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민(법학00) 영화감독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깊이 있는 성찰과 섬세한 연출로 주목받고 있는 이완민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사랑의 고고학>이 이달 12일 정식 개봉된다. 이미 작년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심사위원특별언급과 배우상(옥자연)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예테보리국제영화제 등 해외에서도 초청받는 등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장편 데뷔작 <누에치던 방> (2016)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하며 신인 감독의 저력과 개성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지 7년 만이다.
우리 시대 연애에 대한 탐구 첫 영화가 청소년기의 관계와 상실, 또는 상처를 반추하는 30대 여성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개봉하는 <사랑의 고고학>은 과거의 연애가 남긴 폐허를 조심스레 탐색하는 마흔 살 여성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번 영화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계약직을 전전하는 어느 여성 고고학자의 러브스토리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안에 과연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관객이 판단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많은 분들에게 대화의 재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이 ‘아카이브’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욕심도 내비친다. ‘지금 이곳에 살아가는 이런 유형의 사람 혹은 여성은 이러한 내면을 가지고 있고, 이런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담아보고 싶었다는 의미에서다. 또한,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들에서 전형적으로 그려지던 남녀관계에 대한 전복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도 말한다. “강한 영실이가 여린 인식이를 끝까지 지켜준다는 구도를 유지하고 싶었어요. 불치병에 걸린 여성을 끝까지 지켜주는 남성, 혹은 남성의 순정을 짓밟는 나쁜 여성 같은 로맨스 서사의 클리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꿈을 되찾다 중학생 시절, 시험이 끝나면 동네 비디오대여점에서 영화 여러 편을 빌려와 밤새도록 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자 위안이었던 그녀에게 ‘장래희망’은 언제나 ‘영화감독’이었다. 힘든 수험생 시절을 거쳐 모교 법학과에 입학해 사법고시 준비도 해보고, 대학원에서 국제법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기도 한 10여 년은 부모님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꿈을 유예한 시간들이었다. 석사 수료 후 200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법원으로 연수를 가게 되면서 다시 꿈을 되찾을 결정적 계기를 만났다. 당시 파리에서 <밤과 낮> (2008)을 촬영하고 있던 홍상수 감독의 연출부 스태프 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고 원서를 냈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파리에 남기로 결심한 그녀는 곧장 영화학교에 등록했다. 소극장과 시네마테크에 파묻혀 수많은 영화를 탐닉하며 정신적 풍요를 맛보기도 했다. 2014년 귀국 후 본격적으로 장편영화를 준비해 2년 만에 <누에치던 방>을 완성했다. 홍상수 감독과는 <클레어의 카메라> (2018) 연출부로 한 번 더 만났다. 그런 만큼 그에게서 받은 영향도 크다. 저예산에 소규모 인원만으로 영화를 제작할 때 감독에게 필요한 명철한 분별력, 거창한 사건들을 꾸며내지 않고도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법 등을 배웠다.
과거와 화해하기 두 편의 작품을 내놓은 어엿한 감독이 되었지만, 아직 생활은 녹록지 않다. 영화작업이 없는 기간에는 계약직 예술강사, 서점 직원 등 여러 가지 부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도 영화감독으로 사는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 “카메라 뒤에 있을 때, 머릿속에 있던 것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오는 걸 보면서 느끼는 희열이 어마어마하고요, 공동 작업이라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닌 여럿이 모여 시너지를 확 낼 때 굉장히 큰 만족감을 얻게 돼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느낀 행복한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힘이 되어주고요.” 사실 모교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그저 학업과 고시준비에 매몰되었던 괴로운 나날들이어서 별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석사시절 지도교수이신 박기갑(법학76) 교수님의 정년퇴임행사가 열린 교우회관을 오랜만에 찾게 되었을 때 문득 ‘이젠 그 시절과도 화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작업을 하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나 풀지 못한 숙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게 된 것 같아요. 제 영화가 다른 분들께도 치유의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금미 편집국장
영화 <사랑의 고고학> 포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