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일 동안의 극렬 반대 시위와 민주노동당원 택시기사의 분신까지 불러왔던 한미FTA가 결국 합의됐다. 한미FTA에서 합의된 사항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3개 분야 10개 분과에서 진행 중인 한미FTA협상 중 8차협상에서 이미 타결된 부분은 통관, 경쟁, 정부조달, 기술장벽(TBT), 전자 상거래 분과 등이다. 2일 오후 현재 막판 조율 중인 부분 중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쇠고기, 기타 농산물, 자동차와 섬유제품 수출 등이 포함된 상품무역분야와 방송, 통신 서비스 등이 포함된 서비스 투자분야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 관세 인하…미국은 3천cc 미만 자동차(및 부품)에 대해 FTA협정이 발효되는 것과 동시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3천cc 초과 차량은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한다. 우리나라 또한 여기에 맞춰 현재 8%인 관세를 철폐할 예정이다. 또한 현행 10%의 자동차 특별소비세는 3년 동안의 유예 기간을 거쳐 5%로 인하하게 된다. 다만 하이브리드 카 등과 같은 미래형 자동차는 5년 이상의 중장기 계획에 따라 줄이게 된다. 배기량 기준의 자동차 세금 역시 현행 5단계에서 3단계로 간소화한다.
미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사라지게 되면 10% 이상 가격이 저렴해질 수 있다. 또한 미국내 일본 자동차 회사의 제품들도 미국 제품으로 인정돼 수입이 원활해진다. 이렇게 되면 수출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던 국산 자동차의 가격 또한 경쟁에 의해 저렴해질 수 있다.
▲임·수산물과 섬유제품 맞교환…우리 측의 강경한 주장에 따라 쌀 시장은 협상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광우병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입이 금지됐던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오는 5월 국제검역사무국(OIE)의 광우병 검사 결과에 따라 뼈가 있어도 수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농산물 관세의 경우 쇠고기는 15년, 사과와 배는 20년,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1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오렌지의 경우에는 국내산 오렌지와 감귤 유통기간(9월~이듬해 2월)에는 현행처럼 관세 50%를 부과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30%의 계절관세를 부과키기로 했다. 이처럼 미국은 농산물 분야를 양보한 대신 우리가 강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섬유제품의 관세철폐를 우리의 농산물 관세 철폐처럼 장기간 동안 시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섬유제품과 미국이 강점을 가진 농산물에 대해 서로 10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통해 단계적인 관세 인하를 실시하기로 합의해 서로 특별한 이익은 없는 셈이다. 다만, 일부 농산물과 그동안 수입이 금지됐던 쇠고기 등의 수입으로 소비자들은 쇠고기를 지금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방송 서비스 분야…현재 49%로 제한된 케이블TV 공급업자(PP)의 외국인 지분율 제한은 지금과 같이 유지하되 국내 법인설립을 통한 간접투자는 허용하기로 했다. 외국 프로그램 편성은 현재 법률 상한선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방송 분야의 대문은 열지 않았지만 현지 법인 설립을 통한 진출이라는 백도어(Back door)는 허용했다. 앞으로 국내에 설립된 해외 미디어 지사들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와 컨텐츠 제공이 가능해질 듯 하다.
▲무역구제, 원산지 문제…△협력위원회 설치 △다자간 세이프가드 발동시 상호 적용 배제 등 법률 개정이 필요없는 사항을 미국이 받아들였다. 대신 우리 측은 의약품 분야에서 신약 최저가 보장 요구 등을 접기로 했다.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는 협정문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되 세부 사항은 추후 논의하는 '빌트인' 방식으로 합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타 무역구제 분야 등에서는 상호 간의 양보가 이뤄졌다. 다만 개성공산 생산제품의 원산지로 한국을 표기하는 문제는 협상의 여지를 두고 있어 향후 이를 둘러싼 잡음이 일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한미FTA가 합의됐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이날 자로 합의된 협상 결과 다음 순서는 오는 6월 30일까지 양국 정상이 합의안에 서명하는 것이다. 그 후에는 9월에 있을 정기국회에 비준안을 상정한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를 거쳐 본 회의로 넘겨져 비준 동의를 받아야만 한미FTA가 정상적으로 발효된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변수들이 있다. 먼저 국내의 한미FTA 반대 정서. 농민 등을 중심으로 소위 좌파단체들이 '범국본'을 만들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1일 협상장인 서울 하이야트 호텔 앞에서 민노당원 허모씨가 분신하자 이에 자극받은 민노당 8만여 당원 또한 한미FTA를 적극 저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범여권의 경우에도 김근태 전 열린당 의장, 천정배 민생정치모임 의원, 임종인 의원 등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회도 한미FTA에 대한 찬반으로 갈려있다. 현재 한미FTA를 반대하는 의원의 숫자가 40여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한미FTA의 실질적 발효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많은 언론이 '한미FTA협상 타결', '제3의 개국' 등의 제목으로 이미 모든 것이 다 이뤄진 것처럼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오는 9월 이후 대선 레이스와 한미FTA비준 시기가 겹치면 좋든싫든 간에 서로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범여권과 민노당 등과는 달리 한나라당이 농민 표 등에 부담을 느껴 막상 9월 본 회의에서 한미FTA 반대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시민들은 이 문제를 보면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언론과 정부 홈페이지 등에는 한미FTA에 대해 구체적이고 간결한 설명보다는 전문용어와 초점을 흐리는 듯한 미사여구들이 많아 지금까지 한미FTA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문제다. 이번 대선은 범여권의 다양한 시나리오와 함께 한미FTA라는 변수까지 나타나면서 앞날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 하다.
전경웅 기자(enoch@freezone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