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7:1-6 하나님을 이용하는 미가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본문은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 되지 않은 개인과 가정이 어떻게 탐욕과 욕망에 물들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타락으로 기울어져 갈 것입니다.
이름뿐인 껍데기 신앙(1-2) 미가라는 이름은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인가?”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이름을 볼 때 정말 그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름대로 산다면 미가는 멋진 신앙인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대는 무너집니다(2). 미가가 그 어머니의 돈인 은 일천일백을 훔쳐 간 것입니다. 이 돈은 삼손에게 걸린 현상금과 같은 액수로서 엄청난 금액입니다(삿 16:5).
무너진 가정 신앙, 우상이 된 아들(3-4) 한 집안에서 어머니와 자식 간에 도둑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사 시대에 가정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한 단면을 보여 줍니다. 어머니가 저주를 선포하자 아들은 무서워서 돈을 다시 되돌립니다. 그러나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은을 돌려주며 여호와께 드린다는 어처구니없는 고백을 합니다. 완전히 왜곡된 신앙입니다. 심지어 미가의 엄마는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만듭니다. 아들을 감싸다 못해 아들을 축복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데 이것은 신앙을 자기 축복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모습입니다. 성경도 경건을 자기 이익의 방편으로 삼는 일을 경고하고 있습니다(딤전 6:5).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5-6) 신상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미가는 그 신상을 자기 집 신당에 모시고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들이 입는 의복인 에봇과 신의 뜻을 알아내는 데 쓰는 도구인 드라빔을 만들고, 편법으로 레위인도 아닌 자기 아들을 하나 택해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신앙과 예배를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마음대로 사유화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여기지 않아 일어나는 무질서의 극치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말하나 결국은 자기의 배를 챙기는 이기적인 종교인의 끝판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롬 16:17-18).
적용: 당신은 하나님을 당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조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주인 되셔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하루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1956년 대전역 앞 찐빵에서 시작한 성심당은 7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나눔 경영' 철학을 실천해온 동네 빵집입니다. 이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당일 만들어 팔고 남은 빵은 지역 단체에 기부한다는 것인데, 기부되는 빵의 규모가 매월 4천만 원에 달합니다. 고객에게는 좋은 빵을, 지역 사회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공헌하면서 직원들과 함께 좋은 것을 만들어서 베푼다는 취지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성심당의 2023년 영업이익은 300억원으로 파리크라상과 CJ푸드빌을 큰 차이로 넘어섰습니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나눔을 위해 빵을 굽는다는 성심당의 경영 철학이 불황에도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