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7.수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셋째날
*본문; 요 12:1~8
*제목; 넷째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다!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 12:1~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유대의 왕’이 되셔서, 유대의 해방시키고 부강한 나라로 만드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죽으셔야 우리가 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마지막 유언처럼 이곳에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마지막 날의 징조를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아도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 마지막은 이미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유대의 왕이 되심을 기대하며 꿈꾸고 있을 뿐,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그 성취에만 젖어 있을 뿐, 그 누구도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 예루살렘 입성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주님이 뭐라고 하시는 지를 분명히 알고, 그 길을 좇아서 꼭 하나님 나라를 입성하는 자가 됩시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말씀을 유일하게 주의 깊게 들은 자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이 길이 죽음으로 가시는 길이라는 사실을 들었고, 이를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너무도 잘 아신 것입니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 12:1~8)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좋으셨을까요? 주님의 말씀을 이토록 유의하여 듣고, 이를 준비하는 자가 있으니 참으로 든든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리아’같은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도 예수님의 음성과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잇속과 욕심을 챙긴 자가 있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4~6)
주님, 혹시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뜻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욕심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오늘 ‘가룟 유다’와 같은 모습이 혹 있으면 다 성령의 불에 태우고, 늘 ‘마리아’처럼 주님의 뜻과 말씀을 유의하여 이를 지키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첫댓글 마리아는 주의 말씀을 유의하여 듣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신대로 주님의 장례를 눈물로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생각과 욕심에 빠져 주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고난의 주간, 이제 주의 음성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자녀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