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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의 호랑이>
-초한전기에서 항우로 분한 하윤동. 전작 삼국지에선 여포를 맡았다. 이쯤되면 무력괴물 전문. -
항적. 자는 우. 흔히 항우리가 부르는 그 인물. 본명은 항적이긴 하나 하도 항우란 이름이 유명한 고로 계속 항우라고 호칭할 그는 하상(지금의 장쑤성 쑤첸현 서남) 출신으로 항연의 손자였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초나라의 장군을 지낸 명문 무가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아직 초나라가 멀쩡히 존재했지만 초나라는 그가 10대일 때 멸망했고, 할아버지인 항연은 전사 혹은 자살했다.(1)
초나라가 망한 후 진시황은 6국 귀족들의 감시 등을 목적으로 이들을 관중으로 이주하게 하였다. 항우, 그리고 그를 키우던 삼촌 항량도 이때문에 관중으로 이주하게 된 듯 하다. 하지만 항량은 죄를 지어 역양에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기현의 옥연인 조구가 역양의 옥연(옥리)인 사마흔에게 사건을 무마해달라고 하여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항량은 살인을 저질러 항우와 함께 회계군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항량은 그 곳에서 장례를 주관하고 여러 대소사를 관장하여 명망을 얻었다.
- 진시황 순행 당시 사용됬을 온량거 -
그러던 기원전 210년. 진시황의 5차 순행이 회계를 지나게 되었다. 진귀한 구경거리인지라 항량과 항우도 그걸 보게 되었다. 항우는"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말했고, 놀란 항량은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현장에서 이를 들은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항우의 큰 뜻과 무모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항우는 자라면서 키가 8척이 넘고 힘도 장사였다. 항량은 그를 위해 학문을 배우게도 하고 검술도 가르치게했다. 하지만 항우는 둘 다 중도에 때려치웠다. 항량이 화를 내며 혼내자 항우는 학문은 자기 글자 쓸 줄 아는 정도면 족하고 검술은 한 사람을 대적하면 충분할 뿐이며 자신은 만인을 대적할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항량은 기특해하며 병법을 가르쳐줬다. 항우는 병법은 꽤 재미있어했지만 이것도 어느 순간 다 끝내지 못하고 때려치웠다. 이리 보면 저 만인대적을 운운한 부분도 항량의 생각대로 큰 뜻을 품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공부하기 싫은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휼륭하게 한 것에 지나지 않아보인다. 어떻게 보면 훗날 항우가 보일 안 좋은 모습들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튼 항씨 일가는 이렇게 회계군에서 나름 유지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지방관리도 그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심지어는 중앙조정에서 보낸 지방관조차도.
<호랑이가 처음 발톱을 쓰다.>
진승이 반란을 일으키고 2달 정도 지난 9월. 당시 진승의 반군은 함양 근처까지 진격하고 있었고 그 기세도 대단했다. 진나라는 곧 망할 것 같았다. 각지에서 반진 봉기가 잇따르고 있었고 민심은 흉흉했다. 회계군을 다스리던 회계군수 은통은 진나라의 지방관으로써 4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1. 진나라에 계속 충성한다.
2. 길을 끊고 회계군을 지키기만 한다.
3. 진승에게 투항한다.
4. 그냥 직접 반란을 일으킨다.
일단 1,2번은 은통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회계군은 본래 오, 월나라가 있었던 곳이고, 그 뒤론 초나라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진나라 왕전이 이 곳을 공격해 점령한 지 겨우 10여년밖에 되지 않았었다. 즉 이 지역 백성들은 전부 초나라가 부활하길 바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길을 끊고 가만히 앉아있거나 진나라에 계속 충성했다가는 반란군에게 맞아죽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3번이나 4번이다. 은통은 나름 야심이 있었는지 이 중 4번을 골랐다. 이 4번은 파양현령 오예가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양현 일대 월인들에게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던 오예와 달리 은통은 딱히 회계 현지 백성들에게 인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부족한 인망을 채울 목적으로 회계의 유지 항량, 그리고 나름 명망 있는 협객으로 보이는 환초를 끌어들이기로 결정하고 항량을 끌어들인다. 그는 항량에게 이렇게 말한다.
“강서 지역은 모두가 반란을 일으켰다니 이 또한 하늘이 진을 망하게 하려는 때가 아니겠소? 내가 들으니 먼저 움직이면 남을 제압하고 늦으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하더이다.(2) 내가 병사를 모아 그대와 환초(桓楚)를 장수로 삼고자 하오.”
항량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 환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큰 늪지대로 도망쳐 숨어지내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 항우가 환초의 은신처를 아니 그에게 환초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라고 은통에게 권하였다. 은통은 그 말을 듣고 항우를 불러들였다. 그 때 항우는 칼을 찬 상태였다.
- 선즉제인 후즉제어인을 실천하는 항씨일가 -
항우가 들어오자 항량은 바로 "때가 되었다!"고 외쳤다. 이를 신호로 항우는 재빠르게 은통의 목을 베었다. 항량은 은통의 머리를 들고 인수를 찼다. 은통의 부하들은 크게 놀랐다. 상당수는 항량에게 저항했지만 그들은 모두 항우의 칼에 맞아죽었는데 그 숫자가 백명이 넘었다. 호랑이가 처음 발톱을 쓴 순간이었다.
- 호랑이는 처음 발톱을 드러냈다. 이제 이 호랑이는 피맛을 보기 위해 발톱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있다. -
진항우무쌍이 벌어지자 모두가 놀라 그대로 항량에게 복종했다. 항량은 그렇게 회계군의 치소가 있던 오중을 장악한 뒤 스스로 군수가 되고, 조카 항우를 부장으로 삼았다. 그 뒤 오현 현령 정창 등을 항복시켜 회계군 일대를 장악하고, 자신이 눈여겨두고 일을 시켜본 호걸들을 관리로 임명하면서(3) 8천명의 병력을 양성한다. 그는 당장 장강을 건너지는 않고 일단 회계에서 힘을 키우며 때를 기다린다.
<건달 이무기>
패현(沛縣). 지금의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에 위치한 이 곳은 물이 많은 평지대였다. 자연히 농사도 잘 되는 편이었다. 이 곳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땅이 괜찮은 편이라 그런지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긴 했지만 일개 농민이었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던 상황이니. 다만 성씨는 있었다. 그 가족의 성씨는 유(劉)씨였다.
- 초한전기에서 유계로 분한 진도명. 건달 연기가 일품이다. -
그 가족의 아들 중에 유계(4), 훗날 유방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노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신릉군을 존경하던 이 남자는 소싯적에는 고향을 떠나 신릉군의 식객이었다가 명성을 떨치게 된 장이 밑에서 몇달 간 기숙하기도 했다. 그는 딱히 농사일에 종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공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술과 여자를 좋아했으며, 어질면서 베풀기를 좋아하며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좋게 말하면 유협이요, 나쁘게 말하면 건달인 그런 부류였던 것이다.
다만 기록등을 보면 그는 굳이 따진다면 협객보단 건달에 더 가까워보인다. 딱히 의를 숭상해서 그와 관련된 미담을 남긴 사례가 없고, 술 마시고 여자 밝히는 걸 좋아했다는 기록뿐이니 말이다. 조씨성 가진 여자와 눈이 맞아서 정식 혼인을 하지 않고 살림을 차려 아들을 볼 정도였다. 그래서 가족들도 그를 타박했다. 아버지는 이 아들보고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며 형을 본받으라고 질책하고 형수는 국물 더 달라니 국그릇을 긁어대며 구박을 했다.
그래도 사람 사귀는 걸 좋아했는지 두루 여러 사람을 사귀었다. 옥리인 소하, 조참, 임오라던가 관아의 수레 끄는 일을 맡는 하후영, 개백정 번쾌, 초상집에서 피리 불어주는 주발, 왕릉 등등이 그와 사귀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사람 사귀는 실력이 대단했는지 관리들을 놀려먹기 일쑤인데도 친한 사람 중에 하급이라도 명색이 관리인 자들이 많았고, 하후영은 아예 유계한테 실수로 칼에 찔리고도 유계를 변호하려고 사건을 조작하다 걸려 고문당하기도 했다.
이 유계. 허풍도 잘 떨었다. 어찌어찌 유계는 자신의 고향인 패현 풍읍 사수정의 정장(5)이 되었다. 그러자 나름 행세 좀 하겠다며 부하를 설(6)에 보내 대나무 껍질을 벗겨와서 관을 만들고는 쓰고다녔다. 또 정장으로 부역하러 함양으로 갈 때 우연히 진시황의 행렬을 보게 되었는데 그걸 보더니 "대장부라면 실로 저렇게 해야지"라고 말했다.
- "내가 저놈하고 친해도 저놈의 허풍은 답이 없다..." -
거기다가 패현 현령과 친한 여씨 일가가 원수를 피해 패현으로 이주한 후 일종의 집들이를 했는데 현령과 친한 인물이다 보니 손님이 많이 왔다. 그래서 소하가 하례금 1000전 이하는 대청 아래에 앉게 했는데 그걸 본 유계는 하례금 1만전이라고 소리를 쳤다. 그 꼴을 본 소하가 평소 유방과 친한 사이(7)임에도 허풍쟁이라고 궁시렁거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돌아갔다. 그 일로 여씨가 유계를 주목하더니 대뜸 현령이 달라고 할 때도 안 주던 자기 딸을 유계에게 주어 혼인을 시켰다. 사기에선 관상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뭔가 황당한 대목이다. 특히나 이 여씨는 나중에 자기 둘째 딸을 개백정 번쾌에게 주기까지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다만 진순신은 나름 그럴듯한 추측을 했는데 여씨 역시 소위 유협의 부류였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실제로 원한을 피해서 온 거라면 당시 시대상 유협의 일과 연관되었을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유협이 아니라고 해도 원한을 피해 온 만큼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 적어도 해당 지역의 유협 혹은 건달이라고 부를 부류와 협력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즉 이런 관점에서 나름 그 지역의 유력한 호협인 유계와 인척관계를 맺어둔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뱀이 이무기가 되다.>
여튼 결혼까지 하고 자식까지 둘 낳던 유방은 어느 날 다시 함양으로 가게 되었다. 이미 몇 번 해본 부역자 인솔때문이었다. 이번엔 여산이 목적지였다. 여산의 진시황릉 조성을 위해 유방은 사람들을 끌고 출발하기 시작한다. 평소에도 해본 일이니 큰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줄줄줄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계 스스로 생각해보니 여산에 도착할 때는 한명도 안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자긴 처벌을 받을 게 뻔했다. 결국 그는 어느 늪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는 밤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모두 도망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도망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다들 도망가고 10여명이 유계를 따르기로 했다.
이 무렵 진시황이 동남쪽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며 이를 억누르려고 순행을 다녔다. 유계는 지레 겁을 먹고 망산과 탕산 사이로 도망쳐 은신했다. 일설에는 아내인 여씨가 그를 찾아 그 지역으로 자주 갔는데 항상 기막히게 찾아내서 유계가 놀라 물으니 운기가 서려있었다고 했다. 영 믿기가 힘든 이야기지만.(8)
확실한 건 소위 망탕산이라고 부르는 지역에 유계가 숨은 후 나름 도망자들이 휘하에 모여들어 수백명을 휘하에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진시황이 죽고 진승이 거병했다. 일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패현 현령은 갈팡질팡하다가 진승에게 투항할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하와 조참이 패현 백성들이 명령을 따를지 의문이라며 유계의 무리를 끌어들이자고 권하였다. 현령은 그 말에 혹해 유계의 동서인 번쾌를 보냈다.
- "이제 내가 지도자다!" -
하지만 현령은 곧 마음이 바뀌어 그대로 진을 섬기기로 결정했다. 유계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건 덤이었다. 그는 아예 소하와 조참도 죽여서 없애려고 했다. 소하와 조참은 서둘러 도망쳤다. 유계는 일단 자신의 무리로 성을 에워싸고 소하에게 패현 현령을 죽이고 자신에게 붙으라는 글을 쓰게 한 후 화살을 패현 성루로 날렸다. 곧 현령은 살해되고 유계는 패현에 입성했다.
일단 성에 입성한 후 이 반란군들은 지도자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관리 출신인 소하와 조참이 물망에 올랐다. 특히 소하는 진나라 관리의 추천으로 조정에 들어갈뻔한 적도 있을 정도로 능력이 알려져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일이 잘못되면 일족이 몰살될까 두려워 사양했다. 그렇게 해서 유계... 이제 유방이라고 부를 인물이 지도자가 되었다. 한낱 뱀에 지나지 않았던 인물이 이제 용이 되기를 바라는 이무기가 된 순간이었다.
- 이무기는 승천하기 위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쟁자는 너무 많았고 용이 되기 위한 여의주를 얻는 것은 언제일지 알 수가 없었다. -
패현은 물이 많은 편이라곤 해도 전반적으로 평탄했다. 즉 세력 확장이 용이하면서도 동시에 공격받기 쉬웠다. 이런 난세에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세력 확장은 필수였다. 유방은 곧 행동에 나섰다. 그는 조참, 번쾌,주발 등을 장수로 삼고 패현 사람 2,3천명을 긁어모아 병력으로 편성했다. 병력 편성 후엔 황제와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고 근처의 호릉, 방여를 공격해 점령한 후 다시 풍읍으로 돌아와 그곳을 지켰다.
<잇따르는 봉기>
진승의 장초가 엄청난 기세로 뻗어나가고 진나라가 흔들거리자 패현의 이무기, 회계의 호랑이 말고도 다른 야심가들도 슬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중 나름 거론할만한 인물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파양현령 오예고 나머지 한 명은 전담이다.
먼저 오예는 그 출신을 알 수 없지만(9) 진승이 거병할 무렵 파양현령으로 지내고 있었다. 파양현에는 월(越)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오예는 그들을 잘 어루만졌는지 그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와중에 진승이 난을 일으키고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오예는 월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거병한다.
- "거. 월인들만 있으면 쓰나. 우리 도적패들도 같이 쓰쇼!" -
하지만 월인들만으론 불안했는지 죄를 짓고 경형을 받은 후 여산에서 노역하다가 탈출, 장강에서 도적질을 하던 영포를 끌어들인다. 그는 영포를 자신의 사위로 삼고 서로 힘을 합쳐 구강 일대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한다.
한편 적현(지금의 산동성 가오칭현)에는 전담과 그의 사촌형제인 전영, 전횡이 살고 있었다. 전씨란 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제나라 왕실의 후손이었다. 진승이 난을 일으키고, 그 휘하의 장수 주불이 위나라 일대를 평정하며 적현 인근까지 진격하자 이들은 제나라 부활을 도모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거짓으로 자신의 노복을 묶고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을 이끌고 관아로 찾아가 노복을 죽여야겠다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현령이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나오자 전담은 현령을 죽여버리고 그대로 제나라 부활을 선언했다. 곧 주불의 군대가 적현에 도착했지만 전담은 그 군대를 격퇴시키고, 남은 제나라 땅을 평정하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각지에서 반란군이 궐기하기 시작했다. 또 진승의 군대는 사방팔방으로 영역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중원은 군웅할거, 대혼란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1) 항우본기에선 항연이 왕전에게 죽었다고 하고 진시황본기에선 창평군을 왕으로 세우고 저항했다가 자살했다고 기록되어있다.
(2) 선즉제인이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3) 이 때 한 사람이 혼자 자리를 받지 못하여 항의하자 항량은 그에게 장례를 주관하게 했더니 제대로 하지 못했었기에 뽑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탄복했다.
(4) 사기에선 이름은 방이고 자가 계라고 나오지만 사실 유씨네 넷째아들이라 계라고 불렸을 뿐 방은 나중에 붙여진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5) 진나라의 가장 작은 행정단위가 정인데 정장은 그 정의 우두머리이다.
(6) 지금의 산동성 텡현. 맹상군의 봉지이기도 했던 그 곳이다.
(7) 유계가 노역자들을 인솔하고 떠날 때 남들은 300전만 노자로 주었지만 소하 혼자 500전을 노자로 주었다고 한다.
(8) 죄인의 아내가 태연히 숨어있는 죄인을 만나러 간다는 것 부터가 윤색의 냄새가 단단히 난다. 거기다 시기를 알 수가 없긴 하지만 사기 장승상열전의 임오 부분에서 유계가 죄를 지어 숨어다니니 여씨가 감옥에 갇혔고, 옥리가 여씨를 모욕하자 유계와 친했던 임오가 그 옥리를 두들겨팼다고 하는데 여씨와 결혼한 후 유계가 죄를 지었을 상황이라면 유계가 인솔자들을 끌고 가다 도망친 이 시기가 가장 유력할 것이다.
(9) 오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글도 보이고 중국 위키에는 오예의 아버지가 초나라 대신이었다고 하는데 모두 출처를 알 수가 없는 이야기이다.
첫댓글 이상하게 엑박으로 뜨네요ㅣ;;;
전 멀쩡한데요...
@롱기누스 저도 엑박으로 뜨네요
재밋게 보고갑니다!
오 엑박이 다 고쳐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