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것 참말이었어
박윤희
며칠 전 오랜 고민 끝에 20년 넘게 사용해도 고장은 없었던 구형 냉장고를 만만찮은 전기세와 칙칙한 색상을 핑계로 새 냉장고로 바꾸었다. 새로 구입한 냉장고는 냉동실이 아래에 있고 냉장실이 위에 있어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쉽게 채소를 꺼낼 수 있고 냉동실 문 열 때마다 얼어있는 음식물이 떨어져 발등 다칠까 염려할 일이 없어 너무 좋다. 휴대폰도 20개월 할부로 신형으로 바꾼 지 몇 달 되지 않아 밧데리 충전을 자주 하지 않아도 온종일 밖에 있으면서도 좋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월말 카드 결재 날이 다가오면서 카드 사용명세서를 직접 확인하다가 순식간에 행복한 마음이 사라졌다. 퇴직하면서 따로 큰 돈 들어갈 일이 별로 없어 따박따박 통장에 일정 금액이 입금되는 것에 생활비가 걱정되지는 않았는데 카드사용 금액이 월 연금액을 뛰어넘어 눈앞이 캄캄해진 것이다.
국가 부도 위기 때 너도 나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금붙이를 들고 나가던 때가 어제 같은데
민생 지원금이라고 해서 나랏돈 그냥 받아쓰면서도 소비에만 집중했던 때가 떠오르며 어디 돈 나올 구멍이 없나 생각해 보았지만 헛꿈이었다. 누리는 만큼 허리끈을 졸라매야 할 뿐이었다. 농경시대에 삶의 수단이었던 소도 외상이면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말이 그저 생긴 것이 아니란걸 새삼 느낀다. 우리나라 카드 문화가 외국보다 훨씬 발달 된 것은 사실이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이 없고 미리 당겨쓰고 후불로 갚는 카드 제도가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카드 사용에 익숙해 져버렸다. 일단 쓰고 보자는 것은 40년 동안 월급날 한 번도 월급을 받아보지 못 한 적이 없었던 때문인 것 같다. 정해진 월급날이 토요일이나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이 되면 하루 먼저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와 있었기에 월급이 적다고 하면서도 월급은 쏫아나는 샘물처럼 그런 것이었기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지갑에 현금을 넣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렇게 살지?’ 하면서 속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했는데 오히려 현금 사용하는 사람들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카드 사용의 정도를 비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연코 세계 1위다. 나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카드 사용으로 돈에 대한 겁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저지른 일은 할 수 없지만 생각없이 긁어대던 카드 사용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겠다. 카드 대신 현금을 가지고 다니면서 지갑이 납작해져 가는 것을 직접 체감해 봐야겠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야박한 인심의 대명사 덧치페이가 퇴직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만남의 부담을 줄여주는 좋은 방법을 나도 애용해야겠다.
카드 돌려막기하다가 파산하는 젊은이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다. 생각없이 카드 긁어대던 내자신이 그들보다 나을 바 없으니 남의 눈에 티를 말하지 말고 내 눈의 들보를 보며 외상 좋아하다가 소 잡아먹는 일은 하지 않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