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교택을 대충 둘러보고는, 장독들이 도열하듯 늘어선 동쪽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능선 동쪽으로는 공자의 초상을 모신 궐리사 사당이 있는 곳, 공자의 태어난 고향 이름(곡부 궐리)을 따서 지은 사당 이름이다 먼발치로만 흘끔 보고는 능선으로 난 길을 따라 산쪽으로 올라간다. 2009년 10월에 왔을 때 가지 않았던 길이다. (노성산성 답사에 관한 것은 검색창에서 자세히 볼 수 있음:다섯 편 이상의 글과 자료가 올려져 있음)
의문을 가지면 끝도 한도 없는 것. 산성이 있는 산줄기와 주변 산세 지형을 주로 보면서 올라간다.
-풍수에서 보는 지맥도- 옥녀봉이 품고 있는 형국인가?
- 노성산 등산로는 등산이 다 끝난 후에야 발견한다.
궐리사 우측으로 난 넓은 임도를 피하고, 장독대 옆으로 난 지름길로 해서 고택 뒷산길를 따라 올라간다.-
-좌청룡 지맥이 약하다해서 비보 차원으로 심었는지 느티나무들이 제법 엄청 고목이다.
그 사이로 어린 청매화는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향내가 좋다.-
-뒷산에 있는 명재 선생의 선친 윤선거가 지은 시 한편-
(이제 더 이상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위로 올려다 보니 임도로 보이는 부분이 있어, 풀섶을 헤치고 올라간다.
다행히도 전망대로 가는 임도길.-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노성들을 바라본다. -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시계가 안 좋다.-
(황산벌 전투가 있었던 곳 연산서부터 정읍-장성 사이에 있는 노령산맥까지 높은 산이 없는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곡창지대를 실감할 수 있는 곳. 계룡산 줄기 이남의 지세 떠올려 보기 ; 놀미 강갱이 들과 징게 맹개 들)
-본격적으로 등산길로 들어선다. 능선을 따라 노성산성으로 올라간다.-
-정상 가까이에는 성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나타나고, 헬기장도 있고... -
- 돌다리에, 암문으로 보이는 곳도 있고.-
-돌무더기 속에서 와편도 보이고...-
-건너편 계룡산 연천봉 줄기와 상봉 : 신원사 입구 아래에는 양화저수지가 보인다. 그 오른쪽에는 양화산성이 있고,
저수지 아래에는 경천(화마루)이 있다 계룡면이 생기기 예전에는 중심지였던 곳. 경천중학교가 말해준다.-
-노성산(348m) 정상에 올라 계룡산 국사봉(향적산) 줄기를 바라본다. 옆에는 이산정 정자 처마.-
-지금의 이름인 '노성'으로 바뀌기 전에 이름은 '이산', 공자의 이름자(중니)를 쓰는 것을 기피해서 공자의 나라 노나라를 빌려서 '로' 바꾼다. 대구의 '구'자 또한 공자의 이름자(공구)를 무엄하게 쓸 수없다해서 현재의 언덕 '구'자로 함께 바꾸고.)-
-노성산성의 북벽에 올라 옛 백제 도읍지인 공주(웅진)를 바라본다. 월성산 봉수대로도 연결되고
(1894년 갑오동학농민군들이 노성을 거쳐 공주 우금티로 진격했던 시절을 상상해본다.. 연산전투라.
직할부대 1만여명의 동학농민군이 낫과 몽둥이와 정신력만으로 일본군과 싸웠으니 그 희생이 얼마나 컸었나. 전사자:동학군 3만 명: 왜군은 1명 전사, 그것도 사고사에 가까운 것이라니. 말이 동학농민군이지 실상은 맨주먹으로 시위하는 군중에 불과했으니..)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나오는 잉카제국 군대와의 싸움이 떠오른다.
168명의 피사로 군대가 수십만 대군과의 싸움에서 희생자가 거의 없는 것과 어찌 그리 반대로 닮았는지-
그래도 악착같이 또 싸우러 덤벼든 그 동학농민군의 정신과 기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1만 명이 3천 명으로, 또 싸워서 5백 명 남을 때까지. 지금도 도도히 흐르는... 궁을가를 되뇌이면서 )
-북벽의 습기 찬 성돌들에는 푸른 이끼만 무성하다-
. 화살표는 문지 입구 길표시다.
-북벽 성벽에서 이끼 가득한 성돌을 손으로 더듬어본다. 전형적인 백제식 성돌 모습;
(인절미 썰어놓은 듯한 성돌들... )
스킨십(skinship) 대신에 '스톤십(stoneship)'이라는 신조어 아닌 신조어를 말하면서 옛 상념에 젖어본다
- 내려 오는 길에 다시 만난 소나무의 상처들 - (송진 채취를 한 일제 수탈의 상채기들이다. 군수용으로 썼단다.
문경 새재길에도 보았고, 전남 명옥헌 들어가는 길에 서있는 소나무에서도 보았고,, ..
그래도 상처가 많이 아물어 들어가고 있다.)
-계룡산 주변에는 우리 토속 종교들을 볼 수 있다. -
-성안에 있는 우물 : 백제 시대때에도 사용했을 우물물.
(성과 우물과의 관계가 생각나서 찍어본다. 사람은 물주머니이다. 물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다.)
- 금강대도 옆에 있는 노성산성 안내판-
-노성산성의 남벽 1. 옛성돌 위에 복원한 모습.
-복원한 노성산성 남벽2 : 남문지도 복원해 놓았다.- (2009년 답사시에는 못 보았던 것들이다.)
-차도를 따라 내려온다. (2009년 답사 시에 올라왔던 길이다.)-
노성향교앞에서 건너편 동쪽으로 황산성을 쳐다본다. 연두색 점 두개 있는 곳 아래.
-명재 고택 진입로 입구에 있는 공주이씨 정려각- 처음 들어올 때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명재 선생의 어머니 공주이씨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자결한 것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
(다음은 안영동 뿌리공원과 침산동 유등천 걷기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