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680호]
별을 삽질하다
허문영
오대산 북대 미륵암에 가면 덕행 스님이 계시는데, 매일 밤 별이 쏟아져 내려 절 마당에 수북하다고 하시네.
뜨거운 별이면 질화로에 부삽으로 퍼 담아 찻물 끓이는 군불로 지피시거나, 곰팡이 핀 듯 보드라운 별이면 각삽으로 퍼서 두엄처럼 쌓아두었다가 묵은 밭에다 뿌려도 좋고, 잔별이 너무 많이 깔렸으면 바가지가 큰 오삽으로 가마니에 퍼 담아 헛간에 날라두었다가 조금씩 나눠주시라고 하니, 스님이 눈을 크게 뜨시고 나를 한참 쳐다보시네.
혜성같이 울퉁불퉁한 별은 막삽으로 퍼서 무너진 담장 옆에 모아두었다가 봄이 오면 해우소 돌담으로 쌓아도 좋고, 작은 별똥별 하나 화단 옆에 떨어져 있으면 꽃삽으로 주워다가 새벽 예불할 때 등불처럼 걸어두시면 마음까지 환해진다고, 은하수가 폭설로 쏟아져 내려 온 산에 흰 눈처럼 쌓여 있으면 눈삽으로 쓸어 모아 신도들 기도 길을 내주시자 하니, 하늘엔 별도 많지만 속세엔 삽도 많다 하시네.
- 『별을 삽질하다』(달아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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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자이기도 한 허문영 시인의 따끈따끈한 신작 시집 『별을 삽질하다』의 표제시를 띄웁니다.
오대산이 왜 오대산인지는 아시지요? 북대(미륵암), 중대(사자암), 동대(관음암), 서대(수정암), 남대(지장암)라는 '다섯 개의 봉우리[臺]'가 있는 산이라 '오대산'으로 불리는 것은 아시지요.
그 북대 미륵암에는 정말로 덕행 스님이 계시고, 북대의 밤하늘엔 정말 별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흩뿌려진 북대의 별들을 이불로 덮고 잔다고 했는데, 정말로 별이 많지요. 얼마나 별이 많길래 스님께서 "쏟아져 내린 별이 절 마당에 수북하다"하실까요.
시는 단순하지요. 북대의 밤하늘 그 별의 별 이야기이지요. 그 별을 삽질하는 이야기이지요.
별이 뭘까요? 희망, 사랑, 그리움....
무엇이 되었든 하늘에 뜬 별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니, 삽으로 퍼서 군불, 두엄, 돌담 등으로 쓰는 게 좋겠다는 시인의 말이 참 가슴에 와닿지요.
"하늘엔 별도 많지만 속세엔 삽도 많다"는 스님의 말씀이 그러고 보면 예사롭지 않습니다.
삽이 뭘까요? 세상의 하찮은 것들 중에서도 하찮은 것, 그 삽이 부처요, 그 삽질이 대자대비 부처의 마음 아니겠냐, 스님의 말씀은 결국 그런 뜻이겠지요.
시인과 스님의 가벼운 농담이지만, 재미있는 농담이지만, 곱씹을수록 그 울림이 작지 않지요.
허문영 시집 『별을 삽질하다』와 함께 가을을 만끽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2019. 10. 28.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오대산에 가면 알펜시아가 생각나고
알펜시아 가면 박 홍보팀장이 생각났습니다.
실은 박홍보팀장이 생각나서 알펜시아에서 지내고
알펜시아에 가면 오대산을 걷게 된다는 거죠.
홍보팀장으로 계실 땐 막상 바빠서 못갔네요.ㅎ
지금이 더 좋아요. 편집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