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강릉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광주에서 멀리 떨어지자고 하다 보니 강릉까지 오게 된 것이다.
강릉에 도착한 철수네는 정말 적수공권이다.
며칠을 여인숙에서 묵으며 철수는 어선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경숙은 음식점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일자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쉽게 일자리가 잡히지 않는다.
두 사람은 애가 닳았다.
서로에게 서로가 없었다면 벌써 무슨 사단이 나도 났을 것이다.
철수는 경숙이 때문에 경숙은 철수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생의 끝을 잡고 이 고통을 참고 참는 것이다.
그때 철수네를 도와준 사람, 일자리를 준 사람이 기철과 같이 술을 먹은 어부 아저씨이다.
강릉에 도착하여 십여 일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일자리를 찾아 강릉 부둣가를 열심히 헤매는 철수를 본 어부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보게, 젊은이. 요새 며칠간 부둣가를 열심히 돌아다니던데 혹 일자리를 찾으시는가?”
“네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젊은이는 막 일을 해본 것 같지 않은데 아무것이나 허드렛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제 입장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안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여야 합니다.”
“뱃일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 해보겠나?”
“시켜만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 내 배에서 일하게. 품삯은 고기가 잡히는 대로 이익금에 삼 분의 일을 주지.”
“고맙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어르신의 배려에 보답하겠습니다.”
철수는 고맙기 그지없어 품삯이 많은지 적은지 생각도 않고 승낙을 했다.
아니 그때 철수로서는 그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다.
묵고 있는 여인숙에서는 방값이 밀렸다고 나가라고 성화고 철수와 경숙은 하루를 한 끼의 끼니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광주를 떠나 곧바로 강릉으로 온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고향을 떠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서울로 오는 것처럼 철수도 서울에 정착하려고 하였었다.
두어 달간 서울에 있으며 취직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서울도 증권 사태가 심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증권가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증권회사에서만 일한 철수가 다른 일을 찾는 것도 어려웠고 어떻게 어렵게 취직자리가 잡혀도 입사원서를 내면 먼저 다니던 회사에 문의 하여 그 사람의 근무 태도를 알아보는 것이 보통이라 광주에서 빚잔치를 한 것이 알려 지면 곧 취소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니 자연 취직은 꿈도 못 꾸게 됐다. 막일 자리를 찾아 인력시장에도 나가 보았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며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 또 조를 짜서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무연고인 철수에게는 그곳도 쉽지 않았다.
동양화 그림을 그려 팔아보려고 했지만 이름 있는 작가의 그림이 아니라고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별로 없어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연 서울이 싫어졌다.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그러나 도움의 손길 하나 없는 서울이
고향 떠나 첫 객지인 서울에서 너무 심한 허탈감과 매정함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옮겨간 곳이 강릉이다.
강릉은 서울보다는 순박할 것 같고 또 막일이라도 하려면 바다가 부두에서 일거리를 찾는 것이 쉬울 것 같다는 생각과 서울에서 광주가 가까워지는 남쪽으로 가기는 싫고 서울을 떠나자고 생각하다 보니 강릉이 선택된 것이다.
강릉에 도착했을 때는 부모님이 주신 돈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여인숙비도 못 내며 거의 매일 굶다시피 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부 아저씨가 제시한 품삯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어부 아저씨는 어부 일은 전연 해본 것 같지 않은 젊은 사람이 부두를 헤매며 일자리를 찾는 것을 보고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 공부에는 취미가 없고 아버지가 하는 뱃일에 관심을 가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배를 타다가 팔을 다쳐 배를 탈 수 없게 되어 서울로 올라가 가락시장 어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며 고생하는 외아들, 그 아들이 어시장에서 터를 잡기까지 한 그 많은 고생이 생각나서 철수를 고용하고, 그리고 어부 아저씨는 두 부부만 살고 있기에 큰돈이 필요치 않아 철수에게 후하게 일자리를 주었다.
그 후 경숙이도 어부 아저씨의 도움으로 음식점에 취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뱃일이 서툴러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남보다 힘이 좋은 철수는 차츰 일이 몸에 익어가며 어부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제 증권회사에 다니며 동양화를 그리던 감수성 깊은 철수는 없어지고 거친 파도와 싸우며 그물을 당겨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된 것이다.
은행을 다니던 경숙, 그림을 그리던 경숙도 없어지고 개숫물에 손을 담그고 매운탕 거리를 손질하는 음식점 보조 아줌마가 되었다.
서로는 서로가 전연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양을 보며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하늘 같았다.
특히 철수는 자기의 잘못으로 이런 고생을 하는 경숙을 보기가 민망스러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경숙에게 표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하루라도 빨리 원만한 가정을 만들어 경숙이 음식점 종업원에서 벗어나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경숙은 그런 철수의 마음이 고마워 음식점 종업원을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한 가지 아이가 없는 것이 두 사람에게는 불행이자 다행이었다.
자식이 없다는 것, 자기 또래의 다른 사람들이 자식들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또 귀여운 아이를 보면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지금의 가정 형편으로는 자식을 키우는 것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여를 보내고 나자, 철수네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부 아저씨도 철수가 배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상하게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했고 뱃일에 익숙해지면서 어떻게 하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싱싱한 고기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을까 하며 책을 보고 배우고 연구해서 이제는 철수네 배에서 잡은 고기는 항상 양에서나 질에서나 다른 어부들이 잡은 고기보다 많고 좋았다.
이렇게 되자 어부 아저씨도 품을 사는 일꾼이 아닌 동업자로 철수를 대하고 이익금도 반반으로 나누었다.
이년이 넘어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철수는 경숙에게 음식점 일을 그만두라고 말렸다.
그러나 철수가 바다에 나가고 없는 동안 집에 혼자 있으면 무얼 하느냐고 하며 경숙은 음식점 일을 계속하였다.
음식점에서도 경숙의 매운탕 끓이는 솜씨가 일품이라며 경숙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완전히 어부로 음식점 여자로 거듭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