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된 이유(理由)
<말선25-199>(1969,10,04, 전본부교회) 예수가 왜 죽었습니까? 아버지를 못 찾아서, 아버지를 모시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를 모셨다면 예수가 죽었겠어요? 자식(子息)이 죽는데 죽으라고 그냥 놔둘 부모(父母)가 어디 있겠어요. 있겠어요? (없습니다) 만일(萬一) 부모(父母)가 그런 사실(事實)을 알았으면 가르쳐 주었겠어요. 안 가르쳐 줬겠어요?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자식(子息)을 위해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자식(子息) 대신(代身)이라면 욕(慾)을 먹고 죽는 자리라 해도, 그 자리에 나가 자식(子息)보다 먼저 죽으려고 하는 것이 부모(父母)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아버지 어머니가 없어서, 그런 아버지 어머니를 못 찾아서 죽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나가 자빠질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예수님이 피조물(被造物)로 태어나서 그렇게 죽었다고 하면 하나님이 죽었느냐고 할 것입니다. 피조물(被造物)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랑 속(屬)에 들어와 있으면 사람(人)은 하나님의 집(家)입니다. 그런데 피조물(被造物)이 악(惡)한 거예요? 그렇게 믿는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은 전부(全部)다 망(亡)해야 됩니다. 참(眞)이 왔으면 거짓(詐)은 망(亡)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갔는데 돌아올 줄 모르면 지옥(地獄)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밤이 낮이 될 줄 모르면 영원(永遠)히 영원(永遠)히 무저갱(無底坑)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基督敎)의 운명(運命)은 통일교회(統一敎會)를 붙들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한국(韓國)에서 유명(有明)하다고 꺼덕대는 사람들도 전부(全部) 선생님(先生任)의 열 손가락 안에 있습니다. 여기에 걸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걸리면 못 올라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죽더라도 선생님(先生任)이 필요(必要)합니다.
<말선25-200> 예수는 아버지가 있는데 그 아버지를 못 찾아서, 못 모셔서 죽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했고, 그의 어머니가 어머니 노릇을 못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거 무슨 말이냐? 이런 말을 들은 사람 있어요? (예) 이런 말은 선생님(先生任)이 오늘 처음 하는데 언제 들었어요? 예수님의 아버지가 책임(責任)을 못해서 예수님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종(從)과 같은 입장(立場)이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정(家庭), 즉 요셉가정(家庭)을 복귀원칙(復歸原則)에 의(依)해 분석(分析)해 보겠습니다. 통일교회(統一敎會) 원리(原理)는 문선생(文先生)이 갖다 맞춘 것이 아닙니다. 통일원리(統一原理) 중(中)에 타락론(墮落論)을 중심삼고 보면, 에덴동산에는 아담 해와가 있었고 천사장(天使長)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復歸)하는 데도 그중(中)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셉가정(家庭)을 중심삼고 보면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男便)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男便) 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마리아는 누구의 어머니예요? 예수의 어머니입니다. 예수는 아담의 대신(代身)이고요, 그러면 요셉은 뭡니까? 이는 예수님과도 마리아와도 관계(關係)가 없어야 할 사람입니다. 천사장(天使長) 대신(代身)이지요. 천사장(天使長)의 복귀(復歸) 형(型)을 실체(實體)로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뭐냐? 해와의 대신(代身)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해와를 먼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려니 해와를 먼저 찾아야지요?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섭리(攝理)를 하십니다. 그러면 역사시대(歷史時代)에 누가 여자(女子)를 빼앗아 갔습니까?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자(女子)를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便)에서 마리아를 찾는 것입니다.
요셉이라는 존재(存在)는 천사장(天使長) 대신(代身)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면 예수에게 아버지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예수에게도 아버지가 있어야 했으나 예수는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마리아만이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에게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 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그 책임(責任)을 못한 것입니다.
<말선25-201~202> 예수님이 제2(第二) 아담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탄이 첫째 아담을 유린(蹂躪)했기 때문에 사탄을 방지(防止)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을 방지(防止)해야 합니다. 사탄이 사랑을 중심삼고 침범(侵犯)하므로 말미암아 사탄 편(便)의 아들이 나왔으니,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을 방어(防禦)해야만 하나님 편(便)의 아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귀(復歸)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기에서 마리아와 예수가 협조(協助)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형식적(形式的)으로 부부(夫婦)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복귀(復歸)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순서적(順序的)으로 그런 과정(過程)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실체(實體)가 없으므로 사탄의 실체(實體)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식적(形式的)으로는 그렇게 해놓고 사실적(事實的)으로는 누구하고 결혼(結婚)한 거예요? 예수님의 아버지하고 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아담과 약혼(約婚)해 놓고 사실적(事實的)으로 천사장(天使長)과 관계(關係)를 맺었지요? 그것을 복귀(復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아버지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없어야 되겠습니까? 있어야 된다는 결론(結論)이 원리적(原理的)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아버지 어머니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사탄에게 침범(侵犯)받아 원수(怨讐)의 혈통(血統)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예수의 아버지 어머니는 국가적(國家的) 세계적(世界的) 기준(基準)에서 사탄에 대(對)한 울타리가 되어 예수를 보호(保護)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절대(絶對)로 사탄의 침범(侵犯)을 받은 아담처럼 되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듯 완전(完全)히 하나 되어 사탄을 완전(完全)히 굴복(屈伏)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동생(同生)이 있었는데 예수에게 동생(同生)이 있어야 되겠는가, 없어야 되겠는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마리아와 예수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동생(同生)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동생(同生)들이 있었잖아요?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아버지를 통(通)해 마리아와 하나 되고, 요셉은 곁다리가 되어서 종(從)살이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요셉과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곁다리인 요셉을 떼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사탄이 속여서 타락(墮落)시켰기 때문에 탕감복귀(蕩減復歸)도 속여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요셉과 형식적(形式的)인 부부(夫婦)로 살짝 속여놓고 내용적(內容的)으로 예수와 그 아버지, 그리고 마리아가 짜서 사탄을 굴복(屈伏)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요셉이 걸려들지요. 원리(原理)가 딱 들어맞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完全)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四位基臺)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탄과 하등(下等)의 상관(相關)이 없는 타락(墮落)하기 전(前) 에덴에서의 아담의 자리에서 출발(出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 가지고 처녀(處女) 해와를 찾아야 했습니다. 처녀(處女) 해와만 찾았더라면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가정(家庭)이 이루어졌더라면, 사탄 세계(世界)야 어찌 되던 예수의 종족(宗族)은 자꾸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말선25-197> 만약(萬若) 역사(歷史)에 타락(墮落)이 없었다면 무슨 문제(問題)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선생님(先生任)만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 라고 했는데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여자(女子)를 찾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일(第一) 사랑하는 터전에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받들고 자연굴복(自然屈伏)할 수 있는 환경(環境)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復歸)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30여년 동안 이 일을 하려다가 수고(愁苦)만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신랑(新郞)’이라는 명사(名詞)를 남겨 국가적(國家的)인 기준(基準)에서 세계적(世界的)인 복귀(復歸)의 기준(基準)으로 전진(前進)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攝理)는 후퇴(後退)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있기에 기독교(基督敎)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世界的)인 발전(發展)을 이루어 오늘날 세계(世界)가 그 품에 들어갈 수 있는 권내(圈內)에 까지 온 것입니다.
<말선25-196>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자(女子)를 찾아야 했습니다. 여자(女子)를 찾는 데는 마리아와 관계(關係)없는 여자(女子)를 찾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딸과 같이 키워준 여자(女子), 자기(自己)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는 여자(女子)를 찾아야 했습니다. 마리아가 수고(愁苦)한 공적(功績)을 쏟고 마리아뿐만 아니라 요셉까지도 온갖 정성(精誠)을 들여 모든 것을 상속(相續)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여성(女性)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복귀(復歸)가 되는 j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女子)를 찾아주려고 하는데 여기서는 또 어떠한 자리에서 찾아 줘야 되느냐는 문제(問題)가 벌어집니다. 부잣집 딸 데려오면 되겠지 할지 모르지만 안 됩니다. 복귀역사노정(復歸歷史路程)의 원칙(原則)에 맞아야 됩니다. 조금 전(前)에 말했다시피 횡적(橫的)인 문제(問題)를 종적(縱的)으로, 종적(縱的)인 문제(問題)를 횡적(橫的)으로 탕감(蕩減)하지 않으면 복귀(復歸)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는 4천년(四千年) 역사(歷史)의 내정적(內情的) 심정(心情)을 감아쥐고 그것을 횡적(橫的)으로 전개(展開)시켜 가지고 사탄을 때려눕혀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랑을 중심(中心)삼고 해와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아담이 승리(勝利)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담 앞에서 사탄이 ‘굴복(屈伏)하였나이다’ 하도록 사람으로부터 굴복(屈伏)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서 사탄이 예수님 앞에 찾아진 해와를 대신(代身)하여 ‘천년만년(千年萬年) 살고 지고..., 새로운 나라의 주인(主人)이 되시옵고, 천국(天國)에서 새 출발(出發)하시옵소서’ 하며 해와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하늘나라가 출발(出發)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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