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보면 이교도 선지자 발람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발람”이란 말은“탐식가”, “백성을 멸망시키는 자(잡아먹는 자)”, “백성이 아닌 자”, “타국 사람”이란 뜻입니다. 당시 메소보다미아에서 유명했던 거짓 선지자요 술사(점술가)였습니다(신명기 23:4). 유브라데강가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입니다(민수기 22:5, 베드로후서 2:15-16).
민수기 22~24장의 발람 선지자에 대해서 표현되는 내용을 보면 놀랍습니다. 민수기 22:20절을 보면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발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길을 가고 있는데, 민수기 22: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막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진노하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발람이 그의 명령에 순종했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진노하였을까요? 발람 선지자에 대한 정체성에 혼돈이 일어납니다. 민수기 23~24장을 보면 발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저주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장면들이 소개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발람 선지자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수기 외에 모든 다른 성경을 보면 발람 선지자를 이상하고 나쁜 이교도 선지자로 소개합니다. 호의적이지 않고 부정적입니다.
본문의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바로 직전입니다. 왜 그러면 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서, 이방인 선지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무려 세 장이나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즉 하나님의 속성, 성품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함입니다.
민수기 22:8절을 보면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모압의 왕 발락이 사람을 보내어 발람에게 찾아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발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대로만 대답하겠습니다”
민수기 22:18절을 보면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네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두 번째로 발람을 찾아온 발락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민수기 22:20절을 보면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을 보게 됩니다. 이방인 선지자인 발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습니다. 민수기 22:28절을 보면 하나님은 당나귀의 입을 열어서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22:31절을 보면 발람 이교도 선지자는 미래의 눈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가 아닌데도, 하나님이 그의 눈을 뜨게 하였을 때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22:34절을 보면 발람은 하나님께 원하는대로 순종하겠다고 말합니다. 만약 가는 것 원치 않으면 안 가고, 가기를 원하면 가겠다고 말합니다. 민수기 22:35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네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발람에 관한 모든 이야기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맥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그는 이교도 선지자이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순종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5절을 보면 보좌로부터 나오는 “번개들, 소리들, 우레들”를 소개합니다. 동일한 현상들이 요한계시록 8:5절의 일곱 번째 인 심판(“우레들, 소리들, 번개들, 지진”), 요한계시록 11:19절의 일곱 번째 나팔 심판(“번개들, 소리들, 우레들, 지진, 큰 우박”), 그리고 요한계시록 16:18, 21절의 일곱 번째 대접 심판(“번개들, 소리들, 우레들, 큰 지진, 큰 우박”)에 나옵니다.
이는 미래적 종말 사건이 이미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실이 무엇입니까? “번개들, 소리들, 우레들”이 보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모든 종말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 통치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요한계시록 4~5장의 하늘 보좌(하늘 성전)가 천상 통제소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이 예수님이 함께 하는 지상교회를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6~20장이 하나님의 3종 심판(7 인, 7 나팔, 7 대접)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지상교회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22장이 하나님, 예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는 새 하늘, 새 땅 교회를 말씀합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을 하늘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통제, 즉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모든 일이 하늘에서,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사람이 발락입니다. 모압의 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땅 근처로 갔을 때 그는 당황합니다. 그래서 이교도의 선지자를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사람을 보냅니다. 하지만 발람은 세 번이나 부탁을 받았지만, 그는 거부하고, 불편해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놀라운 것은 당나귀도 세 번 거부하고 앞으로 나가는 일을 안 합니다. 어떤 면에서 발락의 아래 사람이 발람인데, 발락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발락의 소유인 동물 당나귀마저 순종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많은 선지자가 소개됩니다. 성경 외에 언급된 이방인 선지자 중에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을 뽑으라면 누구를 말할 수 있을까요? 발람입니다. 1967년도 시리아에서 발견된 문서를 보면 발람이 언급됩니다. 아마도 발람이 그 시대에 가장 유명한 선지자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건은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발람이 이교도 선지자이면서 그의 예언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역사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만물, 모든 피조물의 주권자이십니다. 이교도의 선지자로 유명했던 발람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출애굽 때의 바로 왕도 같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느니라”(출애굽기 7:3, 9:12, 14:8절 등)라는 말씀이 10회 나옵니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진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도 하나님의 허락하에,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왕도, 이교도의 선지자인 발람도 다스립니다.
세 번째로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민수기 22~2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습니까?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민수기 23:9절을 보면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들은 발람의 모든 예언에 등장합니다. 발람의 예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완벽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표현합니다. 너무 훌륭하고 선한 백성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홀로 거한다”라는 말은 “거룩한 백성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조금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백성으로 표현되는 것이 의아합니다. 민수기 20:12절을 보면“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거역했고,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여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갑니다.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는 사실은 하나님 진노의 극치입니다. 모세와 아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출애굽 세대 전체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맥락상 다음의 내용이 발람의 예언입니다. 발람의 예언을 통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백성으로 표현됩니다. 민수기 25: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성과 간음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이방 신상을 섬기는 죄를 저지릅니다. 결국 발람 예언의 내용의 앞과 뒤 내용은 그의 예언에 소개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정반대되는 내용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함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무능함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그의 사랑입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일은 그들이 거룩하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따른 사랑 때문에 들어갔음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입성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교도 선지자인 발람, 모압 왕인 발락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었고, 발람의 예언에 소개된 이스라엘 백성의 완벽한 모습은 그들의 잘남과 능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 즉 그의 주권적인 사랑으로 가능하였음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