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 속에서 피어난 생의 양식: 김지운 「자투리 시간을 엮어 가며」
장마철 빨래 말릴 틈새의 햇살처럼
시간의 악보 속에 쉼표로 잠시 쉬며
다시금 여유를 찾아/ 푸르른 날 달려오네
구름 속 가을볕에 고추를 말리듯이
틈을 내 읽는 시(詩)집 별이 뜨고 샘이 솟아
생명의 양식이 되어/ 영혼을 살찌우네
마름 천 조각조각 엮어 만든 퀼트처럼
바늘 끝 한 땀 한 땀 완성하는 기쁨 안고
시간을 바느질하며/ 내 영혼에 수를 놓네
-김지운 「자투리 시간을 엮어 가며」 전문, 『내 영혼에 수를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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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시인의 시조 「자투리 시간을 엮어 가며」는 시간의 짧고 소중한 순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틈새’라는 공간적 개념과 ‘자투리 시간’이라는 시간적 개념을 중심으로, 단순한 일상의 순간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적 성장과 여유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첫째 수에서 “장마철 빨래 말릴 틈새의 햇살”이라는 비유는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찾아오는 여유를 상징한다. 햇살이 빨래를 말리듯이, 시간 속 쉼표를 통해 시인이 다시금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있다는 점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얻는 소소한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구름 속 가을볕에 고추를 말리듯이”라는 자연 속 이미지를 통해 일상적인 순간의 독서가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의 양식이 된다고 노래한다. 고추를 말리는 구체적 행위와 시집을 읽는 행위를 나란히 두면서, 시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얻는 깊은 깨달음과 정서적 성장을 상징화하고 있다. 특히 “별이 뜨고 샘이 솟아”라는 표현은 독서의 경험을 초월적, 혹은 경이로운 것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시적 대상과 정서적 감흥이 교차하는 순간을 암시하며, 단순한 시간이 아닌, 영혼의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셋째 수에서 “마름 천 조각조각 엮어 만든 퀼트처럼”이라는 비유는 자투리 시간 속에서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이는 창조적 과정을 상징한다. 퀼트는 시간과 노력이 드러나는 작품인데, 이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삶과 영혼을 수놓는다는 점에서 삶을 아름답게 완성해 나가는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바느질’ 행위는 시간의 축적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내적 성숙을 나타낸다.
시조의 각 수가 시간의 작은 틈을 통해 얻는 삶의 기쁨과 성찰을 깊이 있게 표현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울림을 준다. 다만, 일상의 평범함을 넘어서는 독창적 이미지나 형상화가 좀 더 보강되었더라면 시적 밀도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시적 언어와 현실적 이미지 사이의 균형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일상 속 자투리 시간을 통해 발견하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쁨을 섬세하게 노래하고 있다.
(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