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구노의 아베마리아에 대한 글을 박건우형이 올리셨기에 바로 이메일을 회원정보을 크릭하고
보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어 무례하게도 이렇게 올리오니 양해 바람니다.
다음 글은 저와 문리대 동기(61입학)이고 한국일보 기자,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낸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신우재동문이 쓴 글 (날조된 구노의 아베마리아 이야기)입니다.
모든 분들이 아시는 것이 좋을듯해서요. -홍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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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외방전교회 조선파견 선교사 명단 1831~1866( 입국하신 순서로 적어 보았습니다)
1,브뤼기에스 1792-1835 입국실패 43세 병사--" 제가 가겠습니다"로 유명한 초대조선 대목구장님
2,모방 1803-1839 1836년 입국 참수 36세 성인
3,샤스탕 1803-1839 1837년 입국 참수 36세 성인
4,앵베르 1796-1839 1837년 입국 참수 43세 성인
5,페레올 1808-1853 1845년 입국 병사 45세 과로사
6,다블뤼 1818-1866 1845년 입국 참수 48세 성인
7,메스트르 1808-1857 1852년 입국 병사 49세 과로사 10년동안 5번 시도후 입국
8,장수 1826-1854 1854년 입국 병사 28세 뇌염
9,베르뇌 1814-1866 1856년 입국 참수 52세 성인
10,프티니콜라 1828-1866 1856년 입국 참수 38세
11,프티니 1830-1866 1856년 입국 참수 36세
12,페롱 1827-1903 1827년 입국 76세 병인박해시 탈출에 성공
13,랑드레 1828-1863 1861년 입국 병사 35세 전염병
14,조안노 1832-1863 1861년 입국 병사 31세 폐병
15,리델 1830-1884 1861년 입국 54세 6대 조선대목구 주교
16,칼레이 1833-1884 1861년 입국 51세 병인박해시 탈출에 성공 동전탈출로 유명한 일화 동전을 실수로 떨어 트려서 그 동전을 주우려는 포졸들을 피해서 탈출에 성공
17,오메트르 1837-1866 1863년 입국 참수 29세 성인
18,위엥 1836-1866 1865년 입국 참수 30세 성인
19,볼리 1840-1866 1865년 입국 참수 26세 성인
20,도리 1839-1866 1865년 입국 참수 27세 성인
21,브르트니스 1838-1866 1865년 입국 참수 28세 성인 백작집안의 출신으로 성인의 유해는 가족이 모셔감.
“이들 선교사들은 프랑스를 출발하는 순간 조선 땅에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굳은 결의를 맺은 사람들이기에, 한번 떠나면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나선 사람들이시다.
하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서 이름이라도 올려 본다.
순교한 선교사님들을 참고 하시라고 인터넷에서 모셔옴. -홍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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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구노의 아베마리아 이야기
인터넷에 떠다니는 이야기는 대부분 쓰레기들입니다.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꾸며서 슬쩍 띄어놓으면 그 전파 속도와 범위가 놀랄 정도입니다.
프랑스 작곡가 샤를르 구노가 조선에서 순교한 친구 롤랑 앵베르 주교를 위해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유포되고 있습니다. 특히 캐톨릭 교회의 홈페이지에 경쟁적으로 퍼 날라다 옮기고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상도동 성당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 작곡 유래
명곡 '아베마리아'를 작곡한 구노(1818-1893)는 어려서부터 음악 신동이라 불렸습니다. 구노가 빠리 외방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같은 학급에는 구노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소위 ’음악 천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주 친한 친구사이였고 또한 선의의 경쟁자였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친구가 음악을 하리라고 생각했던 구노는 어느 날 신학교에 들어간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가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 친구 소식도 함께 묻어 왔습니다. 사제가 된 그 친구가 빠리 외방 선교회에 들어갔다고~ .
구노는 그 친구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어느새 그 친구는 중국으로 발령받아 갔다는 소식만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구노는 시간만 나면 그 친구를 위해 틈틈이 기도를 했습니다. 오랜 사목 후에 휴가라도 오면 옛 추억을 나누며 차를 함께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어느 날이었습니다. 게시판이 북적되어 갔더니 그 친구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빨간 글씨는 아니어서 안심을 했지만 내용을 읽어본 구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가 "조선 대목구 주교" 로 임명되어 죽음의 땅 "조선"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구노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들다는,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는 차라리 순교하기 위해서 조선으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횡횡했던 바로 그 죽음만이 기다리는 조선으로 들어간다니.
구노는 날마다 주님과 성모님께 그 친구가 제발 무사히 돌아와 단 한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주일날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학교 정원에서 산책을 하던 구노는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삼종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요란하게 종이 울린다는 것은 뭔가 불길한 징조였습니다. 의례 그랬듯이 순교자가 또 나온 것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달음질 쳐서 뛰어간 구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게시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엥베르 주교 조선에서 순교". 눈물이 앞을 가려 서 있을 수조차 없던 구노는 정신없이 뒷동산으로 뛰어갔습니다.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제발 살아와 달라고 매일 기도했었는데 그 친구가 순교자가 되자, 구노는 그 친구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Ave Maria 라는 성모송을 만들어 순교한 그 친구에게 바치기로 했던 것입니다.
아베 마리아 (Ave Maria) 는 성모송입니다. 그렇게 친구이자 조선의 주교이자 순교자이며 후일 영광스러운 성인의 관을 쓰신 성 엥베르 주교를 기리며 만들어진 노래가 "구노의 아베마리아" 입니다.
하느님의 씨앗을 뿌린 성인 엥베르 주교는 지금도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 지하에 잠들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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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딱 읽으면 그럴싸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보면 어색한 대목이 많습니다. 자세히 분석을 해 보면 날조된 이야기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앵베르주교는 1796년생이고 구노는 1818년생입니다. 우선 나이가 22살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급생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지요. 앵베르 주교가 조선에서 순교한 것은 1839년 기해천주교박해 때입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처음 라틴어 가사를 붙여 출판된 것은 20년 후인 1859년의 일입니다.
구노는 처음부터 아베마리아를 작곡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파리음악학교 재학 중 작곡한 칸타나 곡으로 재능을 인정 받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로마大賞을 받고 1839년부터 4년간 로마에서 음악유학을 했습니다. 로마 체류 중 그는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헨젤(Fanny Henzel)을 통해 바하, 베토벤, 멘델스존의 음악을 만나게 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파니는 피아니스트와 작곡자로서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 못지않게 재능이 있는 음악가였습니다. 멘델스존의 초기작품 중 상당수는 누나 파니의 작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망각 속에 파묻혀 있던 바하의 음악적 위업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멘델스존이었습니다.
구노는 바하의 건반악기 작품에 폭 빠져서 그후 음악하교 교사가 된 후에도 건반악기를 배우려는 사람과 작곡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바하의 작품이 가장 좋은 길잡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바하의 클라비어(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1번 C장조(BWV 846)를 연주하면서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붙였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아베 마리아 멜로디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보로 남기지 않았던 듯 합니다. 멜로디를 채보하여 바이얼린과 피아노, 그리고 아르모니움(건반악기)을 위한 기악곡으로 편곡하여 세상에 내 놓은 것은 파리음악학교 시절 은사이자 그의 장인인 피아니스트 짐머만이었습니다. 1853년 출판된 이곡에는 “Méditation sur le première prélude de piano de S. Bach”(바하의 피아노 전주곡을 바탕으로 한 명상곡)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후 프랑스 시인 알폰스 드 라마르틴느의 시 “Le livre de la vie”(생명이 책)을 가사로 한 버전이 나왔고, 1850년에는 악보출판업자 Heugel이 라틴어 기도문을 가사로 붙인 버전을 내놓았으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위를 살펴볼 때 구노는 아베마리아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만들었지만 오늘날 연주되는 기악과 성악버전을 자기 손으로 쓴 적은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구노가 독실한 캐톨릭 신자였으며 파리외방전도회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1846년부터 3년간 그는 사제서품을 받기 위해 이 신학교에 다니면서 이 전도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다니면서도 그는 사방에 염문을 뿌려서 학교에서도 골치를 알았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는 마음을 돌려 다시 음악계로 돌아왔습니다.
만년에 그는 다시 독실한 캐톨릭 신자로 돌아가 종교음악 작곡에 전념했습니다. 현재의 바티칸 공국 국가는 그가 작곡한 것입니다.
이상이 구노의 아베마리아 탄생의 진상입니다.
구노와 앵베르 주교를 엮어서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왜 이런 날조를 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 캐톨릭 신앙을 더 널리 전파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이는 캐톨릭 신앙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구노님과 앵베르 주교님도 화를 내실 것이고, 자비로우신 성모님도 눈살을 조금 찌푸리실지 모릅니다.
이 노래를 참 잘 부른 두 연주를 골랐습니다.
♬ 오스트리아 테너 프리츠 분델리히가 노래합니다.
http://youtu.be/m1nJT5z7W5E
♬ 미국 흑인 소프라노 제시 노만이 노래합니다.
http://youtu.be/SMvldwLqe2U
.
-신우재-
이상 두 글에서 보았듯이 년도에 차이가 납니다.
만약 성 앵베르(Imbert)대신 성 다블뤼주교님이라면 태어난 년도가 같은 1818년이라 그럴 수 있겠다 하겠네요.
인터넷에서 가지고 온 글 중 성앵베르는 1837년이 아니고 신우재동문 글대로 1839에 참형(순교)됨.
너무 많은 오류가 인더넷 글이 있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범해서... 지적해주워 감사하시다니 제가 고맙지요. 이해를 해주시니...
그렇잖아도 저희집 마당쇠가 잘 알아보라고 지적하던데요.
이상한 스토리 같다고...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교수이고 박사를 마당쇠로 두신 분~
안녕하시죠? 마당쇠 요즘 한국에서 땅에 구멍 파지 않아 편안하게 주무시겠습니다.
학교 오피스옆에 그린하우스가 있어요.
그 빈땅 풀밭을 이렇게 가꾸었네요.
@윤길순 (대구) 땅파고 석류도 심고,
무궁화, 옥잠화도 심으면서
주변을 잘 가꾸고 있네요.
땅을 파야 직성이 풀리죠.
삽질 가위질 열심히 하네요.
@윤길순 (대구) 저는 탁구치면서 시간 보내고 있네요.
@윤길순 (대구) 저위 부부는 shake hand style입니다.
제법 치지요. 하지만 back hand style한데는 쩔쩔맵니다.
@윤길순 (대구) 한번 마당쇠는 영원한 마당쇠.!!!
"충성!"
두 분 사이 보기 좋습니다. 맛 있는 것 만이 만들어 주세요. 마당쇠는 힘이 세야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코치와 렛슨 받을 때는 폼이 나오는데
실전에서는 맘 대로 치네요.
각자 자기 폼대로 치는 경향이 있어요.
싼 탁구채만 원망하죠.
비싼 탁구채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