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전통의 지업사(紙業社) 이야기
용인 지물포와 함께한 박규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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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술자: 박규철(朴圭喆) 요셉 ■ 면담자: 조선희(趙善熙) 요셉 ■ 1차 인터뷰 일시: 2025년 10월 28일(화) 장소: 지물포(용인시 처인구 금령로99번길 9) ■ 2차 인터뷰 일시: 2025년 10월 31일(금) 장소: 노인회관 (용인시 처인구 금령로99번길6-4) |
1958년 11월 15일 용인군 용인면 김량장리 출생
1971년 02월 용인초등학교 졸업
1974년 02월 태성중학교 졸업
1977년 02월 태성고등학교 졸업
1977년 03월 고등학교 졸업 후 용인지업사(용인지물포)에서 장사 시작
2007년 12월~현재 대한적십자사·용인유림봉사회에서 활동
2013년 01월~2017년 1월 용인중앙시장상인회 감사
박규철 선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지물포 사업을 하였다. 우야곡절 끝에 지금의 용인지물포를 갖고 청한상가 옆 건물을 부모로부터 인수받아 소유권자가 되었다. 하지만, 동생들과 가족 간의 불협화음이 있어 마음과 몸은 지쳐 가톨릭신앙을 접하게 되었고 지금은 큰 욕심 없이 살고 있지만 후대 1남 2녀 자녀들이 사심 없이 살기를 원하며 새로운 삶의 구원자가 되어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지업사'는 주로 종이와 관련된 제품을 취급하는 사업장을 의미한다. '종이 업사'의 줄임말로, 도화지, 색지, 유산지 등 다양한 종류의 종이를 판매하거나, 종이와 관련된 인쇄, 가공 등의 업무를 하는 곳을 뜻한다.
‘지물포’는 벽지, 장판 등 종이로 만든 물품을 파는 가게를 의미한다. 지물포의 역사는 벽지와 같은 종이로 된 내장재의 발달과 함께했으며, 인테리어 문화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물포의 어원은 '가게 포(鋪)' 자가 붙은 이름으로, 종이로 만든 물건(紙物)을 파는 가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벽지나 장판이 흔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주로 한지, 창호지 등 종이 관련 물품을 취급했다.
지물포의 역사적 변천으로 중국에서 기원한 벽지는 16세기 유럽으로 전해져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으며, 이후 종이 생산 기술과 인쇄 기술의 발달로 대중화되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롤러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벽지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벽지의 가격이 크게 내려가 일반 가정에서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부터 플라스틱이나 비닐 소재의 벽지가 등장하면서 더 다양하고 실용적인 인테리어 재료들이 보급되었습니다. 현대에는 벽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축 내외장재, 마루 등 토털 인테리어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가 늘어났다.
지물포는 시대의 인테리어 유행을 반영하며 변화해 왔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에는 투톤 벽지나 포인트 벽지가 유행했고, 점차 다양한 디자인과 소재의 벽지들이 등장했다.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하고 온라인으로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에 비해 지물포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오랜 역사를 간직한 지물포들이 영업하고 있으며, 장인 정신을 발휘하며 지역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처럼 지물포의 역사는 벽지와 같은 내장재의 발전, 인테리어 문화의 변화, 그리고 산업화 및 온라인 쇼핑 환경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업자들은 셀프 인테리어를 연구하기 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겉모양이 예쁜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취향과 관심사나 라이프 스타일을 담고 있는 문화적인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야 한다.
또한 고객이 자신만의 공간예술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재료, 창호, 벽지, 바닥재를 포함한 건축 내·외장재 등의 토털인테리어 자재와 솔루션을 제공해야한다.
박규철 선생은 일평생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물포(지업사)를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이어오고 있으며 이젠 무수한 우여곡절 끝에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려한다. 그분의 삶을 통해서 벽지, 장판 등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용인 노포 이야기(용인문화원)
첫댓글 조선희 요셉 형제님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