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 석모도에서 봄맞이
3월 1일 짜장 3월이다. 아무래도 3월과 2월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2월은 겨울이고 3월은 봄이라는 선입감이 앞선다. 따라서 2월에 추우면 당연하고 3월에 추우면 꽃샘이라고 생각한다. 3월에 따스하면 당연하고 2월에 따스하면 이상난동이라고 여긴다. 봄맞이 하러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동쪽이 아닌 서쪽 강화 석모도(席毛島)의 낙가산(洛迦山) 보문사(普門寺)로 간다. 우리는 곧잘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라고 한다. 그만큼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 하물며 봄이라고 길을 몰라 빙빙 헤매며 늦장을 부릴까나. 강화도는 섬이라지만 연륙교를 거치다보니 섬이라는 생각이 지워진다. 석모도로 들어가는 외포리선착장에 와서 비로소 섬에 간다는 느낌이 든다. 석모도로 가는 뱃길은 채 10분도 안 되지만 강한 이미지를 담으며 여행을 하는 멋을 마음껏 느끼게 한다. 그것은 여느 포구에서 맛 볼 수 없는 갈매기들의 군무에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백 마리 갈매기들이 던져주는 새우깡 같은 인스턴트식품을 받아먹으려 온갖 교태를 부린다. 노랑양말을 신은 두 발을 꽁지 밑에 쭉 뻗어 붙이고 두 팔의 날개를 펼쳐 휘젓는다.
좀은 몹시 혼란스러워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무질서 속에 질서를 유지하여 서로 치받으며 충돌하는 일은 없다. 던져주는 먹이를 공중에서 받아먹고 손끝에 쥐고 있으면 채트려가기도 하고 어쩌다 떨어지면 날쌔게 물위로 내려앉으며 잽싸게 건져든다. 바닷물은 진흙탕으로 가무잡잡하니 구역질나게 심한 냄새가 올라와도 그 속을 넘나드는 갈매기의 몸매는 날렵하니 깔끔한 것이 한 점 오염을 모르는 타고난 기질에 품성이지 싶다. 이처럼 자연의 동물원 갈매기관을 견학하며 갈매기는 은연중 사육되고 있지 싶다. 전득이고개에서 등산은 시작된다. 그간 많은 눈이 내렸음에도 흔적이 없고 미처 자취를 감추지 못한 낙엽은 바스락거리며 바닥은 발걸음에 먼지가 푸석푸석 휘날린다. 두 자릿수로 올라간 기온에 겉옷을 벗고도 땀이 묻어난다. 300m 안팎의 낮은 산줄기를 타고 올라 해명산이다. 잠시 조망을 한다. 간척을 하고 잘 정비된 들녘에 염전도 들어온다. 앞에 저 작은 섬이 아마 소송도 대승도인 게다. 간만의 차이로 흠씬 물이 빠진 개펄을 고압전선 탑이 성큼 들어서 작은 섬을 질끈 밟고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저 바다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여 서해5도로 불리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가 나올 것이다. 요즘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등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북한은 연일 비난을 쏟아내고 무차별 군사적 행동까지 거론하는 으름장에 서해5도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저렇게 시나브로 불어오는 봄바람마저 밀쳐낼 수 있을까나. 가까운 바다는 그간 지루했던 겨울을 툭툭 털어내면서 오는 봄을 진정으로 반기고 있지 싶다. 잔잔한 물결에 평화롭게만 보인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걷고 있다. 길가에 진달래나무를 들여다본다. 아직 꽃망울이 민숭민숭하지만 나무들은 빈 몸으로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지 싶다. 능선길은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바다가 좌우에서 성큼 들어온다. 그 풍광이 아름답기만 하다. 가는 길 심심할까봐 여기저기 바위들을 늘어놓아 또한 좋은 볼거리가 된다. 나뭇잎이 우거지면 모두가 가려져 그저 답답하기만 할 텐데 지금쯤 느끼기 좋은 앙상한 나무에 거침없이 걸려드는 바다다. 그런 모습이 있기에 산행은 한층 흥겨움을 보탠다.
이마가 훌렁 벗겨진 큰 너럭바위가 눈썹바위다. 바위 중앙을 타고 지주를 세워 울타리를 친 모습이 자연을 망가뜨렸지 싶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또 사이를 타고 내려가는 길마저 막아놓은 것을 보면 산행안전보다는 그 아래 마애불상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이지 싶다. 돌고 돌아 이 눈썹바위 아래 마애관음좌상으로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얼핏 팔공산 갓바위가 스쳐간다. 이곳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금산 보리암, 여수 향일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기도도량으로 알려진 곳이다.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소위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 이다. 굽이굽이 걸어 오르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계단이다. 그 누가 기도하러 가는 길을 편안히 가랴. 힘들게 오르면서 백팔번뇌까지 내려놓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도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한다. 어찌 모든 것을 다 붙잡고 더 무엇을 바란다고 기도를 하랴. 버릴 것은 아낌없이 버리고 비울 것 또한 비우고야 진정 바라는 그 무엇을 위해 혼신으로 기도를 할 것이 아니던가. 잠시지만 저 넙죽넙죽 엎드리며 절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디 헛된 구석이 보이던가.
그래서인가 오르는 사람들은 아주 힘들어 하지만 내려가는 발길은 가뿐가뿐 생기가 담겨있지 싶다. 나름 뭔가를 얻고 담아가는가 보다. 좌우에 가족소원을 담는 지등이 빼곡하게 걸려있지만 아직 초파일이 많이 남아서인가 주인을 기다리며 신도를 향해 힐끔힐끔 눈길을 주고 있지 싶다. 군데군데 전망대도 있고 간이의자도 있다. 힘에 겨우면 잠시 쉬면서 오르는 길도 내려다 보고 그 너머 바다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란다. 인생이란 것이 산다는 것이 어디 서두른다고 그리 서둘러지는 것만은 아니니 말이다. 어쩌다보니 본섬의 전등사보다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보문사를 일주문으로 입장료를 내고 당당하게 들어선 것이 아니라 머리꼭대기에서 거꾸로 내려온 것이 되어 좀은 외람되기도 하다. 보문사는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찰이다. 극락보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닌 아미타부처처님을 중심으로 협시불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이곳은 우리나라 33관음성지 중에도 그 으뜸이 되는 곳이다. 천연동굴을 개조한 웅장한 석실에 그 앞을 지키는 600여년 향나무가 용트림을 하고 있다.
가뭄 탓인가. 어렵사리 약수터에서 물 한 구기 받아 마시고 산문을 나서니 상가 앞에 200년 관음송이 몸을 옆으로 낮추고 몸을 비비꼬고 있다. 바다를 끼고 산행을 하며 천년고찰에서 봄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섰고 수많은 인파 속에 봄맞이를 만끽한 하루였다. 이제 석모도 둘레 길을 달리며 다시 뱃길에 올라야 한다. 들어올 때 열렬한 갈매기의 환영 쇼를 보았다면 이제 배웅의 순간이 화려하게 펼쳐질 것이다. 벌써 갈매기의 군무가 너울너울 바다를 흔들고 하늘을 흔든다. 멀리 왔지만 멀지 않은 길로 남는다. - 2012. 03. 01. 文房
|
첫댓글 문방님 좋은글잘보았읍니다함께산행하면서 저는느껴보지못한것을문방님글속에서다시금느끼게하네요.
언제나 좋은 글을 올려주시는 문방님이 누구신가 궁금 했는데 뒷풀이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대단히 영광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