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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동백꽃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위층 사는 백수가 동백이파리 같은 피크를 쥐고 뚱땅뚱땅 기타줄을 퉁길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막 이혼한 여자가 옷가지를 챙겨 덜덜덜덜 가방을 끌고 지나갈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209동 경비아저씨의 졸음이 무겁고도 무거운 머리통을 떨어뜨릴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끼이익, 어디선가 다급하게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릴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아날로그 시곗바늘 세 개가 잠시 정오에 모였다가 째까닥 떨어질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앞치마 두른 내 여자가 분리수거통을 들고 음식물쓰레기를 쏟아부을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지랄하고는 허리가 부러졌나, 하루종일 드러누워 지내는 니트족 내 아들놈이 리모컨을 돌릴 때 떨어집니다 채널이 바뀔 때마다 떨어집니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떨어집니다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에라 이 빌어먹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오동도로 가는 問喪 남해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한 떼의 늙은이들이 몸을 흔들고 있다 늙음마저도 한때, 제 늙음을 탕진하기 위하여 생지랄, 발광을 해댄다 늙어빠진 것이 무슨 바다를 뛰어들겠느냐 늙고 병든 것이 무슨 염병할 계단을 올라가 동백을 보며 한숨을 쉬겠느냐 진작 술이 올라 시뻘게졌다 단숨에 툭 떨어져내리면 그만, 呪文도 呪術도 없이 금방 한 무더기 진달래군단이 되어 어라, 냅다 동백 무찌르러 달려나간다 후문으로 왔다 후문으로 빠져나가는 불륜 같은 삶, 섬진강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마다 늙은 항문 늙은 후문 뭉텅뭉텅 피동백을 피워놓고 동백 다 봤다 동백 다 피웠다 제 몸 속의 동백을 다 흘려보낸 늙은이들, 귀청 때리는 트로트 메들리가 장송곡으로 들려오는 남해고속도로, 죽음도 한때, 나는 속도를 늦추고 관광이라고 쓴 영구차를 따라 천천히 조문을 간다 자전거 체인에 관한 기억 눈이 없는 사람이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모르는 개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일찌감치 부모의 눈알을 후벼먹은 후레자식들이 휘파람을 불며 모여들었다 제멋대로 각목들이 쟁여져 있었다 훔쳐온 자전거가 벌겋게 썩어가고 있었다 개만도 못한 자식들이 자전거 체인을 벗겨 흉기를 만들고 있었다 담배를 돌려 피우며 팔뚝을 지지고 있었다 비린내가 풍겼다 고기는 팔고 비린내만 달고 온 어머니, 돈에도 비린내가 난다 돈에도 비린내가 나 빠지지 않는 사람 냄새에 진절머리를 쳤다 눈 없는 아버지 말 없이 듣고 있었다 손목에 체인을 감아쥐고 무엇을 후려치고 싶은 시절이 흘러가고 있었다 벚꽃나무 추리닝 입고 낡은 운동화 구겨 신고 마트에 갔다 온다 짧은 봄날이 이렇게 무단횡단으로 지나간다 까짓 무단횡단이라는 거 뭐, 별 거 아니지 싶다 봄이 지나가는 아파트단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발로 걷어차고 싶어진다 화르르화르르 꽃잎들이 날린다 아름답다 무심한 발바닥도 더러는 죄 지을 때가 있다 머리끝 생각이 어떤 경로를 따라 발바닥까지 전달되는지...... 그런 거 관심 없다 굳이 알 필요 없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은 깡그리 다 엉터리, 그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걷어차고 싶어진다 세일로 파는 다섯 개들이 라면 한 봉지를 사서 들고 허적허적 돌아가는 길, 내 손 잡은 딸아이가 재밌어서 즐거워서 한번 더 걷어차보라고 한다 한번 더 |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내 친구 재운이 마누라 정문순 씨가 낀 여성문화동인 살류쥬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어이쿠, 했다 나도 앉아서 오줌 눈 지 벌써 몇 년, 제발 변기 밖으로 소변 좀 떨구지 말아요 아내의 지청구에 앉아 오줌 싸는 거 버릇이 된 지 벌써 수삼 년, 날마다 변기에 걸터앉아서 나는 진화론을 곱씹는다 이게 퇴화인가 진화인가 퇴행인가 진행인가 언젠가 여자들이 더 많은 모임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박서영은 배를 잡고 웃고 강현덕은 그것이야말로 진화라고 웃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되받았다 역시 여자는 새침데기들이 더 무섭다 그건 그렇고 강정구 교수 전화번호라도 알아내어서 수다 좀 떨까 난 앉아서 오줌 누니까 방귀가 잘 꾸어지던데, 낄낄낄 캑캑캑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끼리 다방에 관한 보고서 우리나라 다방은 18,536개이다 우리나라 다방 종업원은 29, 459명이다 오후 3시 38분 현재, 커피를 주문하는 인간은 5,047명이고 배달 가는 오토바이와 티코는 935대이다 지금 3급 카센타 더러운 소파에서 배달 나온 다방레지의 젖을 만지는 2,304명 팁을 받으려고 치마를 걷어올린 년은 576명이다 시간당 3만원 하는 티켓을 흥정하는 자가 483명 여관까지 가는 2차를 행차중인 자가 885명이다 여관비+티켓비=? 돈 계산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하는 아빠가 222명 좀 돌려봐 이년아 엉덩이 끌어당기는 여보가 333명 이 새끼 이거 순 변태 아냐! 개의 뺨을 올려붙이며 욕지거리를 퍼붓는 이브가 73명이다 나들이 열 번으로 금목걸이를 해 건 공주가 4,747명 엄마 별일 없죠? 네에 저도 직장 잘 다니고 있어요 그럼요 걱정 마세요 타락천사가 1,906명 오늘 보건소 가야 하는 백설공주가 5.401명이다 지금 공주의 썩은 가랑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보건의는 152명 오늘 은퇴하는 왕비가 84명 새로 입궐하는 궁녀가 157명이다 정말로 굉장한, 이 나라의 행사다 |
안경
까마귀 기르기
행운목/ 유홍준 -애지, 2006년 여름호
주석 없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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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시나무 길
주머니에 목마를 넣어 다니는 사람이
은사시나무 밑을 지난다
그가 목마를 깎을 때
그가 아직 목마에게 말굽을 신기지 않았을 때
목마에게서 태어난 은사시나무 보풀이
갈기를 세우고 흩날리고 있었다
저녁의 은사시나무 길, 저 석양를 다 눈 속에 집어넣은
목마의 무릎이 삐걱거린다
지평선 너머
누군가 삐거덕삐거덕 목마를 타고 사라지고 있다
의자 위의 흰 눈 쉬었다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2005년 제1회 젊은 시인상 수상
2009년 제1회 시작 문학상 수상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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