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에”로 출발
베트남 중부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후에”시는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웬(Nguyen)왕조의 궁궐이 있는 옛 수도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경주 정도 된다고 봐야죠.
1802년부터 1945까지 13대의 왕이 통치를 하였다는군요.
마지막 바로 전 12대 왕인 카이딩 왕이 후손이 없어서 입양한 양자를 왕으로 앉혔는데
이 분이 13대 왕 마지막 왕이랍니다.
왕정이 몰락하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는군요.
베트남을 떠나야 하는 일정 때문에 촉박하지만
베트남 중부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싶어서
일부러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원래는 “후에”는 비행기로 가야 좋지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를
기차로 갈 때 14시간, 올 때 16시간을 타고 왔습니다.
물론 낮부터 밤까지 달리는 열차죠.
베트남은 잘 아시다시피 동양의 칠레라고 불릴 정도로 국토가 깁니다.
하노이에서 후에까지가 660km라고 하네요.
호치민(옛 사이공)에서 후에까지는 1,000km가 넘구요.
후에쪽 중부지방이 예전에 월맹과 월남이 전투를 벌이던 지역이라서
DMZ 관광코스도 있더라구요.
전 일정이 촉박하여
후에의 왕궁하고 사원, 그리고 왕릉 세 군데 다녀오는 걸로 만족해야 했지요.
여러분들은 시간을 좀 넉넉하게 할애하셔서
우리나라 백마부대와 맹호부대, 청룡부대가 목숨 걸고 민주주의를 지키려했던
아름다운 중부지역을 둘러보시는게 좋을 듯 하네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를 비롯하여
베트남의 나폴리라 불리는 “나짱”(우리는 나트랑이 더 익숙하죠?)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 “다낭”,
전통적인 무역항구 “호이안”
이렇게 둘러 보시는게 좋겠군요.
저녁 7시쯤 출발한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잠부터 청했습니다.
아침 일찍 동트는 모습부터 중부지방의 농촌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죠.
이제 장거리 밤열차를 세 번째 타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서 잠도 그런대로 잘 수가 있었지요.
하~ 뛰어난 적응력…ㅎ
요동을 치긴 하지만 평지를 달려서 그런지 그나마 덜하더군요.
좀 늦긴 하였지만 일출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호수에 비치는 일출의 모습 또한 새롭게 느껴집니다.
베트남은 물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여기저기 호수도 많고, 논농사 하느라 저수지도 많지요.
마침 간밤에 중부지방에 비가 왔었는지
대지가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습니다.
이미 추수가 끝난 논도 많이 보이고
황금벌판의 수확을 거두느라 땀 흘리고 있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쁜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남부로 내려갈수록 2모작은 기본이고 3모작을 한다고 하니
축복받은 땅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그야말로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 우리네와 흡사하군요.
백로떼들이 우아하게 날아들고
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하며
논물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떼들…
물이 허리보다 깊은 저수지에 몸을 담그고 낚시하는 농부의 모습이 정겹기까지 합니다.
중간중간에 고무나무 숲도 보입니다.
북쪽 산간마을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지만
중부지방이 오히려 더 오지같이 느껴집니다.
중부 내륙의 농촌은 외부와 단절된 듯
낙후된 모습으로 농사일이 전부인 듯 합니다.
이런 중부사람들은 한때 전쟁 통에 상처투성이였다죠.
북쪽이 점령할 땐 그쪽 편 들었다고
남쪽이 점령할 땐 또 남쪽 편 들었다고
양쪽에서 변절자로 손가락질 받았답니다.
그 참혹한 전쟁 통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그 순박한 농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뭐 일까요?
“후에”가 종점이 아닌데
안내 방송도 없고
같이 탄 호주 가족들이 12시간이면 후에에 도착한다고 들었다고
중간에 여러 번 내리려고 하는 바람에
저도 덩달아 헷갈려 하면서 내릴 뻔 하다가 겨우 제대로 내렸습니다.
오전 9시반이 넘어서 도착하였으니 무려 장장 14시간 이상을 타고 왔지요.
중국에서 설날인 춘절 때
고향가기 위하여 무려 몇박 몇일을 기차타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서도…
왕궁의 도시, 역사의 도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소중한 문화, 역사 유적들이 많은 곳이랍니다.
1802년부터 150년간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였던 웬왕조의 수도였던 곳으로서
“후에”는 베트남에서도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도시랍니다.
역에는 여행을 주선하는 호텔에서 안내원이 나와 맞이하여 호텔로 안내 받아 갔습니다.
중부지방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꽤 덥더군요.
오늘 기온이 섭씨 35도라고 하니
하노이가 한참 더울 때는 40도도 넘고 그랬으니까
베트남 날씨치고는 꽤 더운 건 아니지만
북쪽 서늘한 사파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체감 온도가 무지 덥습니다.
역시 안내에 따라 점심 식사하는 식당에 가서
제일 안전하고 만만한 쌀국수를 시켰습니다.
맛에 있어서는 실패할 확률 제로이니까요…ㅎ
식당인데 한쪽 구석에는 사진도 팔고 여행 상품도 팝니다.
여기 주인이 원래 사진작가라는군요.
그래서 그의 작품사진들이 식당 벽에 온통 걸려있고
앨범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면서
작은 사이즈는 1,500원에 팔고
좀 큰 사이즈는 2,000원 좀 넘게 받습니다.
엽서로도 만든게 있는데, 그건 미화 3불을 받더라구요.
아무튼 관광도시라서 그런지 온 천지가 다 여행사들입니다.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시내 일일투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더군요.
서양사람들은 두꺼운 여행책자를 들고 다니면서
스스로 상품을 골라서 여행하더군요.
사실 여행은 좀 느긋하게 다녀야 하는데
그룹투어는 정해진 시간에 뺑뺑 돌리기 때문에
보고 싶은 만큼 제대로 보지도 못하겠더군요.
하지만 전 그냥 여행사에 맡겨 버렸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뭘 고른다는게
공부도 좀 해야 하고,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도 베러 댄 낫싱…ㅎ
점심 먹고 호텔로 돌아와 보니
아까부터 진행되던 결혼식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더군요.
300석은 되어 보이는 호텔 식당 가지고는 좁아서
호텔 로비의자들을 싹 치우고 거기에도 식탁들을 놓아서
400석 이상을 마련하더군요.
처음에 호텔에 들어설 때 호텔인지 레스토랑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로비 전체가 식탁으로 가득 찼으니까요.
아무튼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 걸 보면 제법 집안이 좋은가 봅니다.
현관에 걸린 신랑신부 사진을 보니
신부가 참 곱게 생겼더군요.
복도 많다고 생각했지요.
집안 좋고, 인물 좋고…
오늘 이 순간 처럼
믿음과 사랑으로 두 사람이 한평생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서로가 받길 원하기 보다는 상대에게 주고 싶어한다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사랑도 줄 대상이 있음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또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나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고,
더군다나 따뜻한 사랑을 넘치게 준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이 호텔은 별관도 결혼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더군요.
하루에도 6쌍에서 8쌍이 결혼식을 여기서 치루는 모양입니다.
저 같은 호텔 투숙객은 밀려나서 밖에서 가이드를 기다렸지요.
어느 아주머니가 결혼식에 좀 늦었는지 헐레벌떡 와서는
자기 딸에게 7천원 정도 주고
자기는 만오천원 정도를 축의금 봉투에 담습니다.
여기 월급이 30~40만원인 걸 감안하면
꽤 많은 액수이지요.
체면 문화가 우리보다 더한 베트남 정서를 보면
결혼도 무리해서라도 남에게 뒤지지 않게 하고
축의금도 많이 내고 많이 받는 문화입니다.
자존심, 체면을 상당히 중시하는 민족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