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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서유럽 렌트카 여행기
- 11박 13일, 7개국 18개도시, -
올해 대학교를 졸업한 딸이 졸업여행으로 프랑스를 가고 싶어했다. 교양과목으로 "프랑스 문화의 이해"를 선택한 것이 인연이 되어 프랑스를 동경하게 된 것 같다. 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해서 돈도 모았단다. 자기 부담으로 간다는데 굳이 말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렌트카 여행을 하겠단다. 혼자서 유럽을 렌트카로 여행한다고 하니 부모의 입장에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불어도 기초만 공부하였는데 기차여행도 아니고 렌트카 여행이라니.
그래서 그냥 패키지로 다녀오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혼자가는 것도 재미없으니 엄마랑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나름대로 경비 계산하고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정보를 알아보더니 그게 낫겠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남프랑스가는 패키지를 선택하여 예약했다.
그런데 엄마랑 가기로 결정하고 마음의 준비도 다 했는데 그 패키지 여행 상품이 인원부족으로 취소되어 버렸다. 다시한번 남프랑스 가는 패키지를 검색해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실의에 빠진 딸을 보니 마음이 안좋다. 딸은 패키지가 안된다면 자유여행이라도 하겠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그렇지만 몸이 허약한 아내에게 자유여행은 무리였다. 할 수 없이 두사람의 안전을 위해 나도 가기로 했다. 나도 가겠다고 했더니 딸과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
내가 안가려고 한 것은 경비 때문이었다. 딸이 아르바이트해서 틈틈히 모아놓은 돈으로 가는 것이니 내가 가게 되면 그 이상의 경비가 든다. 지난해 아파트를 빚내서 사는 바람에 여윳돈도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계산해보니 둘이 패키지로 가나 셋이서 렌트카 여행을 하나 비용은 비슷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한방에 셋이 자고 렌트카를 빌리면 세명이나 두명이나 별차이 없었다.
일정은 기왕 멀리 가는 것이니 가급적 여러나라를 둘러보고 싶었다. 이동거리는 줄이면서 관광하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하루 최대 세시간 반이상 이동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관광은 테마별로 중복되지 않도록 했다. 예를들면 바다, 호수, 강, 초원, 산, 박물관, 성, 쇼핑가, 대성당 이런 것들이 너무 중첩되지 않도록 일정을 맞췄다. 그래서 코스는 프랑스 파리 ⇒ 남프랑스 ⇒ 모나코 ⇒ 이탈리아 밀라노 ⇒ 스위스 융프라우, 루체른 ⇒ 독일 하이델베르크 ⇒ 룩셈부르크 ⇒ 벨기에를 통해 파리로 돌아오는 코스로 정했다. 숙소는 때로 고급스런 곳에서 때로는 순박한 호스텔에서 때로는 호숫가에서 때로는 산속에서 골고루 경험할 수 있도록 예약했다.
항공권, 렌트카, 호텔을 예약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가 복잡하고 걱정도 되었다. 각 나라마다 법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 무작정 가도 되는지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는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모아보면 상당한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핸드폰은 해외에서의 로밍보다 유럽통신사의 칩으로 바꾸어 끼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렌트카도 예약하면서 내비 장착을 옵션으로 하는 것보다 유럽의 내비를 빌려가면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비는 용산에 가서 직접 가져왔는데 빌려주는 분이 좋은 정보를 알려줬다. 영어로 주소찍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핸드폰 구글지도에 목적지를 손으로 클릭하면 좌표가 나온다. 그 좌표를 내비에 그대로 입력하고 즐겨찾기로 등록하면 찾기가 쉽다. 해외에서의 렌트카 여행은 내비게이션 사용방법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들었다. 이것은 실습을 하지 않으면 이론상으로 꽤나 복잡하기 때문에 빌릴 때 택배로 받지 말고 반드시 빌려주는 회사에 가서 사용법을 듣고 가져오는 것을 권하고 싶다.
유럽에서는 전기코드가 우리와 다르다고 하여 만능 콘센트를 준비했다. 핸드폰 충전지는 있는대로 가방에 다 넣었다. 비상시 연락할 수 있도록 해외 영사관이나 대사관 연락처도 외교부사이트를 통해 핸드폰에 저장했다. 유럽은 지중해의 햇볕이 강렬하다하여 썬그라스와 썬크림도 챙기고 호스텔에는 수건도 없을거라고 생각하여 수건도 가져갔다. 그러나 수건은 가는 곳마다 잘 준비되어 있었다.
5월 12일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출발 2시간 전에 도착하면 아무문제 없다고 생각했으나 수속을 밟을 때마다 여전히 낯설다. 이제는 전자화가 되어서 친절하게 비행기표 끊어주고 화물에 꼬리표 부쳐주는 사람도 없다. 전자항공권을 출력못하는 일부에게만 도움의 손길을 준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항공의 제휴사인 에어프랑스 창구를 가야하는데 그걸 모르고 대한항공 창구에서 티켓을 끊으려고 전자항공권 출력기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무리 예약내용을 입력해도 항공권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수작업으로 하는 곳에 줄을 섰는데 거기서는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너무 답답해서 여기저기 물어보니 우리는 에어프랑스 창구로 가야 한단다. 대한항공을 타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제휴사인 에어프랑스를 탈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데서 오는 고생이었다. 결국 허겁지겁 에어프랑스쪽으로 가서 여권을 전자항공권 출력기에 대니 우여곡절끝에 항공권이 출력된다. 거기다가 화물은 몇개냐, 무게는 얼마냐 하고 사람이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전자화면을 통해 물어본다. 어렵사리 화물 꼬리표를 출력받아 가방에 부치고 밀어넣으니 시간이 꽤나 지나가버렸다. 전 세계인을 컴퓨터전문가로 만들려고 하는가 하는 불평을 섞어 궁시렁거리면서도 나의 경험 없음을 탓해야 했다.
겨우 화물을 부치고 탑승수속은 어디에서 하냐고 창구에서 물어보니 가까운 곳을 가르키면서 모노레일이라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무슨 철로가 있나보다 하고 철로를 찾았으나 없다. 결국 이것 또한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어봐야 했다. 그랬더니 바로 내가 서있는 줄을 따라 들어가면 된단다. 발밑을 보니 페인트로 일방통행 줄이 한줄로 그어져 있다. 아니 이것도 모노레일이라고 하는구나. 이걸 몰라서 여기저기 왔다갔다 했다는 사실이 또 한번 나 스스로를 조롱하고 있었다. 시간이 참 잘도 간다.
탑승수속을 밟으면서 짐을 검색하는데 아내는 조그만 색종이 자르는 가위를 두개나 가방에 넣어와서 압수당했다. 이 가위 두개가 위험물로 취급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가위는 아내가 약봉지를 자를 때 쓰는 물건이었다. 문방구에서 몇 천 원이면 사는 것인데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검색요원은 지금이라도 화물칸으로 가서 가위를 가방에 넣고 오던지 아니면 자기들이 폐기한다고 했다. 몇 천 원 밖에 안되고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화물칸으로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그냥 버리라고 하고 통과했다. 비행기를 타면서 가지고 타서는 안될 물건들에 대해서 곰꼼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사실 나는 지난해에 일본 갈때도 어머니와 사이좋게 공원에 앉아 과일을 깎아먹을 꿈을 안고 과도를 가방에 넣어 타려다 압수당한 적이 있다. 그러면 이번에는 조심했어야 하는데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보다. 내 짐에서는 우유가 좀 남아 있었는데 버리라 한다. 버리기 아까워서 그자리서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약간 창피한 노릇이지만 이 또한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는 곳을 통과하여 나오면 바로 비행기가 코앞에 있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전철로 갈아타야 한다. 탑승게이트로 가는 길이 정말 험난하다. 차분히 면세점에 들러서 구경할 시간도 없이 탑승구로 가니 겨우 20여분 남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공항안에서 점심을 우아하게 먹으려던 나의 생각은 접어야 했다. 겨우 비행기에 오르니 이제야 떠나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집나오면 개고생이다. 그렇지만 비행기가 뜰 것을 기대하니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비행기 안에서 스마트폰 유심칩을 갈아끼우기로 했다. 먼저 내것을 갈아끼우는데 핸드폰에서 칩을 꺼내는 순간 칩이 튀어 보이질 않는다. 좁은 좌석밑을 아무리 허리굽혀 찾아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딸이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한참을 고생한 후에야 겨우 찾았다. 칩이 검은 색인데다가 바닥벽면에 붙어 있어 위에서 보면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딸의 유심칩을 바꿀 차례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옷을 벗어 무릎에 놓고 교체하기로 했다. 근데 이번에는 옷에 떨어진 것 같은데 또 보이질 않는다. 옷을 비행기 안에서 털고 다시 전과 같은 과정을 또 밟았다. 정말 유심칩 교체할 때는 비행기 안에서보다는 주변이 깨끗한 곳에서 차분히 여유를 갖고 갈아끼워야 할 것 같다.
여행할 때마다 비행기 아래의 풍경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나만 그런것일까? 비행기 안을 둘러보니 나처럼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창문을 닫고 있었다. 승무원은 승객중에 밖을 보지 않으면서 차광문을 열어놓으면 문을 닫으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비행기안은 오후 두시밖에 안되었는데 약간 어둡고 모두 취침 모드다. 그러나 나는 사전에 창가로 예약을 했고 비행기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기로 했다. 비행하는 12시간 내내 기내의 항로 안내 화면과 창밖의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북한과의 경계는 어떻게 피해가며 중국과 러시아의 현재 자연환경은 어떤지, 나라간 경계와 바깥풍경은 어떤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좌석의 화면에 고정시켜 놓았지만 나는 비행내내 창밖을 내려다보고 지도가 표시된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곧장 북으로 가지 않고 살짝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중국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는데 통일이 된다면 이럴 필요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행기는 중국 산뚱반도를 지나 베이징을 지나 고원지대인 몽고를 거쳐 러시아의 침엽수립지대를 3시간이나 비행하는데 쌓인 눈으로 온통 하얗다. 5월 12일이면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여기는 아직도 한겨울인 것이다.
러시아 중부를 지나가니 습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어느정도 눈이 녹아 있었지만 산 정상에는 흰눈이 아직도 쌓여 있고, 산아래는 작은 호수들이 늪지를 형성하며 끝없이 이어진다.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기후와 토양이다.
드디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상공을 지나가니 눈이 완전히 녹아 있고 초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발트해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이 발트해와 함께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발트해를 구경하는데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도 시야에 들어온다. 바다에는 배들이 항해하고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푸른 초원과 더불어 아름다운 마을들이 펼쳐져 있다.
독일 상공을 지나 드디어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보인다. 파리가 멀지 않다. 하늘 상공에서 보아도 동러시아와 달리 아름다운 자연과 기후조건이 부유하고 풍족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여행중 12시간을 내내 창밖을 내려다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평양 상공을 끝없이 비행하는 미국이나 동남아, 일본 여행과 달리 러시아를 지나 스칸디나비아와 베네룩스를 통과하는 바깥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끝없는 설원, 호수와 바다, 초원위의 마을, 도시들 이 모든 풍경들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굳이 차를 타고 여행하지 않아도 이렇게 맑은 날 하늘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또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룸셈부르크를 지난 비행기는 서서히 파리로 진입하고 있었다. 드디어 목적지가 다가 온다. 드디어 예술과 향수의 도시 파리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에서 빠져나오니 첫번째 할 일이 렌트카 찾는 일이었다. 제주도처럼 공항 나오면 렌트카업체들이 회사푯말을 부쳐놓고 누군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렌트카들은 줄지어 서 있는데 사람은 없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오겠지 하고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질 않는다. 딸과 아내와 나 세사람이 캐리어를 끌고 짐을 어깨에 매고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것도 낯선 이국땅에서.
할 수 없이 한국에 있는 렌트카 예약센터로 전화해서 물어보니 몇시에 도착했냐고 한다. 예정시간보다 20분 늦었다고 했더니 그래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못빌릴수도 있다고 한다. 이 무슨 황당한 답변이냐. 차가 없으면 모든 일정이 어긋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비행기에서 수속하다보면 늦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도착예정시간을 정해놓을때는 넉넉하게 잡아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약센터 직원과 긴 얘기 해봐야 해외 전화 요금만 많이 나올 것 같아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한번 주변을 둘러보며 우리의 렌트카 사무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참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찾아다니다 보니 우리가 예약한 차량의 회사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 예약한 렌터카를 찾는다고 했더니 가까운 곳의 사무실 하나를 알려준다. 우리는 제주도만 생각했는데 여기는 별도의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가서 예약서를 보여주니 뭐라고 얘길 하는데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불어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프랑스 올줄 알았으면 불어를 공부했겠지. 우리가 못알아 들으니까 자신도 잘 못하는 영어로 떠듬떠듬 얘기를 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서류를 요구한다. 예약했으면 예약서만 보여주면 되는 것인데 뭘 자꾸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권도 보여주고 예약바우처를 보여줘도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한국에서의 주소, 성명, 연락처, 머무는 장소를 적어달라고 한다. 적어줬더니 이제는 카드를 달라고 한다. 예약 결재를 다했는데 왠 카드냐고 물었더니 또 떠듬떠듬 영어로 돌려줄거라고 한다. 아마도 차를 반납하지 않거나 보험처리되지 않는 차량손해가 발생하면 결재처리를 할려는 것 같았다. 일단 머리도 복잡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카드를 줬더니 900유로를 결재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돈 120만원이다.
어찌됐던 렌트카관련 서류작성과 결재를 마치고 나니 차번호가 적혀있는 키를 준다. 그리고 차에 대한 설명도 없고 이상이 있으면 와서 얘기하란다. 차까지 따라와서 설명해주고 흠집이 있는지 여부를 회사에서 체크하는 우리나라하고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다행히 차는 20,000키로밖에 달리지 않은 새차였다.
차는 브레이크와 엑셀만 알면 다 운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이드브레이크가 우리와 약간 다르다. 어렵게 이부분을 확인하고 사가져간 영어내비를 장착시켰다. 처음부터 파리 중심가로 가려던 생각은 접어야 했다. 우선 상황이 낯설고 복잡해서 호텔로 간다음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렌트카와 먼저 친해지는게 급선무였다.
공항을 빠져나가려는데 처음부터 내비와 호흡이 안맞아 헤매기 시작한다. 앞이 꽉 막힌 곳과 막히지 않은 도로가 있는데 꽉막힌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아마도 공항도로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영어내비와 친하지 않아서 내비가 알려주는 길을 잘못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즉, 내비의 도로지도와 그가 설명하는 영어안내를 잘못 해석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막다른 길에서 후진하여 다시 두번째길로 들어서니 그때서야 내비가 바로 안내한다.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고 그차에 익숙한 상태가 아니어서 공항을 빠져나가야 되는데 끼어들지 못하고 한바퀴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다시한번 왔던길에서 출발하여 두 바퀴 째 부터 겨우 끼어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내비를 보며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어색하다. 25년 무사고라도 낯선나라의 낯선 도로에 낯선 표지판을 보며 달린다는 것은 아무리 내비가 있어도 긴장되기 마련이다.
교통표지판은 영어도 아니고 읽을 수 없는 불어다. 신호체계는 주로 비보호 좌회전인데 우리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공항에서 파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약간 막히는 듯 했지만 서울처럼 그렇게 극심하진 않다.
내비는 정확하게 호텔을 찾아주었는데 문제는 호텔 주차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짐을 호텔입구에 내려놓고 가까운 주차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오늘은 이곳 호텔에 무사히 도착한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주차장은 호텔에서 한 200여미터 떨어진 공용주차장을 사용하고 있다. 어찌됐던 호텔을 찾은 것만 해도 첫날은 성공이다. 차에 외장내비가 달려있으면 가끔 차를 부수고 내비를 훔쳐간다는 내비 대여회사의 말이 생각나 내비를 떼어내서 가방에 넣었다. 피로가 몰려온다. 오늘은 먼곳으로 가지 말고 호텔근처 시내 풍경을 감상해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아침부터 파리의 중심부 에펠탑과 개선문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식사도 할겸 호텔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특이한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낯선 냄새다. 파리 사람을 보니 개성이 넘치고 자유분방해 보인다. 보통 파리사람들을 파리지앵이라고 부른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파리 사람들이 좀 건방지게 행동하는 것 처럼 보여 비하의 표현으로 쓰기도 한다는데 내가 볼때는 그들의 걸음걸이는 당당해보인다. 시내를 활보하는 여성들은 담배를 멋스럽게 피운다. 저녁식사때는 거리까지 테이블이 놓여지고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간혹 기타연주를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자유스러운 파리의 밤이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하는 피의 혁명을 거쳐 현재의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파리 시민혁명을 배경으로 만든 레미제라블은 우리의 80년대 상황과 유사하다. 프랑스가 200여년에 걸친 혁명의 과정을 거쳤다면 우리는 단기간에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혼란스럽고 덜 성숙된 민주주의 이기는 하지만.
파리지앵은 특별하게 어느 한 민족이 많다고도 할 수 없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인, 흑인, 동아시아인,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번도 외국인을 거절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외부세력과의 잦은 전쟁, 왕국의 교체, 민족의 대이동 등으로 다양한 인종분포를 이루고 있다. 이점에서는 미국과 흡사하다.
조용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격이 꽤나 비싼 것으로 보아 음식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다. 잘못 들어온 것 같다. 항상 우리는 "식당은 사람이 많아야 맛있는 곳이다"라는 진리같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화려해 보이는 곳을 원하다가 낭패를 당하곤 한다. 1,2층이 식당인데도 손님이 아무도 없고 종업원이 더 많았다. 손님은 우리만 달랑 두 테이블이다. 그 근처에서 가장 깨끗해보이고 가격도 비싼 편이니까 맛있겠지 하고 들어간 것인데 고기맛은 별로다. 가끔 한국관광객이 들어왔었는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해외 여행하면서 반드시 알아둘 것, 비싼 것보다 사람 많은 식당을 찾을 것을 권하고 싶다. 대부분 식당앞에는 가격표를 부쳐놓는데 비싼 가격의 식당은 파리시민들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식당앞에서 집시가 망투를 걸치고 왔다갔다 한다. 창밖에서 우릴 쳐다봐서 약간 겁이 나는데 식당주인이 멀리 내쫓아 버린다. 어딜가나 이런 어려운 사람은 있나보다.
식사를 하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호텔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핸드폰 구글을 가지고 검색을 하는데 구글에 호텔의 위치가 표시되지 않았다. 저녁해가 저물어가고 비가 오려고 하는데 돌아갈 길을 잃어 버렸으니 난감하다. 셋이서 주변을 몇 바퀴 돌았지만 자꾸 겉돌기만 한다. 호텔에서 출발하면서 돌아올 길을 잘 봐두라고 딸에게 얘기 했었는데 여기저기 구경하다 깜박 잊어버린 것 같다. 비는 내리고 어둠이 다가오고 거기다가 몸은 피곤해지니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더 당황하게 되고 참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기억을 더듬어 겨우 호텔 가는 길을 찾긴 했지만 돌아갈 길을 잘 확인하고 다녀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호텔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군인 세명이서 총을 들고 호텔 바로 앞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한참 후에 유태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대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예배당이다. 아마 거기가 유태교 성전이었던 모양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분쟁을 빚고 있어 테러 예방차원에서 군인들이 경비를 서주고 있는 것이다. 저 군인들 덕분에 오늘밤은 테러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나.
시차로 인해 눈이 일찍 떠졌다. 이른 아침이지만 길을 나선다. 오늘은 파리의 중심부를 구경하러 가는 날이다. 10여분만에 도착한 에펠탑의 주변은 너무나 고요했다. 간혹 조깅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관광객은 한명도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7시에 왔으니 사람들이 있을리가 없다. 덕분에 노상에 주차비를 내지 않고도 쉽게 주차할 수 있었다. 간밤에 비가 왔었는지 안개가 옅게 끼어있다. 에펠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하다. 올려다 보니 끝이 보이질 않는다. 순전히 철로만 만든 타워는 단순하면서도 균형감있게 만들어 놓았다. 타워 주변에는 넓은 정원이 있고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나무를 사각형으로 가꾸어 놓았다. 이런 형태의 조경은 처음보는데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풍경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다음은 개선문으로 향한다. 개선문은 나폴레옹1세때 만들어진 것인데 화강암에 좌우대칭으로 튼튼하게 만들어놓았다. 차들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건축 당시에는 아마도 마차들이 지나다니지 않았을까.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문을 세운다는 발상은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본다.
이어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는데 관광객이 너무 많다.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줄이 줄어드는데 몇 시간은 소요될 것 같다. 오전 9시, 관광객이 일시에 몰리는 시간이 된 것이다. 줄서는 것이 부담스러워 루브르박물관 앞의 튈트리 정원을 구경하며 밖으로 나오니 세느강이다. 세느강은 우리의 한강보다 약간 너비가 작고 인공둔치로 되어 있다. 우리의 한강은 지금 환경친화적이고 시민들이 즐기는 장소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기용 아폴리네르라의 시 <미라보 다리아래로 세느강은 흐르고> 를 읽으며 감상에 젖었던 사춘기 시절이 떠오른다. 한강이 더 아름답지만 한강을 아름답게 세계에 전달할 시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소설가 한강이 멘부커상을 수상했다는데 앞으로 자신의 이름같이 한강을 잘 소개했으면 좋겠다.
세느강을 걸어가다 보니 시테섬이 눈에 들어온다. 시테섬에는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세느강의 모습을 즐기며 노트르담으로 걸어가는데 주차장으로 돌아 오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다. 주차장으로 다시가서 차를 가지고 노트르담의 지하주차장에 파킹을 했다. 주차장에는 파킹티켓이 있는 사람만 오갈 수 있도록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아마도 관광객이 차에 물건을 두고 왔을 때 차량의 물건 도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 같다.
사실 렌트카 여행의 단점은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패키지여행을 하면 가이드가 잘 설명해주지만 자유여행은 스스로 사전에 알고 와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노트르담의 꼽추>가 생각나긴 하지만 성당의 자세한 연원을 알 수가 없다. 그냥 웅장하고 엄숙하고 화려하고 대단하다는 정도다. 계몽주의로의 의식전환을 꾀했던 소설의 배경인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여행준비 부족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사진을 우선 찍어 놓고 공부는 나중에 해야겠다.
노트르담 성당을 나오면 주변은 음식점과 기념품 판매점들이 즐비하다. 거리는 깨끗하고 식당에는 손님들이 북적인다. 메뉴판을 보면 음식의 사진과 더불어 가격이 나와 있다. 이 곳이 처음인 관광객을 위한 배려다. 햇볕이 따사한 5월의 거리, 식사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 역시 여행은 행복한 것이다. 모두가 밝은 웃음, 건강한 표정들이다. 햄버거, 샐러드, 샌드위치, 바게뜨 등 이곳사람들이 즐겨먹는 것들을 사먹는다. 아내는 바게뜨 매니아다. 차안에서도 계속 바게뜨를 쨈에 발라 먹곤 했다. 파리 음식이 잘맞는 것 같다. 나는 김치가 생각나면 샐러드를 먹곤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루브르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에 줄 지어섰던 그 많던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루브르 박물관을 가려면 오후에 가야 할 것 같다. 박물관 입구에는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순찰을 하고 있다. 테러 예방차원인 것 같다. 입장할 때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하는 것을 보면서 적어도 이정도면 테러는 발생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들어가본다. 밖에 줄지어선 사람은 없지만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예술의 도시 파리, 그 예술품이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지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몽마르트 언덕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딸이 그보다 먼저 가고 싶은 거리가 있다고 한다. 마레지구라는 곳인데 내비로 검색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도착하여 건물안 주차장에 주차하는데 주차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주차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면서도 요금은 너무 비싸다. 거리 풍경은 젊은이들이 활보하는 홍대 같은 곳이다.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은데 딸은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파리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할 몽마르뜨를 찾아 나선다. 몽마르뜨는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나오는 배경이기에 유명한 곳이다. 이곳 역시 평범한 언덕을 관광지로 만든 것은 문학의 힘이다. 몽마르뜨에 가면 잘 지어진 성당이 두개 있고 예술가들의 무덤이 있고 시내를 내려다본다는 점들이 있지만 사실 유명 관광지가 될 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는 것은 소설의 영향이 크다. 마포구 합정동에 가면 순교자들의 무덤과 절두산 성지, 그리고 성당과 공원, 한강이 바로 옆에 있어 파리의 몽마르뜨만큼 아름답지만 세계적 명소는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에서 국문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졸업생이 직업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니 한편으로 마음이 씁쓸해진다. 몽마르트에 가랑비가 내리고 추모비들이 비를 맞고 있다.
5월 14일, 오늘은 파리를 벗어나 남프랑스로 가는 날이다. 남프랑스까지의 거리는 차로 대략 7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중간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중간쯤의 도시라면 리옹인데 리옹보다는 포도나무 밭이 많은 마콩을 선택했다. 마콩에 도착하기에 앞서 본느라는 도시도 볼만하다 하여 들렀다 가기로 했다.
파리를 벗어나니 탁트인 벌판이 나온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 목장과 과수원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김제평야에서나 볼 수 있는 지평선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높이 솟은 산도 없다. 넓은 초원을 달리며 프랑스는 참 풍요로운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30km가 제한이다. 대부분 주행차선으로만 달리며 추월할 때만 추월차선으로 달린다. 계속적으로 추월차선을 달리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추월차선으로 들어갈때는 좌측신호등을 켜지만 추월차선에서 다시 주행차선으로 들어설때는 우측신호등을 켜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추월했던 차는 주행차선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의 방식대로 추월차선에서 주행차선으로 들어올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면 사고의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역시 고속도로 주행에서 소박한 재미는 휴게소에서의 먹거리와 진열된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일 것이다. 휴게소에서 이것저것을 사먹으며 사람들을 보니 동양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쪽을 향한다. 뭔가 고립된 것 같기도 하지만 외국에 온것을 그 속에서 실감할 수 있다.
휴게소에서 주유를 해야 하는데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이곳에서는 편의점에 가서 자신의 주유기 번호를 카운터에 얘기하고 계산을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돌아와서 주유기를 주유구에 넣고 기름을 넣으면 계산된 금액만큼 주입이 된다. 처음에는 이 방식을 몰라서 당황했다. 유럽에서는 모든 주유소가 셀프이다. 그리고 주유하는 방식도 주유소마다 다르다.
본느에 도착하니 마침 전통시장이 열리고 있다. 광장에 텐트를 치고 가지각색의 물건을 내놓고 팔고 있다. 각종 의류, 악세사리, 주방용품, 식품 등 없는게 없다. 소도시이다보니 이곳 역시 관광객은 없지만 각 마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식빵을 사기 위해 줄지어선 곳에 우리도 줄을 섰다. 빵이 매우 거칠고 맛없어 보였지만 저렴했다. 아마도 웰빙 음식이면서 저렴한 빵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 시장에서 모자와 옷도 구매했다. 기분좋은 쇼핑이었다.
본느에도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성당안으로 들어서니 엄숙한 분위기에 숙연해진다. 성당 옆 골목으로 들어서니 포도주 박물관이 있다. 포도즙 틀이 전시되어 있는데 즙틀에 포도를 쌓아놓고 위에서 무거운 통나무로 압축하는 방식이다. 역시 골목은 더없이 깨끗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까만 머리 동양인은 우리 밖에 없어서 신기한 듯 우리에게 말을 걸고 밝게 인사를 한다.
본느를 떠나 숙소가 있는 마콩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어 간다. 저녁은 이 조그만 마을에서 식사를 해야겠다. 샐러드와 햄버거, 스테이크가 양도 푸짐하면서 맛이 괜찮다. 영어를 곧잘하는 여종업원이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준다. 역시 이 식당에서도 자신들과 다른 모습의 우릴 보고 자주 웃어준다. 식사를 하고 마콩을 흐르는 손강에서 산책을 한다.
지방에서의 하룻밤은 고요하고 적막하지만 별들이 흐르는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음날, 여장을 챙겨서 포도주공장으로 간다. 손강을 따라 펼쳐진 초원은 더없이 푸르고 평화롭다. 한 이십여분 달리니 목적지다. 포도주 공장은 많은 관람객을 위해 포도주를 실어나르는 기차의 탱크로리를 전시하기도 하고 각종 포도주와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해놓았다. 대규모의 포도주 제조공장은 이곳이 포도산지임을 알 수 있었다.
포도주 공장을 뒤로하고 남프랑스로 달린다. 달리는 동안에 리옹 시내를 지난다. 공업도시 리옹은 크고 화려하다. 리옹을 지날무렵 한통의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방송출연을 하던 프랑스 청년이 딸에게 온다는 것이다. 여행중에 낯선 친구를 대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색다른 경험일수도 있겠다 싶어 오라고 했다.
요즈음은 SNS가 발달하여 보지 않고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만나지 않고도 상대방을 어느정도 아는 세상이 되었다. 딸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남프랑스로 간다고 하니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부모가 함께 있는데도 이 당돌한 녀석은 하나밖에 없는 내 딸에게 나타나겠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지만 이국땅까지 와서 호의를 가져주는 외국인의 제의를 무시할 수 없어 만나기로 했다.
엑상프로방스의 분수광장에서 분수를 보며 사진을 찍고 기다리다보니 그 친구가 나타났다. 손에 뭔가 들고 왔는데 선물이라면서 건네준 것은 소주였다. 한국에서 사온 것인데 아버지(바로나)가 좋아하실 것 같아 가져왔단다. 내가 요즘 술을 끊었다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 두었다. 혹시 여행중에 술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기로 했다.
그 친구를 따라 가장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양식은 잘 모르니까 좋은 음식점을 소개해준다는 것이다. 엑상프로방스의 토요일 점심시간은 식당들이 한시까지는 야외에 테이블을 내놓고 장사를 한다. 골목골목이 예술적이고 정감있게 꾸며져 있다. 구불구불 골목을 돌아가니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많은 식당가가 나타난다.
햇살 좋고 시야가 확트인 장소를 찾아서 앉았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고 나니 그 친구가 꼬깃꼬깃한 돈 10유로 두장을 준다. 왠 돈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먹은 것은 분담하겠단다. 기특하고 귀여운 녀석, "그 정도는 내가 살 수 있다. 좋은 식당 안내해준 보답이다"라면서 돈을 돌려주니 머쓱해한다. 그러면 자신이 엑상프로방스의 기념품을 사주겠다고 하며 상점가로 이끈다. 그리고 정확히 20유로 어치 선물을 사준다. 가만히 보니 요녀석,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구나 생각하고 헤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여러차례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줬다.
엑상프로방스의 아름다운 골목들과 광장을 뒤로하고 차는 깐느로 향한다. 깐느는 요즘 영화제가 한창이다. 그래서인지 행사가 열리는 해변길은 차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차들이 밀려도 지중해를 바라보며 바닷가에 정박중인 요트와 해변을 오가는 수영복 차림의 관광객들을 구경하다보니 차는 느리지만 그다지 지루하진 않다.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모델과 MC와 영화를 주업으로 하는 딸도 한껏 포즈를 취한다. ‘어떤 영화인보다도 우리 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이겠지. 바닷가에 잘 꾸며놓은 공원을 산책하며 해변으로 들어섰다. 파라솔과 벤치는 음식을 사먹으면 무료라고 한다. 아이스크림과 간단한 간식을 사먹으며 여유를 즐긴다. 선텐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알맞게 그을린 피부가 건강미가 넘쳐흐른다. 우리도 수영복을 입고 폼을 잡아보았다. 파도가 밀려오는 지중해에 사람들의 소리와 파도소리가 어우러져 즐거운 하모니를 이룬다.
숙소는 그라스에 잡았다. 그라스는 남프랑스의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칸느와 지중해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깐느에서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삼십여분을 달려 도착한 호텔은 시야가 확 트여 있다. 석양의 지중해를 바라보며 마을의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어느듯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달이 뜨고 별이 빛나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그라스의 밤이다.
새소리에 잠을 깨어 호텔을 나와 향수박물관을 찾았다. 프랑스 하면 향수, 향수하면 그라스다. 그라스는 향수 박물관이 한두군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곳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커보이고 주차하기 좋은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향수의 역사와 향수를 만드는 과정, 향수의 종류를 구경하다보니 프랑스가 왜 향수의 나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향수를 몇 개 사고 밖으로 나와 마을을 둘러본다. 계단이 무척 많은데도 불편해보이지 않고 오히려 정감있어 보인다. 마을 곳곳의 공원에는 지중해의 아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특히 아름드리 야자수가 자태를 뽐낸다.
니스로 가기 위해 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렀다. 그런데 파리에서 보던 디젤은 여기서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디젤은 없냐고 했더니 가졸이 디젤이라고 한다. 가졸은 가솔린과 발음이 비슷해서 가솔린, 즉 휘발유인줄만 알았는데 당황했다. 그래서 가졸을 넣으려고 하니 이번에는 카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마스터카드나 비자카드는 받질 않고 프랑스에서 발급한 카드만 받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결국 기름은 다른 곳에서 넣어야겠다.
향수의 도시 그라스를 떠나 니스로 가는 길은 지중해를 끼고 달리는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다. 가는 동안 바닷가의 아름다운 마을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여러번 차를 세워야만 했다. 니스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도 있지만 해안길도 있다. 지중해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해안길을 따라 달리는 것이 좋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낭떠러지, 그 사이로 난 길을 달리다보면 약간의 두려움도 있지만 해안선따라 생겨난 마을들, 그리고 절벽같은 곳에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감상할 수 있다.
니스에 도착해서 호텔에 차를 세워야 되는데 호텔안에 차세우기가 불편해서 좀 떨어진 도로변에 차를 세우기로 했다. 짐을 내리려고 하니 차를 타고 지나가던 여성들이 차를 거기다 오래 세워둘거냐고 한다. 그러면서 거기 오래 세우면 차를 견인해간다고 친절하게 얘기해준다. 매우 빠른 불어로 얘기하는데 내가 못알아 들으니까 "뿡뿡"소리를 내고 견인차가 차를 싣고 떠나는 모습을 흉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어색한지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녀들이 지나간 다음에 도로표지판을 보니 견인표시가 되어 있다. 차를 즉시 호텔로 들여놓고 생각하니 그녀들이 고맙기만 하다. 그녀들도 차를 견인해가는 것을 목격했거나 당한 경험이 있었나보다.
니스의 슈퍼에 들러 먹을 것을 사고 공항에서 압수당했던 가위를 샀다. 슈퍼는 항상 많은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만물상 같다. 없는 것 빼고는 다있다. 먹거리를 사서 니스해변에 도착하니 선텐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니스 해변은 깐느 해변과 달리 몽돌 해수욕장이다. 해변에서 진한 블루칼라의 바다를 감상하고 강렬한 지중해의 햇볕을 피부로 느끼며 거닐어본다. 니스 해변의 아열대 식물들을 보니 여기가 남쪽임을 실감할 수 있다.
니스 이곳저곳의 거리를 구경하다가 깐느의 밤거리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다시 차를 몰고 깐느로 달렸다. 석양을 바라보며 달려 도착한 깐느의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영화제가 열리는 메인부대에는 무대로 오르는 배우들이 등장할때마다 환호성이 터진다. 식당마다 손님들이 꽉 차있다. 왜 프랑스에서 다음 테러 예정지로 깐느를 염려하는지 알 수 있다. 경찰들은 차와 여행객들 속에서 경호활동과 테러예방을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바닷가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바닷가보다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좀더 저렴한 식당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딸이 한턱 쏘겠다면서 굳이 비싼 바닷가 식당에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아빠가 가격표를 보면 절대 이 음식을 못 먹을거라면서 자신이 지불할테니 걱정말고 먹자고 한다. 딸 돈이나 내돈이나 그게 그건데도 부담이 조금 덜어지지는 것은 왜일까? 못이기는 척 앉았는데 가격표 보니 셋이서 먹기에는 좀 비싸다. 그래도 해변을 보며 음식을 먹는 분위기에 젖어보기로 한다. 해물요리를 시켰는데 각종 해물을 넣은 탕과 구운 생선과 회를 가져온다.
해변 식당에서 바다를 감상하는데 특이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스타워즈, 타이타닉 등 영화속의 주인공들과 명장면을 특이한 방식으로 그려놓은 버스정류장 건물이다. 약간의 눈속임 형식의 조형물 같기도 하고 그림같기도 한 이 모습을 보니 프랑스인들의 예술성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서서히 배가 부른다. 소화도 시킬겸 시내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너무 많이 돌아다녔는지 이번에는 주차장을 잃어버렸다. 몇번을 돌고돌아 겨우 주차장을 찾아 나오는데 밤이 어둑하여 차선이 잘 보이질 않는다. 버스전용차선인지도 모르고 달렸더니 경찰관 세명이 어둠속에서 나와 차를 멈추게 한다. 렌트카 여행중에 경찰은 처음이다.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경찰들은 영어를 할 줄 아냐면서 영어로 그곳은 버스만 다니는 곳이라고 옆차선으로 안내한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빠져나왔지만 CCTV에 찍히지 않았는지 내심 걱정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범칙금 고지서가 오질 않은 것을 보면 축제기간이라 봐준 것 같기도 하다. 그곳의 범칙금은 우리나라보다 많기 때문에 걸리면 부담이 된다. 깐느를 빠져나오는 길은 복잡하여 내비를 잘못 읽고 또 약간 해매기도 했다. 가급적이면 복잡한 시내는 야간운행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길이 두세갈래가 동시에 나타나면 어두움속에서는 잘못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많이 어두어졌다. 늦은 밤에 호텔에서 차를 세우려고 하면 별도로 안내하시는 분이 주차장문을 열어줘야 한다. 안내하시는 분은 무척 유머러스하고 친절하다. 얼굴을 보아하니 술도 잘 드실 것 같다. 엑상프로방스에서 프랑스 청년이 준 소주를 건네며 코리아 와인이라니까 너무 고마워한다. 버리지 않고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서 밤새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던거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니 냉장고에 온도 조절기를 너무 강하게 해놓아 생긴 일이었다. 숙소에서는 사소한 문제라도 발견되면 안내데스크에 전화해서 조치를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랬더라면 좀더 편안한 숙면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태까지 프랑스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면 오늘은 다른 나라로 가는 날이다. 모나코왕국, 니스에서 멀지 않은 거리, 인구는 4만도 채 되지 않는 나라, 세계에서 195번째로 큰(?)나라다. 세금을 걷지 않아 세계의 부호들이 절세를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니스에서는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30분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해안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어느덧 모나코 시내에 와 있다.
미리 구글로 검색한 곳은 세계해양박물관이었다. 그런데 모나코는 작은 땅이라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심지어는 해안가에도 빌딩을 세워두었는데 내비는 바닷가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방황한다. 결국 해양박물관을 지나쳐 버렸고 현 위치를 알수도 없어서 일단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하기로 했다. 주차를 하고 살펴보니 그곳은 유명한 몬테까를로였다.
주차장 바로 옆은 일본식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 조그만 나라에 비싼 땅값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원은 꽤 넓게 잘 조성되어 있다. 멀리 지중해까지 와서 일본 정원을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일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은 정원인데 이곳까지 와서 보게 될 줄이야. 이것도 일종의 행운이다. 역시 일본 본토에서 보았던 정원과 별다른 차이 없이 아기자기하고 멋들어지게 잘 꾸며져 있다. 산, 호수, 바위, 나무를 압축시켜놓고 거기에 도랑과, 정자, 다리, 화초 이런 것들을 잘 배치해놓은 것이 무척 아름답다.
일본정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찰스 교회가 있다. 우리가 아침 일찍 도착해서인지, 아니면 해양박물관이나 모나코 궁전으로 몰려가서인지 관람객이 우리밖에 없다. 그곳을 관리하는 점잖게 생긴 분들이 우릴 맞이한다. 건물 입구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아침부터 찾아온 동양인이 특이해서인지 우리를 매우 따뜻하게 이곳저곳으로 안내해주신다.
찰스교회에서 바라보니 멀리 오페라궁과 카지노 건물이 보인다. 모나코에 볼거리가 많은데 일일이 다 볼 수 없어 곧바로 해양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구글로 검색해보니 해양박물관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해안가 부두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될 것 같아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요트가 즐비한 항구를 지나며 요트를 구경한다. 요트들은 부의 상징처럼 모나코 해변에 가득차 있다. 배를 닦고 광을 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역시 좋은 물건은 관리하기도 힘들 것 같다.
해안가에는 상점가 건물이 밀집되어 있고 맛있는 요리를 파는 곳이 많다.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를 사서 인근공원에서 먹는데 꿀맛이다. 이렇게 먹으면서 슬슬 걸어가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그런데 찰스교회에서 볼때는 가까워보이더니 정작 중간쯤 걸어와서 보니 아직도 많이 남은 것 같고 다리가 살짝 힘들어진다. 해양박물관과 모나코궁전은 바닷가의 전망좋은 언덕위에 위치해 있다. 그 곳까지는 1키로미터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산을 즐겨찾는 나로서는 이쯤이야 하지만 아내와 딸은 힘들어한다.
카레이스 경기장을 지나 쉬엄쉬엄 걷다보니 드디어 해양박물관이다. 바닷가에 지어진 세계해양박물관은 3개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각종 해양생물을 수족관을 통해 볼 수 있고 2층에는 어류의 표본들, 3층에는 각종 유물과 해양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엄청나게 큰 고래뼈가 전시장 공중에 매달려 있다. 삼가 고어의 명복을 빌어야 겠다.
해양박물관을 나와 바다 산책길을 조금 걷다보면 모나코 궁전이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해양박물관에서 이곳의 표를 함께 끊었으면 할인이 되었을텐데 그걸 모르고 모나코 궁전의 표를 별도로 구입하니 약간의 추가요금이 발생했다. 궁전안을 들어가 보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서는 각 나라의 언어로 안내해주는 헤드폰을 준다. 일본과 중국어 헤드폰은 있는데 한국어 헤드폰은 없다. 아마도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아서인가보다. 사람들은 헤드폰으로 설명을 들으며 궁전안의 시설과 인테리어 소품을 관람한다. 사실 헤드폰을 쓰고 안내를 받아야 할 만큼 신비한 것은 없다. 일일이 해설 들으며 관람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는 왕실의 침대, 응접실, 쇼파, 식당테이블, 책상, 벽화 등 왕실에서 쓰는 물품들을 구경했다. 나름대로 그곳에 진열된 물품들은 왕실에서 쓰던 물건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연을 안고 있을 것이다.
밖으로 나와 모나코 궁전에서 멀지 않은 모나코 대성당으로 들어간다. 역시 엄숙하고 경건함이 넘친다. 유럽에서는 어딜가나 그 도시의 규모에 맞는 대성당이 있다. 그곳에는 그레이스 켈리의 무덤이 있다는데 나는 정작 그레이스 켈리가 누군지 모른다. 귀국해서 알아보니 거의 모나코의 전설같은 여배우였단다. 그가 왕비가 되고 그의 생활이 일일히 전 세계에 소개되면서 모나코가 관광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단다.
주차장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투어버스를 타려했는데 버스비가 너무 비싸다. 이곳은 택시나 일반 버스는 없고 모나코에서 운영하는 투어버스가 독점적으로 운행한다. 그래서 순환버스로 관광지마다 들르는 투어버스는 세정거장만 가면 되는데도 몇만원씩 받는 것이다. 비싸다고 했더니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단다. 해안을 감상하며 내려오니 버스정류장이다. 시내버스로 셋이서 만원도 안되는데 하마터면 6만원을 지불할 뻔 했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들어가는 문을 잊어버렸다. 내가 문을 찾아 계단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문이 닫히고 열리지 않아 안에서 갇혀버렸다. 밖에서만 열리는 철문인데 아무리 두들겨도 딸과 아내는 응답이 없다. 다행이 딸이 와서 열어줬다. 왜 문을 안열어줬냐고 했더니 들리지 않더란다. 하마터면 이산가족 될 뻔했다. 설상가상으로 차안에 둔 주차권이 보이질 않는다. 주차권이 없으면 나갈 수가 없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허둥지둥 주차장에 있는 비상 호출벨을 누르니 무슨일이냐고 한다. 주차티켓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현위치와 차량번호를 불러달라고 한다. 불러주고 차로 돌아와보니 주차권은 허무하게도 내가 평소에 넣어두는 장소에 있었다. 당황하면 더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제 모나코를 뒤로 하고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향한다. 5일째다. 밀라노로 가는 길은 해변의 도시 제노아를 거쳐 알렉산드리아를 지나간다. 제노아까지는 바닷길을 한시간 반을 달리고 제노아에서 한시간 반을 북쪽으로 달리면 밀라노다.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검문소는 없다. 쭉 뻗은 고속도로위로 수많은 차들이 줄지어 달린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달리다 보면 가끔 졸릴때도 있지만 변화무쌍한 주변 풍경을 보면 졸수도 없다. 지중해를 끼고 높은 언덕마다 서있는 집들이 평화롭다. 경사가 급한 고지대에도 아름다운 마을이 형성되는 것은 사철 눈이 쌓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대초원을 지나기도 하고 지중해 해변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제노아에 도착했다. 항구도시 제노아에서 좀더 머무르려다가 그동안 우리가 바닷가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곧장 밀라노로 가기로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랑 다른 점이 있다. 이곳의 휴게소는 4차선 왕복도로 위로 다리를 놓고 그 한가운데에 상점과 식당이 있어서 왕복하는 차들이 모두 한곳에서 쉬어간다는 점이 특이하다.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밀라노다. 시내에 들어서니 차들이 굉장이 빠르게 달린다. 내가 가야되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머뭇거리고 있으면 뒷차가 클랙션을 여지없이 울린다. 약간 다혈질인 이탈리아인의 기질을 보는 것 같다. 밀라노는 차선과 철로가 같이 있는 곳이 많아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도시전체적으로는 그다지 깨끗해보이지는 않는다. 이곳이 공업도시이기 때문에 그럴거라는 내 선입견이 작용한 탓도 있으리라. 밀라노는 세계적인 화학, 섬유 공업도시이다.
우리 호텔은 저렴한 편이었는데 방이 꽤 넓다. 2층 우리 호텔방 바로 앞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빵, 계란, 우유, 과자, 바나나 같은 것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무료로 먹을 수 있었다. 세끼를 무료로 먹는 그런 호텔을 앞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가성비가 높은 호텔이었다. 호텔방의 콘센트는 우리나라와 비숫하지만 구멍의 크기가 작아 들어가질 않는다. 다행이 유럽을 다녀온 팀 직원이 준 만능콘센트를 꽂으니 딱 맞았다. 핸드폰 충전을 하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날 아침 일찌기 두오모성당으로 향한다. 두오모 성당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크고 고딕양식중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 하늘을 찌를듯한 높은 첨탑과 조각상들을 보노라면 인간의 무한대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성당은 500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지금도 한켠에서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성당앞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건물에 비하면 왜소해보이기까지 한다. 어제 호텔에 가면서 느꼈던 칙칙한 밀라노에 대한 이미지는 이 건물을 보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두오모성당에서 쇼핑가를 지나 스포르체스코 성으로 향한다. 쇼핑가에서는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의류매장들을 만나볼 수 있다. 명품 의류에서부터 우리나라 동대문시장에서 볼 수 있는 옷까지 다양하게 잘 진열되어 있다. 패션의 도시라서 그런지 시민들은 정장차림으로 다니며 옷을 대충 입지는 않는다. 쇼핑가를 지나면 스포르체스코성이다. 14세기에는 궁전으로 지었으나 15세기에 성으로 개축했다. 성안에는 미술관, 박물관등이 있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성을 지나면 아름다운 공원이 있어 시민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성을 나와 갤러리와 극장을 구경하고 식당에 앉아 이탈리아 피자를 먹어본다. 우리가 그동안 먹었던 피자는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시켜서 그런지 이곳의 피자는 우리나라 피자보다 약간 딱딱한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피자보다 파전을 더 좋아하는 세대가 피자맛을 논해서 무엇하랴.
딸이 꼭 찾아가보고 싶은 매점이 있다고 해서 어렵게 찾아갔다. 차를 세워두고 거의 한시간을 허비하며 겨우겨우 찾아갔다.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온 이유는 이곳이 인터넷에서 보니 저렴해서였다고 한다. 무엇을 사려고 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여기가 더 비싸다고 하면서 그냥 가자고 한다. 인터넷 정보가 전부 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차를 돌려 스위스로 달린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뒤로 하고 스위스를 향해 달려간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은 검문소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여권을 보자고 하지는 않는다. 스위스는 유로 가입국이 아니며 화폐도 유로를 쓰지 않고 프랑화를 사용한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알프스의 산동네, 해발 1,000미터의 그린델발트다.
밀라노에서 가는 길은 두갈래인데 한길은 고속도로지만 알프스산을 빙 둘러가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지름길이지만 구불구불 난 산길을 따라 넘어가는 길이다. 두곳 다 시간은 세시간 정도로 비슷하게 걸린다. 올해 12월이면 철로 터널이 57km가 뚫리게 되는데 세계 최장의 터널이고 1시간 정도 단축된다고 한다.
나는 내심 알프스를 좀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산을 넘어가고 싶었다. 다행이 내비는 산을 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알프스 산길을 달려가는데 왠일인지 차들이 별로 없다. 너무 아름답고 조용한 알프스 산을 우리만 넘어 간다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다. 대신 양떼들이 우릴 반겨준다. 우리차가 가까이 가도 도망 가질 않고 "음메, 음메"하면서 오히려 다가온다. 간간히 족히 50여미터나 되는 폭포수들로 장관이 펼쳐진다. 5월이라도 산정상은 눈이 쌓여 있고 눈이 녹으면서 생기는 폭포인 것이다. 목장의 양떼와 소떼, 그리고 푸른 산허리에 예쁘게 지어진 집들이 그림의 한 장면같다.
중턱쯤 올랐을때 차가 몇대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 차를 세우고 산정상으로 걸어 올라가는 지 쌓인 눈위로 발자국들이 나 있다. 아름다운 설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조금 더 올라가니 거대한 철 바리게이트가 길을 막는다. 진입불가 표시가 되어 있다. 아하, 이제야 알 것 같다. 차들이 왜 보이지 않았는가를. 아직 높은 곳에는 눈이 덜녹아 차량진입이 안되는 것이다. 아마 한여름에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이 멋진 풍경들을 본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다시 돌아내려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알프스 산을 통과하는 긴 터널을 몇개 지나고 나니 멋진 루체른 호수가 나온다. 루체른 호수는 내일 묵을 숙소가 있는 곳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호수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도 나타난다. TV에도 자주 소개되는 곳 같은데 멋진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드디어 인터라켄 마을을 지나 숙소인 그린델발트로 향한다. 인터라켄에서 긴 계곡을 따라 가다가 산으로 조금 오르면 그린델발트다.
그린델발트는 앞을 바라보면 거대한 알프스 산의 빙벽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고 끝을 모르는 폭포수가 떨어지기도 하고 내려다보면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곳에 스위스 특유의 예쁜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알프스 산의 끝동네다. 더 이상 차로는 올라갈 길이 없다. 스위스 정부는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터라켄에서 부터 올라오는 산악열차를 운행한다. 산악열차는 이곳을 경유하여 해발 3,454m의 융프라우까지 올라간다.
우리는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4인 가족실이 없어서 다인실을 예약했었다. 다인실이 저렴하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한방에서 자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족 세명이 왔다니까 추가요금 없이 가족방을 배정해주셨다. 이것도 일종의 행운이다. 여장을 풀고 나니 젊은 청년 둘이 앞방에서 나온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어디서 왔냐고 했더니 미국에서 왔단다. 밖으로 나와보니 맑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내린다. 이런 신선한 공기, 밝은 별을 언제 보았던가.
동네를 두루 구경하며 사람들이 많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국어로 만들어 놓은 메뉴표도 있다. 스위스 전통요리 퐁듀를 시켰다. 딸은 홍대거리에서 자주 먹어봤다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현지에서 만드는 고유음식의 맛을 먹어보고 싶다면서 딸이 추천했다. 퐁듀도 여러 가지인데 고기퐁듀는 생고기를 막대기에 꽂아 끓는 기름에 넣어 3분간 담그면 익는다. 그러면 그걸 소스에 찍어먹는 것이다. 보통 소스는 한두종류인데 우리에게 주는 소스는 6가지이다. 짠맛, 매운맛, 겨자맛, 치즈맛 등 여러가지 소스에 자기 입맛대로 골라 찍어먹으라는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 기름에 튀겨먹는다는게 익숙하지가 않아 가격대비 만족도는 떨어진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안하던 짓 하면 고생이라고. 갑자기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김치를 먹으며 당황해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덩치큰 식당 주인이 스위스 전통 복장을 하고 길이 3미터는 돼 보이는 거대한 나팔을 불어준다. 이곳 알프스의 목동들이 부는 알펜호른이라는 악기인데 손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다.
숙소 식당에서 바깥풍경을 구경하며 아침을 먹고나서 융프라우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딸과 아내는 산 정상이 춥다고 가지 말자고도 하였으나 나는 끝까지 가야한다고 주장하여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산으로 오르는 길은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산아래 그림같은 마을들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때때로 목장과 한가로이 노니는 소떼들, 아름답게 지어진 집에서 올라오는 연기들, 대자연속에 더불어 사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기차타지 말자고 하던 딸이 "어른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더니 아빠말 듣길 잘했다"면서 좋아한다.
중간에 한번 기차를 갈아타는 클라이네샤이텍이라는 역이 있다. 너무 높이 올라와서인지 5월 중순인데 눈이 내린다. 단체 여행객들이 갈아타는 기차를 놓칠까봐 부지런히 움직인다. 우린 다음 열차를 타기로 하고 역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기념품을 파는 매장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하고 쌓인 눈을 뭉쳐 던져보기도 한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집들은 눈에 덮여 있다. 기차는 다시 융프라우를 향해 달려 올라간다.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있다. 철도는 16년에 걸쳐 건설되었는데 정상으로 가면 터널을 달리게 된다.
종점에서 내리면 온통 얼음의 세상이다. 일명 얼음궁전이라고도 한다. 얼음바닥이 마치 유리를 깔아놓은 것처럼 투명하다. 약간 미끄러우니 살살 걸어야 한다. 벽은 온통 얼음 조각들의 세상이다. 동물을 조각해 놓은 것도 있고 꽃을 얼음속에 넣어놓고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으로 멋을 낸 곳도 있고 사람 형태를 빚어 놓은 곳도 있다. 알프스 풍경을 커다란 둥근 유리에 담아 한눈에 알프스 마을을 볼 수 있게도 하는 등 얼음동굴속에서 테마별로 구경거리를 잘 만들어놓았다. 이곳을 모두 구경하고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정상에 오르니 온천지가 하얗다.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 있는데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앞을 볼 수도 없다. 이미 우리는 너무 높은 곳에 올라온 것이다.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약간 숨쉬기가 어렵다. 아하, 이것이 고산지대에서 느끼는 압력에 의한 호흡곤란이구나. 호흡곤란이든 눈보라든 우리는 컵라면을 먹으러 매점으로 갔다. 한개에 만원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비싸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셋이서 흰눈을 감상하며 먹는 컵라면의 맛이란 어느맛과 비교할 수 없다.
컵라면을 먹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렇게 천천히 다니시면 컵라면도 못먹는 수가 있어요. 벌써 구경하고 내려간 사람도 있어요" 어디선가 귀에 익은 우리말이 들린다. 가이드가 늦게 다녀서 뒤떨어진 일행을 핀잔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이드의 얼굴을 아무 말도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쳐다보는 그 가족의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유럽에 와서 처음 듣는 우리말인데 하필이면 빨리빨리 안쫓아 다닌다고 여행객을 나무라는 소리라니. 정말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일행과 떨어지기도 하고 어느 한곳에 정신이 팔려 늦기도 하는 곳이 이곳 융프라우다.
기념품을 파는 곳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고 쵸콜렛 박물관에 갔다. 어떻게 산 정상에 이런 박물관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쵸콜렛 제조과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가지각색의 쵸콜렛도 판매하고 있다. 그냥 시식하는 코너도 있다.
융프라우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아쉽다. 그린델발트를 떠나 루체른으로 가는 길은 평지를 한참 달리기도 하고 높은 고개를 넘어가기도 하면서 두시간을 달린다. 평지는 평지대로 초원이 아름답고 고개로 올라가면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감상해서 좋다. 어디를 가나 경이롭고 풍경 자체가 모두 명장면이다. 어제는 산에서 잠을 잤으니 오늘은 호수의 도시 루체른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주변의 마을을 둘러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호수를 잘 볼 수 있는 호프교회에 차를 세우고 교회를 둘러본다. 호수위에 나무로 만든 다리중에 유럽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다리 카펠교를 보고 호수를 바라보니 백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산 정상에 눈이 쌓여 있다. 신들의 여왕이라는 1,797미터의 리기산이다. 리기산도 융프라우처럼 아름다운 산이라는데 다음에는 꼭 한번 올라가고 싶다. 만약 융프라우를 안갔다면 리기산을 갔을 것이다.
루체른의 아름다운 호수를 눈에 담고 스위스의 수도 취리히로 달린다. 취리히는 한 나라의 수도이지만 중심부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고작해야 시계탑이 있는 피터교회나 쯔빙글리가 죽기전까지 설교했다는 그로뮌스터 교회정도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차를 구시가지 도로에 세웠는데 자세히 보니까 노상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면 길가에 서있는 자판기에서 주차티켓을 사야 한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지만 스스로 주차티켓을 사고 주차하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내를 흐르는 리마트 강은 너무 깨끗하고 강을 따라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역앞의 반호프 거리는 식당이 많고 의류판매점 등 각종 쇼핑점이 즐비하다. 취리히의 아름다운 거리와 고풍스런 집들은 소박하면서도 정겹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스위스의 수도를 뒤로하고 우리는 독일로 떠난다. 국경선을 통과하면서 부터 갑자기 내비에서 제한속도가 사라진다. 아하, 이곳이 말로만 듣던 아우토반이구나.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다. 나도 속도를 높여본다. 겨우 172km, 겁이나서 더이상 달릴수 없다. 그런데 내차를 추월하는 차들은 보통 200km 이상은 달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차들은 130km 이내로 주행차선을 달리고 있다.
차는 어느듯 슈트트가르트에 도착했다. 딸이 피부가 가렵다고 해서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내비가 안내하는 곳으로 갔더니 그곳은 피부과 전문점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다른 주소를 알려준다. 그래서 주소대로 찾아갔더니 문이 닫혀 있다. 다시 처음에 주소를 적어줬던 병원으로 오니 거기도 문이 닫혀 있다. 자세히보니 금요일인데도 근무시간이 한시면 종료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약국에 들러 약을 사서 바르기로 했다.
슈트트가르트에서 조금더 가면 우리가 하룻밤 묵을 집이다. 지금까지 딱딱한 호텔에서 잤다면 오늘은 구수한 민박집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한번 가보고 싶었다. 우리말도 해보고 싶었고 뭔가 편할 것 같은 느낌이다. 도착해보니 구수하게 생기신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우릴 맞는데 영락없는 한국 시골아저씨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기에 고향이 어디냐고 했더니 화순이라 한다. 나도 고향이 화순옆의 곡성이라고 했더니 반가워하신다. 그분은 15년전에 독일로 들어와 고생을 많이 했고 고향에도 자주 못가본다 한다. 독일에는 한국사람이 많이 있는데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귀국하고 싶어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못가는 사람도 많다고도 하셨다. 그러면서 호텔에서 가까운 산책코스를 알려주셨다.
호텔 주변의 독일마을을 구경하며 걷다보니 라인강이 흐르고 있다. 강변에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산 호수공원처럼 아름답게 꾸며놓은 것을 보면 독일은 공원이 발달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공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악기를 연주하다말고 "니하오"한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말로 "우리는 중국사람이 아니야, 안녕하세요 해야지" 그랬더니 못알아듣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강을 건너 가니 아담한 마을이 나오고 광장옆에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대부분 음료수 한잔 시켜놓고 오랫동안 광장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숙소에 돌아와서 “독일 사람들은 참 실속이 있는 것 같다”고 민박집 주인에게 말했더니 비싼 음식을 사먹을 여유가 없어서 그렇단다. 어디가나 경제가 어렵구나. 광장 한켠에는 스넥코너가 있었다. 소세지, 핫도그, 햄버거,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인데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 소도시라 동양사람은 처음 보는지 독일말로 뭐라고 지껄이면서 낄낄거리고 웃는다. 우리도 그 사람들을 보고 그냥 우리말로 "미쳤나보다" 라고 하면서 맘껏 웃어주었다. 말이 안통해서 이렇게 웃을 수 있다니... 진짜 웃기네.
저녁이 되니 딸이 피부가 가려워서 못참겠다고 한다. 민박집 주인이 가르쳐준대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급하니 주사를 놔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얼굴이 벌개지면서 한국에서는 주사를 놔주는지는 몰라도 독일에서는 안된다면서 놔주질 않는다. 이것은 피부알러지여서 3주정도 걸려야 낫는단다. 환자는 힘들어하는데 응급실에서 약도 주질 않고 처방전만 적어주신다. 항생제를 함부로 쓰지 않는 독일 의사들의 고지식함을 알겠다. 내일 아침 8시쯤에 문을 여니 약국을 찾아가보라는 것이다. 그 약국도 근처 약국이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다. 아침 일찌기 약국을 찾아가서 약을 사서 발랐는데 가려움은 조금 가신 것 같다.
아침을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민박집 아저씨와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학문과 사상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로 향한다. 구글맵이 지정한 하이델베르크 대학근처에 왔는데 대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이곳 전체가 다 대학이란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우리나라처럼 울타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시내 안에 여러 개의 건물이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게 특징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건물이 도서관 건물인데 들어가보니 학생들이 조용히 공부하고 있고 빈좌석이 없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좀더 산쪽으로 올라가면 500년된 오래된 성이 나온다. 성루로 올라가는데 젊은 청년이 한국사람처럼 보여 한국에서 왔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구경을 하는데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참 좋은 친구다. 우리도 가져갔던 과일이랑 간식을 줬다. 그는 갑자기 독일이 보고 싶어서 무작정 독일가는 비행기를 타고 왔단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성위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은 너무 커서 다 돌아다니려면 족히 두시간 이상은 봐야 할 것 같다. 30년 전쟁을 겪으며 허물어진 성루가 있는데 오히려 허물어진 성이 이곳이 오래된 성임을 말해준다. 성을 구경하고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길은 고목이 우거진 나무숲으로 산책하기 좋다.
하이델베르크 중심을 흐르는 네카어 강 건너편으로 산중턱에 가로로 길게 칸트 헤켈등 철학자들이 산책을 했다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 헤겔에게 좋은 가족이 뭐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내가 대신 대답해준다. 이렇게 사이좋게 해외여행을 다니면 좋은 가족이 되는 거라고.
중심가는 하우프트 거리인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광장에는 시장이 열리는데 먹음직스런 과일과 채소도 있고 가지각색의 먹거리와 생필품도 팔고 있다. 도로변 식당에서는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있고 간단하게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네는 크지 않지만 어디서 왔는지 매우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철학도 두고 전쟁도 버리고 흘러가는 네카어 강물처럼 우리는 룩셈부르크로 간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EU 사무국이 있고 유럽재판소와 유럽투자은행 등 은행들이 많다. 1인당 국민소득은 10만달러로 세계 1위 국가지만 국토는 크지 않고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주인이 자주 바뀌기도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살길을 찾은 것이 베네룩스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동맹, 나토 가입, EU 가입을 했다.
우리차가 시내로 접어들었을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들이 있어 달려갔더니 은행들이었다. 모두가 크고 화려하게 지어서 멀리서 보면 관광지 같다. 은행쪽에서 다시 건너편을 바라보니 거기에 첨탑이 있는 건물들이 있어 관광지임을 말해준다. 그쪽으로 가다가 관광객들이 몰려있는 곳에 가보니 오래된 성이 있다. 그런데 성아래 절벽이 있다. 내려다보니 희한하게도 시가지가 보인다. 약 40여미터 낭떠러지 아래 넓은 계곡의 둔치 같은 곳에 잘 발달된 시가지가 있는 것이다. 처음보는 광경이다. 대부분이 바람이 잘통하고 습하지 않은 산 언덕이나 평지에 집을 짓고 사는데 이곳은 그 반대로 평지 아래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잦은 전쟁으로 인해 오히려 아래쪽에 사는 것이 전쟁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0년된 아치형으로 만든 아돌프 다리를 보고 돌아서면 기욤광장인데 거기에 말을 탄 기욤2세 동상이 있다. 프랑스로부터 자치권과 독립권을 준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무대에서는 록음악을 연주하는 가수들이 한바탕 신명나게 악기 연주와 춤을 추고 있다. 구경온 시민들은 같이 환호를 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다. 축제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었다. 왠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더 맛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해있는데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우리가 서로 한국말로 웃으며 얘기하고 있으니까 룩셈부르크 청년 두명이 다가와 말을 건다. 한명은 백인이고 한명은 아시안계다. 백인청년은 룩셈부르크인이지만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2년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다녀왔다고 한다. 우리말을 썩 잘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다. 반면에 함께 온 친구는 한국사람 같아 보이는데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대신 영어는 능숙하게 잘한다. 왜그러냐고 했더니 한국에서 룩셈부르크로 입양와서 그렇단다. 룩셈부르크인은 한국어를 잘하는데 정작 한국인은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두 청년을 보며 아이러니를 느낀다.
광장에서 조금 나가면 역시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데 주요 도시마다 노트르담이 있어 사전을 찾아보니 프랑스어로 성모마리아의 존칭어라고 한다. 이제야 도시마다 노트르담이 왜 있는지를 알겠다.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였던 것이다.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저택을 둘러보고 여기저기 쇼핑을 하다보니 화장실에 갈일이 생겼다. 이곳저곳 찾아다니다보니 공중화장실이 광장 지하주차장에 있었다. 어렵게 찾아간 화장실은 그러나 문을 닫았다. 자세히 보니 오후 6시에는 문을 닫는단다. 별로 시설도 깨끗해보이지 않는데 문까지 일찍 닫는다. 화장실에서의 각종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유럽 각국을 다녀봤지만 공중화장실은 역시 한국이 최고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는 수 없이 레스토랑에서 커피라도 시켜먹고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자리를 잡고 화장실을 갈 사람은 가고 나는 메뉴를 찬찬히 훑어본다. 커피와 쥬스를 주문하니 저녁에는 식사외에는 안된다고 한다. 화장실 이용댓가로 커피라도 팔아주려고 한건데 오히려 잘됐다.
숙소를 찾아가는데 도착한 장소에 호텔의 앞이름은 같은데 뒷 이름은 레스토랑 이름이 적혀있다. 처음부터 우리가 내비에 잘못 입력해서 생긴일 같아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전화하려고 해도 한국은 한밤중이고 예약센터 전화도 되질 않는다. 다시 그 레스토랑에 가서 호텔이 맞냐고 했더니 맞다고 한다. 진작 물어봤으면 될 일을 지레짐작하고 물어보지 않아 맘고생만 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와 시내를 산책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아침이 되니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린다. 우리는 프랑스로 가는길에 벨기에 소도시 두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역시 벨기에로 가는 국경은 통제없이 자유롭게 지날 수 있다. 아를롱의 일요일 아침은 너무 조용하다. 역시 동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웅장한 성당이다. 일요일이라 성당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성당앞에 돌을 깎아 의자를 만들어놓고 그 앞 공원에는 튜울립이 가지각색으로 활짝 피어있다. 예전에 네덜란드의 튜울립 투기가 떠오른다. 벨기에도 네덜란드 옆이어서 튜울립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역시 소도시이긴 하지만 광장이 있고 분수가 있다. 유럽은 분수를 좋아하고 광장을 사랑하는 것을 이 조그만 소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아를롱을 떠나 바흐똥으로 향한다. 도로옆에 이름모를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유럽은 참 동상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으면 한줌 재로 변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하는 후세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과연 나는 죽으면 이름석자라도 기억해줄 사람이 있을까.
도로옆에 큰 슈퍼가 있다. 가까운 곳에 구멍가게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와서 쇼핑을 한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먹거리를 사기로 했다. 렌트카 여행의 즐거움은 차에 먹을 것을 싣고 다니며 눈치안보고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벨기에서는 와플이 유명하다. 와플의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와플을 먹으며 벨기에에 온것을 실감한다. 신선한 우유와 과일도 여러종류를 샀다. 이제 차안에서 먹을 일만 남았다.
차는 벨기에를 지나 파리로 달린다. 파리의 아울렛 “라발레 빌리지”를 들러보기로 했다. 원래 기차를 타면 파리에서 40분정도 가야되는 거리인데 우리는 가는 길이니까 들르기로 했다. 라발레빌리지는 규모가 너무커서 차를 세워놓고 돌아오는 길을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 셋이서 쇼핑하다가 몇번 서로를 잃어버려 찾아 헤매기도 했다. 비슷한 쇼핑골목이 너무 많고 사람도 너무 많은데다가 아울렛 매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딸이 몇번을 사려고 망설이는 신발이 있었다. 과감하게 한켤레를 사줬더니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뭘 사줬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두 명품이라 비싸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우리 두사람은 아이쇼핑으로 만족해야겠다.
파리 몽마르뜨의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파리의 화려한 밤을 보기 위해 호텔에서 콜택시를 불렀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있다. 에펠탑의 야경을 보니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세느강 유람선에서 근사하게 저녁을 시켜먹고 에펠탑을 감상한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에펠탑과 세느강과 개선문과 상델리제 거리와 콩코드광장을 확인하듯 지나며 인사를 한다. 아듀 !! 파리 !!
5월 23일 아침 공항으로 향한다. 오후 두시 비행기인데 렌트카 기름을 넣어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출근차들과 엉켜서 길이 막힌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으려는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다음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 주유소에 가서 비자카드를 넣으니 핀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 아뿔사 네자릿수의 비밀번호는 기억하는데 여섯자리수의 이 핀번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니 결재가 될리가 없다. 시간은 자꾸 가고 뒤에서 차는 빵빵거려 그냥 기름을 넣지 않기로 했다. 기름이 약간 덜찬 상태지만 그냥 반납하기로 하였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세시간전이었다. 그런데 렌트카 반납위치가 처음에 빌린장소하고는 다르다. 차를 빌려주면서 반납위치를 알려줬을텐데 그걸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 우선 3층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세워놓고 렌터카 사무실에 가서 어디에 세워야 하냐고 했더니 4층으로 가란다. 3층에서 나와서 4층으로 들어서는데 주차티켓을 넣고 비자카드를 넣으니 결재가 되질 않는다. 또 뒤에서 차들이 빵빵거린다. 이정도면 국제적인 망신이다. 조금뒤 관리소에서 관리인이 나와 차단기를 올려준다. 아마 렌트카는 무료로 출입할 수 있는 것을 내가 급해서 카드로 결재하려고 하다보니 기계가 오작동이 된 모양이다. 차를 정해진 장소에 주차하고 키를 반납하니 두시간 전이다. 하루뒤에 한국에 도착하니 기름값 30유로가 결재된다. 사실 15유로만 더 넣으면 되는데 아마도 넣는데 필요한 수고비를 추가한 것 같다.
파리 드골공항은 역시 복잡하다. 여러번 오르락내리락하고 인화물질 검색하고 소지품 검사하고 짐 붙이고 하다보니 역시 30분맊에 남지 않았다. 탑승게이트를 가려면 또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쇼핑은 비행기 안에서 하기로 하고 일단 비행기 안으로 몸을 실었다. 아, 살았다. 난생 처음 해보는 유럽에서의 렌트카 여행, 처음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인수받을 때 너무 생소한 환경과 낯선 언어로 과연 우리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를 걱정했는데 우리가 무사히 귀국 비행기를 탄 것이다.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영국이 EU탈퇴 투표를 하고 "도데체 우리가 뭔짓을 한거지?" 한 것처럼 렌트카 여행을 한답시고 파리에 도착했을때 느끼는 기분은 바로 그것이었다. 도착해서의 기분은 기쁨보다 혼란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서울을 간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긴장이 풀린다.
돌아보면 정글여행이었다. 영어 실력이 썩 좋지도 않은 내가 렌트카 여행하는 과정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긴장과 혼돈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음에는 더 편하게 렌트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부딪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게 없다는 확신을 내게 가져다 준 렌트카 여행,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동화같은 알프스의 마을들과 질주본능을 자극하는 독일의 아우토반, 파리의 낭만적인 거리풍경, 밀라노의 멋스러운 패션들, 남프랑스의 지중해와 요트들, 룩셈부르크의 축제와 벨기에 어느 소도시의 은은한 교회종소리, 그리고 가는 곳곳마다 만났던 다정한 사람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돌이켜보면 13일간의 여정은 인생여정의 축소판이었다. 얘기치 못한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났지만 가족의 힘으로 잘 극복하고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 이 아름다운 추억과 경험을 삶속에서 어떻게 재현해내야 할지 하는 고민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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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홈피가 허전해서 썰렁한 글, 요즘있었던 일 올립니다.
직장내 여행후기 공모에서 최우수상 수상하긴 했습니다만
그럴만한 글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기니까 심심할때 읽어 보셔요
유럽 렌트카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한테 도움이 될 겁니다.
사진까정 보시려면 첨부물 클릭하시면 됩니당.
마치 내가 여행하는 기분 입니다.
낯설고 물서른 여행길 긴장과 실수
그리고 해냈다는 안도감 ㅎㅎㅎ
좋아요 나머지는 다음에 읽을게요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행복한 오후 되세요.
감사합니다.
워낙 분량이 많으니까 천천히 시간되실때 읽으세요.
이 외에도 에피소드가 많은데 줄인게 이정도네요