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삼 년여가 지나 1996년도 경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철수는 수협에서 대부받아 자기의 고깃배를 샀고 또 그동안 가리비 양식에 관한 지식도 쌓고 연구도 하고 준비하여 가리비양식장을 만들었다.
고기잡이는 그동안 계속하여 오던 것이라 별문제 없었지만, 가리비양식장은 처음 하는 것이라 첫 해에는 실패를 하고 1997년도 초에 다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첫해의 실패를 바탕으로 양식장을 정비하고 규모도 조금 키웠다.
그렇게 하여 강릉 어부들 사이에 철수는 상당히 이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고기를 열심히 잡고 양식장에서 가리비를 생산하여 팔아서 은행 대출만 갚으면 몇 년 안에 완전히 경제적으로 안정되리라 하는 기대가 철수네를 부풀게 하였다.
앞으로 이삼 년이 고비,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잘되면 항상 마가 끼는 법인가 이렇게 순조롭게 나가던 철수네를 의외의 사건이 터져 힘들고 어렵게 만든다.
97년 IMF 사태가 터진 것이다.
IMF는 독자들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경제의 크나큰 주름을 드리웠다.
이제 자리를 잡고 일어서려던 철수네도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IMF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가 혼란해지며 불안한 심리상태 때문인지 IMF가 터지고 얼마 후부터 이상하게 고기잡이도 잘 안되고 어려워진 경제 여건으로 잡힌 고기도 공판장에서 잘 팔리지 않아 헐값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리비양식장에서는 이제 막 생산물이 나오려고 하는데 이것도 IMF로 문 닫은 음식점도 많고 국민들의 생활에도 먹구름이 기어 팔로가 신통치 않게 되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가 없어 빚더미 위에 앉아 버렸다.
어선으로 고기를 잡고 양식장에서 가리비가 생산되면 수협에서 빌린 돈도 갚고 경제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대는 무너지고 시원치 않게 잡히는 고기도 생산되는 가리비도 잘 팔리지 않아 쌓이는 생산물을 썩힐 수는 없어 헐값으로 처리하게 되니 은행 빚은 점점 늘어간다.
답답한 마음에 또한 어부가 배를 띄우지 않을 수 없어 매일 배를 띄우지만, 배를 띄우면 띄울수록 손해가 생긴다.
고기를 잡아도 팔로가 없어 헐값에 처리하게 되어 인건비는 물론 기름값도 빼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식장에 가리비는 가리비대로 쌓여가다 썩어나가는 것이 적지 않고
은행에서 빚내어 고깃배를 사고 가리비양식장을 낸 것을 후회해도 때 늦은 일, 특히 가리비양식장을 낸 것을 후회했으나 앞일을 알 수 있다면 실패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은행에서는 원금은 물론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는 철수에게 돈을 갚으라는 상환독촉을 하루가 멀다하고 해댄다.
은행의 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이번에도 그동안 장만했던 집을 팔고 양식장을 헐값에 넘겨 은행 빚의 일부를 갚았다.
이때 방을 내주고 와서 살라며 도움을 주신 분도 어부 아저씨이다.
어부 아저씨도 이때는 근근이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빚 독촉에 쪼들리면서도 고깃배를 팔지 않았다.
배를 팔면 당장 할 일도 없어지고 또 IMF 이후를 생각해 어떻게 하든지 고깃배는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IMF의 골이 깊어지면서 배를 몰아 고기잡이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점점 더 못해지고 남아있는 은행 빚의 이자도 갚지 못하게 되자 할 수 없이 배를 팔았다.
그러나 은행 빚을 다 갚을 수가 없었다.
집이나 양식장이나 배나 모두 당초에 마련했던 것보다 훨씬 싼 값으로 처리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배를 팔고 나서 다른 배에 종업원으로 취직하려고 해도 다 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어 자리를 구할 수 없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고 은행 이자를 내는 것은 경숙이 음식점에서 일하고 받는 쥐꼬리만 한 월급이다.
두 번이나 맞은 경제적 타격에 철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직장생활에서 온 것이라 그래도 조금은 덜 했지만, 이번에는 자기의 온 힘을 기울이는 노력을 해서 키워가던 것을 모두 잃었으니 더욱 실망이 크다.
나는 왜 이렇게도 복이 없는 놈인가?
어떻게 두 번씩이나 국가의 경제 파탄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휘말려 당하는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매일 회의와 통한에 빠져 술로 세월을 산다.
그러면서도 경숙의 터진 손등을 보면 민망하고 안쓰러워 무엇인가를 하여야겠다는 생각에 안간힘을 쓰지만, 너도나도 모두가 어려운 판에 옴치고 뛸 재주가 없다.
답답하다. 그러니까 술만 먹게 된다.
그러한 철수를 보며 경숙은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한다.
우리가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조금만 참으면 IMF가 끝나는 대로 우리는 다시 시작하여 일어설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격려한다.
이렇게 격려는 하는 경숙을 보는 철수의 마음은 더욱 아프다.
물론 모두 순 자기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던 두 번씩이나 가정파탄을 일으킨 남편을 원망하기는커녕 격려하는 경숙이 고마우면서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오히려 경숙이 원망을 하며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다.
철수로서는 참으로 힘든 시간이다.
그러던 어느 늦은 가을날 저녁 경숙이 음식점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철수가 먹과 물감과 화선지를 사가지고 왔다.
그것을 본 경숙은 철수가 새로운 일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림이라도 그리며 마음을 잡고 또 잘된 것은 서울에서처럼 팔아보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경숙의 그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 내일부터 당신이 퇴근하고 난 후 산수화를 하나 같이 그려보자.”
고 철수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응! 그림을 같이 그려보자는 거야.”
“어떻게요?”
“그림의 대상도 같이 잡고 구도도 색깔도 상의해서 같이 칠하고.”
“그게 될까요?”
그렇게 그림을 그린 적은 물론 남들이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경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안 돼. 잘 될꺼야. 한번 해보면.”
“요즘 관광 철이 좀 지났지만 내가 퇴근하는 시간이 밤 열 시가 넘어야 하는데 언제 그림을 그려요.”
“대상과 구도를 잡는 것은 당신 쉬는 날 하고, 다른 것은 당신이 퇴근 한 후나 아침에 출근 전에 조금씩 하면 되지.”
경숙은 철수의 착상에 재미있어하며 며칠 후 쉬는 날 철수와 강릉 외곽을 다니며 대상을 잡고 구도를 해서 그다음 날부터 경숙이 퇴근 후 철수와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생각보다 잘 그려졌다.
서로의 미심쩍은 것을 의논해가며 그리니까 혼자 그릴 때보다 잘 그려지는 것 같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한 달여 만에 완성됐다.
그림이 완성되던 날 철수는 근래에 처음으로 기쁘고 즐거워했다.
그렇게 기뻐하는 철수를 보고 경숙도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다음날 철수는 그 그림을 가지고 표고점에 가서 표고를 해다가 벽에다 걸었다.
표고를 하고 보니 그림이 더욱 잘 된 것 같아 작은 성취감에 둘이는 마주 보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림이 완성되고 난 다음부터 철수는 그림 그리는 동안에도 간간히 마시던 술을 끊었다.
무슨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 같아 경숙은 다소 긴장된 기분으로 철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림이 완성되고 며칠 후 철수는 어떤 고깃배에 일용직으로 타게 되었다.
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던 철수는 갑판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넘어지며 바다에 빠져 생을 마감했다.
같이 고기잡이를 나갔던 다른 어부들은 철수같이 노련한 사람이 어째서 갑판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바다로 빠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지만 어쨌든 철수는 그렇게 죽었고 그렇게 죽은 철수는 며칠간 수색에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
철수가 죽었다는 전갈, 고기잡이배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바다에 빠졌다는 전갈을 듣고 몸부림치며 바다로 달려나가려는 경숙을 어부아저씨가 붙잡았다.
어부 아저씨가 보기에 경숙이 바다로 달려가면 그대로 바다로 달려 들어갈 것 같아서다.
정신이 없는, 아니 정신을 잃은 경숙을 대신해서 철수의 빈소를 차리고 그 자리를 지킨 사람도 어부 아저씨이다.
거의 혼수상태에서 시신도 없는 철수의 장래를 치르고 경숙은 철수가 꼭 살아서 돌아올 것 같아 거의 매일 바닷가에 나가 지평선을 바라보며 기다렸지만, 철수는 돌아오지 않는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 철수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아 몇 번이고 그림과 현관을 보며 경숙은 눈물을 흘린다.
결과적으로 그림은 철수의 유작이 되고 말았고 철수의 유품 어디에도 유서 비슷한 것도 없었다.
경숙이 철수의 죽음을 더욱 못 잊어 하는 것은 철수가 생명보험에 들어있어 철수가 죽은 후 보험회사에서 2억 원 가까운 보험금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숙이 보험금으로 2억 원 가까이 받게 되자 사람들은 철수가 일부러 발을 헛디뎌 죽음을 자초한 자살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증거는 없다.
철수는 광주에서 일을 당하고 강릉으로 와서 어부 아저씨의 배를 타며 돈을 벌기 시작하자 깡통계좌 사건 이후 자기가 어떻게 되고 나도 경숙이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경숙 모르게 생명보험에 들어 어려운 때에도 보험금은 꼭 넣었고 보험에 든 것은 어부 아저씨에게만 알려주었던 것이다.
거의 매일 바닷가에 나가 철수를 기다리는 경숙의 바닷가에서의 기다림은 일 년여를 넘겼다. 다음 해 늦가을까지
그리곤 언젠가 철수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바다가 잘 보이는 바닷가 근처에 허름한 집을 사서 음식점을 차렸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나는 동안 경숙의 기다림은 습관처럼 되어가고 바다는 경숙에게 한이 맺힌 곳이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되도록이면 바다를 바라보지 않았다.
남편을 빼앗아간 바다, 그 바다가 원망스러워, 특히 겨울 바다는 더 그랬다.
철수가 죽은 것이 겨울 바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음식점이 10년이 다 돼 가는 것이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