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十五. 나만의 착각이었어.
사랑을 많이 했다고 해서,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해서 혹은 연애 경험이 많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이든 상대방이든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에 항상 미흡하다.
“이건 마법의 거울이 아니란다.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해서 해답을 주진 않아.”
윤경이와 함께 찜질방을 왔다.
스트레스 푸는 데 땀 빼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몸이 가벼워지는 만큼 머리도 좀 가벼워지는 듯 하다.
“역시 우리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가슴 쳐진 것 좀 봐. 옆구리 살은 왜 이렇게 나오기만 하는지…”
“말 돌리긴…”
체중계에서 내려오던 윤경이가 얼굴을 찌푸린다.
“젠장. 예전에는 몇 끼 굶으면 금방 표가 나더니 이젠 효과도 없다야.”
“그러게.”
나는 양팔을 위로 쭉 올렸다.
“이건 20대 때의 가슴.”
그리고 다시 양팔을 내렸다.
“이건 30대 때의 가슴. 이젠 남자랑 잠자는 것도 겁난다. 몸에 탄력이 사라지듯 자신감도 사라진다고나 할까?”
“그러게. 아무래도 우리는 돈 많이 벌어야겠다. 과학의 힘이라도 빌려야지.”
“내 몸이 이런 상태였나? 나 너무 무심했나봐. 아!”
“왜?”
“이런 상태로 재민씨와 잤단 말야. 나?”
“거기다가 술에 취해서 곤드레 만드레였지, 아마.”
“젠장!”
“가자. 더 봤다간 심장이 갈갈이 찢어지겠다.”
사물함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옷을 입으며 윤경이 말했다.
“그래서 어쩔 꺼야? 재민씨한테 계속 기다리라고 할 순 없잖아.”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 마음을 내가 모르겠다고 하는 게 옳을 꺼다.
아무리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이려고 해도 순간 순간 다른 목소리가 막 섞이니까.”
“결국은 니가 혼자 결정해야 할 문제겠지만 내 생각엔 아무래도 재민씨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왜?”
우리는 찜질방을 나와 도산 공원 근처를 걸었다.
“먼저 니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재민씨, 료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료가 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지금, 그를 선택 사항으로 만들 순 없지.
니가 결정해야 하는 건 바로 재민씨의 제의를 거절할 것이냐, 받아들일 것이냐… 바로 이거지.
만나봐야 더 잘 알겠지만, 너한테 들은 바로는 재민씨라는 남자 나쁜 사람 같지 않고,
내가 보기엔 너도 좋아하는 것 같고… 물론 니가 료를 너무 좋아서 재민씨는 눈에도 안 들어온다 뭐 이러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그런가?”
“니 마음은 료한테 향해있는데 재민씨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건 너한테도 못할 짓이고 그 사람한테도 예의가 아니지. 그건 니가 더 잘 알테지만…”
“재민씨 좋아. 따뜻하고 유쾌하고… 내가 생각했던 환상을 충족해준다고 해야 할까?
경제적인 게 아니라 왜 이런 거 있잖아. ‘아~ 나 지금 로맨스를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
나이나 취향, 관심사도 비슷하고…
만약 료가 없었다면 난 그가 프로포즈하는 순간 바로 ‘예스’라고 대답했을 꺼야.
음… 언제나 긴장돼. 료와 있으면…
학교 앞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에게 반한 여고생의 마음이 된다고나 할까?
꼭 그러잖아.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짐짓 그에게는 관심없는 척하고 틱틱거리고…
끌리는 걸 모르는 척 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고...”
“음… 하지만 료는 언젠간 여길 떠날 사람인걸.”
“끝이 보이는 사랑이란 건가? 물론 료도 날 좋아해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이지만 말야.”
“결혼, 나이, 경제적인 능력… 뭐 이런 걸로 니가 사람을 사귀는 애가 아니니까 그런 모든 걸 다 떠나서… 나중에 니 사랑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그가 떠나버려야 하면 어떡할꺼야?”
“그건 여기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지. 내 사랑은 남았는데 상대방은 사랑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면 답은 단 한 가지 이별…”
그때 내 눈에 두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건너편 카페 ‘느리게 걷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다른 사람이 보기엔 딱 연인이라고 생각하겠지?
료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고 민지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민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웃으니 료도 따라 웃었다. 이가 보이도록 환하게…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만나지 못하는 이유라는, 그 일이라는 것이 민지와 만나는 거였구나. 이런 바보.
“아는 사람?”
“아… 아냐. 잘 못 봤나봐.”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시 길을 걸었다.
료가 나를 발견할까봐, 료가 나를 아는 체 했을 때 모르는 척 웃으며 대꾸할 자신이 없어서,
아니 그에게 민지를 좋아하냐고, 왜 나를 사랑하지 않냐고, 왜 나만 이렇게 널 좋아하게 돼버렸냐고
소리칠까 두려워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한참 걸었을까? 누군가가 나를 잡았다.
“뭐야? 왜 그렇게 빨리 가버리는 거야?”
“윤경아, 나… 나 말이야. 료가 나를…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닌 가봐. 바보같이 착각했어. 둘이 키스를 했지만... 내가 그걸 봤지만… 그래도… 나만… 그래, 나만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젠장! 나이가 들어도 이 놈의 가슴은 왜 이렇게 딱딱해지지 않는 건지… 그냥… 그 애한테는 내가… 그냥…”
오해일까? 물어보고 싶었다.
나에 대한 료의 마음을, 민지와의 관계를…
하지만 그것이 확실해지고 난 다음 나는 상처받게 될까? 아니면 사랑을 얻게 될까?
내가 두려워하는 건 무엇일까? 오해가 진실이 되는 순간.
그래서 모두들 오해를 그냥 덮어두고 그렇게… 오해한 체로, 더 이상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상처받은 체로 있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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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 추석 잘 보내셨나요?
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분명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말이죠.
용서해주세요!
첫댓글 님 추석 잘보내셨나요.....많이 기다려는데...ㅋㅋㅋㅋ..다음편도 기대~~
덕분에 잘 보냈습니다. 다음 편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너무 올만이시다^^
죄송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맞슴니다. 오늘은 올려겠지... 하지만 이제야 읽게 되네요.. 참 어렵슴니다. 사랑이란.... 항상 헤매게 되죠..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우리 경주도 언젠가 그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겠죠..
죄송스럽습니다. 헤매는 것이 사랑의 참다운 묘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