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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세스크 파브레가스 | 스티븐 제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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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는 진행형의 진보다. 공격적이면서 동시에 수비적이다. 무서우리만큼 침착하지만 때론 불을 토해내듯 담대하다. 킥 마스터란 애칭에서 알 수 있듯 세밀한 테크닉의 보유자이지만 묵직한 중거리 슛 한 방을 터트리는 파괴력 또한 갖추고 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가리켜 포지션과 역할이 융합돼 가는 현대축구의 표본이라 일컫는 이유다. 파브레가스의 나이 만 스물이다. 진행형의 진보라는 표현은 이 때문이다. 파브레가스의 재능은 바르셀로나에서 조각됐다. 카탈루냐 지방 태생으로 축구 선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공을 접했다. '소년' 파브레가스는 카탈루냐의 대표클럽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해 꿈을 키웠다. '영원한 바르샤의 주장' 호셉 과르디올라를 동경하던 파브레가스에게 하늘이 내린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03년 8월. 핀란드에서 열린 U-17세계청소년선수권의 히어로로 부상했다. 한국과 한 조에 편성된 '어린' 무적함대 일원 중 단연 돋보인 선수는 파브레가스였다. 8강 포르투갈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스페인의 준결승 진출을 이끈 파브레가스는 3일 뒤 충격적인 명승부를 연출했다. 스페인은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에서 전반전에만 2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스페인은 후반 파브레가스와 후라도의 연속골로 극적인 동점을 엮어냈다. 연장전에 돌입했지만 좀처럼 골은 터지지 않았다. 승부차기를 떠올리던 경기 종료 3분전, 추격골의 주인공 파브레가스가 또다시 아르헨티나의 골네트를 흔드는 결승골을 작렬했다. 개인 다섯 번째 골로 득점왕을 예약, 환호는 더했다. 스페인이 비록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 MVP는 파브레가스에게로 향했다. |
제라드는 캐러거와 함께 리버풀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로 꼽힌다. 리버풀에서 태어나 자랐고 8살 때 리버풀 유소년 팀 유니폼을 입은 이래 지금까지 줄곧 리버풀 소속으로 뛰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잉글랜드 북서부 도시 리버풀은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로 영국 내에서도 꽤 오랫동안 살고 싶지 않은 동네로 꼽힌다. 그런 리버풀 사람들에게 축구는 '비틀즈'와 함께 유이하게 자랑스러운 '메이드 인 리버풀'이었다. 리버풀 연고의 프로 축구팀 셋(리버풀,에버튼,트란미어) 가운데 리버풀이 첫 손에 꼽히는 건 이 팀이 가진 유구한 역사 덕분이다. 프리미어리그(변경 전 1부리그 포함) 최다 우승팀이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가장 많은 우승컵을 거머쥔 영국 팀인 리버풀은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 브랜드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왔다. 그러니 그 팀을 상징하는 스타로 성장한 제라드의 인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리버풀에서 태어난 또 한 명의 스타 웨인 루니가 어릴 적부터 사랑했던 팀 에버턴을 떠나며 비난을 한 몸에 받은 것과 달리 제라드는 8살 때부터 지금까지 리버풀 선수다. 이동이 매우 많은 작금의 유럽 축구에서 20년을 한결같이 한 팀에 몸담기란 정말 어려운 일. '유스팀'을 거친 선수들 중에서도 그 팀 연고지에서 나서 자란, 그리고 8살 팀에서부터 몸 담은 선수들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제라드의 선수 생활은 자칫하면 일찌감치 끝날 뻔했다. 리버풀에 몸담은 지 2년째인9살 때 발가락 절단 직전까지 가는 큰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동네 친구와 공을 차다 풀섶 안에 팽개쳐 있던 녹슨 농기구를 잘못 밟아 엄지 발가락을 관통하는 상처를 입었다. 당시 제라드를 진찰한 의사는 발가락을 자르지 않으면 파상풍에 걸릴 거라며 '절단'을 주장했지만,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온 리버풀 유소년팀의 코치가 '이 아이의 선수 생활이 끝나서는 안된다'며 적극 반대 의사를 펼쳐 절단하지 않은 덕에 제라드는 지금까지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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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는 새로운 '런던의 킹'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파브레가스는 '올드 킹' 티에리 앙리가 바르셀로나로 떠나며 생긴 공백의 대체자로 주목받고 있다. 서로 포지션은 다르지만 팀 전술과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살필 때 파브레가스를 포스트 앙리로 지목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다는 평이다. 2005년 여름 패트릭 비에이라(현 인테르밀란)가 유벤투스로 이적, 전력 약화를 우려하던 목소리를 자자들게 했던 파브레가스의 지난 자취를 연상케 하는 현재의 행보이기도 하다. 아스날은 지난여름 요동쳤다. 앙리 등 주력들의 이탈로 UEFA챔피언스리그 데드라인(4위) 통과마저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한 전망이 제기됐다. 하지만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노릴 만큼 견실한 전력을 유지했고 이 한 가운데 파브레가스가 서 있다.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2004-05시즌 이래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파브레가스다. 33라운드 현재 프리미어리그 어시스트 랭킹 선두(17개)다. 7골로 아데바요르에 이어 팀 득점 2위에 올라 있다. 특히 올 시즌 7골은 프리미어리그 4시즌 동안 터트린 개인 통산 14골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확연한 성장세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파브레가스의 질주는 돋보인다. 본선 4골로 쟁쟁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팀 최다득점을 올렸다. 챔피언스리그 전체 순위는 공동 8위로 선두 C.호나우도(맨유)와는 3골차다. 공격포인트 수치가 아니더라도 16강전서 AC밀란을 무너뜨린 결승골 등 필요할 때 한 방씩 터트려주는 해결사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파브레가스의 골로 아스날은 산시로에서 AC밀란을 꺾은 첫 번째 잉글랜드 클럽이 됐다. |
제라드는 리버풀의 상징적인 존재다. 이 사실은 그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열 네 살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러브콜을 받은 제라드는 이 소식을 듣고 황급히 놀란리버풀이 서둘러 계약을 제시해 팀에 남게 된다. 그리고 1997년 11월, 60만원의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첫번째 프로 계약을 체결한다. 1년 뒤 만 18세의 나이로 1군 데뷔전을 치른 제라드는 당시 주전이던 제이미 레드냅이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자신의 가능성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제라드의 앞 길은 탄탄대로였다. 두 번째 시즌인 1999/00시즌부터 주전으로 급부상한 그는 2000년 들어 잉글랜드 대표팀에 발탁됐고 2000/01 시즌에는 팀이 '컵 대회 5관왕'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세웠다. 당시 리버풀은 FA컵, 리그컵, UEFA컵, 유럽 수퍼컵, 커뮤니티 실드를 휩쓰는 데 기여하며 팀의 주축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2003년에 주장 완장을 꿰찬 제라드 활약의 절정은 2004/05 시즌에 찾아왔다. 32강 조별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예선 탈락을 눈앞에 둔 리버풀은 올림피아코스와의 경기에서 2골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둬야 했다. 그러나 전반에 히바우두에게 골을 내줘 0-1로 끌려가던 리버풀은 제라드의 기적 같은 중거리슛 한 방으로 3-1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합류한다. 그러나 제라드의 기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0-3으로 전반전이 마감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제라드는 풀 죽은 동료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며 후반전을 준비했고 시작 휘슬이 울리자 팀을 진두 지휘한다. 후반 9분 리세의 크로스를 헤딩 골로 연결한 제라드는 스미체르의 골로 1골차로 추격한 상황에서 상대 문전을 비집고 들어가다 가투소의 파울을 유도, 페널티킥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이렇게 3-3 무승부를 만든 리버풀은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리버풀 팬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내고야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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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는 무한 잠재력이다. 아스날의 질주를 파브레가스의 공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아데바요르의 비상, 플라미니와 흡렙의 중원 지배력, 클리쉬와 사냐의 맹렬한 공수전개 등 구성원 전체의 유기적인 짜임새가 빚은 결과다. '보석 수집상' 벵거 감독의 지도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브레가스를 주목하는 건 그가 벵거 감독이 추진한 아스날의 새로운 10년 구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잠재한 재능은 물론 현 거너스의 전술적 컬러에 있어 파브레가스가 차지하는 비중 등의 고려다. 아스날이 2006년 파브레가스를 잡아두기 위해 8년 계약 연장 카드를 뽑아든 배경도 여기에 있다. 파브레가스가 런던으로 건너온 첫 시즌, 아스날은 38경기 무패 우승이라는 신화를 일궈냈다. 16살의 소년은 리그컵 3경기에만 출전, 우승반지를 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 파브레가스는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스날 역대 최연소 출장과 득점 기록을 연달아 경신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고 어느덧 거너스의 주축으로 자리했다. 아스날이 맨유와 첼시를 따돌리고 극적인 리그 우승을 이뤄낼지 장담할 수 없다. 리버풀과 운명의 일전을 앞둔 아스날이 원정의 불리함을 딛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를지도 알 수 없다. 또 반세기 가까이 유럽대항전 무관에 그친 무적함대를 이끌고 유로2008서 영광을 재현할지 지금으로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기의 블루칩으로 성장 중인 파브레가스에게 무한한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달 만 스물한 살이 되는 파브레가스의 시대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기적의 사나이' 제라드는 미드필더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겸비한 선수다. 앞서 언급한 챔피언스리그의 기적 외에도 제라드는 팀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벼락 같은 슛이나 화끈한 파이팅 정신으로 팀을 구해냈다. 게다가 팀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서 팀 안팎에서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팬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지난 2005년, 제라드는 첼시로부터 고액의 연봉을 제의받은 일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첼시로 이적할 것이라는 루머를 믿었고, 당시 리버풀의 열혈 팬들은 "제라드야, 우리가 없는 살림에 너와 팀을 응원하겠다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이스탄불 다녀오느라 긁은 카드 할부금이 아직도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단다. 그런데 너는 돈 더 받겠다고 리버풀을 떠난단 말이냐"라고 하소연하며 제라드를 만류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첼시 루머는 그저 루머였을 뿐인지 제라드는 리버풀에 남았고 2005/06 시즌 무려 23골을 쏟아넣으며 다시 한번 팀의 에이스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그런 제라드에게 올 시즌은 매우 의미있는 시즌이다. 페르난도 토레스라는 최고의 공격수를 파트너로 얻은 그는 쉐도우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며 놀랄만큼 폭발적인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올 시즌 리그에서 현재 10골을 기록 중인 그는 한 골만 더 넣으면 역대 리그 최다골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제라드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서른이 채 되기 전에 대부분의 우승컵을 거머쥐었지만 가장 중요한 리그 우승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황금세대'라고 불리던 대표팀에서도 이렇다할만한 성과가 없다. 리버풀에서 은퇴할 가능성이 높은 '태생이 리버풀맨'인 제라드가 이 두 가지 성과마저 달성한다면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그에 대한 평가는 영원 불멸의 것으로 굳어질 것이다. |
첫댓글 당연히 세스 아닌가여
아직까진 제라드!!
아직까진 당연히 제라드~~앞으로는....모르겠따~~
아직은 제라드.
멀티자원적인 측면과 더불어 세스크한테 꿀릴것 없는 제라드가 아직은 더..
세슥이 능력이 줴랄과 비교해서 꿀릴게 없긴하지만 줴랄은 승부를 뒤집는 능력이 잇으므로 줴랄에 한표
아직은 제라드인건 확실하지.. 세스크는 진행중이기에 가능성은빵빵
올시즌 초반 세스 후반 제롸..
아놔 코푸면서 보니까 파브레라드 로 보였다 세스크+람파
둘다 쌓아놓은 경력이 별로 없음..리그와 챔스를 제외하면 유로나 월드컵에서 그들의 활약은 본게 몇번이나 될까나..
아직은 제라드..세스크는 아직 어리니깐 경험과 노련미를 갖추면 뛰어 넘을거라 생각됨
앵커랑 쉐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