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글은 이미 7-8년 전부터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논해지던 글이었다.
우선 과거에도 내가 HOF글 을 통해 이야기 했듯 나는 박정희의 친일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그가 만주군(사실상의 일군)의 장교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반박하지 않겠다.
다만 위와 같은 거짓 선동글로 많은 이들이 낚이는 것이 안타까울뿐이며
성중한 옹 정도의 사람이 이글을 거짓 낚시 선동의 목적으로 퍼오진 않았을거라고 본다. 단 박정희를 싫어하는 중한옹이니 퍼온거겠지만서도.
몇 가지 이글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주겠다.
1.간도특설대-증거가 종범성님이네? 보이지 않는 간도특설대 경력은 자네들이 다 묵어부렀어?
참고로 본 펌글이 훗날 더 퍼지지 못하고 논파당한 이유는 저글에서 열거한 사례중 결정적인 2가지 부분이 사실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문서상의 기록으로도 기록에 남아있는 여타 조선인 장교의 증언을 통한 교차검증으로도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경력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며
심지어 그런 이유로 최근의 진보계열의 역사학자들 조차도 간도특설대설은 거의 쓰질 않는다.
왜냐하면 이점을 밝히기 위해 실제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노령의 생존인물 들에게 하나하나 대조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박정희를 본적도 없다고 했고
이러한 논란에 결정타를 먹인것은 2006년 간도특설대 출신 이용씨의
"박정희를 보지 못했다" 이다.
이용은 참고로 간도특설대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대표적인 조선인 이었고 이용의 경우 복무경력과 기록이 모두 구 일본군의 공식문서에 남아있다.
훗날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친일경력을 없애기 위해 문서를 없앴느냐는 개드립을 가끔 시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고로 본 복무기록은 박정희 정권차원에서 건드릴 수가 있는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런걸 탐구하기 위해 기록은 구일본군의 문서자료를 계승한 자위대 문서보관소를 털어야하는데 여기는 일본인들도 학자의 학술적 연구가 아닌이상 열람하기 어렵기 때문이거든.)
다른 조선인 장교들의 이름은 하나하나 다 기록되어있는데 왜 박정희만 없을까?
그 많던 복무기록은 자네들이 박정희 이름만 골라서 다 묵어부렀어?
자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떻게든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눈물겨운 자칭 진보사학자 여러분들의 간도특설대 캐기는 계속된다.
"흐..흥! 박정희 나빠! 일본나빠! 대한민국 친일파 나빠! 조사의 객관성 객관성!!"
이라는 병신짓 못난이 징징 크리를 시전하게 된다. 일본과 박정희가 쎄쎄쎄를 해서 자신의 간도특설대 기록을 덮었을 지도 모른다는 투로 말이다.
자 그러자 여기서 대륙의 기상이 드러나고 말았다.
본 자료는 과거 중국측에서 간도특설대에 관해 이를 갈면서 조사한 자료다.
(왜냐하면 간도특설대는 주로 팔로군 계열이나, 중국 공산군하고 싸웠으니 이가 갈릴만도 하지. 입장바꾸어서 나라도 나랑 미칠듯이 싸운놈들이면 이가 갈리겠다.)
근데 위 자료를 보아도 알겠지만 박정희는 없다. 인비저블 종범이 아니라 인비저블 다카키 마사오가 된것이다.
진보성향의 사학자 신주백도 결국 박정희 간도특설대설을 그래서 포기했다.
그리고 박정희 간도특설대 가설 중 대표적인 떡밥 1순위였던 마쯔모토란 이름으로 간도특설대를 한 것이라는 떡밥은 이미 국내사학계에서 흑역사가 되었다.
왜냐하면 결국 그걸 찾아보니 마츠모토는 박정희가 아니라 현모씨였거든.
2.오카모토 미노루로의 창씨개명설
박정희의 친일 경력을 비방하는 자들의 전가의 보도가 오카모토 미노루 설이다.
미안하지만 현재 국내의 공식 사학계에서는 미노루설을 논하는자는 흑역사 취급받는다.
왜냐하면 뻥이거든. 그래서 이제 진보계열 사학자들도 오카모토 놀이를 못한다.
우선 더 이상 장난질을 치며 판타지 놀이를 못하게된 팔랑귀 어린이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1)구체적인 자료
오카모토 미노루 놀이의 1차 떡밥은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시절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떡밥의 출처가 있거든
岡本先生->한국어로 풀면 오카모토 선생님이다.
그리고 오른쪽이 우리가 잘아는 박정희고.
하이앤드급 팔랑귀들은 이 자료를 통해 나쁜 상상을 한다. 바로 오카모토와 박정희를 엮는것이다!
참고로 본 사진을 제공한 전 KIST 초대 이사장 김병희 박사는 대구사범학교 출신이었고 오카모토 미노루 선생님에 대해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음 우선 본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김병희 박사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교육에 선구적 인물로서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여 오늘날 우리의 물질적 풍족에 이바지해주신 좋은분이다.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가자)
현재 국사편찬위원회가 갖고있는 <조선총독부 직원록>은 해방이후 일제가 중앙 총독부 소관의 구체적인 총독부 소속 직원명부를 소각하고 가져가지 못한 바람에 훗날 대한민국인들이 그 자료를 얻었다.
기록상 남아있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명칭의 공무원은 단 한명뿐 그것도 박정희의 선생님으로 남아있다.
(물론 오카모토 미노루는 정말로 천하의 개쌍놈이 맞다. 그는 우리의 광주학생항일 운동을 악날하게 탄압했을뿐만 아니라 김병희 박사와 당시 대구사범학교 출신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생들을 개패듯 패고 조선인 학생들을 완전 디스 시켰다고 한다.)
2)거짓 증거의 논파과정
우선 오카모토 설이 인터넷판에서 너무 심하게 퍼져나가게 되자 학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대다수의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학자들은 오카모토 설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다.
첫째 우선 일제시대에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창씨개명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저 일본의 철퇴가 무서우니 살아남기 위해 수치스럽지만 하긴해야했어서
대부분 자기 원래 조선식 이름을 한자로 쓸때를 파자를 내어 쓰거나 어떻게든 원형대로 남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령 李奎河(이규하)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치면 木子奎河를 하거나, 아니면 李(중간에 의미있어보이는 한자)奎河
를 넣어서 이름을 만들곤 했다. 물론 박정희 처럼 통째로 다카키 마사오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창씨개명은 대부분 한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름을 2번이나 바꾸는 사람은 흔치 않다.
더군다나 군인으로서 우수한 성적으로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이름 자체를 XX(계급) 다카키 마사오
관등성명상으로 늘 달고살아야하는 박정희 입장에서 이름을 바꾸어서 얻을 이득이 없고, 지금도 직업군인들은 어지간해선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
둘째 아무리 박정희의 공식 복무기록이나 문서자료등을 살펴보아도 다 다카키 마사오로 되어있지 오카모토로 된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현존하는 문서를 대조해서 오카모토를 찾아보면 위에 단락에서 내가 소개한 오카모토 미노루 선생만 나올뿐이었다.
즉 개소리.
그러던 와중 2000년대에 들어 과거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조사가 본격화 되자 이런 자료가 나왔다.
본 자료는 <임시육군군인군속계>라는 자료로서 당시 복무했던 장교들의 신상명세를 다루고 있다.
당연히 해당 이미지는 박정희에 관한 기록 페이지다.
이것은 국가기록원에서 과거사 조사를 위해 갖고 있는 과거 일제시대의 문서들을 뒤져본 와중에 튀어나온 자료인데 본
자료가 작성된 날짜는 분석 결과 1945년으로 나왔다.
즉 박정희는 1945년에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는 이름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는 오카모토 떡밥을 퍼트린 이들은 박정희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절차를 통해 이름을 개명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시점과 사료를 제시하지 못한다.
어줍잖게 들이대는 증거가 일본육사에 입학할때 오카모토로 개명했다는건데 일본 육사에 입학하면서 오카모토로 개명한 이름이 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복무,졸업기록 및 45년도 기록에 다카키 마사오로 나와있는데?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은 자네들이 다 묵어부렀어?
자료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기각한다. 본자료는 대한민국의 최고 기록기관이자 중요문서 관리기관인
국가기록원이 보유하고 사실의 여부를 입증한 자료이며, 무려 "조선인 강제연행 증거 발췌" 때도 쓰이는 자료다.
왜냐하면 본 문서는 일본군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들의 신상 뿐만 아니라 징용끌려가신 우리 조상님들에 대해서도 다루고있거든.
덕분에 해방이후 열심히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가진 문서를 소각했던 조선총독부 놈들은 이 중요한걸 소각할때 빼놓은 바람에 우리한테 좆잡힌 꼴이 되었고 일본내 극우들한테 욕 존나 먹었다고 카더라 통신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다음글도 같이 첨부한다. (매우 당연하게도 저 자료는 신상명세 이기 때문에 박정희 외에도 박정희의 형들,가족들 이름이 나와있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임시육군군인군속계』에 따르면 박정희는 1945년까지도 高木正雄이라는 창씨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위 기록에 등장하는 박정희의 큰 형 박동희도 高木東熙로 나타나 있다. 가계의 창씨가 모두 高木氏인데 박정희만 오카모토로 성씨를 멋대로 바꿨단 말인가? 비록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었지만 유교적 사고가 상당히 잔존하던 당시의 식민지 조선에서 그런 짓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여자와 결혼을 해야했을 정도로 엄격한 집안분위기 였던 박정희의 가계에서 박정희가 성씨를 멋대로 바꾸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직업장교의 길을 택한 군인으로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과거 내가 블로그에서 썼던 편집글을 귀찮아서 복붙하고 편집, 물론 요샌 블로그 관리 안한다.)
3.결론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하고 싶은말이 있지만 나는 늘 밝혀왔듯 최근 복리후생과 애인만들기 사업에 바빠서
그리고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자 여기서 글쓰기를 마치겠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난 박정희를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 적은 없다. 시대상황을 들어 그를 옹호하거나 이런 거짓자료에 대해 반박했을 뿐이다.
(심지어 과거 박정희 친일논란에 대한 글을 썼을 때도 위 선동펌글을 첨부해주기도 했을정도니까 )
(참고로 그글의 제목은 내 이름은 제국황군 다카키 마사오 이다.)
(왜냐하면 글의 내용중 사실과 다른부분은 있지만 박정희가 일본육사를 졸업한 일군장교였다는 사실은 사실이니까)
왜냐하면 의견은 다를 수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무조건적으로 강제하는 짓은 내가 싫어하는 12시방향놈들과 다를바가 없으니까.
하지만 거짓 자료로 사람들을 혹세무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장교로서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며 악날하게 조선인 독립투사를 때려잡으며 날 뛰었다거나, 완벽한 JS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오카모토 미노루로 개명했다는 설은 모두 거짓임이 이미 전공자들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난 상태다.
박정희의 친일을 굳이 공격하고 싶다면 현재까지의 진실된 자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쨋거나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였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니까.
다만 사실의 안에서만 논쟁하라는 것이다. 이상 글을 마친다.
P.S:중한옹의 마음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운영위 선배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사람들이 양쪽측면을 모두 보고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글을 써놓습니다.~
첫댓글 드드드드드가모프프프프프
좌좀 아닥 모드
잘읽었음..
마 드가모프 행님은 조국근대화의 영웅 박정희각하를 제대로 아는 분 아이가?
오 이런 글 좋다. 자주 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