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의 소방관이다.
불 끄는 일을 하다 보니 딱한 광경을 참 많이 보게 된다.
집이나 가게가 불타버린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나도 가슴이 아프다.
또 끔찍한 장면들,
때로는 죽음까지도 목격한다.
하지만 내가 스칼렛을 발견한 날은 좀 더 특별했다.
그건 삶과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 순간이었다.
금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화재신고가 들어와, 우리는 즉시 출동했다.
불타고 있는 건물 앞에서 소방복을 걸쳐 입고 있는 데
얼핏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불을 끄는 일이 우선이었기에, 우선 불길을 잡은 후 고양이를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불이었다. 여러대의 소방차가 함께 출동해야 했다.
다행히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고 했다.
설사 그러지 못했더라도, 워낙 사나운 불길에 건물 전체가 휩싸여
아무도 구조할 시도 조차 못할 상황이었다.
불길을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위험한 고비를 넘기자, 나는 고양이를 찾아 나섰다.
사방에 연기가 자욱했고, 연기도 대단했지만
야옹거리는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들려 왔다.
건물 정문에서 15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뒤엉켜 울어대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왼쪽과 오른쪽 길가에서 두 마리를 더 발견했다.
털이 형편없이 타버린 것으로 보아 건물 안에 있다 나온 것이 분명했다.
우선 거기 있던 다섯마리의 새끼고양이를 상자에 넣어 이웃집 문 앞에 놓아 두고,
어미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다.
어미가 불 타는 건물에서, 새끼들을 한 마리씩 밖으로 물어 내 온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섯번씩이나, 그 성난 불길과 숨 막히는 연기 속으로 들어 가다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어미 고양이는 다시 한 놈 한 놈
새끼들을 될 수 있는 한 건물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 놓던 모양이었다.
결국 기운이 다 빠져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일까?
경찰관 한 명이 새끼 고양이들이 양편으로 누워있던
길가의 텅 빈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고양이를 보았다고 말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그곳엔 어미 고양이가 누워 울고 있었다.
눈에는 커다란 물집이 잡혀 부풀어 올랐고, 앞 발은 온통 까맣게 변해버렸으며
온 몸의 털이 다 타버린 끔찍한 몰골이었다.
군데군데 붉게 익은 살이 내보였다.
어미는 너무 지쳐 꼼짝도 못하는 상태였다.
나는 부드럽게 말을 붙이며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아 올리자 녀석은 고통 때문에 우는 소리를 냈지만, 저항하지는 않았다.
털과 살이 타버린 불쌍한 고양이에게서 연기 냄새가 났다.
녹초가 된 녀석은 내 품에서 몸의 긴장을 풀었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났다.
'나를 믿어...'
이 용감한 작은 고양이를 살려야겠다.
그 가족의 생사는 말 그대로 내 손에 달려 있었다.
어미 고양이도 새끼들과 같은 상자에 넣었다.
어미는, 지칠 대로 지친데다 눈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코로 하나씩 새끼를 건드리며, 모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새끼들을 다 구해냈다는 것에 만족해 하는 듯 싶었다.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11년 전, 심한 화상을 입은 개 한 마리를 데려갔었던 동물병원이 생각났다.
지금 바로 그곳의 도움이 절실했다.
나는 가는 길에 미리 전화를 걸어, 심한 화상을 입은 고양이 가족을 데려가는 중이라 전했다.
연기와 그을음이 묻어 있는 소방복 차림으로, 트럭을 몰고 병원에 들어서자
수의사와 기술자들이 이미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즉각 응급실로 옮겨졌다.
한 팀이 어미고양이를 둘러싸고, 다른 한 팀이 새끼들을 맡았다.
나도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응급실 한 구석에서 고양이들을 지켜 보았다.
녀석들이 살아날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 참의 시간이 흐른 후, 수의사는 고양이들의 경과는 밤을 지나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미 고양이는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도 했다.
나는 다음날 병원을 찾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마침내 수의사들이 내게 다가왔을 때는, 거의 포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었다. 새끼들은 모두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어미의 안부를 묻던 나는, 어떤 답이 나올런지 두려웠다.
어미는 아직도 위험한 상태였고,
매일 병원엘 들렀지만 대답은 한결 같이, 생사여부를 알 수 없다 했다.
거의 한 주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서글픈 심정으로 병원엘 들어섰다.
'회복될 수 있었다면 벌써 호전되기 시작했을거야...
도대체 그 작은 어미 고양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날 수의사들은 활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어미가 살아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력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살아났으니 어미에게 이름을 지어줘야 했다.
수의사 한 명이 벌겋게 타 오른 피부에 착안해 '스칼렛'이란 이름을 붙였다.
스칼렛이 어떻게 자기 새끼들을 구해냈는 지 알고 있는 나는,
그 가족이 다시 함께 모인 모습을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어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새끼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 마리씩 코를 마주 대보고 핥아주며, 무사한지를 살폈다.
어미는 목숨을 걸고 새끼를 구해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다섯번씩이나!
녀석은 어머니의 사랑만이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용기를 보여준 것이다.
한국동물보호협회에서.. 새로운 보호소를 건립할 부지를 구입한 것이 2001년의 일이다..
그것도..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동물보호활동을 하던 한 사람(대니 서)의..
적잖은 후원금(2,500만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헐값에 구입한 부지는.. 산림보호지역 내의 땅으로..
건축법에 의해 비영리사회복지단체에 한하여 건축허가가 가능한 곳이었다..
그런데.. 동물보호소는 사회복지단체에 속하지 않는다 하여..
허가가 나지 않는다 한다..
참..
개나리 같은 법이다.. --;;
결국 택지는 되팔려 내 놓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후 천안의 땅값이 올라..
약간의 차익을 기대했었다는 데..
이게 또 투기지역으로 묶여져.. 되팔기가 쉽지 않게 되었단다..;;
여튼.. 협회는 다시 부지를 알아 보고..
충북보은에 새로이 터를 마련하고..
기초공사며 시작은 했지만..
이미 공사비는 후원금이며 갹출금 이상을 써버린지 오래란다..
세상엔 돈이 팡팡 튀어 주체 못할 사람들도 많다는 데..
그 중 누군가 턱..하니 인심 써 뚝딱뚝딱 지어주진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