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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 별개지만 나눌 수 없는, 그리스 그리고 로마 -
○ 전시기간: 2023. 6. 15.(목)~2027. 5. 30.(일)
○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3층 고대 그리스·로마실(311호)
○ 관람방법: 예매나 발권 필요 없이 상설전시관 311호에서 무료 관람 가능
○ 전시안내: 11:00, 13:00, 15:00 (306호 메소포타미아실에서 출발, 2023. 7. 1.부터 실시)
*세계문화관 6개실 전체 해설
** 2023년 7~8월 주말(토,일)에는 그리스·로마실부터 해설을 시작하는 해설팀도 추가 운영(전시안내 만남장소: 306호 메소포타미아실)
상설전시실 내 세계문화관에 새롭게 ‘고대 그리스·로마실’이 조성되었다. 전시 제목은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와 문화를 중심으로 두 문화의 관계를 살펴보려는 전시이다. 전시실은 크게 '신화의 세계'와 '인간의 세상' 그리고 '그림자의 제국'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출품작은 126건으로,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으로 꾸몄다. 전시는 2023년 6월 15일부터 열리며 2027년 5월 30일까지 이어진다.
‘모자이크 유리, 밀레피오리 유리, 마노 유리 파편’ 그리스, 로마‘ 18~19세기에 금색 피 심식
이 전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모두 대상으로 하는 드문 전시이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열렸던 그리스, 로마 관련 전시는 대부분 그리스나 로마 중 한쪽에 집중했다. 물론, 그리스를 주제로 한 전시에도 필연적으로 로마 시대 작품이 다량 포함되곤 했지만,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그리스와 로마 두 문화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두 나라의 신화와 문화를 살펴보려 한다는 점에 차별점이 있다.
인류의 역사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유산은 넓고도 깊다. 민주정, 로마법, 철학과 같이 오늘날의 사람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도적 유산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 컴퓨터 게임, 영화, 브랜드를 한국인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로마’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각각 역동적인 역사와 풍요로운 문화를 가졌음에도 두 나라를 이렇게 함께 묶어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번 전시는 이러한 질문을 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신화의 세계, 인간의 세상, 그림자의 제국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다.
1부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래된 신화를 다루었다. 여기에는 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리스 도기와 토제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을 전시한다. 중요한 신들의 권능과 관장 영역, 관련된 일화를 전시품과 영상으로 소개하는 한편으로 고대인들에게 이 같은 신화가 왜 필요했는지를 중심에 두었다. 또 그리스의 신화를 로마인들이 받아들이면서 세계에 대한 해석, 즉 세계관을 공유하게 되었음을 강조했다. 그 밖에도 신의 모습을 아름다운 인체로 표현한 이유와 신화의 종교적 성격에 대해 알려주는 전시품들이 소개된다.
이렇게 많은 공통점을 갖게 된 ‘그리스·로마’의 신화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이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었다. 그래서 신을 형상화할 때 가장 아름답고 젊고 건강한 시절의 인체로 표현했다. 대리석을 조각해 만든 <베누스> , <아테나/미네르바> 상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그리스 조각가들의 실력과 이를 이어받은 로마의 조각 전통을 잘 보여준다. 신상을 만들 때는 여러 신을 서로 구별할 수 있도록 각자의 상징물을 들거나 걸치고 특정 동물을 함께 묘사하였다. 그리스·로마 사회에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러한 공통된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신화가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응집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기준과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신화에서 구했다.
2부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독자적인 발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초상 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적으로 서로를 도운 두 문화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리스가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점령당하는 역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신화, 철학, 문학, 조형 예술은 로마에 깊이 영향을 주었다. 조형 예술에 있어서 로마는 그리스 고전기의 조각 걸작들을 수집하고 대규모로 복제해 공공장소와 개인 저택에 세워두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같은 로마의 그리스 애호 덕분에 그리스의 문화 요소가 로마 제국 곳곳에 전파될 수 있었고, 그리스의 원본 걸작들이 대부분 없어진 지금에도 그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신화로 만물이 작동하는 원리와 기원을 설명하려던 시대 이후 차츰 역사, 과학, 철학이 인류의 지성사에 나타나면서 신들의 활동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으로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논리적 담론이 생겨났다. 그 이후에도 신화는 종교적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인간의 생활을 지배했고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봉헌 제의를 묘사한 암포라>, < '헤카테의 경고'를 새긴 부조>는 사람들이 신에 대한 경외심을 일상적으로 표현했고 신을 걸고 한 맹세나 신의 저주가 큰 효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3부 ‘그림자의 제국’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후관을 살펴본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죽음으로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형태로 이행하거나 전환된다고 생각했고, 무덤과 장례의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들은 산 자가 계속 기억해 준다면 망자는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가족뿐만 아니라 행인들이 죽은 이의 이름을 읽고 새겨진 형상을 보고 그를 기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무덤의 위치를 길에서 가깝게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도록 호화롭게 꾸몄다. 유골함과 석관에도 글과 이미지를 새겨 죽은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지나가는 행인일지라도 이름을 보고 읊어주는 것이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졌다. <‘하데스로 가는 문’을 새긴 묘비>에 새겨진 문은 저승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표현했다. 상단에 새긴 글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함께 다른 사람이 무덤 자리를 쓰지 못하게 하는 내용,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적혀 있다. 이름을 적은 글과 더불어 초상 이미지도 망자를 기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로 망자와 가족의 이름과 관계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묘비와 석관에 새겼다. 그리스·로마인들의 사후관은 결국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스와 로마는 신화를 공유했기에 사후 세계에 대한 공통된 관점을 갖고 있었고, 장례 문화도 유사하게 발전했다
전시 말미에는 다시 처음의 질문, 그리스와 로마 두 문화의 관계로 돌아온다. 신화는 한 공동체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했던 방식인 만큼, 신화의 공유는 생각과 가치의 공유로 이어졌다. 이 공통된 세계관과 사후관이 그리스와 로마의 기반이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그리스라는 자양분을 토대로 예술과 철학과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고, 그리스는 로마 덕분에 잊히지 않는 영원한 고대의 문화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 전시는 신화, 초상 미술, 장례 등의 주제를 통해 마치 이인삼각二人三脚처럼 얽혀 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함께 나누고 또 따로 이루었던 예술과 문화와 역사의 장면들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가지는 다양한 분야에 아주 넓게 뻗어 있고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음악평론가, 물리학자, 패션디자이너, 사제,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명사 8인의 인터뷰를 모은 영상인 “나의 원픽”을 상영한다. 전시품을 한 점씩 골라 각자 분야의 시각으로 본 감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시품을 보는 다양한 방법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전시는 신화, 걸작과 복제작, 초상 미술, 장례 같은 주제를 따라가면서 처음에 던졌던 질문 “그리스와 로마를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고자 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는 원래 별개였지만 로마가 그리스 신화를 수용하고 공통점을 갖게 되면서 두 신화를 자연스럽게 묶어 부르게 되었다. 공동체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인 신화를 공유했기에 그리스와 로마라는 거대한 두 문화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이다. 신화뿐만이 아니다. 로마에게 그리스라는 자양분이 없었다면, 로마뿐만 아니라 서구의 철학과 예술, 문학이 지금같이 꽃필 수 있었을까. 그리스에게 로마가 없었다면, 그리스 문화가 지금만큼 우리에게 알려졌을까. 국문 제목이 던진 질문의 답을 전시의 영문 제목에 담았다. Separate But Inseparable. 둘은 별개지만 나눌 수 없는 관계였다.
전시는 무료이며 전시 설명은 7월 1일부터 하루 3회(11:00, 13:00, 15:00) 진행한다. 이번 전시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그리스와 로마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접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고대 그리스·로마상
◦ 신들의 왕(Father of the Gods)
대리석 흉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코와 가슴,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도 천지창조 야기로 시작한다. 태초의 카오스 이후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태어나고 이후 수많은 신이 탄생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신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이는 신들의 치열한 권력투쟁으로 이어졌다. 제우스와 형제자매들은 아버지 크로노스 세대에 도전하며 투쟁한 끝에 제우스가 최고의 권좌에 올랐다. 제우스는 형제, 자매들과 권력을 나누고 자식들을 협력자로 삼아 올림포스 12신체제를 안착시켰다.
◦ 제우스상(만물의 시작과 끝과 중간을 손아귀에 쥔 신)(Zeus as Ruler of Heaven)
청동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왼팔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제우스는 날씨를 비롯한 하늘의 힘을 통제하는 최고의 권능을 가진 신이다. 오른손에 든 번개 다발은 이 힘을 상징한다. 왼손에는 원래 왕홀을 들었을 것이다. 제우스는 로마 신화에서 유피테르로 불렸다. 이 유형의 상은 그리스 시대 제우스상을 모델로 하여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작은 크기의 청동상을 성소에 봉헌물로 바치거나 가정의 제단에 두고 섬겼다.
◦ 상업과 도득의 신 메르쿠리우스(Mercurius)/ 발 빠른 메르쿠리우스
왼쪽, 상업과 도둑의 신 메르쿠리우스, 청동상(통주식 주조), 로마, 1세기/
오른쪽, 발 빠른 메르쿠리우스, 청동상, 로마, 1-3 세기 또는 근대
상업과 도둑의 신 메르쿠리우스 청동상은 전령의 신이며, 메르쿠리우스가 소년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메르쿠리우스는 보통 날개가 달린 모자를 쓰거나 신발을 신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상징물로는 왼손에 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전령의 지팡이와 오른손에 든 돈주머니가 있다. 돈주머니는 상업과 도둑의 신임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메르쿠리우스는 영혼의 안내자로서 사후 세계로 가는 영혼과 동행하며 그들을 보호하는 등 역할이 매우 다양했다.
발 빠른 메르쿠리우스 청동상은 발에 날개가 있는 이 신은 메르쿠리우스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에 해당하며, 인간에게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의 역할을 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 청동상은 눈, 입술, 유두가 잘 구별되도록 다른 재료로 삭감하거나 다른 금속을 붙이곤 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청동상은 지금보다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 로마 등잔에 묘사된 신
로마에서 사용한 점토 등잔으로 윗면의 원형 구획 안에는 다양한 신과 동식물, 일상생활 장면이 묘사되었다. 등잔에 묘사된 신들의 모습은 그리스의 도상적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로마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물품이니만큼 신들은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고 숭배되었다.
◦ 고위 관료 또는 시민의 초상
청동상의 얼굴과 손, 로마, 2세기. 중공식 주조, 금 도금,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이 얼굴과 손은 로마 제국의 고위 관리나 시민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금동 전신상의 일부이다. 손가락 가운데 검지, 종지, 약지와 육중한 크기의 반지가 남아 있다. 남성 얼굴은 깊은 주름과 아래로 쳐진 입가가 특징이다. 눈의 윤곽선이 선명하고, 눈동자는 심지어 반짝거리는 효과를 내는 작은 부분까지 표현했다. 금도금이 된 전신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문헌 기록에는 남아 있다. 그중 상당수는 기마상 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아시스 여신으로 표현된 클레오파트라 2세(Cleopatra II)의 조각상
대리석 전신상. 헬레니즘 시대, 기원전 2세기. 후대에 팔, 왼쪽 무릎, 왼발 받침대 앞, 오른발의 발가락, 코, 턱, 머리카락 일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상의 주인공은 기원전 2세기경 재위한 클레오파트라 2세로 추정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6대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2세(Cleopatra II)는 기원전 175년 형제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공동 파라오가 된 이래 60년간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정국에 깊게 관여한 인물이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키톤 위에 히마티온을 걸쳤는데 가슴께에 이시스 여신상에 자주 보이는 독특한 매듭이 있다. 여신상과 같은 형식을 취함으로써 여왕은 가장 위계가 높은 이집트 여신인 이시스와 동일시되었는데, 여기에는 통치권을 정당화하고 굳건히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여왕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조각상의 형식으로 말한다는 점에서 후대 로마 황제의 초상과 맥을 같이한다.
◦ 곤봉을 든 헤르클레스와 아들 텔레푸스(Hercules with His Son Telephus)
대리석 전신상, 로마, 150~250년, 루미니아 메하디아 지구에서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곤봉을 든 헤르쿨레스와 아들 텔레푸스(Hercules with His Son Telephus)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신과 영웅은 흔히 나체로 표현되었다. 이 헤르쿨레스 상도 나체에,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은 자세로 서 있다. 왼팔로 아들 텔레푸스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상징물인 곤봉을 잡고 있는데, 에우리스테우스 왕이 내린 열두 과업 중 첫 번째 과업에서 이 곤봉을 사용했다. 헤르쿨레스는 이 곤봉으로 네메아의 사자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 의술의 신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 God of Medicine)
설화석고 전신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받침대와 다리 아랫부분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뱀이 휘감은 지팡이에 기대어 선 인물은 의술의 신 아이스클라피우스이다. 기원전 5세기부터 급속히 인기를 얻었다. 그리스에서는 아스크레피오스라고 불렸는데, 그를 모시는 성소에는 치유와 요양을 바라는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치유가 필요한 신체 부위 모양의 봉헌물을 바쳤다. 이 상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에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설화석고로 만들어졌다. 신전에 바치는 봉헌물 또는 로마식 공공 목욕장의 장식물이었을 것이다. '아픔을 잊게 해주다'라는 뜻의 주문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사냥과 초목의 여신 디아나(Diana)
청동상, 로마. 1세기,
달, 사냥, 순결의 여신.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에 해당한다. 오른손에 횃불을 들었던 흔적과 상체를 가로지르는 화살촉의 띠로 보아 사냥과 초록의 여신 디아나의 상이다. 이에 대응하는 그리스 신은 아르테미스다.. 화살촉을 별도로 만들어 등에 끼웠다. 눈과 못을 고정하는 어깨 위 장식은 은으로 상감했다.. 귀는 보석으로 장식했으며 옷자락에 구리 상감으로 색을 더했다. 왼손에는 아마도 활을 들었을 것이다.
◦ 목욕하는 베누스(Bathing Venus)
청동상, 로마, 2세기. 빈미술사박물관소장
사랑의 여신 베누스는 옷을 입지 않은 채 '캐스투스'라는 허리띠를 포개어 오른손에 들고 있다. 케투스는 고대에 여성의 가슴 아래를 묶어 의복을 잡아 주는 데 사용하던 것이다. 당시 인기 있는 주제였던 목욕하는 베누스를 묘사한 작품으로, 기원전 4세기 중반부터는 아프로디케(베누스)를 나체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상적인 여성의 몸을 잘 표현했으며, 에로티시즘의 요소도 엿보인다.
◦ 양치기의 신 파우누스
청동상, 로마, 1-3세기 또는 근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리스 신화의 판,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양치기의 신이다. 이 상은 염소의 뿔과 귀, 다리를 한 춤추는 배불뚝이의 모습으로 파우누스를 표현했다. 동물적이고 여색을 탐하는 성격이어서 주로 남성 성기를 강조하여 묘사한다. 파우누스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후 중세 기독교의 악마 형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
청동상, 로마, 1-3세기 또는 근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포르투나가 머리에 왕관을 쓰고 풍요의 뿔을 들고 있다. 포르투나의 본성은 양면적이다. 고대 문헌에서 그녀를 종종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인간의 운명이 포르투나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렀기 때문이다. 반면 풍요의 뿔은 다산, 부, 풍요를 상징하고 포르투나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로마 시대의 원작을 본떠 만든 후대의 상이거나 로마시대의 상을 일부 재가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 쌍둥이 신 디오스쿠리(Dioscuri, the Divine Twins)
청동상(통주식 주조), 로마, 1~3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디오스쿠리는 '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디오스쿠로이에서 온 말로 쌍둥이 형제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말한다. 신화에서 이 형제는 흑해의 콜키스에 있는 황금 숫양의 모피를 찾아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이 상은 형제 중 한 명으로, 왼팔의 자세로 보아 원래는 수행 동물인 말이 나란히 있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검과 창, 끝이 뾰족한 모자가 디오스쿠리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 페가수스(Pegasus)
토제 등잔, 로마, 2세기 후반, 이탈리아 에스테 출토 추정,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의 이야기는 다양한 신화를 통해 전승되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영웅 페르세우스가 뱀의 머리카락을 가진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 냈을 때 떨어진 핏방울에서 페가수스가 탄생했다고 한다. 페가수스는 코린토스의 영웅 벨레포폰테스의 수행 동물로, 벨레로폰테스가 아마존 여전사와 키마이라를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왔다. 키마이라는 사자, 염소, 뱀이 결합한 혼종동물이다.
◦ 히드라와 싸우는 헤르클레스(Hercules Battling the Hydra)
토제 등잔, 로마, 1세기 전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등잔 윗면에 헤르쿨레스가 히드라와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히드라는 레르나의 늪에서 사납게 날뛰던 물뱀으로, 히드라를 제압함으로써 헤르쿨레스는 열두 가지 과업 가운데 하나를 이루었다. 이 등잔에서 헤르쿨레스는 자신의 발을 공격적으로 휘감고 있는 히드라를 움켜잡고 곤봉을 휘두르려 한다.
◦ 유리테르를 새긴 카메오(Cameo with Carved Head of Jupiter)
옥수제 카메오, 로마,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제우스 또는 유피테르는 보통 풍성한 곱슬머리와 턱수염이 난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유형의 얼굴은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헬리니즘 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다. 작은 돌을 세밀하게 조각해 만드는 카메오 제작 기술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특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다. 주로 반지 같은 장신구로 카메오를 착용했다.
◦ 아모르와 함께 있는 베누스(Venus with Amor)
대리석 전신상, 로마,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 헬레니즘 시대 원작의 1-3세기 복제작,
오스트리아 비루눔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정숙한 베누스' 유형의 작품으로, 왼손으로는 음부를,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가린 채 목욕을 위해 완전히 옷을 벗기 전에 옷 한쪽 끝자락을 잡고 있다. 여신의 왼쪽 어깨와 몸 뒷면에는 본래 여신에게 기대고 있었을 아들 아모르의 작은 손과 몸 일부가 남아있다. 고대에 수없이 복제되고 변형된 이러한 유형의 조각상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에서 유래했다.
◦ 아모르와 함께 있는 베누스(Venus with Amor)
대리석 전신상. 로마, 2세기. 후대에 베누스의 왼손 집게손가락 끝, 아모르의 왼쪽 날개의 왼팔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사랑의 여신 베누스는 허리 아래에만 옷을 살짝 걸친 채 오른손으로 한쪽 가슴을 가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숙한 베누스'라고 불리는 자세로, 목을 위해 완전히 옷을 벗기 전에 옷 끝자락을 잡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녀의 아들인 아모르가 베누스를 바라보면서 나무 열매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다. 왼손에는 뒤에 있는 직육면체의 제단에 불을 붙일 햇불을 들고 있다.
◦ 천하제일의 장사 헤르쿨레스(Hercules, the Strongest)
동상, 근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상에서는 헤르쿨레스를 최고의 장사다운 근육질 몸으로 묘사했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상을 제작하는 데 이용된 중공식 주조법은 통주식 주조법과 함게 고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주조 기술이다. 기술적으로 더 복잡했지만 속이 비도록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값이 비쌌던 재료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 그리핀 머리 모양의 리톤(Lytton)
적회식 리톤, 이탈리아 남부, 기원전 4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노새 머리 모양의 술잔
아테네의 화가이자 도공이었던 소타데스의 작품,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각배(짐승의 뿔로 만든 술잔)에 동물 형상과 신화를 그려 넣어 그리스식으로 각색했다. 적회식 리톤, 아테네, 기원전 5세기 중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아테네의 화가이자 도공이었던 소타데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인 기원전 5세기 중반에 활동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작품에 남겨놓은 몇 안 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각배(rhyton)에 뿔 형상을 대신해 사람의 얼굴이나 개, 염소 등 동물 머리의 형상을 만들어 넣고 그리스 신화 등의 주제로 그림을 그려 그리스식으로 각색하였다. 그의 창의적인 작품은 아테네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지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토속적 요소와 이국적 요소를 적절히 살려 해외 진출에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등잔 여러 개가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는데, 고대인들의 일상에서 친근하게 접하였던 신화적 장면에서부터 에로스적인 순간까지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많은 관람객이 지난 2000년간 서구인들의 상상력과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고 엘리트들의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던 고전 미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멧돼지 머리 모양의 술잔
적회식 리톤, 아테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아이기나섬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리스에서는 남성들이 모여서 술과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회가 자주 열렸다. 그리스 사람들은 포도주를 희석하지 않고 마시는 것은 야만인의 풍습이라 생각해서 항상 물과 섞어 마셨다. 포두주 잔은 주로 점토, 금속, 유리로 만들었는데 멧돼지 모양을 한 이 검은색 잔은 점토로 만들었다. 바닥에 닿은 멧돼지 머리에서 위쪽으로 비스듬하게 들려 있는 목 부위가 잔의 입구이다. 멧돼지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송곳니 2개를 드러내고 있지만 온순한 인상이다. 당시에는 동물이나 인물 모습을 본뜬 잔이 인기가 높았다.
◦ 향유를 담는 병
그리스 코린토스, 기원전 600년~기원전 580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포효하는 사자
대리석상, 로마, 2세기, 후대에 꼬리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입을 크게 벌리고 사납게 포효하는 사자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상이다. 고대에 사자는 강인함과 용기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헬르클레스에게 제압되는 네메아의 사자처럼 신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사자는 수행 동물로서 신들과 함께하기도 했는데 ,특히 바쿠스 신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한다. 사자들이 그리스에 실제로 서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자를 직접 보고 사자의 형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 연회에 사용한 접시
이탈리아 남부, 기원전 4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연회에 사용한 주전자
아테네, 기원전 440년~기원전 420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여성 얼굴 모양의 술잔
적회식 칸타로스, 아테네, 기원전 6세기 말, 이탈리아 체르베테리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연회에 사용한 암포라
아테네 지역 제작, 기원전 5세기 전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부리에 뼈를 물고 있는 그리핀
◦ 디오니소스와 추종자들(Dionysus and His Followers)
적회식 크라테르, 아테네, 기원전 450년~기원전 420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포도주와 물을 섞는 그릇인 크라테르의 겉면에 디오니소스 세계에 속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중앙에 왕관을 쓴 디오니소스가 칸타로스 잔과 포도나무 잎이 얽힌 지팡이를 들고 있다. 화면의 왼쪽에는 디오니소스의 열정적인 추종자인 마이나스가 횃불과 술병을 들고 다가오고 있다. 그 뒤에는 반인반수의 늙은 세일레노스가 따르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포도주 부대를 들고 탐욕스럽게 마시는 반인반수의 젊은 사티로스가 있다.
◦ 임무를 받아 떠나는 트립톨레모스(Triptolemus Being Given a Mission)
적회식 히드리아, 아테네, 기원전 5세기 중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농경과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가 엘레우시스 왕의 아들인 트립톨레모스에게 경작 기술을 가르친 뒤 사람들에게 곡식 재배법을 전하라는 임무를 부여한다. 이 도기의 그림에서 제의용 대접과 홀을 들고 날개 달린 전차에 앉아 있는 청년이 트립톨레모스이다. 왼쪽에는 장식이 있는 관을 쓰고 홀을 든 데메테르가 있고, 오른쪽에는 데메테르의 딸이자 지하세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가 있다.
◦ 크라테를 세 개의 술이 적당하다
적회식 꽃받침형 크라테르, 아테네, 기원전 5세기 후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포도주용 그릇에는 종종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인물과 상징들이 그려졌다. 이 크라테르에는 정욕에 찬 시티로스에게서 도망치는 마이나스가 있는가 하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티로스와 마이나스, 리라와 쌍피리를 연주하는 인물도 있다.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표현된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따라 주는 세일레노스를 돌아보고 있다. 심포시온에서도 과음하지 않는 절제의 미덕이 강조되었지만 참석자들은 종종 취기를 빌려 사회가 부과한 엄격한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모습이 되는 자유를 누렸다. 반쯤 짐승인 것은 세일레노스 뿐만이 아니었다.
◦ 취한 자들의 행렬
적회식 킬릭스. 아테내, 기원전 5세기 중엽,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납작한 접시 형태의 그리스 술잔이다. 바깥 면에는 '코마스테스'라고 하는 술이 취해 알몸으로 춤을 추는 남성들이 그려져 있다. 포도주와 춤. 음악이 어우러지는 격정적인 축제 디오니시아에 참여한 자들이다. 축제는 인간들이 신화 속 주인공 역할을 맡아 신성의 존재를 경험하는 기회였다. 그리스의 연회인 심포시온에서 이러한 술잔을 사용했으며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기도 했다.
◦ 그린핀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Sphinx with Griffin's Head)
대리석 전신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발과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린핀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의 몸을 합친 상상 속 동물의 조각상이다. 그린핀과 스핑크스는 둘 다 죽음과 관련이 있다. 또한 그린핀은 보석을 지키고 스핑크스는 무덤을 지키는 존재로, 무엇인가를 지키는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핀은 일반적으로 날개 달린 사자의 몸으로 묘사되는데, 이 상처럼 여성의 가슴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된 경우는 드물다. 언제, 어떠한 이유로 두 동물이 결합됐는지 불분명하다.
◦ 네메아의 사자와 싸우는 헤라클레스(Hercules Battling the Nemean Lion)
흑회식 칼피스, 아테네, 기원전 5세기 초,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와 싸우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물항아리이다. ‘네메아의 사자’의 사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동물로, 그리스의 네메아라는 지역에 살면서 산속 깊은 곳에서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해치곤 했다. 사자는 헤라클레스에게 붙잡혀 입을 벌리며 혀를 죽 내밀고 있다. 보통의 무기로는 사자의 가죽을 뚫을 수 없었다. 이 그림에서 헤라클레스는 몸을 던져 사자를 땅에 누르며 씨름하고 있다. 사자의 입은 벌어지고 혀는 늘어졌다. 이야기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보여주기 위해 사자의 앞부분만 화면에 담았다.
◦ 아테나와 헤라클레스
흑회식 페키토스, 아테네, 기원전 510년경,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향유를 담은 그릇인 레티토스에 아테나, 헤라클레스와 그의 아내 헤베로 추정되는 인물을 흑회식 기법으로 그렸다. 아테나는 투구를,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고 있다. 아테나와 헤라클레스 사이에 보이는 날개 달린 작은 인물은 승리의 관을 씌우기 위해 날아가는 승리의 여신 니케다. 레키토스는 망자의 무덤에 바치는 용도로 많이 만들어졌다.
◦ 올빼미, 아테나와 아테네의 상징
◦ 베누스상(Beauty is Virtue: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
대리석 토르소상, 로마, 1~3시기, 튀르키에 에페소스 출토, 후대에 오른쪽 가슴 복원,
대리석, 147.0x49.5cm,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토르소만 남은 이 상은 사랑의 여신 베누스가 욕조에서 나오는 순간을 나타낸 것으로, 몸의 일부만 가운으로 덮여 있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유명한 아프로디테의 누드 조각상을 만든 이후로, 아프로디테(베누스)는 보통 누드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신체에 대한 숭배와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고대 그리스 문화권에서 조각상을 만들 때 중요한 주제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선함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 가니메데스 또는 파리스(Ganymede or Paris)
대리석 전신상, 로마 1~2세기, 18세기에 머리, 지팡이가 있는 오른팔, 오른쪽 다리와 왼손 손가락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두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가니메데스는 원래 소와 염소를 기르는 목동이였다. 제우스는 가니메데스에게 반해 독수리로 변신해서 가니메데스를 신들이 사는 곳인 ‘올림포스산’으로 데려갔다. 가니메데스는 올림포스산에서 술을 따르는 시중이 되었다. 파리스는 트로이라는 나라의 왕자였다. 파리스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여성 헬레네에게 그녀를 트로이로 몰래 데려갔다. 헬레네는 그리스의 스파르타라는 도시를 다스리는 왕비였기 때문에 이 일로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내용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기록되었다.
◦ 남성의 신체
석제 토르소상, 기원전 2세기 초,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아프리카계 인물의 어두운 피붓빛을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색의 돌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등이 크게 휘어있고 오른팔이 왼쪽어깨를 잡고 있으며 왼팔이 뒤쪽을 향하는 독특한 자세를 하고 있다. 오른쪽 등의 구멍은 본래 조각을 구성하여 다른 부위와 연결하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히 어떠한 형태였는지는 왼팔과 마찬가지로 현재 재구성이 불가능하다. 비슷한 상과 비교해 볼 때 이 상의 주인공은 짐꾼, 하인 또는 죄수로 추정된다.
◦ 유피테르(Jupiter)의 변신 이야기
대리석상, 로마, 1-2세기. 16세기에 머리, 발톱 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털을 곤두세우고 날개를 펼친 독수리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상이다. 독수리는 유피데르의 수행 동물인데,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유피데르는 자신이 탐내던 청년 가니메데스를 납치하기 위해 독수리로 변신한다. 이렇듯 신들은 종종 동물로 모습을 바꾸어 인간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독수리의 발을 감고 있는 뱀은 르네상스 시대에 추가되었으며, 악을 이기고 선이 승리한다는 의미를 더해 준다.
◦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를 그린 킬릭스(Abduction of Europa by Zeus)
적회식 킬릭스, 아폴리아, 기원전 330년~기원전 320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를 그리스의 크레타섬으로 납치하는 장면이 그릇 안쪽에 표현되어 있다. 이때 제우스는 흰 소로 모습을 바꾸어 에우로페에게 접근했다. 에우로페의 두 다리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한 손으로 겨우 잡은 옷자락이 펄럭이고 있어 끌려가는 순간의 다급한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난 미노스는 유럽 최초의 문명이라고 불리는 미노스 문명을 세웠다.
◦ 아테나/미네르바상(Athena / Minerva)
대리석 흉상, 로마 기원전 430년 그리스 원작의 1~2세기 복제작,
16~17세기에 가슴과 받침대, 머리카락 끝, 코 추가, 대리석, 97.0×73.0cm,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상의 머리 부분은 머리카락이 길고 투구를 머리에 얹은 듯한 형태로, 이는 전략에 능한 전쟁의 여신을 나타낸다. 기원전 430년에 만든 그리스 원작을 로마 시대에 복제한 작품이다. 가슴 부분에는 후대에 덧붙인 아이기스가 있는데, 이는 염소 가죽으로 만든 일종의 마법 방패 또는 흉갑을 뜻한다. 아테나는 아테네의 수호신이며,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도 기원전 5세기에 아테나를 위해 세워진 것이다.
◦ 사포와 에린나
대리석 양면 헤르마. 로마, 2세기 초, 18세기에 원형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기원전 610-기원전570년경)와 에린나(기원전 4세기 활동)로 추정되는 초상을 맞붙인 양면 헤르마이다. 이 상은 그리스 조각상을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변형하여 수용하던 로마인들의 방식을 잘 보여 준다. 특히 1-2세기 로마의 상류층 저택에 세워진 양면 헤르마는 문학과 철학, 종교적 주제 안에서 로 관련 있는 역사적 인물과 신화적 인물을 맞붙여 조각하여 서사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통해 그리스 문화에 대한 집주인의 폭넓은 지식을 과시할 수 있었다.
◦ ‘헤카테의 경고’를 새긴 부조(Hekate's Warning)
대리석 부조, 로마 2~3세기, 크로아티아 솔린 출토, 47.0x30.0cm,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종교는 종종 미신이나 주술과 결합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기도 했는데, 마법과 주술의 여신인 헤카테가 바로 그런 예이다. 어떤 장소를 더럽히지 못하게 하려는 라틴어 명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구역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거나 용변을 보지 않는 자에게는 그녀(헤카테가)가 자비로울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부주의하여 그런 일을 벌인다면 무슨 일을 겪을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헤카테는 보통 서로 등을 맞댄 채 서있는 세 명의 여신으로 표현되어, 여섯개의 손에 위협의 표시로 뱀과 칼을 들고 있다. 그녀는 마법과 주술의 신이면서 교차로의 여신이기도 했다.
◦ 이상적인 신체 비례의 연구
대리석 토르소장, 로마,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원작의 1세기 복제작,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현재 토르소만 남은 이 청년의 누드상은 로마 재정 시대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형의 조각상은 비슷한 복제작이 여럿 전해져 내려온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그리스 고전기의 유명한 조각가 플리클레이토스의 제자가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든 청동상이 원작이었을 것이다. 플리클레이토스의 대표작은 '도리포로스'라 불리는 창을 든 남성 청동상이다.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그리스 청동상의 대리석 복제작을 진열하는 것은 로마 제국에서 유행하던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 철학자 또는 이방인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후대에 코끝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조각상에는 인물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헝클어진 머리모양, 정돈되지 않은 외모, 곁눈질하는 시선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이 조각상을 야성적이 이방인으로 보았지만 이후에는 철학자로 보는 시각이 대두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두 집단을 표현하는 도상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돈되지 않은 모습은 이방인의 미개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철학자 등 지식인이 온전히 정신적인 삶에만 몰두한 모습을 의미하기도 했다.
◦ 카라칼라(Caracalla) 황제의 스타일로 묘사된 남성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3세기, 후대에 코, 가슴 부분, 받침대 추가,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반세기 이상 풍성한 수염과 머리 오양을 선보였던 황제의 초상은 카라칼라 황제(제위 211-217년) 때 그 양식이 급급히 달라진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아들인 카라칼라는 공동 통치자였던 남동생 게타를 잔인하게 살해한 후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그의 공식 초상은 이 남성상처럼 곱슬머리카락이 총총하게 덮인 머리 모양과 짧은 수염, 분노가 끊어 오르는 듯 눈썹과 미간을 찌푸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카라칼라(Caracalla, 188-217)는 재위기간 동안 로마 제국의 몰락에 일조했으며 로마사에서 가장 잔인한 폭군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211년 아버지 세베루스가 브리타니아 원정 중 사망하자 제국의 1인자로 올라서면서 동생 게타와의 관계가 악화됐고, 결국 그를 살해하고 로마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민심을 얻기 위해 로마에 거대한 목욕탕을 지었고, 212년 로마의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안토니누스 칙령을 발표해 세금 수입을 확보했다. 게르만족과 파르티아인을 상대로 원정을 벌이고, 알렉산드리아 주민들을 상대로 학살극을 자행하는 등 잔인함과 무자비함을 드러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모방하며 자신을 신격화시키고, 미신에 빠져 예측할 수 없는 행동들을 벌이자 황실근위대장이며 후계자였던 마크리누스에 의해 217년에 암살당했다.
◦ 드루수스(Drusus)의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1세기.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아들인 소(小) 드루수스(기원전, 15년-기원후 23년)를 표현한 두상이다. 짧고 곧은 단정한 머리카락, 낫 모양의 둥근 앞머리, 수염 가닥들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윗입술이 약간 튀어나온 좁은 입이 특징적이다. 원래의 채색이 남아 있었다면 눈이 한층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황제의 친척을 위해서도 공식 초상을 제작했는데, 가족 관계인 이들의 초상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드루수스는 승계를 앞두고 경쟁 세력에게 암살당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 유피테르일까 바쿠스일까
대리석 두상, 로마, 1세기.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굵은 곱슬머리와 수염으로 보아 유피테르로 추정되지만 바쿠스일 수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항상 신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여 얼굴만으로는 신의 이름을 명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을 통제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번개창 같은 상징물을 들고 있다면 유피테러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이러한 상이 성소에서 발견된 경우 어떤 신에게 바친 상인지가 상의 주인공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 켄타우로스(Centaurus)
대리석 두상, 헬레니즘 시대,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 그리스 로도스섬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반은 인간, 반은 말인 켄타우로스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존재로, 야생성이 두드러지는 겉모습과 달리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다. 이들은 신화에서 영웅 헤라클레스의 적수로 나오지만, 학문에 깊이가 있는 인자한 학자나 스승으로도 등장한다. 이 두상은 원래 인간의 상반신에 말의 몸을 한 전신상의 일부였을 것이다. 어원을 분석하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싸움황소'란 뜻에서 유래한 듯하다.
◦ '봉헌 제의'를 그린 암포라(Scene of Offering)
적회식 암포라, 아테네, 기원전 450년경, 도기, 59.5x29.5cm,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작은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암포라의 양쪽 면에 묘사했다. 한쪽에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술을 붓는 제의를 올리려는 소년과 소녀가 있다. 암포라의 다른 쪽에는 키톤과 히마티온 차림의 두 여성이 제물을 바치고 있다. 오른쪽 인물은 주전자와 꽃을, 왼쪽 인물은 헌주용 그릇인 피알레와 지팡이를 들고 있다. 두 장면 모두 제단의 윗부분을 고대 그리스에서 인기가 있었던 회오리 모양으로 장식했다.
◦ 작별(Farewell)
적회식 오이노코에, 아테네, 기원전 435-기원전 430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겹쳐 쌓은 그릇과 주전자를 든 여성이 고개를 약간 숙인 청년을 바라보고 있다. 짧은 망토를 입은 청년은 납작한 모자를 목에 걸고 왼손에 창 두 개를 들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중년 남성은 머리 모양과 얼굴, 손에 든 왕홀로 보아 사제나 왕으로 추정된다. 여행을 떠나거나 싸움터에 나가는 청년과 작별을 앞두고 신에게 술을 바치는 의례를 행하려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삶 중심에 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소사에 앞서 신에세 의례를 행하는 일이 많았다.
◦ 신들의 회합(Assembly of the Gods)
적회식 크라테르,아테네, 기원전 4세기 전반, 이탈리아 산타가타 데 고티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물과 포도주를 섞는 데 사용한 그릇이다. 바깥면의 그림에 제우스, 아폴론, 헤르메스와 세 명의 여신이 옴팔로스를 가운데 두고 모여 있다. 옴팔로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지상의 모든 생물이 태어난 곳이라고 믿는 종교적 상징성을 가진 돌이다. 백조를 탄 여신의 왼쪽에는 제우스가 왕홀에 몸을 기대고 손을 들어 말을 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백조의 오른쪽에는 아폴론이 월계수 지팡이를 들고 앉아 있고, 그 뒤로 헤르메스가 전령의 막대를 들고 있다.
◦ 아테나의 탄생(Birth of Athena)
적회식 펠리케, 아테네, 기원전 490년~기원전 480년, 이탈리아 남부 놀라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기원전 700년경 헤시오도스가 기록한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아테나의 탄생 과정은 그의 뛰어난 지혜와 영리함을 상징한다. 이 펠리케의 그림도 아테나가 아버지 제우스의 무릎에 서 있는 모습으로 탄생 장면을 표현했다. 아테나는 갓 태어났지만 투구를 쓰고 창을 든 프로마코스(선봉장) 유형으로 그려졌다.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가 아테나와 마주 서 있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16세기에 코와 가슴, 받침대 추가,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로마 장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기원전, 100-기원전 44년)는 갈리아 전쟁을 비롯한 여러 정복전쟁의 공적과 원로원에서 살해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로마 시대에 제작한 두상을 르네상스 시대에 고풍스러운 흉상으로 보완한 것이다. 두상은 카이사르가 죽은 뒤에 만들어진 초상 유형이다. 수척한 얼굴이 특징이다. 이 초상 조각은 개인의 얼굴 특징이 거의 보이지 않은 신격화된 모습의 '디부 율리우스(유리우스 신)' 상이다.
◦ 사제의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후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남성의 초상은 가운데가 갈라진 제멋대로 자란 턱수염과 짧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특징이다. 머리에는 담쟁이 넝쿨 관을 썼다. 이마 위로 메달리온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달 모양의 부적이 있다. 남성의 외모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왕제의 아들인 코모두스 황제(재위 180-192년)을 연상시키지만, 메달이온이나 담쟁이넝쿨 관은 황제 초상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소재이다. 따라서 재현된 인물은 사제와 같이 종교 제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3세기 초. 후대에 코끝과 둥근 받침대와 가슴 추가,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재위, 193-211년)는 아프리카의 로마 속주였던 렙티스 마그나 출신으로,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서 세력을 크게 확장하던 파르티아와 싸워 승리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개선문이 지금도 로마의 중앙 광장인 포로 로마노에 남아 있다. 셉팁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초상은 풍성한 곱슬머리와 턱수염이 특징으로 곱슬머리 가닥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다.
◦ 수염 난 남성의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초상 조각의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황실 일원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시민이었을 것이다. 이 조각상에 보이는 풍성한 곱슬머리와 수염은 안토니누스 왕조(138-193년)때 유행했던 것으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조(기원전 27-기원후 68년) 때 많이 보이는 단정하고 짧은 머리 모양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황제와 황실 초상에 보이는 특정한 표현 방식을 일반 시민들도 그대로 모방하곤 했다. 이러한 두상은 전신상이나 흉상의 일부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후반, 41.5x28.0cm ,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지금은 두상만 남아 있지만 조성 당시에는 관례대로 흉상이나 전신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얼굴의 골상학적 특징이나 곱슬머리, 수염이 오른쪽에 놓인 마느쿠스 아우렐리우스 초상과 닮았다. 통치자의 특징을 로마 제국 전역에 전파해 일관된 모습으로 초상을 조각하던 관습을 이 두 개의 초상이 잘 보여준다. 눈동자의 자리를 파내 모양을 만들었고, 눈꺼풀은 살짝 처져있다. 이러한 초상 조각에 채색을 하여 제국 전역 로마인들에게 황제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했을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161-180년, 후대에 의복의 장식용 핀과 오른쪽 어깨, 원형 받침대 추가,
70.5x66.0cm ,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위 160-180년)는 평화의 시대로 일컫는 ‘팍스로마나’ 시대의 마지막 황제로 철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그리스어로 쓴 <명상록> 때문에 철인(哲人) 황제로 불렸다. 그의 초상은 굵고 곱슬곱슬한 머리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수염, 튀어나온 큰 눈, 처진 눈꺼풀이 특징이다. 황제의 초상에는 특정한 가치를 전달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 있다. 이 초상은 성찰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강조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을 보면 결코 과장은 아니다.
초연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에서 철학자로서의 깊은 사색의 눈빛과 동시에 광활한 제국의 통치자가 느끼는 책임과 피로감이 함께 느껴진다. 황제의 자리를 그의 아들 콤모두스(재위 177∼192년)에게 넘겼지만, 그는 아버지와 달리 과대망상적 증상과 독재적 행위로 인하여 암살되고 사후에도 그에 관한 기억을 삭제하는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에 처해진다. 콤모두스의 비극은 아우렐리우스 사후에 벌어진 일이지만, 아우렐리우스의 초상은 미덥지 못한 아들의 운명을 마음 한쪽에 예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직접 북방 이민족을 정벌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등 장수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데, 초상 조각에서 보이는 처연한 눈빛은 강력한 황제의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군인 황제의 초상에서 보이는 강인한 인상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세상을 호령하고 최고의 명성을 얻은 황제라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한계와 외로움이 공감된다.
◦ 청년의 토르소상
. <청년의 토르소상> 로마,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원작의 1세기 복제작, 대리석, 86.5x42.5cm
현재 토르소만 남은 이 청년의 누드상은 로마 제정 시대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형의 조각상은 비슷한 복제작이 여럿 전해져 내려온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그리스 고전기의 유명한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제자가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든 청동상이 원작이었을 것이다. 폴리클레이토스의 대표작은 ‘도리포로스’라 불리는 창을 든 남성 청동상이다.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그리스 청동상의 대리석 복제작을 진열하는 것은 로마 제국에서 유행하던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117-138년, 후대에 가슴과 둥근 받침대 추가, 72.0x66.0cm ,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하드리아누스(Hadrianus, 재위 117-138년) 통치기는 대체로 평화로웠고 황제가 특히 그리스 문화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초상 조각은 수염이 있고 섬세하게 치장한 머리가 특징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선보여 네로 시대(재위 58-68년)나 플라우스 왕조(69-96년)의 화려한 머리 모양을 재유행시켰다. 하드리아누스 시대 이후로 남성 초상에서 수염이 빠지지 않는 표현 요소가 되었다. 이 상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갑옷을 입고 사령관의 망토인 팔루다멘툼을 두른 뒤 화려하게 장식한 핀으로 오른쪽 어깨에 고정했다.
◦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두상
석고 두상. 근대,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원작의 1-2세기 대리석 복제작을 본뜬 석고상.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리스 미술에서는 작품에 인물의 내면 상태나 정신적 가치를 표현하려고 했다. 현명한 철학자, 결단력 있는 사령관, 존경받는 정치인 등을 묘사하던 그리스 조각상은 후대로 갈수록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표현 방식이 변화했다. 그 초기의 사례로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표현한 이 두상이 있다. 푹 꺼진 뺨,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기민하고 에너지 있는 모습이 표현된 이 작품은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주문으로 조각가 리시포스가 만든 조각상에 원형을 두고 있다.
◦ 라오콘(Laocoon)
대리석 두상, 고대 그리스. 로마 원작의16-17세기 복제작,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라오콘 군상’은 그리스 헬레니즘 시기 미술의 특징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아폴론의 점술사이자 신관이며, 독신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어기고 아이를 낳아 아폴론의 노여움을 샀다는 유명한 서양 고대 조각상인 바로크 시대 복제작으로 트로이 사제 라오콘과 두 아들이 아폴론이 보낸 두 마리의 뱀에게 공격받아 결국 죽임을 당하는 극적인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라오콘은 신들이 정한 운명 앞에서 두 아들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한다. 깊은 눈과 주름, 일그러진 표정과 벌어진 입술 사이로 고통스러운 순간의 고뇌와 격정적인 감정이 표현된다.
헬레니즘 시기에 앞서서 고전기의 그리스 미술은 감정을 절제한 이성적인 인간의 몸과 표정의 표현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시아와 이집트를 점령하고,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개개인의 역량은 더 중요해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헬레니즘 시기의 예술가들은 개인의 내면과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열중하였다.
16세기 초 로마에서 라오콘 상이 발견되면서 근세 유럽 사회에 고대 조각에 대한 관심과 열광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복제작이 만들어졌다. 작품 전체를 복제하지 않고 이 두상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부분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은 상의 얼굴에 나타나는 파토스, 즉 고통이나 슬픔의 감정 표현에 매료되었다.
◦ 귀부인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130년 이후, 18세기에 코, 뒤통수, 가슴과 받침대 추가,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존경받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높은 사회적 명망을 누렸던 로마 귀부인 초상의 전형을 보여 주는 상이다. 눈가와 입가, 미간에 노화의 징후가 엿보이지만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이다. 머리 모양은 당대에 유행했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머리카락을 땋아 터번처럼 머리에 두르는 이러한 스타일은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시대 황실 여성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시대마다 다른 머리 모양은 로마 제국의 남녀 초상 모두에서 연대를 확인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초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위 161~180년)는 철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그리스어로 쓴 『명상록』 때문에 철인(哲人) 황제로 불렸다. 그의 초상은 굵고 곱슬곱슬한 머리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수염, 튀어나온 큰 눈, 처진 눈꺼풀이 특징이다. 황제의 초상에는 특정한 가치를 전달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 있다. 이 초상은 성찰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강조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을 보면 결코 과장은 아니다.
◦ 토가를 입은 남성의 초상
대리석 전신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왼손, 오른팔, 토 왜골, 옷 주름 일부 추가, 225.0 x 80.0 cm, 빈미술사박물관
로마의 전신상에서 신체와 옷에는 일정한 유형이 있어 주인공의 신분과 상의 성격을 전달하는 기능을 했다. 후기 공화정기에 토가를 입은 모습의 상은 주인공이 로마의 시민이라는 뜻이다. 군장을 갖추거나 짧은 망토를 입으면 관료이거나 군인이다. 누드나 세미누드상은 초원적인 존재를 나타냈다. 이조각상의 주인공은 '제1시민'의 역할을 부각하고 싶었던 로마 황제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시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들은 극장이나 분수 등 공공건축을 짓는 데 기여한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 어린 헤르쿨레스(Hercules)의 상(대리석상)
대리석상, 로마, 헬레니즘 시대 원작의 2세기 복제작,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이러한 조각상을 무덤에 두기도 했다.
◦ 안녕히!(Farewell!)
대리석 묘비, 헬레리즘 시대 기원전 2세기 후반, 그리스 델로스섬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이처럼 건물 안에 키톤을 입은 망자가 친척에 둘러싸여있다. 아랫부분에 새겨진 그리스어 명문에 그가 아스클레파이데스의 아들이며. 아테네 출신이고 ‘고르기아스’라고 쓰여 있다. 맞은편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애정을 표현하듯이 그에게 오른손을 내밀고 있다. 손을 건네는 동작은 결속의 표현으로 고대 미술에 자주 등장 하는데, 묘비에서는 작별을 고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인들이 망자와의 이별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렇듯 침착하고 담담했다.
◦ '하데스(Hades)로 가는 문'을 새긴 묘비
로마, 3세기, 튀르키예 마르마라 에레일리시 출토, 대리석, 124.0x127.0cm, 빈 미술사박물관
망자의 초상을 새긴 그리스·로마 시대의 많은 장례 기념물과 달리 이 묘비에는 문 형태의 건축물을 표현했다. 계단을 세 개 오르면 아름다운 문양 띠로 장식된 문에 이르는데 이 문은 지하 세계인 하데스의 입구를 상징한다. 문 위의 그리스어 명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함께 다른 사람이 무덤을 차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과 관련 벌금이 적혀 있다. 마지막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쓰여 있다.
히데스(Hades)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명계라 불리는 지하세계(황천)를 다스리는 신으로, 개화기 당시의 한자식 이름은 명왕이었기에 이 신의 이름을 딴 왜행성을 한자어로 명왕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플루토(Πλούτων, "플루톤")라고 불렸다. 디스 파테르(Dis Pater="부유한 아버지")라는 별칭도 있다. 의외로 헷갈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체계상의 지위는 높지만 지하에서만 살기 때문에 올림포스 12신에는 대체로 들어가지 않는다. 올림포스 12신의 정의는 일단 올림포스 산에 있는 12 황금옥좌에 앉을 수 있는 신이기 때문. 대신 제우스, 포세이돈과 함께 3주신에 들어간다.
◦ 율리아 베라의 유골함
대리석 유골함, 로마, 1세기, 이탈리아 로마 출토 추정, 빈미술사박물
◦ 루키우스 아틸리우스 클라브리오의 유골함
대리석 유골함, 로마, 1세기, 이탈리아 로마 출토 추정,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유골함의 표면은 다양한 잎사귀 장식으로 덮여 있는데, 위쪽에는 월계수와 꽃 넝쿨이, 아래쪽에는 아칸서스 잎이 보인다. 양옆으로 로마 신 유피테르와 이집트 신 아몬이 결합하여 토착화한 유피테르-아몬의 머리가 붙어 있는데, 곱슬곱슬한 턱수염과 숫양의 뿔은 각각 유피테르와 풍요의 신이라는 속성을 상징한다. 네모난 구획 안에는 망자 루키우스 아틸리우스 글라브리오의 이름이 라틴어 문자로 새겨져 있다.
◦ 다섯 사람의 흉상이 있는 묘비
석회암 묘비, 로마, 1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소년의 관
대리석 석관 파편, 로마, 2~3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남매의 무덤 부조
석회암 부조의 파편, 팔미라 지역 제작, 2세기 전반, 시리아 팔미라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보드게임의 고수, 편히 잠드소서
석회암 유골함, 로마, 1~2세기, 이탈리아 북부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 신과 함께
대리석 석관, 로마, 1~3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날개가 달린 사랑의 신 아모르(Amor)가 ‘클리페우스(Clipeus)’라고 부르는 크고 둥근 방패를 들고 있다. 여기에 본래 망자의 이름을 물감으로 적었을 것이다. 석관 앞면의 왼쪽과 오른쪽 끝에도 아모르(Amor)가 연인 프시케(Psyche:마음과 영혼의 신)와 함께 나타난다. 아모르와 프시케의 이야기처럼 신에게 사랑받아 불멸의 삶을 얻는 인간을 주제로 한 장면은 장례 미술에서 행복한 사후 세계를 기원하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 밖에도 석관 앞면에 두 마리의 스핑크스(Sphinx)를, 옆면에 두 마리의 그리핀(Griffin: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가 달린 상상의 동물)을 장식했다.
◦ 소년의 초상
청동 두상, 로마, 1~2세기, 중공식 주조, 금도금,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금도금을 한 소년의 청동 두상으로 죽은 소년을 기리는 초상 조각으로 보인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몸체에 끼워 본래 하나의 전신상을 구성했을 것이다. 작은 입과 통통한 볼이 어린아이 같은 이목구비를 보여 준다. 머리 오른쪽 부분에 보이는 ‘호루스의 머리’ 형태도 주인공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값비싼 도금상은 소년이 왕자와 같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이었음을 드러낸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