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호 申順浩 (1922~2009) 】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가문의 딸 "
1922년 1월 22일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신건식(申健植)이고, 독립운동가 신규식(申圭植)이 작은아버지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남편 박영준(朴英俊)과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입대하여 활동하였고,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會計部), 외무부(外務部) 정보과(情報科)에서 근무하였다.
충북 청원 출생인 신순호 선생은 부모인 신건식(독립장, 1977), 오건해(애족장, 2017)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가의 길을 자연스레 걸었다. 훗날 신 선생의 남편 박영준(독립장, 1977)을 비롯해, 시아버지 박찬익(독립장, 1963), 큰아버지 신규식(대통령장, 1962)과 사촌 신형호(애족장, 2011) 등 모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명실공히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나고 자랐다.
1920년대 무장항일운동의 주역이었던 독립군은 1930년대 중반까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항일전을 지속해오고 있었고, 임시정부는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인해 근거지를 옮긴 끝에 중경(重慶)에 정착하여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광복군은 중국 화북 지역에서 병력 모집과 훈련, 선전과 정보 수집, 적정정찰, 유격전 수행 등을 통해 일제에 대항하였으며, 한인 여성들도 입대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국광복군의 여성 군인들은 주로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 혹은 독립운동가와 결혼하거나 국내에서 민족운동에 투신하다 일제 경찰을 피해 망명을 하는 등 다양하였고, 남성들과 똑같이 초모활동, 교육과 훈련, 선전활동, 한미군사 합작과 전략첩보활동, 국내진입작전과 정진대 활동 등에 참가하면서 세탁, 재봉, 구호대 등의 일도 수행하였다.
1938년 8월 대장 고운기(高雲起)와 대원 연미당(延美堂), 오광심(吳光心) 등과 함께 중국 유주(柳州)에서 중일전쟁 시작 이후 대 일본 전쟁을 위한 위로금 모금 공연과 한중합작공연 등을 펼치며 항일공연 예술 방면에서 활약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경에는 중국 기강현(綦江縣) 성진(城鎭)에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 소속으로 근무하였고, 다음 해인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설립되자 김정숙(金貞淑), 조순옥(趙順玉)과 함께 여성 군인으로서 입대하여 활발히 활동하였다.
1942년 9월에는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 파견되어 근무하였고, 1944년 3월경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1월경에는 임시정부 외무부(外務部) 정보과(情報科)에 파견되어 과원(科員)으로 근무하던 중 같은 해 8월 15일 중국에서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