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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 잠이 들었던 화가 선생님은 광주에 도착하여 철수가 깨워서야 눈을 떴다.
그동안의 사정을 전연 모르는 화가 선생님이
“어! 벌써 도착했나? 내가 너무 취했던 모양이군. 어때 오늘 모두들 즐거웠지 않나?”
하는 물음에
“네! 아주 즐거웠어요.”
하고 미세스 김이 얼른 대답하고 다른 사람들도 가볍게 고개를 끄떡여 응답을 한다.
화가 선생님까지 기분 나쁘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공통된 생각으로
그리고 이어서 작별인사를 하느라 어수선해지며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졌지만, 경숙과 경화는 인사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다음날 경숙이 그림공부를 마치고 화방에서 나오는데 철수가 기다리고 있다가 “경숙씨!”하고 부른다.
뜻밖에 기다리다가 자기를 부르며 다가오는 철수를 보고 경숙은 주춤하고 섰다.
경숙이 앞에까지 다가온 철수가
“어제 일로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저로 해서 욕을 보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정중히 사과한다.
경숙은 예기치 못한 철수의 사과에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철수씨가 사과할 일이 뭐가 있어요.”
“경화가 경숙 씨한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 때문에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랬어요.”
“충분히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사과하는 의미에서 경숙씨에게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안 되겠는데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생각 같아서는 철수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싶으나 그날은 친구들과 선약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철수는 섭섭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언제 시간을 좀 내주십시오.”
“알겠어요.”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이는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지고 오며 철수는 경숙이 화방 들어와서 얼마 안 돼 공부하러 오는 경숙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호감을 가졌는데 아니 어쩌면 처음 선생님에게서 경숙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어제 경숙과 이야기해 보고 또 그녀의 행동을 보고는 자기 마음이 경숙에게로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경숙은 경숙대로 철수에게 호감이 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경화가 철수를 좋아하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기울지 않도록 주의하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며칠 후 철수가 또 경숙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둘이는 가까운 찻집으로 들어갔다.
찻집으로 들어간 둘이 막 자리를 잡고 마주 앉으려고 하는데 경화가 뒤쫓아 들어와 철수 옆자리에 앉는다.
경숙과 철수는 깜작 놀란다.
야외 사생을 다녀온 후 여러 번 철수에게 만나 줄 것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경화가 오늘은 마음먹고 철수를 만나려고 왔다가 화방 근처에서 서성이며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철수를 보았다.
상대가 누군가 혹 경숙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확인하고 싶어 숨어서 보다가 철수가 정말 화방에서 나오는 경숙을 데리고 찻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 온 것이다.
경숙은 경화의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또 경화에게 오해를 받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 경화의 등장에 당황하던 철수가 얼떨결에 경숙의 손을 잡고
“우리 나가요.”
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걸 본 경화가
“왜 내가 같이 있으면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나? 나가려고 하게. 그리고 언제부터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다니는 사이가 됐어?”
그 말에 경숙은 얼른 철수가 잡은 손을 빼고 자리에 앉는다.
경화의 오해를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경화씨! 오해하지 말아요. 우린 화방 앞에서 만나서 단지 차 한 잔 마시려고 들어온 것뿐이에요,”
경숙이 변명을 한다.
“그런데 왜 나를 보고 도망치듯 나가려고 해?”
“아니에요, 안 나가요. 우리 같이 차 한 잔 마셔요.”
“그럼 내가 방해가 될 텐데. 둘이 벌써 손까지 잡는 사이면서.”
“우리가 손을 잡게 만든 것은 경화야. 왜 사람이 그렇게 예의가 없어, 부르지도 않았는데 우리 테이블에 와서 앉고.”
“원래부터 내가 예의 없는 사람이었어요?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그렇게 예의 있는 사람이 남의 성의를 무시하고 내가 몇 번을 만나자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하더니 이 여자와는 얼마나 만났다고 벌써 손까지 잡고 다녀요?”
경화가 그동안 섭섭한 마음을 모두 털어 놓는다.
“경화씨 오해에요. 우리 손잡고 다닌 적 없어요.”
경화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마음에 경숙이 얼른 말한다.
“그럼 뭐에요? 조금 점에 손을 잡은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손을 잡게 만든 것은 경화야.”
“참! 두 사람이 서로를 감싸주지 못해 안달이군.”
“경화 왜 그래? 경화에 대한 나의 마음은 벌써 여러 번 말했을 텐데.”
“나보다 이 여자가 더 좋은 이유가 뭐야?”
경화가 원색적으로 자기 마음을 표한다.
“경화씨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오늘 처음 같은 화방에 다니는 동료로서 차 한 잔 같이 마시려고 들어 온 것뿐이어요.”
한 것은 경숙이고
“경화! 전에는 이렇게까지는 안 했는데 오늘은 왜 그래?”
“글쎄,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구데?”
경화가 자꾸 이렇게 나오자 경숙은 철수와 자기가 정말 사귀는 무척 가까운 사이인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이 든다.
그리고 이래서는 안 된다. 경화가 이렇게까지 철수를 좋아하는데 하는 생각이 미친 경숙은
“저 먼저 가겠어요. 두 분은 나중에 오세요.”
철수가 따라 나오지 못하게 이렇게 쐐기를 박고 일어난다.
“나도 가야겠어요.”
하고 철수가 따라 일어나는 것을
“철수씨는 경화씨와 좀 있다 오세요.”
경숙의 그 말에 철수는 자기가 고집을 피우고 일어나면 경화가 정말 자기와 경숙의 사이를 의심할 것 같아 경화와 둘이 남는 것이 불쾌하지만 참는다.
경숙이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천사표는 가셨네. 철수씨는 저 여자 어디가 그렇게 좋아?”
경화가 한 마디 한다.
경숙과 자기는 경화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경화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으나 이런저런 변병을 하며 경화와 말을 섞는 것이 귀찮아 아무 말도 안 하고 딴전만 피우고 있던 철수는 경숙이 나가고 10여 분 지나자 경화가 잡는 것도 뿌리치고 자기도 일어나 찻집을 나왔다.
경숙의 행동으로 경숙과 철수의 사이가 자기의 생각처럼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경화는 철수를 잡기 위해 철수가 화방에 나오는 날이면 자기도 화방에 나와 같이 공부를 하겠다고 떼를 쓴다.
화가 선생님은 경화의 떼를 못 이기는 체하고 경화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둬 세 사람 철수와 경화 경숙이 같은 날 수업을 받게 됐다.
그러면서 세 사람의 공부 시간이 겹치기도 하고 나누어지기도 하였다.
경화가 수업 시간을 자기 맘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러는 경화를 화가 선생님도 말리질 않는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선생님이 보기에는 경화와 철수가 좋은 짝이기 때문이다.
철수는 경화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화방을 그만두고 싶은데 그러면 경숙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아쉬움으로 계속해서 화방을 나온다.
실제로 철수의 마음은 점점 경숙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경화의 훼방이 오히려 철수의 마음을 경숙에게로 기울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다만 경숙의 생각을 알 수가 없고 경화가 옆에서 그렇게 훼방을 놓고 있는 마당에 경숙에게 자기의 마음을 표한다는 것이 경숙에게 짐이 될 것 같아 경화와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나서 경숙에게 다가가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해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인지 경화가 화방엘 안 나왔다.
기회를 잡은 철수가 그림 공부가 끝나고
“경숙씨! 우리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합시다. 지난번에 경화 때문에 차도 한잔 변변히 못 마셨는데.”
하고 제의를 한다.
“그러다 또 경화씨한테 혼나게요.”
경숙이 웃으며 대꾸한다.
“그때는 참 미안했어요. 오늘은 경화가 없으니 또 그런 일은 없겠죠.”
“글쎄요. 그런데 경화씨가 철수씨를 무척 좋아하나 봐요.”
경숙의 그 말에 철수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그 모습을 본 경숙은 철수의 마음을 알면서 공연한 말을 했다고 후회한다.
그리고 그 미안한 마음에
“좋아요. 철수씨가 저녁 사주시겠어요?” 한다.
경숙의 그 말에 철수가 환하게 웃으며
“물론이죠.”
하고 앞장을 선다.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와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경치 좋으시네.”
하며 경화가 들어와 앉는다.
두 사람은 놀래서 잡았던 수저를 내려놓으며 경숙은 ‘참으로 귀신같은 여자다. 어떻게 알고 또 왔을까? 귀찮아 지겠군.’하고 생각을 했고 철수는 ‘찰거머리 같은 계집애.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떼어버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경화는 오늘 일부러 화방을 빠졌다.
두 사람과 같이 공부하는 동안 겉으로는 아무런 사이가 아닌 것 같이 행동하지만, 그리고 경화의 느낌인지 모르지만, 은연중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경숙은 경화를 생각해서 감정의 표현을 하지 않으나 철수는 은근하게 자기의 감정을 경숙에게 표한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가 정말 어떤 것인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숙의 말대로 그냥 한 화방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서로를 지인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경화가 느끼는 것처럼 서로를 이성으로 좋아하는지 그런 생각으로 집에 일이 있다면 화방을 빠졌던 것이다.
자기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숨어서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면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생각을 알게 되고 그 결과가 정말 경숙이 말한 대로 두 사람 사이가 별스러운 것이 아니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경숙에게 확실한 경고를 하여야겠다는 생각하고 그런데 자기가 빠진 첫날부터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다.
아니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식당으로 밥을 먹으로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지인끼리 저녁 식사같이 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철수의 습성을 잘 아는 경화는 이것을 묵과할 수가 없다.
자기가 철수와 사귈 때을 생각해보면 철수가 경화를 데리고 밥집을 간 것은 둘이 사귀고 상당히 스스럼이 없어진 다음이다.
그때까지는 찻집에서 만났다, 만나서 시간을 보내다가 식사 때가 되면 헤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철수는 웬만큼 친하지 않은 여자와 단둘이 앉아 식사하면 당황스러워 식사를 할 수 없어 피한다고 했다.
그런 철수가 어떻게 자기가 화방을 빠지자마자 기회라는 듯이 경숙을 데리고 밥집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필경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아니 경숙은 어떤지 몰라도 철수는 분명 경숙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 경화는 심한 질투심이 일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려고 일부러 공부를 빠진 경화가 경숙의 공부가 끝나 갈 쯤 화방 근처에 와보니 수업을 벌써 끝난 철수가 또 화방 근처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고 경숙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확신했는데 역시 잠시 후 경숙이 나오자, 둘이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따라 들어가고 싶은 것을 좀 더 극적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음식이 차려지는 것을 보고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두 번씩이나.”
철수가 얼굴을 붉히며 힐책을 한다.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두 사람이 만나는 곳이면 나는 어디든지 가.”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어른스럽게 굴어.”
“어른스러운 사람들이 그렇게 굴어. 뒤로 호박씨 가면서.”
“무슨 말이야?”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내가 안 보이자마자 둘이 같이 저녁 식사라.”
“경화씨 우린 그냥 동문끼리 간단하게 저녁 식사나 하려는 거예요.”
경숙이 말했다.
“경숙씨는 늘 그렇게 변명만 해요. 낮 간지럽게.”
경화가 빈정거린다.
경숙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미는 것을 막으며
“변명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사실은 무슨 사실, 그러면 왜 내가 있을 때는 이런 자리를 안 만들었을까?”
경화의 이러한 행동이 오히려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한다.
자꾸 두 사람이 자기 몰래 사귀고 있다고 강조를 하는 꼴이니
“그래! 고마워, 경화가 우리를 정말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군.”
철수의 그 말에 경화는 황당함을 경숙은 쑥스러움을 느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경화가 비약시키니까 우리도 경화의 말처럼 그렇게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고맙지.”
철수의 그 말에 경화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수씨가 경숙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는 것을 경화는 참는다.
그 말을 했다 철수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자기가 경숙에게 패배하는 것 같아서
“철수씨가 공연히 그러는 거예요. 경화씨가 이러니까.”
미안한 생각에 경숙이 한마디 한다.
“내가 무얼 어쨌는데?”
“자꾸 오해하시잖아요.”
“내가 오해를 하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경화는 경숙이 밉다. 그래서 경숙이 말에는 좋은 말로 대꾸가 안 된다.
경화가 이렇게 나오니 경숙은 할 말이 없다.
“그래! 모두가 사실이야, 나 경숙씨 좋아해 그래서 사귀기로 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일에 관심 좀 꺼줘.”
철수에게서 노기에 찬 소리가 나온다.
자기에게 못되게 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경숙에게 못되게 구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더구나 자기가 경숙이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경숙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데, 자꾸 경화가 이렇게 나오면 경숙이 ‘어떻게 했기에 자기가 싫다고 하는 여자가 이렇게 죽자고 쫓아다니게 하고 나까지 이런 모욕을 받게 하나?’ 하고 자기에게 환멸을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이 철수를 화나게 한 것이다.
“철수씨!”
경숙이 놀래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말이에요. 나 정말 경숙씨와 사귀기로 마음먹었어요.”
“철수씨! 그러지 마세요. 경화씨가 철수씨를 얼마나 사랑---.”
경숙이 울상이 되어 말했다.
“아니에요. 내 마음이 확실한 것을 알면 경화도 마음이 변할 거예요. 우리 그만 나가요.”
그렇게 말하고 철수는 경숙의 손을 잡고 음식점을 나왔다.
경숙이 그러지 말라고 뿌리쳤지만, 화가 많이 난 철수가 듣지 않고 더욱 잡은 손목에 힘을 주어 경숙은 아픔을 참으며 철수를 따라 나온다.
경숙은 철수에게 끌려 나오며 경화를 자꾸 돌아보았다.
철수에 행동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경화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철수가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목만 아프다.
경화는 그러고 나가는 철수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다.
그렇게 나가는 두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으니까 나가는 두 사람을 멀거니 바라보며
결국은 자기의 오해와 지나친 행동으로 철수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아주 자기에게서 떠나게 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경숙에게 철수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경고를 하려고 했는데 순간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으로 어깃장만 놓다가 결국은 자기만 비참하게 되어버렸다.
음식점을 나와서도 경숙은 철수에게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워낙 철수가 단단히 잡고 있어 뺄 수가 없었다.
경화에게 화가 난 것을 참지 못해서 자기가 경숙의 손을 잡은 것을 알지 못한다.
웬만해서는 화를 안 내는 철수도 한번 화가 나며 이렇게 좀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철수는 결국 택시를 잡고서야 경숙을 놓아주었다.
경숙은 철수가 잡았던 손목이 아파 그 자리를 비비느라고 철수가 택시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하는 것을 흘려들었다.
좀 시간이 지난 뒤 보니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 무등산 쪽으로 간다.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무등산으로 가요.”
“이쪽으로 가면 무등산이라는 것은 나도 알아요.”
경숙은 철수의 행동에 조금은 뾰로통해 있다.
자기를 강제로 택시에 태우고 행선지도 물어보지 않고 무등산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경숙의 태도에서 자기가 잠시 이성을 잃고 과했던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고 또 경숙의 태도에서 경숙의 불편한 마음을 눈치챈 기철이 당황해하며
“아! 미안해요. 경화 때문에 화가 나서 그만 제가 경숙씨에게 무례를 범했군요. 정말 미안해요. 기사 아저씨 다시 시내로 들어가요.”
철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 모습이 우스워 경숙은 피식 웃으며
“됐어요. 그냥 무등산으로 가요. 철수씨 덕분에 택시 타고 무등산도 올라가 보겠네요.”하였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다행이고요. 하! 하! 하!”
철수도 언제 화가 났었나 할 정도로 쾌활하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며 경숙도 조용히 미소를 띠운다.
무등산 정상에 도착한 이들은 한적한 경양식 집에 들어가 앉는다.
“그런데 철수씨 화나니까 무섭네요?”
자리를 잡고 앉으며 경숙이 한 말이다.
“내가 그랬죠. 미안해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데 화가나면 나 자신이 통제가 안 돼요. 앞으로 그렇지 않도록 주의할 께요.”
철수가 이렇게 다시 한번 사과를 하고 이 둘은 음식을 먹으며 조용하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이날 후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 이후에도 경화가 가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방해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알고부터는 경화의 방해 공작이 오히려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하는 결과가 되고 그런 것을 보고 질투를 하던 경화가 차츰 멀어지더니 나중에는 화방도 그만두었다.
마침 그때 자기 아버지와 같은 국회의원의 아들에게서 청혼이 들어와 한번 만나보고 억지로라도 마음이 멀어진 철수보다 더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는데 상대방 남자도 적극적이고 더욱이 아버지가 거의 강권하다 시비하여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면서
아마 정치가 아버지 밑에서 자라 이익이 나는 장사로 일찌감치 돌아서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배운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보다 배경도 미모도 좋지 않은 경숙에게 빠진 철수가 밉고 자기 정도의 환경이라면 사고무친의 철수보다 좋은 사람을 이렇게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동안 철수에게 목을 맨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게 했는지 모른다.
이후 두 사람은 아무 장애 없이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누구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불행은 다른 곳에서 준비되어 있었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나날이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