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의 六德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원효사로 올라가는 길에 한 음식점에 된장의 5덕(五德)을 칭송하는 내
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잠시 멈춰 서서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다른 것과 섞여도 고유의 향기와 맛을
잃지 않는 단심(丹心)이 5덕의 첫째요, 오래도록 상하거나 변함이 없는 항심(恒心)이 그 둘째요, 비리고 기
름진 냄새를 없애면서 본래의 자양은 생선이나 고기보다 못하지 않는 불심(佛心)이 그 셋째라 했습니다. 넷
째는 선심(善心)으로 매운 맛과 독한 맛을 중화시켜 자연과 동화되는 것을 말하고 어떤 음식과도 어울리고
자연과 동화되는 화심(和心)이 마지막 덕이라 했습니다.
마음가짐이 된장의 5덕만 같다면 그 어느 누구라도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과 이 대간에서 뻗어나간 9정
맥 종주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욕심 내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의 등뼈를 한 번은 밟
아보겠다는 단심(丹心)을 갖는 것이 대간과 정맥 종주의 시작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쉽게 중단하지 않고 끝
까지 하겠다는 변치 않는 항심(恒心)이 뒷받침되어야 완주가 가능합니다. 음주가무를 즐길 수 있는 기회나
다른 스포츠들이 유혹해 올 때 종주산행이 그 유혹들보다 진정한 달콤함은 절대로 못하지 않다고 믿는 불심
(佛心)도 필요합니다. 욱한 마음과 삐지기 쉬운 성정을 가라앉히고 같이 산행하는 분들에 마음을 쓰는 선심
(善心)을 갖는다면 그는 종주산행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저처럼 혼자서 종주 길에 나서는 사람들에는 나
무와 야생화, 산짐승과 새, 흙과 바위, 바람과 구름 그리고 햇살 등 모든 산식구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화
심(和心)이 꼭 필요하니, 그것 없이는 긴 시간 혼자서 걸으며 엄습해오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기가 정
말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된장의 오덕은 뭐니 뭐니 해도 발효과정에서 얻어집니다. 발효란 시간을 삭이며 숙성하는 과정으로 슬로우
푸드를 만드는 요체입니다. 대간이나 정맥 종주는 어느 한 산을 정해 오르내리고 나면 쉽게 끝나는 점의 산
행이 아닙니다. 몇 백 키로가 넘는 장대한 산줄기를 오랜 기간 한 걸음 한걸음씩 옮겨 놓으며 이어가야 하는
선의 산행입니다. 종주하는 산객들에는 선을 이어가는 기나긴 과정이 바로 발효과정입니다. 선을 이어가는
동안 중간에 그만두고자 하는 또 다른 자기와 싸워가며 시간을 삭이고 완성도를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 대간
종주이고 정맥종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줄기인 1대간 9정맥 종주를 모두
마친 분들에게서 된장처럼 깊은 맛과 그윽한 멋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으며, 이는 부지런히 일하고 또
한편 시간을 삭이며 기다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 않겠나싶어서입니다.
위 글은 2007년 호남정맥을 종주하고 남긴 졸저 “섬진강 둘레 산줄기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에 실은 글입
니다.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손수 담근 된장을 선물 받고나서 위 글을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된장의 5덕
을 제대로 드러내려면 한 가지 덕인 "시심(施心)"이 더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푸는 마음을 뜻하
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사전에 실려 있지 않는 ‘시심(施心)’을 된장의 6덕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다시말
해 ‘시심(施心)’이란 5덕을 두루 갖춘 된장을 주위사람들에 나눠주는 베푸는 마음인 것입니다.
영국의 작가 서머세트 모옴은 그의 소설 ‘인간의 멍에(Of Human Bondage)'에서 돈은 제 6감이라 했습니
다. 비록 허영에 들뜬 여주인공 밀드레드의 입을 빌려 돈 없이는 인간의 나머지 5감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행복할 수 없음을 역설한 것이지만, 서머세트 모옴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서밍 업(The
Summing Up)'에다 같은 글을 올렸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돈이 제6감이라면, ‘시심(施心)’은 된장의 6덕입
니다. 돈이 돌아야 인간의 나머지 5감이 제 몫을 다할 수 있듯이, 베푸는 마음인 시심(施心)이 없이는 된장의
제 맛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된장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베푸는 마음인 ‘시심
(施心)’이 된장의 5덕에 더해져야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정치는 최고의 덕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정치가
온갖 욕을 먹고 있어 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치를 통하지 않고는 덕을 널리 고루 펼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입니다. 덕이란 그 속성상 누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덕다워진다는 생각입니다. 된장의 5덕을
고루 펼치는 마지막 6덕은 베푸는 마음의 시심(施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된장의 6덕을 제대로 배
운다면 정치가 최고의 덕으로 평가받을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
2012. 8. 12일 산본에서
첫댓글 "된장은 역시 토종음식으로는 최고야~!!"라며 먹었던 기억 밖에는....
된장의 5덕과 베푸는 시심을 더하여 믹서시킨 글 너무 멋지십니다.
홀로 백두대간 어려운 산행을 종주하시는 학우님, 더욱더욱 멋지세욤.. ^^
졸고를 과찬해주셔서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