는 이런 메카니즘 때문에 자연과 시장은 정직하다는 점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자연이 정직하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는 냉혹하다는 뜻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장 또한 냉혹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런 자연과 시장의 냉혹함을 받아들이지 못해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시장의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는 최소한에 그쳐야 된다’는 것이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학자들의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자연에는 어느 한 종(種)에만 유리하지 않는 생태계가 존재합니다. 강한 종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약한 종도 일정한 생존공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장에도 생존을 위한 생태계가 존재합니다.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시장의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정함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지요.
여기가 시장경제와 노동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사회주의경제가 분리되는 지점이 됩니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시장경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와 노동만이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공산주의라는 대립되는 사회체제를 만들어 냈으며,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곧 계급투쟁의 역사로 간주하여 1848년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공산당선언’은 사상이 아니라 행동강령이었으며, 이러한 혁명적 강령은 서유럽에서도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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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분노하는 열렬한 지식인과 학생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특히 식민국가였던 조선은 신분제 사회로서 양반에 착취를 당하는 소작농인 서민들과 노비들이 많았던 관계로 사회주의 사상이 뿌리 내리기 좋은 혁명의 온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식민국가의 치욕에서 해방되자마자 좌·우 이념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결국에는 비극적인 한국동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는 아시다시피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붕괴로 동독을 위시한 동유럽국가들은 자유주의국가로 전환되었습니다만, 시대착오적인 우리의 이념논쟁은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은 분리되어 있는 체계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톱니처럼 맞물려 있습니다. 전문적인 논문이나 뛰어난 저술에서 보면 내용이 각론(各論)과 총론(總論)으로 구성되듯이 우리 삶의 모습도 미시담론과 거대담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론과 총론의 관계는 지식(知識)과 지성(知性)의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긱론이라면 지성은 총론에 해당됩니다. 그리하여 지식이 없는 지성은 공허한 사유(思惟)의 유희(遊戱)에 지나지 않으며, 지성이 없는 지식은 한갓 박식(博識)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각론과 총론, 지식과 지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 이론이나 저술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저에게는 수용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되었습니다. 보통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이념 같은 거대담론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책상물림일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문재인 정권의 진영논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거대담론에 매몰되어 있어 시장과 우리 삶의 현실을 왜곡(歪曲)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기 더하여 이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팩트에 관계없이 주술적인 수준의 자기암시(自己暗示)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울교통방송에서 노골적으로 여권편향적인 말을 하는 김어준 같은 방송인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받는 느낌은 그가 ‘주술사이며 사이비 교주’같다는 것입니다.
점입가경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공익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판교의 대장동 토지구입한 자산관리회사와 분양업체 이름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들어볼 수 있는 기업체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화천대유(火天大有)라는 자산관리회사와 천화동인(天火同人)이라는 기업이름은 주역(周易)의 64괘에서 나온 점괘입니다. 화천대유는 하늘에 붙어있는 밝은 세상을 비춘다는 뜻이고 천화동인은 어떤 일을 두고 천하의 인재들의 힘을 하나로 묶는 괘이라고 합니다.
저는 주역의 심오한 뜻을 잘 모르지만 여기에는 주술적인 뜻이 많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속된 말로 하면 ‘크게 해먹으려면 온갖 놈들 다 모으라’라는 것입니다.
대장동은 뇌천대장(雷天大壯)의 괘이며, 천둥 번개가 치는 ‘토르’의 점괘라고 합니다.
이 번개를 맞고 이재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배우 김부선이 그들의 밀회의 증거로 이재명의 ‘몸에 점(點)이 있다’라는 증언을 벗어나고 보니까, 토르의 점(占)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아마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는 대장동개발이라는 사건에서 또 불편한 진실을 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역 전문가도 아니면서 점(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그 정권에 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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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인물들이 하도 해괴해서 하는 말입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내로남불 정권이라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청와대에 걸려있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헌액은 ‘남에게는 봄바람같이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같이 엄중하라’는 공직자의 자세를 말합니다. 그뜻이 변질되어 이제는 국민들이 ‘자신에게는 봄바람같이 하고 남에게는 가을 서리같이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액자가 누렇게 변질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말이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견강부회(牽强附會)식으로 말을 하니 스텝이 짜꾸만 꼬이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동기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시 풍수나 도참사상을 이야기 하며 북악의 터가 험난하니 청와대를 옮겨야 된다고 한 것은 좀 더 겸손한 자리로 내려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곳은 군림하는 자리인지는 몰라도, 국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는 아닌 것 같아 한 말이었습니다. 그 패턴이 문재인 정권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의전비서관 탁현민이 연출하는 소통이 아닌 쇼통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물론 정치인은 국민들의 감동을 주는 쇼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봅나다. 왜냐면 진정한 정치라면 국민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언행일치가 되었을 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배역이 격에 맡지 않는 삼류 연기자처럼 되어버립니다.
얼마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遺骸)가 한국 영공으로 들어오자 우리 공군 전투기 6대가 호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밤중에 서울공항까지 나가 엄숙하게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국립 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포상하여 그의 공로를 치하하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해외에서 숨진 도산 안창호 선생도 받지 못한 대우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재임시에 북방외교를 펼쳐 한국과 소련은 서로 외교관과 무역부를 두기로 하는 한소수교(韓蘇修交)를 맺었습니다. 수교 직후 우리의 근현대사와 관련하여 소련측 문건을 받아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문건을 보면 홍범도는 소련군에게는 빨치산의 장군이며 레닌을 만나 권총과 금화 100루불을 받은 볼셰비키 당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청산리 전투의 승리 후 일본 관동군(關東軍)의 집요한 추적으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독립군은 사실상 궤멸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무르강(江) 지역으로 피신한 우리 독립군을 무장해제 시키는 ‘자유시(스보보드니) 유혈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무장해제를 거부한 김좌진 이범석 등은 만주로 돌아갔지만, 홍범도와 함께 스보보드니(자유시)에 남았던 독립군은 소련군에 의해 절멸당했습니다. 400명이 사망하고 포로로 잡힌 사람만 864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428명은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나머지 72명은 중대 범죄자로 분류돼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때 재판을 담당한 3인 위원 중 한 사람이 홍범도였습니다.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동료 2명이 오죽하면 그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로 볼 때 홍범도는 커뮤니스트이지 중립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진실은 가끔 이렇게 숨겨져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로 다가옵니다. 이 외에도 1930년대 간도 지방의 ‘민생단 사건’도 독립군 내의 공산당에 의한 학살사건도 있으며 작가 김연수에 의해 그 비극을 소설로 쓰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비극은 외면한 체 독립군의 무장투쟁한 사실만 과대포장하여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윤색(潤色)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도자와 닮은 꼴입니다
일제시대에 민족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사람 중에는 공산주의의 혁명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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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하기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 뿐만아니라 김구주석과 갈등을 빚었던 약산 김원봉과 임정의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또한 커뮤니스트였습니다.
동경 유학생이던 김준엽·장준하는 학병으로 징집되었으나, 탈출하여 임정이 있는 중경까지 6천리 길을 한 달 동안 걸어서 광복군에 합류한 독립군으로 각각 『장정(長征)』과 『돌베개』를 써 당시 임정내의 좌·우 갈등을 증언한 바 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약산 김원봉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조선의열단을 창설한 테러리스트였습니다. 프랑스 조계지(租界地)인 상해를 거점으로 활동한 조선의열단은 부산 경찰서장을 폭사시켰으며, 밀양 경찰서와 총독부 청사에 폭탄을 투척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총독부 폭파가 실패되면서 6명의 동지가 체포되자 김원봉이 의열단 단장이 되어 의열단을 이끌었습니다.
상해에서는 일본 육균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김익상의사는 결국 처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사건과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녀인 배정자에 대한 암살 시도 등, 일본이 제일 무서워했다는 테러리스트였습니다.
김원봉은 워낙 행동적인 인물이고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미남형이라 『암살』 『밀정』과 같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황포군돤학교를 나왔으며 장개석과는 사제지간이었습니다. 김구와 김원봉의 갈등이 첨예할 때 장개석이 중재에 나설 정도로 광복군을 지원했습니다. 일본이 내걸은 현상금이 김구보다도 많았던 일본이 제일 두려워한 존재였습니다. 이런 활약으로 한때 의열단 단원이 천여명에 이르렀다고 상해 일본 총영사가 본국에 보고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활동을 일부러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그는 약소국가의 지식인이 빠지기 쉬운 이념의 갈등에서 결국 극복을 못하고 임정(臨政)의 김구, 이승만, 김규식과 다른 노정을 걸었습니다.
1948년 김구 김규식등과 남북협상에 참여한 뒤 북한에 잔류하였습니다. 6.25 전쟁시에 전시노동상을 역임하여 공훈을 인정받았으나 결국 김일성에게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혀 숙청당했습니다. 우리의 비극인 동시에 불편한 진실입니다.
근현대사를 볼 때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함에도 민족주의적 이념논쟁에 경도된 문재인 정권에서 유독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근현대사에는 문제가 되는 부분과 관련하여 아직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생존해 있어서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립니다.
친일문제나 좌우이념 문제와 같은 민감한 부분은 역사가도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유독 문재인 정권에서 그런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저의 소견엔 개념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시대의 가치로 지난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역사를 각색하기 좋아하는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지난시대는 지난시대 고유의 가치가 있습니다. 흑인노예 해방을 주도했던 링컨의 시대정신도 지금의 가치로 보면 덜 성숙한 인종차별주의자에 해당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링컨을 존중합니다. 그는 현재의 가치로 재단할 수 없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그 시대의 선각자였습니다. 그는 연방주의자로 국가의 미래를 보았던 사람입니다.
어느 시대나 불편한 진실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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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야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상처를 보듬는 역사에 대한 예의와 교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역사의 진보와 정의를 믿고 싶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미래를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2021년 10월 23일 사이버 총무 김 정 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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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해가 어렵지만 잘 읽었으며, 수고 많이 하였읍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비극은 외면한 체 독립군의 무장투쟁한 사실만 과대포장하여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윤색(潤色)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도자와 닮은 꼴입니다 ㅡ 탁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