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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의 마음공부 >
뮤지엄에서도
불어오는
마인드풀니스
바람
글 | 스텔라 박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마음챙김)’라는 단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2500년 전 붓다가 열반에 이르는 수행법으로서 사념처 수행을 비구들에게 가르쳐주었을 때, 수행자가 아닌 재가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이처럼 ‘마인드풀니스’를 자주 언급하게 되리라고 짐작이나 하셨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마인드풀니스는 빠른 속도로 떠오르고 있는 키워드(Keyword) 가운데 하나이다. 《타임(TIME)》 매거진에서는 마인드풀니스를 주제로 하여 스페셜 에디션을 발매했었다. 그만큼 마인드풀니스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 게다.
할리웃 배우와 방송 진행자 등 유명인사들은 인터뷰를 통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삶 속에서 균형과 평정을 찾는 방법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명인들이 하는 것들은 그것이 악세사리이건, 몸에 걸치는 디자이너 옷이건 핸드백이건 간데 마케팅 효과를 누린다. 최근 마인드풀니스 명상 수행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유명인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이다. (그가 하는 명상을 정확히 말하자면 위빠사나이지만 미국 마인드풀니스 교육기관, 특히 내가 공부한 UCLA MARC에서는 위빠사나와 마인드풀니스를 거의 동의어로 취급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마음챙김에 기초한 교육과 트레이닝을 각급 학교, 기업, 정부기관 그 외 여러 분야에서 실시하고 있다. 정신적 안정과 신체적 웰빙을 증진시킨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규모 병원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MBSR(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법 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을 치료에 도입했다. 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하다보면 삶의 모든 경험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러다보니 MBSR 클래스에 참가했던 환자들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스트레스와 통증을 대하게 됐고, 통증이 사라지거나 완화되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UCLA의 세멜 연구소(Semel Institute)에서는 마인드풀 뮤직(Mindful Music) 행사를 가끔씩 개최한다. UCLA의 학생들, 임직원, 그리고 지역사회인들을 위해 점심시간에 진행되는 1시간 길이의 이 컨서트는 라이브 음악을 마음챙김하며 듣는 시간이다. 음악을 이처럼 마음챙김하며 들으면 우울증과 불안초조를 없애주고 신체적 고통, 감정적 찌꺼기가 사라지며 기분을 향상시킨다. 음악은 스트레스 조절을 위한 테라 피로도 사용되며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병, 심장박동수 정상화, 혈압, 코티졸 등 스트레스 호르몬 지수를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 순간을 잘 포착하려면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삶 속에서 마음챙김을 구축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존 카바진 "
뮤지엄에서도 마인드풀 먼데이
LA 카운티의 뮤지엄인 LACMA(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서도 그림과 마음챙김 명상과 그림 감상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7월, LACMA에서는 ‘마음챙김 월요일: 공감과 유대감(Mindful Monday: Cultivating Empathy and Connectedness)’라는 행사가 있었다. 행사 참가비는 따로 없었는데 미리 예약을 했어야 했다. LA라는, 허황된 것 쫓기 좋아하는 이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누가 이런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을까, 싶어 정신줄 놓고 있다가 그래도 예약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행사 날짜 2주 전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뿔사..
이미 정해진 인원수가 다 찼다는 것이다. 혹시 행사 당일날 예약한 이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니 1시간 정도 일찍 와서 줄을 서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마인드풀 먼데이 행사는 월요일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나는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스탠바이 상태인지라 1시간 전에 도착해 줄을 섰다. 나 외에도 약 10여 명의 안젤리노들이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도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LACMA의 중앙 정원에 줄을 서 있었다.
마음챙김 월요일 행사는 이전에도 몇 차례 진행된 적이 있었다. LACMA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알리시아 볼 사엔쯔(Alicia Vogl Saenz)와 엘리자베스 거버(Elizabeth Gerber)는 마음챙김 월요일 행사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21세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볼것이 가득합니다.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때에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기 보다는 모바일폰, 온라인 등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합니다.
저희 뮤지엄에서는 LACMA의 방문객들, 그리고 안젤리노들이 LACMA의 소장 작품들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드림으로써 현재 이 순간의 자기자신, 그리고 주변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뮤지엄에 와서 그림을 본다 할지라도 누가 그렇게 깊이있게 들여다보나요. 1분 정도라도 들여다본다면 아마 많이 본 걸 거예요. 거의 대부분, 대충 스쳐지나가며 보기가 일쑤죠.
그림 한 장을 보더라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자세히 애정을 가지고 보는 것은 뮤지엄에서의 마음챙김 모먼트입니다.
그렇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나 자신과 연결되고 타인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되게 되죠. 그리고 그렇게 연결되면 자기 자신, 타인, 그리고 세상이 각기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인드풀 먼데이에 참가한 이들
안영일 작가의 그림을 마음 다해 보다
7월의 ‘마음챙김 월요일’ 행사에는 모두 30여 명의 안젤리노들이 참가했다. 남성은 3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들이었다. 행사 시작 전, 옆자리의 사람들과 잠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확인한 직업군들은 심리상담가, 정신과의사, 테라피스트, 요가 선생님 등이었다. UCLA의 MARC 에서 실시하는 명상 클래스에 오는 이들 가운데도 유독 정신과의사와 심리상담가가 많은데 이 분야의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챙김에 관심이 많고 실제 자신들의 일에 마음챙김을 많이 결합하는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참가자들이 함께 감상했던 그림은 LACMA 최초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한인 작가, 안영일(Young-Il Ahn, 84세)씨의 전시회 그림들이었다.
재미 한인 작가, 안영일 씨는 1966년부터 LA에서 살고 있으니, 이제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살아온 날이 더 많다. 그가 천착하고 있는 오브제는 LA의 풍경,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물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서 물을 떠올린다는 것이, 글쎄,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대형 캔버스 전체를 붓, 또는 나이 프로 물감을 찍어낸 추상적 이미지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무엇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가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은 모두 10점으로 모두 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오는 10월 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30여 명을 이끌고 안영일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는 갤러리에 들어간 두 LACMA의 교육 담당자, 알리시아와 엘리자베스는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참가자들의 의식을 ‘바로 지금, 바로 여기’로 초대했다.
“아주 잠깐 동안만…. 뮤지엄 밖 공간에서의 번잡스러움과 소란함에서 벗어나 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여기의 정적에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보는 것이에요. 당신의 발바닥이 갤러리 바닥과 맞닿아 어떤 느낌을 만들어내는지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그리고 지구 어머니의 중력에 고마움을 표현해보세요. 엉덩이가 의자 위에 맞닿는 느낌은 어떤가요? 당신의 피부는 지금 이 순간, 갤러리의 온도를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평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이런 것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해봅니다.”
마음챙김 월요일에 참가한 30여 명의 안젤리노들은 두 교육 담당관이 이끄는 대로 조용히 눈을 감고 지금 이곳으로 자신들의 의식을 이동한다.
“안영일 작가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LA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작품활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그는 물, 그리고 보트를 작품소재로 가장 좋아한다고 해요. 당신 앞의 그림이 물을 닮아 있나요? 물의 순간적 형상과 이미지를 포착한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대상을 보듯, 주의 깊게, 천천히, 마음을 다해 바라보세요.
어쩌면 그림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질 수도 있어요. 음악적인 느낌이 있을 수도 있고요. 평화롭게 느껴지나요? 아니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지요? 사실 답은 없습니다. 어떤 느낌이라도 괜찮아요. 마음챙김은 맞고 틀린 답이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저 지금 내게 무엇이 진실인가, 그것만 알아차리면 됩니다.”
안영일 작가의 ‘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
참가자들은 이 그림들을 오래도록, 깊게 들여다봤다.
안영일 작가의 ‘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
그래서 30여 명의 안젤리노들은 그저 단색을 칠해놓은 것 같은 그림 앞에 앉아서 멍때리기를 시작했다. 지겨울 정도로 오래도록 그림을 봤다. 명상 하듯…. 마치 그림과 사랑을 나누듯 말이다. 그림을 보며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살고 있는 노작가의 삶, 작가가 느낀 LA의 바다, 태양빛, 그 모두가 그림에서 우러나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
몇 차례, 의자를 옮겨가며 갤러리 내의 그림을 오래 감상한 후에는 짝을 지어, 그림을 본 느낌을 말하게 했다.
나의 파트너는 머리가 희끗한 백인 여성이었는데 “너무 퀄리티 있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한 번도 이처럼 그림을 오래 들여다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또 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2명씩 얘기를 나눈 후에는 6명씩 짝을 지어 안영일 작가의 말(Quotes)이 적힌 쪽지를 나눠주며 그 말과 그림에 대한 느낌에 대해 그룹으로 토의를 했다.
내가 속했던 그룹에게 주어진 안영일 작가의 말(Quotes)은 그가 즐겨 연주한다는 첼로에 대한 것으로, “첼로 소리를 들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 모성은 내 작품 세계의 뮤즈”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나. 희한하죠.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첼로 소리가 연상되더라고요.”
“시시 때때로 변하는 물의 이미지에서 아름다움, 그리고 그의 감정으로 가득한 삶이 느껴지네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빛이 계속해서 변하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빛은 일정한데 말이죠.”
그룹 토의 중 나온 몇몇 의견들이다.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니 무심코 지나쳤을 때와는 다른, 여러 이미지들이 보인다. 같은 그림을 두고도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것은 그들의 삶과 경험의 다양성 때문이리라.
“자, 오늘 이 시간을 마치기 전, 다시 한 번 오늘 우리들이 나누었던 대화, 함께 감상했던 그림, 그리고 그 느낌에 대해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질게요. 깊이 들이쉬고 편안히 내쉬세요…”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다시 한 번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자신과 연결된 이들은 박수로 두 교육 담당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시작할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갤러리 문을 나섰다.
마인드풀 먼데이에 참가한 이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은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불안 초조, 우울감 등을 느끼고 있다. LACMA가 매달 마련하고 있는 ‘마음챙김 월요일’ 프로그램은 그런 대도시 시민들의 필요에 대한 부응일 것이다.
너무 앞으로만 전진해서이다. 쉬지 않고…. 왜 나가고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이제껏 습대로, 남들 다 하니까, 안 하면 뒤쳐지는 것 같으니까, 생각 없이 전진한다. 이제껏 자동화 상태로 살아가던 이들이 잠깐 쉬는 시간이 되면,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림, 음악, 식사를 비롯한 삶의 모든 경험을 마음챙김하려고 하면 우선은 멈춰야 한다. 그리고 자세히 들어다 봐야 한다. 오래 봐야 한다. 제대로 봐야 한다. 바르게 봐야 한다. 바르게 본다는 것은 대상의 현재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만들어낸 과거의 인과 연(因緣)을 읽을 줄 알고, 이대로 작용할때 어떠한 과보(果報)가 따를 것인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잎> 전문
LACMA에서의 마인드풀 먼데이는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러움을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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