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결혼 생활이 사오년이 지난 90년대 초 증권가에 불어 닥쳐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나 증권을 거래하던 수많은 사람을 거덜 나게 하고 죽게 하여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게 만든 소위 깡통계좌 사건이 그것이다.
지금도 일부 증권거래는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거래가 있지만, 이때는 증권거래 모두가 신용을 바탕으로 했다.
고객이 돈을 증권회사에 맡겨 놓고 거래를 해서 주식을 사고팔 때는 고객에게 물어보고 고객과 상의해서 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증권시장의 특성상 이것이 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때에는 고객이 맡겨 놓은 돈을 가지고 증권사 직원이 고객의 승인 없이 주식을 마음대로 거래하였고 특별한 신용거래이나 미수거래라는 방식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객이 맡긴 돈으로 증권사 직원이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유망주식을 현금의 2.5배까지 사서 신용거래는 3개월 안에 미수 거래는 3일 안에 주가가 좋을 때 팔아 이익금을 내는 거래가 있었다. 이렇게 산 주식이 예상과 같이 오르면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지지만, 예상과 달리 갑자기 주가가 폭락하면 큰 손해가 발생하여 돈을 맡긴 계좌의 돈이 모두 없어지고 오히려 빛을 떠안게 되어 깡통계좌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천만 원을 맡겼는데 증권사 직원이 미수거래로 2천5백만 원어치의 주식을 샀다가 주가가 반으로 떨어지면 원금은 없어져 빈 깡통이 되고 통장에는 오히려 2백5십 만원의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90년대 초 상승을 거듭하며 호황을 누리던 증권가 그래서 증권사에 근무하는 여직원도 재산이 이삼 억은 된다고까지 하던 증권가에 주가가 갑자기 급락하면서 증권가를 휩쓸었다.
신용거래나 미수 거래를 돈을 맡긴 고객에게 물어가면서 고객과 상의하여 했으면 이런 사태가 터졌을 때 증권사 직원들의 책임이 전연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전적으로 져야 하는 무한 책임은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이 맡겨 놓은 돈을 가지고 증권사 직원들이 임의로 했다면 (그 때의 상황으로 보아 모든 증권가에 거의 모든 직원이 임의로 신용거래나 미수 거래를 하여 거의 모든 직원이 같은 사태에 처했지만) 고객들은 모든 책임을 증권사 직원에게 돌리려고 할 것이다.
고객의 돈 약 육칠십 억 원을 가지고 주식거래를 하던 철수도 고객의 돈 일부를 신용거래에도 미수 거래에도 넣고 있었다.
사건이 터지자 철수도 그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철수도 고객의 돈으로 신용거래로 또 미수 거래로 처리하여 많은 손해를 보았고 손해를 본 고객들이 손해를 배상하라고 추궁을 하고 나선 것이다.
철수의 손에서 손해가 난 금액이 15억 원 가까이 되었다.
그것도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철수가 미리 손을 썼는데도.
손해가 난 고객들은 호황일 때 철수가 내어준 이익금은 생각도 않고 지금의 손해만 물고 늘어진다.
사람은 참으로 믿을게 못 되는 동물이다.
이익이 났을 때는 고과장(이때는 철수가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였었다.)이 최고라고 그렇게 치켜세우더니
회사에서도 얼마간에 보전을 해준다고 하지만 그 액수가 미미한 것이고 나머지는 직원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집을 팔았다.
결혼하여서 두 사람의 봉급을 아끼고 결혼 전 철수가 모아놓은 돈을 보태고 또 일부는 은행 대출을 받아 어렵게 마련한 집
그것을 마련했을 때 둘이 손을 잡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특히 경숙은 눈물까지 흘리며, 가슴 아픈 일이지만 빚쟁이 아닌 빚쟁이들의 등 살에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러나 그 금액으로는 택도 없이 모자란다.
집을 팔고 경숙의 친정으로 들어갔다.
앞에서 말했지만, 철수는 고아였다.
부모님이 철수가 어려서 돌아가셔서 큰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고등학교까지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나오고 대학은 고학하며 다녔다.
큰아버지 댁도 잘사는 집이 아니고 큰아버지 자식도 3명이나 되어 철수를 가까스로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그것도 철수가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큰 집은 대학에 입학하여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나왔고 대학도 자기의 용돈을 벌기 위해 고학을 했지만, 등록금은 거의 장학금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집을 팔게 되자 경숙의 친정으로 들어간 것이다.
철수의 봉급에도 경숙의 봉급에도 차압이 붙고 경숙의 부모님들도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손해 본 고객들 중 일부가 집으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기 때문이다.
철수는 거의 매일 찾아오는 고객들로 시달림을 받는다.
철수가 집을 팔아 우선 크게 손해 본 사람들에게 일부를 보전해 준 것이 오히려 빌미가 되어 한 푼도 보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 누구는 보전해 주고 누구는 안 해 주느냐며 등살을 대는 것이다.
심한 사람은 철수 때문에 파산을 당했다고 칼을 들고 와서 너 죽고 나 죽자고 협박을 한다.
철수는 회사에 나가는 것이 고문을 당하러 가는 것 같다.
그래서 회사를 쉬면 집으로 찾아오고 집에도 안 들어가면 경숙이 부모님들에게 행패를 부린다.
철수가 있는 곳을 대라고 하며
철수는 자기로 인해 집안이 거덜 나서 처가 신세를 지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경숙의 부모님들에게도 폐를 끼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러한 철수에게 눈 한번 흘기지 않는 경숙을 생각해서 어떻게 하든지 현실을 이겨보려고 했지만 날로 심해지는 고객들의 행패에 더 이상 이렇게는, 여기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철수는 어느 날 경숙과 마주 앉았다.
“여보! 당신한테 참으로 미안해, 그러나 더 이상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살 수가 없군.”
철수가 미안한 마음에 어렵게 말을 꺼냈다.
깡통계좌 사건 후 남편이 무척 힘들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경숙은 말없이 철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당신이 그리고 장인 장모님이 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것을 볼 수가 없어, 어떤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
“무슨 말이에요?”
“나는 광주를 떠나려고 해. 당신은 여기 있어. 아니 있어야겠지, 부모님들이 여기 계시니까. 그리고 우리의 결혼 생활을 더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이혼을 해도 좋아. 나는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것이 당신을 위해 더 좋을 것 같아. 아니 확실히 좋아.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할께. 일이 끝나면 나는 여기를 떠날 거야.”
철수가 어렵게 말을 한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경숙의 물음에 쇳소리가 난다.
“우리 이혼하자는 말이야.”
“그걸 말이라고 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나를 그렇게 형편없는 여자로 알고 있었다니, 정말 섭섭하네요.”
경숙에 말소리에는 분노와 섭섭함이 매어있다.
“그런 게 아니야.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하는 거 더 이상 못 보겠어서 그래!”
“나는 당신의 여자에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기로 맹세한, 그런데 날 보고 이혼을 하자고요. 당신의 형편이 안 좋다고. 나는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이 있는 데는 항상 내가 있어요. 당신은 내가 곤경에 빠지면 나를 버리실 건가요?”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러면서 나보곤 당신을 떠나라고요?”
“당신은 여자잖아?”
“여자이기 전에 나는 당신의 아내예요. 당신을 나의 남편으로 선택한.”
“하지만 당신은 여기 직장이 있잖아. 이혼은 안 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당신의 생활이 되지.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당신이 객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데, 나보고 여기서 편히 지내라고요. 그런 순 없어요. 그리고 차압이 붙어 받는 돈도 얼마 되지 않아,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중에 당신이 다시 돌아올 때도 도움이 될 만큼 돈을 만들 수 없어요. 아니 무엇보다도 나는 당신과 떨어져 살기가 싫어요.”
“그래도 당신은 여기 있는 것이 좋아, 빚잔치를 하고 나와 이혼이 되면 차압도 풀릴 거야?”
“싫어요! 나는 당신과 같이 갈거에요. 죽어도 살아도 당신과 같이 할 거예요.”
이런 말을 하는 경숙의 두 눈에는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잖아.”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부부가 현실적으로 이해타산만 따져요? 우리가 그런 부부 밖에 못 되요? 부부는 손해도 볼 수 있고, 희생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게 맺어진 것이 부부 아니에요? 나를 그렇게 형편없는 여자로 보았다니 정말 섭섭하군요.‘
하고 경숙의 울음은 통곡이 된다
그런 경숙을 철수가 안으며
“그래!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 못 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경숙도 철수를 안으며
“그래요.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요.”
“그래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말하는 철수의 눈에도 이슬이 맺힌다
두 사람은 서로를 힘껏 껴안는다.
철수는 경숙이 정말 고맙다.
자기의 잘못이 아니고 국가의 경제패턴 변화로 희생이 된 것이라도 집안을 풍비박산 낸 남편을 탓하지 않고 그래도 남편이라고 끝까지 믿어 주는 경숙이 고마웠다.
“어디 갈 곳은 정했어요?”
“아니야. 아직 안 정했어. 이제 결정을 해야지.”
이렇게 해서 며칠 후 두 사람은 빚잔치를 하고 광주를 떠났다.
생활에 실패하고 떠나는 딸네를 보며 부모님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사랑하는 딸을 데려다가 호강은 못 시키더라도 고생은 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 빚잔치를 하고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게 하는 사위가 얼마나 미울까 만은 부모님은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며 객지에서 지내다 고생이 되면 돌아와 우리와 같이 농사를 짓자며 몇 번이나 당부하시곤 많지는 않지만 어렵게 구한 돈을 쥐어 주시며 객지에 나가면 고생이니 가지고 가라고 하신다.
경숙은 말할 것도 없고 철수도 고개를 못 들고 눈물만 흘린다.
그렇게 광주를 떠나와서 자리를 잡은 곳이 강릉이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
날이 점점 추워집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