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째 주 그룹큐티나눔
인자가 온 이유
누가복음 19:1-10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예수 앞에 나오면(찬송 287장, 구 205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대하면 안경 색깔에 따라 사람이 달리 보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선입견과 편견을 지닌 채 사람을 대한다면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인으로 낙인찍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입니다. 사람들은 주위의 이목 때문에 삭개오와 접촉하는 것 자체를 꺼립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으시고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와 교제를 나누시고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약한 자를 품으시는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삭개오 앞에 방해물이 놓여 있습니다(1-4절).
1) 삭개오는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입니까(1, 2절)?
세리장이고 부자다.
1세기 당시 세리는 로마 정부를 대신해서 세금을 징수하던 자들이다. 세리장(헬, 아르키텔로네스)은 다른 세리들을 관리하는 좀 더 큰 권한을 가진 세리다. 보통 세리들은 로마 정부에서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해서 잉여금을 착복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동포의 고혈을 짜내어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세리들을 경멸했다. 유대인은 그런 세리들을 죄인 취급하고, 부정하게 여기며, 함께 어울리지 않았다. 삭개오는 사회적으로 로마 권력을 등에 업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유대인에게 무시와 조롱을 받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2)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삭개오 앞에 놓인 방해물은 무엇입니까(3절)?
작은 키(신체적 장벽)와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사회적 장벽)다.
삭개오는 두 가지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육체적) 수많은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다. 둘째로 삭개오는 유대인으로부터 경멸을 받는 대상이었기에 그 눈총을(사회적) 피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삭개오는 신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장애가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장애는 삭개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에게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
3) 방해물 앞에서 삭개오가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4절)?
앞으로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삭개오는 비록 육체적, 사회적 장애를 안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걸 바라보는 것 정도였다. 돌무화과나무(헬, 쉬코모레아)는 ‘무화과’(헬, 쉬콘)와 ‘뽕나무’(헬, 모론)를 합친 합성어다. 돌무화과나무는 약 2m 정도 크기여서 성인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나무였다. 돌무화과나무 열매는 무화과 열매에 비해 품질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1년에 여섯 번 정도 열매가 맺혀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되었다. 돈 걱정 없이 풍요를 누리며 살던 부자 삭개오가 가난한 자들이 주로 찾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앉는 모습이 역설적이다.
나눔 1 삭개오는 자신의 체면을 개의치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여러 방해물을 뛰어넘으려 애썼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물은 무엇입니까? 그 방해물 앞에서 내가 취한 행동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예수님이 삭개오와 함께 그의 집에 들어가십니다(5-10절).
1)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수군거립니까(7절)?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예수께서 적극적으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집에 들어가신 것은 매우 파격적인 행보였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은 세리를 창기와 같은 부류로 취급하며 죄인 취급했기 때문이다. 유대 사회에서 죄인(헬, 하마르톨로스)은 부정한 존재였기에 유대인은 정결법에 따라 세리 같은 죄인들과는 접촉하지도, 함께 식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예수께서 정결법의 금기를 깨며 세리의 집에 들어가 어울리신 것이다. 그러니 유대 사회가 술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2)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8절)?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누군가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기로 한다.
누가복음 18:9-14에 의하면, 바리새인은 스스로 의인인 체하지만 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한다. 마찬가지로 세리인 삭개오 역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회개한다. 그의 회개는 단지 입술만의 죄 자백이 아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줄 것이며 속여 빼앗은 게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한다(참조. 출 22:1; 삼하 12:6). 그가 전 재산을 처분하지 않은 건, 자기 몫으로 일부 남겨놓으려는 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몫을 남기기 위해서다. 삭개오는 진짜 회개를 시작했다.
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10절)?
삭개오와 같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삭개오를 죄인 취급하며 한 형제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구원하심으로써 그를 다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의 형제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인자(예수님의 자기 칭호)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율법의 한계를 극복하신 것이다. 율법은 누가 죄인인지를 밝히는 데 주력하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서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는 일에 집중하신다.
나눔 2 삭개오의 회개는 말의 회개가 아니라 삶의 회개였습니다. 단지 죄를 자백한 게 아니라 이전의 잘못을 청산하고 의롭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회개에 걸맞게 변화된, 혹은 변화되어야 할 나의 삶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나눔 3 예수님은 삭개오를 ‘세리’도 ‘부자’도 ‘죄인’도 아닌, 그저 ‘잃어버린 자’로 여기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찾아야 할 ‘잃어버린 자’는 누구인지, 그들을 어떻게 ‘찾아 구원할’ 수 있을지 나눠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외적인 방해물을 탓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주를 찾게 하소서.
공동체 _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웃과 교회에서 소원해진 지체를 살피게 하소서.
<출처 : http://www.s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