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얼마 동안 가족을 떠나 살았다.
그러나 그 아들이 지금 돌아오게 되어 그로 인한 기쁨이 모든 불안한 생각을 일소하여 버렸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또한 얻었”노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이 때에 형은 자기의 비열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정신을 깨달았을까?
그는 자기 동생이 비록 방탕했을지라도 역시 자기의 동생이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맏형은 자기의 시기심과 완악한 마음을 회개하였을까?
이점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 비유는 아직도 계속 중이며 그 결과를 청중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맏아들은 세리와 죄인으로 간주되던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그리스도 당시의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과 각 시대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저희 자신이 그다지 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방자들을 저희의 입장에서 논박하셨다.
그들은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과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의 아들들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실은 품꾼의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에 근거해서 일하지 아니하고 보수를 받을 생각으로 일했다.
저희가 보기에는 하나님은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주인과 같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리와 증인들에게 당신의 은혜의 선물 곧 랍비들이 수고와
고행(苦行)을 해서 얻으려던 선물을 아낌없이 받으라고 초청하시는 것을 보고 몹시 화가 났다.
부친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케 한 탕자의 귀가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질투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비유 가운데 맏아들에 대한 부친의 권고는 바리새인에 대한 하나님의 부드러운 호소이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 그것은 보수가 아니고 선물이다.
그대들은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공로 없이 주시는 그것을 탕자처럼 받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게 할 뿐 아니라
형제들을 냉정하고 비평적인 눈으로 보게 한다.
맏아들은 이기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의 동생의 모든 행동을 비평하고 조그마한 결점에
대해서 비난하고자 늘 엿보고 있었다.
그는 동생의 잘못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변명하려 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끊임없이 이렇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미 6:6-8),
그러나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봉사는 이것이니 곧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 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사 58:6, 7)이다.
그대 자신이 오직 그대의 천부의 사랑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대는 죄 가운데서 고생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불행을 당한 자와 참회하는 자들을 질투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에서 이기심의 얼음이 녹아 내리면 그대는 하나님과 같은 동정심을
가지게 되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죽었다가 살았으며 … 잃었다가 얻”은 자가 “네 동생”이 되어야 한다.
그는 가장 밀접한 끈으로 그대에게 붙들어 매어져야 하는 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아들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대가 만일 그러한 아들과의 관계를 부인한다면 그대는 하나님의 가정에 속한 자녀가 아니고
품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그대가 잃어버린 자를 환영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계속될 것이며 도로 찾는 자는 하늘 아버지의 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이 용서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대는 바깥 어두운데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대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실물교훈208)
(요14:15,21)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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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A남은무리운동
첫댓글 안식일지킨다고 다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안식일 잘지켜서 구원받는것이 아니고 받을수도 없으며 불가능합니다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면우리가 예수 믿었으니 그럼 안식일을 안지켜도 되는것일까요?
십계명은 인류를 위한 도덕율법이요 영생을 위한 생명의, 법인데요?
다만 지키는 방법과 정신이 문제이지 , 그안식일 계명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안식일은 거룩하며 선한계명이요, 지키는자는 축복(성화)을 얻는 계명입니다
고로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식일을 안지키는것도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무엇이든지 불법과 불순종은 구원에 이를수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려는것이 저주스러운 행동이지,
믿음으로 율법을 순종하는것은 참성령이 마음에 있는자들의 '행위모습입니다
위의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 도표를 잘 참고 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개신교인들께서 이 상관관계를 잘 이해 못하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