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몽준 의원
아침 먹으며 오늘 記事 묻던 아버지, 빨리 대답 안 하면 야단맞았죠
내 인생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1981년 중동에서 먹은 짜장면
밥 먹을 땐 위 아래 없이 함께 먹어… 요즘 우리 사회, 그런 게 약해졌어요
- 김성윤 기자
2주 전 이 시리즈가 게재된 이후 자주 듣게 된 질문이 "정몽준도 하느냐?"였다. 정몽준(63) 의원과는 '은주설렁탕'집에서 잡혔다고 하자 한결같이 "고작 설렁탕이냐"는 반응이었다.
그는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내 입맛은, 요즘 말로 한참 저렴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뭐든 가리지 않던 아버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식성을 물려받은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아버님과 아버님 형제분들, 숙모님들까지 모두 모여서 식사를 했어요. 그때 숙모들이 저더러 '몽준이는 뭐든지 잘 먹어' 그랬어요."
정 의원은 "하지만 제가 못 먹는 게 세 가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먹으면 죽는 것' '없어서 못 먹는 것' '먹고 싶은 데 남이 안 주는 것'. 이런 건 못 먹어요." 분명 재밌는데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좀 지나서야 그의 툭툭 내던지는 유머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은 유명하다. "아버님은 아침에 신문을 두 시간씩 보시고 국제전화를 두세통 하시고 7시쯤 아침을 드셨어요. 밥 먹으면서 신문에 나온 걸 물어보세요. 빨리빨리 대답 안 하면 혼나는 거지. 한 번은 물어보시길래 '잘 모르겠다' 그랬더니, '너는 신문도 안 보느냐'고 야단맞았어요. 사무실에 와서 신문을 찾아보니까, 어느 경제신문에 조그맣게 난 기사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경제신문들에 나온 것까지 다 보고서 아침 먹으러 가야 했죠."
이제 정 의원도 자식 넷을 둔 아버지가 됐다. "정 의원도 아버님처럼 매일 아침식사를 자녀들과 같이 하느냐?" "그러지는 못하죠. 그게 보통 노력이 아니죠."
정 의원은 설렁탕과 함께 수육도 주문했다. 양지, 사태, 머리고기 등 삶은 소고기가 부위별로 고루 담긴 접시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왔다. 육질이 좋았다. 정 의원은 "이거 먹으려면 소주 한잔해야 하는데. 괜찮아요?"라면서 소주도 시켰다.
- 정몽준 의원이 설렁탕에 만 밥과 파김치를 숟가락 가득 뜨고 있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한다”는 정 의원은 국물도 남기지 않고 뚝배기를 깨끗하게 비웠다. /이진한 기자
그에게 "술도 잘 드시느냐"고 물었다. "술도 음식이니까요. 즐기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해서 마시죠. 전에는 코 비뚤어지게 먹었는데, 이제는 조심하려고 해요. 주량은 보통이죠. 분위기 맞춰 마셔요."
정 의원은 중·고교 시절 권투를 배우면서 운동부 선·후배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는 야구·축구 등 운동부가 유명했던 중앙중·고교를 나왔다. "중앙고가 계동 1번진데, 걸어나오면 종로 3가예요. 거기에 막걸리집들이 있었는데, 선배들하고 그런 데 가서 술 마시고 그랬어요."
수육접시가 비워질 즈음 설렁탕이 나왔다. 설렁탕치곤 국물이 뽀얗지 않고 투명하게 맑았다. 간이 전혀 돼 있지 않은 국물은 소금을 넣자 감칠맛이 살아났다. 파김치와 깍두기, 배추김치도 수준급이었다. 정 의원이 자기 공깃밥을 들어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 국물에 말았다. 파김치를 젓가락으로 성큼 집어서 국물에 담갔다. 그러더니 숟가락으로 국물과 밥, 파김치를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이렇게 하면 뜨거운 국물에 파김치가 부드러워진다"면서 "소금은 조선일보에서 먹지 말라고 해서 안 먹는다"고 했다. 나중에는 뚝배기를 손으로 들어서 '후루룩' 들이켰다.
정 의원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아버지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어머니인 고(故) 변중석 여사에 대해서는 애틋함을 가진 듯하다. 그에게 "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어떠셨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무학(無學)이에요, 무학. 열여섯에 아버지를 만나서 바로 결혼했거든요. 신설동 단칸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아버님이 아침에 나갈 때 물을 두 독 퍼다놓고 건설현장에 나가면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빨래도 밥도 했대요. 부엌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열여섯 살이면 정말…. 그래서 어머니가 많이 울었다 그러더라고, 창피해서."
그에게 어머니는 여러 사람에게 음식 해먹이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여름만 되면 강릉 경포대에서 민박을 하면서 피서를 했어요. 낮에 해수욕장에 가면 텐트를 쳐놓고 어머니가 감자 갈아서 감자부침 하면 우리가 먹었거든. 우리 가족이 많아서 껴 앉아서 먹으면, 사람들이 무슨 장사하는 줄 알고 '이거 얼마예요?' 물어보고 그랬죠."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지 않은 어머니와 달리, 정 의원의 아내 김영명(58)씨는 외국에서 오래 살았고 대학원까지 미국에서 나왔다. 정 의원에게 "아내의 음식은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 장모님이 경남여고 농구선수셨어요. 음식 이런 거에 별 관심이 없어요. 우리 집사람도 그렇고."
'아내는 요리 솜씨가 대단치 않다'는 얘기를 돌려 말한 것 같았다. 다시 "사모님이 잘하는 음식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가 미국 보스턴 MIT 대학원에 다닐 때 집사람도 터프츠(Tufts) 대학원 다녔는데, 물김치는 제가 담갔어요. 물김치 담그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내가 만들어도 먹을 만하고."
이건 '내가 아내보다 음식 솜씨가 낫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본인이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우리 집은 아주 민주화가 돼서요, 집안일을 절반씩 딱딱 나눠서 해요. 우리 마누라가 만들면 내가 먹죠. 잘 먹는 것도 일 아녜요?"
뭐든 맛있게 많이 먹는 정 의원은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하나만 고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중동 건설현장에서 먹은 짜장면과 양고기"를 꼽았다. "1981년도에 중동 건설현장에 갔는데, 거기 한국 근로자가 많으니까 식당이 커요. 몇천명이 밥을 먹으니까. 거기서 먹은 짜장면하고 양고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그러더니 그는 중동에서 있었던 한 연회를 기억했다. "FIFA 아벨란제 (전) 회장이랑 아랍에미리트에서 점심을 먹는데, 커다란 접시에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를 쌓아놓은 거야. 중동은 엄격한 위계사회인데, 밥 먹을 때는 운전사·수행원도 전부 같이 먹더라고.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게 사랑을 나누는 원초적인 행위라고 그래요. 요즘 우리 사회가 그런 게 많이 약해졌어요."
☞鄭 의원이 꼽은 식당은
국회의사당 정문 맞은편 금산빌딩 지하 1층에 있다. 국회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주인 홍양순(68)씨는 “여야 두루 오지만 새누리당 쪽이 조금 더 많은 편”이라며 정몽준·이재오 의원과 이상득 전 의원 등을 오래된 단골로 꼽았다. 설렁탕은 소 양지·사태 등 모든 부위의 살코기로 끓인다. 내장은 쓰지 않고, 머리고기는 삶아서 수육용으로만 쓰고 국물은 섞지 않는다. 홍씨는 “설렁탕은 원래 국물이 투명한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서 자꾸 ‘곰탕 아니냐’고 묻는다”며 “곰탕은 내장도 넣는다는 점이 설렁탕과 다르다”고 했다. 설렁탕 9000원, 도가니탕 1만7000원, 수육 3만5000~4만원, 도가니 수육 4만5000원. (02)785-5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