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서양에서 금발이 미인인 조건으로 꼽히기 시작한 시대는 고대 그리스이다.
당시 사람들은 ‘태양의 신’ 아폴론을 최고로 숭상했다. 태양 숭배의식은 ‘태양의 색깔’인 노란색에 가치관을
두게 하였다. 따라서 ‘금발=미인’의 등식이 탄생했다. 하여, 금발을 만들려고 그리스 여성들은 태양광선을
장시간 쬐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100여년 전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칼 네슬레라는 독일인은 원주민이 나뭇가지에 진흙을 묻혀 머리카락 말아
햇볕에 말려 동그란 모습을 만드는 것을 보고 최초 파마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손님들은 파마를 위해
놋쇠로 만든 루프를 12개나 머리에 이고 6시간을 꾹 참아야 했다.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동양사람의 머리 색깔은 원래 검은색이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 금발 미인이라 노랑머리로 염색을 한다.
빨강, 파랑 머리도 있다. 하양 색깔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인다고나 할까. 머리를 가지고 별의별 유행을
다 만들고 있다. 늙어지면 자연히 백발(白髮)이 되는데 무엇 그리 바쁘다고 흰 머리를 만드는가? 그렇게도
늙고 싶은가?
지하철에 앉아 주제넘게 젊은 여자 머리에 대해 이렇궁저렇궁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노랑머리, 빨강 머리이다. 어찔어찔 현기증(眩氣症)마저 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내가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쓸데없는 걱정이다.
식견(識見)이 넓지도 못한 처지에 이것저것 생각이다. 나는 구세대 사람이 되어 그런가, 또 사고(思考)가 고루
(固陋)하여 그런가, 요즈음 젊은 사람들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최소 예의범절(禮儀凡節)은 지켜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편 또 오지랖 넓게 생각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리 나약(懦弱)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유행이라는 것도
젊은 사람에게 자신을 표출해내는 중요한 표현 방식이 아닌가. 젊음이 다운 모습을 갖는 것이 그들의 하나의
모토일 것이다. 젊은 사람이 예의범절에 능숙하기보다 반항과 좌절, 과오(過誤)와 깨우침, 열정과 에너지 등등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나름대로 노력일 수 있겠다.
내가 유행에 아주 보수적인 것도 맞다. 또 젊은 사람이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일부 그렇다.
이런저런 생각이 설왕설래(說往說來)한다. 열차는 시나브로 어느 사이 나 사는 운서역에 도착했다.
쪽빛 가을 하늘,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