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룰렛이란 게임이 있다. 6발의 총알이 들어가는 권총에 1개의 총알만 넣는다. 그리고 차례로 돌아가며 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자신이 죽을 확률은 1/6이다. 0.16의 확률이다. 확률이 낮다면 낮지만 자신에게 해당될 때는 바로 죽음이다. 폭탄 심지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옆으로 돌린다. 그 폭탄의 심지가 다 타들어가고 폭탄은 조만간 터진다. 여러명이 폭탄을 돌리는데 내앞에서 터지지 않으면 된다. 이것도 확률이 러시아 룰렛처럼 낮다면 낮고 높다면 높다. 폭탄이 터지면 그 주변은 모두 사라진다. 참으로 희안한 두 게임이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도 이런 게임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가계부채와 연금문제이다. 정부도 이런 위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손 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냥 언론을 통해 그 위험성을 드러내는 데 그치고 만다. 왜나면 그만큼 손 대기도, 손을 대지 않기도 힘들고 위험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위정자들도 내 임기때만 제발 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식이니 어떻게 해결되겠는가. 국민들도 될때로 되라는 식으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결코 내일의 문제가 아닌데 내일 문제시하고 애써 잊고자 한다.
가계부채와 연금의 위험성이 현실화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의 고질병적인 문제였다. 세계에서 가계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온 국민이 빚더미속에서 산다는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빚 없는 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빚이라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빚이라는 것이 일단은 쓰고 보자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은 자신이 잡혀 먹히지만 말이다. 예전 속담에도 있으니 한국인들이 남의 빚 얻어 쓰는 것이 오래전부터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추세라면 오는 2055년 그러니까 32년후에는 기금이 완전히 소진된다는 예측이 나와있다. 32년후면 완전히 고갈된다는 것이지 그때까지 온전한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연금 수령 나이를 더 높여잡고 내는 돈도 더 많이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각자의 이해타산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 의견도 각양각색이다. 직업에 따라 받는 연금액도 달라 의견충돌이 더 많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정말 국민적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연금개혁이 얼마나 힘든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 연금 반대 시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전국적 시위가 올해 그러니까 2023년 2월 11일 현재 올들어 4번째로 열렸다.정부는 10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했지만 주최측은 250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거리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하는 연금개혁이 앞으로의 프랑스 상황과 프랑스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도 앞날의 자신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이기에 참으로 힘든 칼을 빼어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프랑스 사람들은 연금 수령 시기가 뒤로 밀리고 내야할 금액도 늘어나니 엄청난 반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제 연금 고갈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연금은 미래를 위한 저축이다. 특정인이 아닌 온 국민들이 먹고 살 미래의 봉급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니 예전 셈법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래서 새롭게 연금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나가는 돈이 늘고 앞으로 돈을 받을 날은 멀어져가니 짜증나고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으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일부 부유층과 특수층이 아니면 노령때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이런 상황은 한국이 더욱 위태롭다. 프랑스에 비해 출산률도 아주 저조하다. 노령인구 급증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돈을 받을 노인들은 급증하는데 돈을 내야하는 인구는 급감하니 상황은 심각함을 이미 넘어섰다. 한국처럼 갈등이 심한 나라에서 이 연금개혁과 관련해 또 얼마나 많은 갈등이 드러날까. 그러니 위정자들은 쉽게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도 잘 알지만 굳이 내 임기때 이런 개혁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지난 대선때 연금문제와 가계부채 문제를 거론한 후보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전 정권에서 검찰개혁과 부동산 개혁 꺼집어 냈다가 정권이 바뀌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과연 앞으로 누가 정권이 바뀔 빌미를 주는 그런 행위를 하겠는가. 그냥 내 임기만 지나면 된다는 식이 되지 않을까. 연금도 가계부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해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나라의 존폐위기를 몰고올 엄청난 지진내지는 쓰나미가 예상되지만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내 임기때만 일어나지 말아라식의 생각으로 일관하다가는 이 나라가 과연 앞으로 제대로 존재할까 하는 깊은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2월 1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