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어떤 사람을 보면 인상이 찌푸러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가 나는 사람도 있고, 짜증이 나는 사람, 심지어 욕이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변에 교회 다니는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을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집니까? 아니면 짜증이 납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지고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람은 사실 상황에 따라서 표정과 말투가 좌우되는 존재입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밝게 웃는 사람?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말이 곱게 나가는 사람? 있다면 예수님처럼 사는 훈련이 된 사람입니다. 대부분 힘들고 괴로우면 표정도 어둡고, 말투도 곱지 않습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다간 암살당할 것 같아서 로마의 가이사(황제)에게 재판을 청구하고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유대땅에서는 40명이나 되는 젊은 열혈 유대교도들이 하나님께 맹세하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 했으니 바울을 향한 미움과 분노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렇다고 바울이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에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비난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미움받고 욕먹고 살면 기가 죽습니다. 밥도 맛이 없고, 기운도 빠집니다. 바울이 한 일이라고는 예수님 전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니 유대인들이 잘못 가르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잡았는데 그것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남이 하는 기분 나쁜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죄수인 바울이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얘기해봐야 소용없었습니다. 이럴 때 당사자는 기분 나쁘고 마음에 부대낌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부대낌이 계속되면 화가 나고 분노로 쌓이고 결국 파괴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왜 엄마들이 가끔 아주 가끔 “차라리 나가 죽어!”이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겠어요. 니들이 죽어라 엄마 말 안들어서 그래! 그러니까 좀 듣자, 듣고 살자! 그리고 설교도 좀 듣자! 설교시간에 딴 생각만 하지 말고, 슬쩍 핸드폰 보지 말고 목사님도 좀 봐주고, “나도 우리 부모님한테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들이다.”괄세하지 마라.
바울은 최악의 상황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사람으로 행동해야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줍니다.
먼저 희망의 말을 해야 합니다. 바울이 탄 배는 파선직전입니다. 모든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사람은 절망을 느끼면 말이 없어집니다. 시험을 잘 봤는지? 성적이 올랐는지는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 그 아이의 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좋은 일, 기쁘고 행복하고 잘된 일은 말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침묵이 배에 흐르고 모든 사람이 절망에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바울은 입을 열어 말을 했습니다. “안심하라”“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것이다.”바울은 죄수의 몸이지만 자신이 뭘해야할지 하나님이 왜 자기를 그 배에 태우셨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소망을 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신 가족 여러분!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바울을 통해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소망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뭐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까? “평안하라!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있습니다. 2009년 공영방송은 MBC에서 한글날 563돌을 맞아“말의 힘”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그중에 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밥풀 실험’이 있었습니다. 햅쌀로 지은 밥을 유리병에 담아 아나운서들이 2병씩 나눠가졌습니다. 한 병에는 ‘고맙습니다’가 쓰인 종이를 붙이고 고운 말로 매일 말을 걸었고, 다른 한 병에는 ‘짜증나’를 적어놓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4주 후 뚜껑을 열었더니 ‘고맙습니다’ 병에서 하얀 곰팡이가 구수한 냄새를 피우는 반면, ‘짜증나’ 병에선 거무스름한 곰팡이가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말이 무생물인 밥에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신기하고 놀라운 실험이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영향을 끼칩니다. 하루를 죽음과 같은 고통속에 살게 만들수도 있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스트레스받고, 우울증 치료를 받을만큼 힘이 들어도 말에 권세가 있음을 기억하고 희망의 말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에 대한 격언으로 사용되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나는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는 뜻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으로 인해 파선 직전인 배 위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바울처럼, 파선위기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희망을 전하여 안전하게 항구에 도착하는 기쁨을 누리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희망이심을 알려야 합니다.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단정적이라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팩트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기대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대통령이 되신 그 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뇨, 불가능합니다. 변화는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희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전하는 희망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재난속에서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합니다. 먼저 “그분의 천사가 내 곁에 서 계셨다.”하나님은 위기에 처한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분임을 말합니다. 여러분! 외롭고 고독하고 괴로울 때 하나님의 사자가 우리 곁에 오십니다. 얍복강을 건너지 못하고 형 에서가 무서워 밤새 두려움에 떨던 야곱을 찾아와 주신 것처럼, 풍랑 가운데 파선의 위기에 처한 배로 바울을 찾아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두 번째 주님의 음성입니다.“너와 함께 있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새번역으로 보면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때문에 하나님은 그 배를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의 가정, 믿는 나로 인해 하나님의 손이 붙들고 있습니다. 나의 직장, 믿는 나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 직장을 붙들어 주십니다. 사장님도 다 여러분에게 맡기셨습니다.
믿는 나로 인해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붙들고 인도하십니다. 교회의 목회자도, 지체들도 모두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영적지도자요, 책임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CSO(Cheif Spiritual Officer)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힘찬 고백은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I believe in God”바울은 풍랑속에서 배의 견고함이나 선장의 경험을 믿는다고 외치는 대신, 풍랑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외칩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주님을 외쳐야 합니다.
“세상이 무엇을 믿든지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그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파선의 위기를 벗어나 생명을 건지고, 마침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인생 몇 번이나 파선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와 함께 하시고, 나에게 내 가족들과 내 직장의 동료들과 교회의 지체들을 맡겨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파선의 위기를 이겨냈고, 앞으로도 이겨낼 것입니다. 주님만이 세상의(가정,직장,교회,이나라) 희망입니다.
희망의 말을 하는 사람, 희망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