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35세에 은수생활을 실천하기 위하여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에 있는 쥐라(Jura) 산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카시아누스(Cassianus)가 쓴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몇 가지 도구 그리고 종자들을 가지고 갔다. 그는 움막을 짓고 기도하며, 땅을 일구어 파종하고 독서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야수와 사냥꾼들 때문에 그의 첫 번째 은둔소는 파괴되었다. 그즈음에 그의 형제인 성 루피키누스(Lupicinus, 3월 21일)가 은수생활에 합류했다. 이 두 사람은 콘다트(오늘날의 생클로드, Saint-Claude)에 수도원을 세웠고, 자매들을 위해서는 보므(Beaume)에 수도원을 세워주었다. 이렇게 그들 주위에는 많은 제자가 모여들자 성 로마누스가 원장으로서 지도하게 되었다.
그는 기도시간 외에는 주로 노동을 하여 생계를 꾸렸으며, 육식은 금했지만 달걀은 허용했다. 그리고 의복은 동물의 가죽으로 손수 지어 입었다.
성 로마누스는 오늘날의 생모리스(Saint-Maurice)를 순례했고, 테반 지역의 순교성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한 번은 그가 스위스 제네바(Geneva)에 갔을 때 그곳의 주교와 시민들이 그를 열렬히 환영하여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생을 마감한 성 로마누스는 보므 수도원에 묻혔고, 성 루피키누스는 그보다 20년을 더 살다가 선종했다.
첫댓글
+ 慈悲와 사랑의 우리主 하느님 아버지 ,
오늘 이 세상에서 '로마노'를
당신의 從으로 선택하시어 信仰을 꽃피우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을 받들어 언제나 福音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충실한 당신의 종,수도원장'로마노'聖人의 轉求를 들으셔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 정다니엘과 '문베드로'와 모든 患友들이
완전히 病魔에서 벗어나는 주님의 慈悲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恩寵을 베풀어 주소서.
+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