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이른 새벽 단둥 기차역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몰려 있었다.
나는 원래 11일 날에 북한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당시 함께 가는 사람이 7명이 되지 않았기에 오늘까지 연기 된 것이다.
12일 날, 북한에 갈려고 했던 사람은 모두 22명이었지만 출발에 임박하면서 15명이 이탈하고 7명의 일행이 북한으로 향했다.
[한반도 아래쪽을 가로지르는 선은 무엇인가?]
이것이 북한 비자이다. 북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여권에 북한 입국과 출국 외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의 비자가 있다면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기차가 출발하여 5분후 신의주역에 도착했다.
기차가 멈추어서며 북한 가이드가 열차에 오르면서 우리를 맞았다. 그러나 우리는 열차에서 내릴 수 없었고, 북한 세관 군인들의 세밀한 짐 검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북경 단체에서 온 사람은 속옷에 비디오카메라를 감추었지만 예리한 군인들의 눈에 들키고 말았다.
회수당한 비디오카메라는 신의주 세관에 보관 후, 돌아 올 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의주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모든 검사를 마친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신의주역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평양행 열차를 기다렸다.
신의주 화장실은 물을 내리는 것도 설치되지 않았고, 심지어 손을 씻을 수 있는 수도꼭지도 없었고, 자신이 가져온 바가지를 이용해 물을 써야 했다.
이 사진은 내가 허세를 부리려고 찍은 사진이 아닌, 기차역에서 심심한 나머지 한국 영화를 보게 되었다. 실제로 매우 심심했다. 창문을 모두 막아놓았기에 밖을 내다 볼 수 없었다.
오후 2시 평양행 기차에 출발하면서 우리는 2호 칸인 상등석 자리를 배치 받았다.
북한 평민들은 모두 일반석을 이용했지만, 외국인과 북한의 간부들은 상등석을 이용하고 있었다.
신의주의 길거리
작은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 역에서는 열차원들이 기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나를 ‘괴물’ 같은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중 자동보총을 메고 다니는 군인들도 많았다.
우리는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평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달 10월 12일에서 15일까지 북한을 다녀온 중국인 관광객이 북한에서 보았던 개인적인 소감,
평양에 오면서 우리 단체 7명이 내야하는 비용은 2400원, 우리는 양각도 호텔에서 밥을 먹고 한 사람이 방 한 칸을 잡고, 22층에 있는 모든 방을 예약해야만 했다.
이것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에는 하수구가 없었고, 물은 바닥에 뿌려졌다. 나는 매일 밤 바닥을 닦아야 했다.
호텔에서 외국 TV를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중앙 CCTV-2 같은 것.
2시가 돼서 잠이 들어 7시에 일어나 창문을 열며 평양시를 둘러보았다. 양각도 호텔 로비에는 유렵과 미국의 여행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북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오늘은 묘향산, 김정일 기념품관 및 평양 지하철을 관광하기로 일정이 잡혔다. 아침밥은 소고기, 계란, 빵, 죽, 두부 등으로 매우 풍성했으며, 모두 녹색식품이었다. 특히 계란은 입맛에 좋았다.
우리 일행 7명은 버스 한 대를 전세 냈다. 나는 북한에는 원유가 나오는 것도 없고, 모든 원유는 수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탄 버스가 평양시를 벗어나 100km를 달려서야 묘향산에 도착했다. 정말 작은 국가였다. 국토 면적은 중국의 강수성보다 작았고, 인구는 2100만, 관광가이드는 “지금은 5명의 자녀를 출산시킬 것을 격려한다”며“5명의 아이들 양육비용은 국가가 부담 한다”고 말했다.
궤도전차는 출근 시간에만 운영한다. 들어본 바에 따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사정으로 인해 전차의 운행이 없었다고 한다.
버스가 빨리 지나가서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북한의 열병식 훈련 기간은 1년으로 각 군단과 훈련소, 군관학교, 로농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들에서 인원들을 선발하여 자신의 소속 부대 명칭으로 대열을 구성해 훈련을 진행한다.
[붉은 청년근위대원들이 열병식 훈련을 위해 집합하고 있다. 출처: 中=주진조선]
이 훈련은 오전 9시에 시작해 저녁 7시까지 진행하며 행사 임박에 도달한 2~3개월 전부터는 야간에도 훈련을 진행한다.
맙소사~~~이들의 나이가 열다섯 이라니?!
[반장의 구령에 따라 발을 맞추어 걷는 붉은 청년근위대원들.]
[가슴에 달고 있는 숫자는 열병식장에 참여할 당시 서게될 자리이다.]
열병식 시작에 앞서 군인들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은 군인들을 환호하고 있다.
열병식 주석단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총을 멘 두 명의 보초병과 일반 군인들로 가득하다. 이 입구는 평상시에 봉쇄되어 있다가 행사시에만 개봉된다.
호기심의 여성 군인들이 열병식 행사 좌석에 앉아 자신들의 이야기로 즐거움을 표출한다.
김정일 등장에 환호하는 사람들, 울고 있는 사람과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은 왜 울고 있는가?
실제로 김정일을 만나본 탈북자 김성옥씨의 말에 따르면 “일반 시민으로 김정일을 만나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울었다”고 말했다.
열병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만경대 혁명학원’ 학생들이다.
이들은 혁명가의 자손들이거나 부모님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녀들로 김정일의 아낌없는 배려가 선사되며 앞으로 이들에게도 조국과 김정일 개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 할 것이다.
한국에서 일반군인들의 평범한 복장인 군복은 북한에서는 특수부대 군인들만 착용한다.
이 군복을 ‘개구리 군복’이라 말하며 “대남파견 군인들이 많이착용한다”는 북한 주민들의 소문이 있다.
‘노농적위대’ 즉 노동자 농민으로 이루어진 군인들이며 직장인이면 누구나 여기에 해당된다.
‘붉은 청년 군위대’ 14~16살의 고등중학교 학생들로 군인의 일종이며, 북한의 모든 14~16살의 학생들은 여기에 해당된다.
군관(장교)학교 학생들이다.
이사람은 ‘탱크장’이라고 한다.
북한에는 어느 탱크장이 열병식으로 인해 김정일에게 좋은 신임을 얻어 영웅까지 된 사람이 있다.
첫댓글 늙어서도 좋은 취미를 가지고 계신 스텔스님께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