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미가 제 9 강 ‘부실건축물-예루살렘’
미가 3:9-12절
9-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10-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9-Hear this, you leaders of the house of Jacob, you rulers of the house of Israel, who despise justice and distort all that is right;
10-who build Zion with bloodshed, and Jerusalem with wickedness.
11-Her leaders judge for a bribe, her priests teach for a price, and her prophets tell fortunes for money. Yet they lean upon the LORD and say, "Is not the LORD among us? No disaster will come upon us."
12-Therefore because of you, Zion will be plowed like a field, Jerusalem will become a heap of rubble, the temple hill a mound overgrown with thickets.
Point: 말씀으로 짓지 않은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허물어집니다.
Introduction: 우리가 안전진단이라는 말을 가끔 듣게 됩니다. 저도 교회의 제반시설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을 접할 기회가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교회 건물의 부분 부분에 대해 안전점검과 진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건물이란 시간이 감에 따라 아무래도 조금씩 노후해 집니다. 그러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 진단을 실시합니다. 건물유지의 어떤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진단이 꼭 필요한 것이 크게 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 몸입니다. 그래서 정기검진이 있지요. 정밀신체검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몸 상태를 진단하고 점검합니다.
우리가 보면 명의라는 말도 있고, 또 돌팔이라는 말도 듣게 됩니다. 명의가 어떤 분인가하면 결국 이 진단에 뛰어난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이 병의 뿌리는 이거다. 이래서 이런 증상이 생기는거다.’ 이렇게 정확히 집어내는 사람은 명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건가. 이게 아닌 것 같아.’ 증상에 대해 다양한 의견만 잔뜩 내고, 이 약 써보고 안되면 저 약 써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돌팔이 소문이 나게 됩니다. 더 이상 영업이 안되지요.
그 다음으로 진단이 필요한 것이 건축구조물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미 세계적으로 창조를 두 번이나 당했습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가 그것입니다. 이 안전진단을 위해 감리라는 과정을 두는데 여기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해버리면 건축물사고로 연결될 때가 많습니다. 결국 보면 꼭 필요한 과정인데 이게 비용이 드니까 당장의 이익을 위해 이것을 겉치레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허술이 생겨나고 결국 사고로 연결이 많이 됩니다.
Point 1: 부실건축물-예루살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절에 보면 ‘건축하는도다’ build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단어가 본문의 중요한 주제로 나타납니다.
미가선지자는 지금 유대 공동체에 대해 일종의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진단의 결과가 뭘까요? 예루살렘과 유다라는 건물이 ‘부실’이라는 것입니다. 부실판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기초가 잘못공사되어 있고, 재료들도 설계도대로의 재료가 아니라 값을 조작한 엉터리재료라는 것입니다. 여기다가 공사자들이 대충 대충 공사를 했고 감리하는 이들도 엉터리로 한 것입니다. 이러니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얼마가지 않아 부실 때문에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설교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교회론적인 설교방법과 접근입니다. 다시 말해 항상 교회를 제 설교의 중심에 두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말씀을 준비하는 것을 대단히 경계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교회란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내용이고 교회사의 주요흐름입니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이 말씀을 듣고 성도들이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반드시 교회는 교회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교회를 하나님 말씀으로 짓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말씀 준비에 교회를 항상 바탕에 둡니다. 이 말씀이 이 주님의 교회의 어떤 재료가 될까, 엉터리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설계를 잘못하는 것은 아닐까, 대충대충 짓는 것은 아닐까, 감독을 대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을 살피며 말씀을 준비합니다. 이 말씀이 교회, 즉 여러분을 살리고 세우는 중요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재료를 붙들고 기도할 때 그 심령 위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미가가 진단하는 부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9절입니다.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왜 예루살렘교회가 부실건축물이 되었습니까? 미가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여기보면 먼저 ‘두령과 치리자’ 얘기를 합니다. 이들의 문제를 부실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두령과 치리자’가 누구입니까? 방향결정자입니다. 리더들이지요.
우리가 사사기 17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씀이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21장 25절에 반복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여기 이 말씀에 예루살렘, 나아가 하나님의 공동체의 지도자관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왕은 king이 될 수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말합니다. 말씀이 기능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 죄된 본성을 따라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소견대로, 자기 욕심대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분열이고 멸망입니다.
그러면 공동체가 든든히 서는 길은 리더가 말씀의 권위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고도 풍성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이게 유다공동체의 방향이고, 나아가 교회의 방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미가가 보는 리더는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하고 있습니다. 이게 미가의 진단입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행복을 원합니다. 그리고 리더들이 이 행복을 보장해주고 지켜주고, 또 키워나가 주기를 원합니다. 이렇게만 되면 불만이 있을 수 없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리더에게 권한을 위임합니다. 그게 우리가 보는 민주사회의 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출의 방법보다는 소명의 방법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형성되지만 지도자에 대한 소망은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지도자, 교회공동체를 행복공동체로 인도할 지도자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러면 이런 지도자는 어떻게 세워질까요?
여기서 다시 건축의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건물의 이미지는 미가가 메시지를 전개해가는 주요한 바탕이 됩니다. 건축되는 건물을 생각해 보세요.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이나 철제 빔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의 신경과도 같은 전기배선이나 수도관 공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과 같은 콘크리트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피부에 해당되는 외벽을 쌓습니다.
이러면 건축허가 심사가 이루어지지요. 건축허가가 나면 그 안을 꾸미는 것은 자기 개성 따라 합니다. 귀에다 대롱 대롱 뭘 거는 것은 자기 맘입니다. 남자가 화장을 하던 여자가 맨얼굴로 다니건 자기 맘입니다. 집의 인테리어와 비슷합니다.
여기에서 건축허가 전까지가 중요합니다. 허가를 내 주기 전에 뭘 체크합니까? 설계도대로 바른 재료를 사용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비용절약할려고 대충 값싼 재료로 바꾸질 않았는가 이런 것을 살핍니다. 건축에서 비자금 생기고 그런 게 다 여기서 오거든요. 같은 재료도 한국산과 중국산의 가격 차이가 있고, 또 회 사 따라 가격차가 나기도 합니다. 재료가 제대로 되었나 이것을 살피기 위해서 감리기관이 있고, 또 허가기관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가 잘못되며 부실시공, 부실공사, 날림공사,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에서 미가가 하는 얘기가 뭡니까?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도자는 이 건축 재료를 선택하여 시공하는 사람들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들이 바른 재료로 정확하게 시공하면 유다 공동체, 예루살렘 교회는 든든하게 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고, 또 자기 욕심을 차리려고 하는 선택이 되면 공동체 전체가 위험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가가 발견한 이들의 선택, 이들의 재료는 뭡니까? 자기 욕심을 위한 재료의 부실한 선택입니다. 그 재료가 바로 ‘공의를 미워함’이며,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것’이며, ‘피와 죄악’입니다. 이게 유다지도자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세우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뭐냐하면 미가만 혼자 난리를 쳤지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쩡한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오히려 튼튼해 보입니다. 그런데 미가 혼자서 야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관이 달라서 그렀습니다. 미가의 교회관, 교회론은 성경중심적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에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교회의 터가 무엇인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인가 아니면 나무나 풀이나 짚인가? 불로 태워보면 안다. 제대로 된 것은 남아 있고 아닌 것은 불타서 없어진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미가가 유다를 보고, 예루살렘을 보고, 하나님의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의 교회의 터는 무엇인가? 그 기초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뭘로 교회를 세워야 교회가 교회되고, 하나님의 교회의 역할을 할 것인가? 그것을 미가는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나오는 공의, 그리고 성령의 감동에서 나오는 정직! 이게 교회의 터이고 교회의 기초라는 교회론입니다. 이것을 기초로 할 때 교회는 교회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재료로 삼으면 공의가 자꾸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자꾸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면 힘과 능력이 생깁니다. 그 힘 가지고 자기 생업에서 열심을 다해 일을 합니다. 그리고 남는 힘으로 옆을 돌아봅니다. 약한 자를 살피고 끌어안고 돌보아 주고 어렵고 부족한 지체를 세워줍니다. 이러는 것이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고 공의가 넘치게 됩니다. 그게 말씀을 재료로 세워가는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재료로 삼으면 어떻게 되나? 성령께서 우리 양심에 얘기를 합니다. 우리 양심을 자극을 합니다. 그러면 정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려는 삶이 나타나고, 또 서로에게 정직해 지는 삶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양심입니다. 이게 사람의 보물입니다. 시츄에게는 양심이 없어요. 복제동물에게도 양심이 없어요.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선물한 것이 양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양심도 없는 놈아, 이 양심에 털난 놈아, 이 양심을 팔아먹은 놈아’ 이게 진짜 큰 욕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사람의 타락이라는 것이 바로 여기 이 양심에 문제가 생긴 것을 말합니다. 양심이 자꾸 고장 나요. 어른이 되어 갈수록 양심이 자꾸 굳어집니다. 거짓말을 해도 너무 진짜같이 합니다. 얼굴하나 변하지 않고 진짜라고 얘기하는 거짓말을 어른들이 합니다. 상대방이 다 진짜로 믿는 그런 진짜 거짓말을 합니다. 사기꾼들이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양심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하니까 자꾸 양심이 병들어가는 방향으로 가고, 양심이 굳어가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자꾸 나아갑니다.
이 때 성령께서 인생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이 뭡니까? 그 양심을 자극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의 양심으로 돌아가도록 자극합니다. 일깨웁니다. 뭐라고 그럽니다. 찌릅니다. 그래서 ‘양심에 찔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 질려고 하고, 사람 앞에서 정직해 질려고 하고!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 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축물로서의 교회의 재료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공의와 성령의 역사에서 나오는 정직! 미가는 이 교회의 모습과 교회의 바탕적 재료를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습니까? 이 기초적 재료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유다에서 공의가 없어지고 정직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공의를 사람들이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자꾸 자꾸 굽게 하고 있습니다. 강한 권세가 곧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그 권세를 위한 것이면 모든 것이 합리화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약한 것은 없어져야 하고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이들을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결과로 남은 것은 강한 자들만 있습니다. stro----ng!
자, 이러면 건장하고 강건해야 되겠지요. 모든 것이 강한 것으로 채워져 있으니까. 약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 유용하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것들이 다 사라졌으니까 건강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공동체가 아주 아주 강건해져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게 오히려 망조가 들고 있다고 지금 미가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부실공사이고 날림공사이고, 엉터리 재료를 사용한 건축물이라고 미가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미가가 지금 여기서 부실한 재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령과 제사장과 선지자들, 이런 지도자들을 거론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역을 거론합니다. 바로 이것이 부실한 재료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령’은 주로 정치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왕을 포함한 그 주위의 인물들, 혹은 장로라고 불리는 그룹을 말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통치와 재판을 주업무로 합니다. 공정한 판단이 그들의 본질적 재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초로 해서 공평하고 공의로운 판단을 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선지자’는 종교지도자들에 해당이 됩니다. 예배를 담당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명이 그들의 주재료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그들의 책무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그래서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도록 격려하고!
그런데 그 공의와 공평이 기울어집니다. 정직이 굽어집니다. 그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편이 있으면 그 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채워주는 쪽을 만족시키는 판단이 나옵니다. 예배와 말씀의 내용도 욕심과 욕심이 만나는 방향으로 나갑니다. 사기를 쳐도 축복이라고 그러고, 약한 이들을 눌러서 자기 사욕을 취해도 축복이라고 그럽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니네들 그 좋은 머리 축복 받은 거다. 그래서 이렇게 물질이 많아진 것, 하나님이 엄청 축복하신거다. 그 방향으로 계속가라. 하나님이 계속 축복하실 거다.’ 이런 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말씀에서 주의 깊게 살필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악이라는 것을 결국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질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퍼져갑니다. 연결됩니다. 그러면서 확장됩니다. 우리가 요즘 네트워크, 네트워크합니다. 경제의 발전, 경영의 효율과 효과에 큰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트워크를 통해 꼭 좋은 것만 연결되고 퍼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네트워크에는 선하고 의롭고 복된 것만 흐르지 않습니다. 악한 것도 흐르고 그것이 확장되고 팽창되는 통로도 네트워크가 됩니다. 때로는 선한 것보다 더 빨리 퍼집니다.
보니까 그래요. 인터넷에 누구 착한 선행을 했다, 그런 소식보다 ‘이승환, 채림 이혼’ 이런 소식이 더 빨리 퍼져요. ‘3년 째인데 혼인신고도 안 했데. 어머 어머 왜 저러니! 이혼할 생각으로 계약 결혼 한거야. 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질려고 작정한거네’ 이런 남 불행 소식이 더 빨리 퍼집니다. 여기다가 온갖 것을 다 더합니다. 추측성보도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온갖 가십을 더하고 댓글을 더합니다. 그러면 당사자는 거의 회복불능상태가 됩니다. 자기들 자체 상황보다 주변에서 만든 상황 때문에 더 힘들어집니다.
인생의 모습에 이런 모습이 분명 있습니다. 악이 역사합니다. 그리고 그 악은 혼자서 일하지 않습니다. 연결고리가 형성이 되어 더 확장되어 가고, 더 치밀해져 가고, 더 잔혹해져 갑니다. 강력한 커넥션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자리를 잡아가고, 세를 형성해 가는 것이 악의 현저한 모습이 됩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악이 현저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판단이 임박했음을 의미합니다. 악이 드러나고 활개치고 그 교만을 다 나타내고 그러면 그 자체가 임박한 하나님의 판단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12절을 보세요.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하나님의 판단이 나타납니다. 사실 유다공동체에게는 예루살렘은 그들의 모든 것입니다. 그들의 자랑이요 긍지이며 자부심입니다. 예루살렘도성, 그 성전이 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백성임을 확인했고, 그것은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예루살렘이 있으므로 그들은 번영을 장담했고, 형통을 확신했으며, 예루살렘이 영원하기에 자신들도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가의 예언이 무엇입니까? 그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얘기입니다. ‘시온이 밭갈이 갊을 당하고’ 완전히 예루살렘이 뒤집어진다는 말이지요.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그 예루살렘이 파괴되어 폐허의 장소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돌무더기로 변하고, 그 장소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며칠 전 신문기사 중에 미국의 포브스라는 잡지가 평가하는 세계 기업 순위 발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S모전자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50위 권 안에 들어 48위를 기록했습니다. 굉장한 도약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100위 안 든 기업이 하나도 없었는데 순수익 면에서 보면 세계 20위 권이랍니다.
이 기업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저는 오늘 말씀과 관련지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기업의 이런 도약은 결국 핵심 역량에 대한 집중에서 나왔습니다. IMF 사태를 전후해서 진지한 고민과 평가, 그리고 방향설정이 있었습니다. ‘10년 후엔 뭘 먹고 사나?’ 이 질문이 그런 분위기를 축약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핵심 역량에 총매진을 했습니다. 그 후로 위기가 기회가 된 거지요. 그리고 지금은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Sony를 압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나?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와 교회에게 요청하는 핵심역량이 뭐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집중하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아무리 환경이 복잡해도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길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교회의 원리인데, 그 핵심이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서 들리고, 성도들이 그 말씀을 의지하고 붙들고 기도할 때 임하는 성령의 역사, 이 둘이 있으면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교회와 성도는 세워지고 지어지고 든든한 건축물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초재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가 뭡니까? 그 지도자들의 문제, 그래서 청중들의 문제가 뭡니까? 말씀과 성령에서 나오는 공의와 정직이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이게 자기 유익대로, 자기 욕심대로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성가시게 합니다. 태클을 자꾸 겁니다. 그러니까 은근 슬쩍 공의를 미워합니다. 정직을 슬슬 굽게 만듭니다. 혼자하면 뭐하니까 서로 하게끔 합니다. 그래서 두령들도 하고, 제사장들, 선지자들, 서로 서로 하게 합니다. 재판이 뇌물에 따라 달라지고, 교훈이 삯에 따라 달라집니다. 선지자의 예언이 돈에 좌우되면서 점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재앙은 절대 우리에게 임하지 않는다.’ 축복만 외칩니다. 죄는 방관되어 자라나는 데 형통만 외칩니다.
이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재판에 뇌물을 마련할 형편이 안되는 연약한 이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교훈의 자리에서 삯을 마련할 형편이 안되는 부족을 가진 이들이 공간이 없어집니다. 선지자를 위하여 돈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는 가난한 이들이 위치할 곳이 없어집니다. 오직 욕심으로 욕심을 만나게 할 능력이 있는 이들만이 지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예루살렘은 권세자, 능력자, 유능자, 실권자, 똑똑새들만 남아서 ‘예루살렘이여 영원하라. 시온이여 영원히 형통할찌어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가의 예언이 뭡니까?' 시온이 밭갈이 갊을 당할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무더기가 될 것을 말합니다. 그 성전의 산이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초토화되고 폐허가 된다는 말이지요. 예루살렘이 황무의 공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미가는 왜 이런 극단의 예언을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 담긴 말씀의 중요한 원리가 뭘까요? 뭐가 공의를 사랑하고 정직이 넘치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루살렘 내의 연약과 부족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을 굽게 해서 예루살렘에서 연약과 부족을 추방하고 있습니다. 약한 자들을 팔아넘기고 병든 자를 쫓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연약과 부족을 몰아낸 것입니다 .
그러나 이것이 바로 미련함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우매함입니다. 우리가 알 것이 이것입니다. 연약과 부족을 보듬고 감싸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끌어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많은 일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간섭이 있어야 선하고 복되며 열매가 있게 됨을 아는 것이 은혜를 아는 삶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손길과 간섭을 끌어오는 것이 우리 가운데 있는 연약과 부족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때로는 답답해 보입니다. 갑갑해 보입니다. 미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빠른 방법들을 찾습니다. 퀵 서비스를 찾습니다. 사람과 방법을 찾아 분주합니다. 신속한 해결을 찾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의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른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가장 결정적일 때 하나님의 간섭과 손길을 끌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입니다.
Conclusion: 사랑하는 갈보리청년 여러분, 수년 전 한 백화점의 지도자가 백화점을 순찰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장사는 너무 너무 잘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공간이 부족합니다. 구찌도 들어와야 하고, 베르사체, 발리, 헤르메스, 펜디, 라스포 싹도 입점해야 하는데 장소가 협소하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명령을 내립니다. ‘저거, 허물어! 그러면 공간이 많이 생기잖아.’ ‘네에~ 사장님, 저것은 기둥입니다.’ ‘괜찮아, 지금 그런 것 따질 때야? 돈이 막 굴러들어오는 판에. 안 무너지니까 최소만 남기고 다 뜯어내서 판매공간으로 만들어.’ 이러면서 허물고 뜯고 확장하고 넓히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꽝! 그게 S모 백화점 붕괴의 스토리입니다.
우리 믿음과 삶의 기초재료가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역사, 거기서 나오는 공의와 정직! 여러분 모두가 든든한 믿음의 집을 지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rayer: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믿음의 집을 든든히 짓게 하시옵소서.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성령의 감동을 소중히 여기며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튼튼한 집을 세우며 그 안에 거하는 믿음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공의를 사랑하며 정직함으로 나아가게 세밀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